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이 가을에는
본문
깊어가는 가을 한 구석
보이지 않는 낙엽 속에 함께 쓸려 가는
여린 가슴 내 영혼을 쉬게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하여 주소서, 이 가을에는
가진 것 많아 따스히 느껴지는 웃는 이보단
가진 것 없어 차갑게 느껴지는
흐느낌에 아파하는 가슴 지닌 이를
함께 하게 하여 주소서
내가 네 아니기에
네가 내 아니기에
다가설 수 없는 마지막 발걸음에 절망하기 보단
너 없인 홀로 눈을 뜰 수 없을 것 같은
나 없인 더 이상 홀로
눈감을 수가 없을 것 같은 그러한 의미가
내던져진 하나의 운명처럼 다가서 오는
그러한 이를
너 아니면 ‘내’가 될 수 없고
나 아니면 ‘네’ 자신도 스스로일 수 없다는 것을
떠도는 언어로 표현하기 보단
결정지어지는 생의 운명처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영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러한 이를 만나게 하여 주소서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 하며 먼 하늘만 바라보는
짚신 한 짝의 서툰 입놀림보단
먼발치에 바라보이는 형상에
내 모든 영혼과 육신이 휘몰려 가듯
그 형상 속에 밀려들어가는
저항할 수 없는 이승의 절대 가치를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내게 건네 주소서
지친 발걸음 쓰러진 채 흐느끼는 거리의 찬바람
더 이상 견디어 낼 수 없는 시간에 다다랐을 때
빈 가슴 절며 절이며 기울이는 술잔 속엔
더 이상의 생의 내음 존재하지 않음을
느끼게 될 때
정신없이 스쳐 지나버린 일상성의 나날 속에
끝내 남겨지는 건
기다리는 이 없는 막다른 골목뿐이라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러한 순간에
아!
긴 밤 어둠 속을 뚫고 퍼져 가는
새벽 첫 햇살과 같은 의미를 지닌
그러한 이를
그러한 이를……
깊어가는 가을 한 구석
보이지 않는 낙엽 속에 함께 쓸려 가는
여린 내 가슴
이 내 영혼을 쉬게 할 수 있도록
이제는 만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이 가을에는.
-시집 <아직도 너를 부르고 있는 것은 I> 중에서-
글/ 채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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