[조희문의 영화이야기] <무사>, <썸원 라이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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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죽을지언정 피해갈 순 없다
기획에서 제작까지 5년, 중국 올 로케이션, 제작비 70억원, 112회 촬영에 필름 30만자 사용, 중국 대륙 1만km횡단, 6개월에 걸쳐 제작비 3억원짜리 토성 세트 제작, 현장 스텝 300여명 등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운 <무사>는 단연 올 가을 최대 화제작이다. 비단 스케일뿐 아니라 <무사>가 관심을 모으는 또다른 이유는 <비트><태양은 없다>를 통해 선굵은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려온 김성수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97년 <태양은 없다> 편집실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내내 이 작품에 매달려온 그는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영화가 아니라 혹독한 운명에 맞서 거칠고 뜨거운 싸움을 벌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려내려 했다.
동터오는 새벽, 거친 대륙의 돌개바람을 헤치고 9명의 무사가 돌아온다.
고려말인 1375년. 중국에는 명과 원이 전쟁중이고 고려는 명과 친선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잇따라 보낸다. 명은 고려를 믿지 못한 채 사신들을 투옥하거나 감금한다. 그중 한 사신단이 명에서 첩자 취급을 받아 귀양길에 오른다. 호송줄에 묶여 사막을 건너던 중 원의 공격을 받아 사신과 명의 호송군들이 모두 죽고, 사신을 호위하러 간 고려의 장군과 무사들은 풀려난다.
목적과 명분뿐 아니라 우군과 적군의 구별도 사라진 채 이국땅 한 가운데에 버려진 무사들. <무사>는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이들의 귀향기인 동시에,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길로 치닫는 과묵한 검객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영웅연가이다. 이 스케일 큰 이야기를 찍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스태프 300명이 5개월 동안 중국대륙 1만km를 횡단했다. 당시의 외교사와 이들의 운명을 연결짓는 대하 사극이 나올지, 호머의 오디세이같은 서사적 로드무비가 나올지 영화계 안팎의 궁금증과 기대가 컸다.
김성수 감독이 택한 길은 디테일이 풍부한 서사극보다, 파멸해가는 마초들을 풍부한 이미지로 잡아내는 사실적인 소묘였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샘 페키나에서 비롯됐다." 는 그의 말처럼 이 무사들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에 나오는 총잡이들을 연상시킨다. 싸우다 살아남으면 다시 모여 앞으로 내달리는 남자들의 일방 통행길에 절단된 사지와 피가 난무한다.
대신 스토리 라인은 간결하다. 최정 장군(주진모)은 원군에 납치된 명의 부용 공주(장쯔이)를 발견한 뒤 공주를 구해 명으로 데려다 주고 명예를 회복하는 방안을 선택한다. 그러나 공주 때문에 원군의 추격을 받는다. 노비 출신의 무사 여솔(정우성)과 최 장군과 공주 사이에 멜로적 구성이 있지만, 전면에 부가고디지 않는다.
한눈 팔지 않고 예정된 파국으로 내닫고, 원군의 장수(위롱광)를 주인공 일행 못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무사답게 그려낸 연출은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럼으로써 전쟁과 폭력의 허무를 보다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하지만 캐릭터들이 개성을 발하지 못한 채 자기 입으로 자기 특성을 설명해버리고, 그 대사들도 자연스럽지 못한 건 아쉽다는 차원을 떠나 치명적인 결점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한 덩어리로 이미지를 만들 뿐, 개개의 동인과 그것의 설득력이 뒷받침되질 못한다. 그래서 이 마초들이 지금 무엇을, 어떤 상실감을 대변하는지 정체가 잘 안 잡히다. 그게 비장미의 무게감을 떨어뜨리지만 전투장면에 사실감과 속도감이 살아나고, 정우성과 장쯔이는 여전히 멋있고 아름답다. 9월 7일 개봉 예정.
<썸원 라이크 유>
- 어머, 난 몰라. 바로 이 남자야!
방송작가인 제인은 워싱턴에서 새로 온 PD 레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 또한 눈에 콩깍지가 쓰이긴 마찬가지. 3년이나 사귄 여자가 있건만 제인에게 함께 살 집을 구하자며 애정공세를 펼친다.
좋은 걸 어떡해? 날 버리면 어떡해!
그와 사랑을 완성할 생각에 살던 아파트까지 내놓고 새집을 구하던 제인. 그러나 그녀 앞에는 레이의 변심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홧김에 직장동료이자 천하의 난봉꾼 PD 에디의 아파트로 들어가버린다.
제인은 그때부터 남자들의 연애행태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아예 그럴듯한 이론까지 만들어내는데 이름하야 "암소이론". 수컷 황소가 한 번 짝짓기를 한 암소에게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한 세계 최초의 이론이다.
어머, 난 몰라. 알고 보니 이 남자야!
한편 매일같이 새로운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에디지만 제인만큼은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그녀에게선 여성미를 느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 처음엔 에디를 혐오했던 제인은 에디에게도 남모를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두 사람. 바야흐로 순진녀와 느끼남의 코믹한 로맨스가 시작된다.
뉴오커들의 사랑과 성공을 그린 로라 지그먼의 원작을 영화화했다. 애슐리 쥬드, 그렉 키니어, 마리사 토메이, 엘렌 바킨 등 화려한 헐리웃 연기파 배우들이 역시 배우출신인 토니 골드윈 감독의 연출력에 한층 힘을 실어준다.
오프닝부터 색다르다. 암소이론을 들먹이며 "자고로 수컷들이란..." 식의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남자들을 향한 도발일까. 장마다 제목을 달아 호기심을 자극하고, 중간중간 제인의 암소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실험자연들이 삽입되는 등 형식의 신선함도 돋보인다.
이참에 로맨틱코미디의 흐름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기대도 잠시, 여지없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배우들의 매력만큼은 횟감처럼 싱싱하다. 아카데믹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애슐리 쥬드. <엑스맨>의 늑대인간 휴 잭맨이 각각 제인과 에디로 분했다.
글/ 조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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