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이야기 ] <조폭 마누라>, <춤추는 무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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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마누라>
영화 <조폭 마누라>를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한두가지 정보. 첫째 영화도 유행을 탄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 ‘영화는 예술’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많은 관객이 그 영화를 보는가라는 점이다. 흥행결과가 특정한 영화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현실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어느 제작자든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것, 보면 좋아할 것들을 남보다 한발 빨리 알아내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그래야만 어느 정도 성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이 좋아하는 소재 중의 하나가 건달이나 깡패들의 세계를 그린 ‘조폭 신드롬‘이다.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히트작으로 떠오른 <친구>는 물론이고 <넘버 3> <깡패수업> <보스> <테러리스트> <나에게 오라> <장군의 아들> 1,2,3편 <비트> <태양은 없다>같은 영화들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주먹을 휘두르는 친구들이다.
두 번째로는 이 영화의 제작자가 ‘서세원’이라는 점을 주목할 것. 입담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개그맨 서세원은 ‘웃기는 일’이 전문이지만 한동안 배우 겸 감독으로 영화계에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연분홍치마>(1981) <이런 여자 없나요>(1981) <’82 바보들의 청춘>에서는 배우로 출연했고 <납자루떼>(1986)에서는 시나리오, 감독, 제작을 맡았다. 서류상으로는 이 영화의 제작사가 ‘신한영화’로 되어 있지만 실제 제작자는 서세원이다.
그러나 서세원의 영화경력은 ‘눈물과 한’의 세월로 남아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처참할 정도로 초라한 결과만을 남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제작자들 사이에서 서세원은 ‘같이 일하기 어려운 친구’ 리스트에 올랐고, 결국 출연기회는 보이지 않는 사이에 사라졌다. <납자루떼>는 그런 서세원의 한과 오기가 서린 영화. 제작자들이 불러주지 않자 자신이 직접 제작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서세원은 영화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오기를 부리다가 벌어놓은 돈까지 몽땅 날리는, 그야말로 ‘웃기는 친구’ 신세로 영화계를 떠나야 했다. <조폭 마누라>는 절치 부심하며 15년 세월을 기다린 서세원의 ‘복수혈전’인 셈이다.
<조폭 마누라>는 제목 그대로 조폭의 열혈 조직원을 마누라로 두게 된 남자의 황당한 수난기 또는 주먹만 믿고 살던 여자 깡패가 ‘사람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액션과 웃음이 볼거리로 등장한다. 조직폭력단의 캐릭터에다 액션과 코미디, 엽기의 배합이다. 주인공 차은진은 어느 폭력조직의 2인자. 등에 으시시한 용문신을 그린 ‘깔치 형님’의 위세는 팔팔한 남자 조폭들도 당하지 못한다. 아무도 못말리는 그의 주먹이지만 고아원에서 헤어진 언니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고, 암으로 죽어가는 언니의 마지막 소원이 동생 결혼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다. 어벙한 동사무소 직원 강수일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장가를 들지만 이게 말만 마누라지 깡패도 이런 깡패가 없다. 마누라가 진짜 깡패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홀아비로 늙어죽는게 났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여튼 장가는 들었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나 다름없다.
<조폭 마누라>가 겨냥하는 목표는 단 한가지. ‘관객을 웃겨라’다. 더러는 치졸스러워 보이고 어느 부분에서는 황당한 과장도 서슴치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부담없이 가벼운 웃음을 즐길 만큼 애쓴 흔적이 가득하다. 조폭 마누라의 인생이 바뀌는 것처럼 제작자 서세원의 ‘복수혈전’은 꽤 승산이 있어 보인다.
<춤추는 무뚜>
시네마 천국? 세계 최고의 영화 왕국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미국’이라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정작 미국보다도 더 많이 영화를 만들고 즐기는 나라는 인도다. 헐리우드 영화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줄리아 로버츠나 디카프리오 같은 배우들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명사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인도는 ‘미국은 미국이고 우리는 우리’라고 자신있게 말하며 그들의 영화를 즐긴다. 연간 8백여편 내외의 작품을 만드는 나라는 인도 밖에 없다. ‘인도영화’의 전형은 춤과 노래, 액션과 사랑, 눈물과 해피엔딩 등을 비빔밥처럼 비벼 넣는다. 온갖 재료와 향신료를 한꺼번에 넣어 여러 가지 맛을 내는 인도의 전통음식 ‘맛살라’에 비유해 전형적인 인도영화를 ‘맛살라영화’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의 반영이 그런 영화들의 유행을 부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춤추는 무뚜>는 맛살라영화의 흥겨움과 화려함, 낙관적 해피엔딩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영화다. 어느 부잣집 주인 라자와 그의 시종 무뚜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지만 사랑과 모험에서는 친구이자 라이벌이기도 하다. 부자 주변에는 한재산 챙기려는 야심을 가진 악당이 있기 마련. 라자의 숙부 암바라는 딸 바드마니를 라자와 결혼시켜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달리 딸은 마음씨가 비단결같은 아가씨. 그러거나 저러거나 라자는 결혼할 마음이 없어 바드마니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다. 라자가 엉뚱하게 마음을 뺏긴 아가씨는 유랑극단의 여배우 랑가. 그러나 라자와 랑가의 연애사업도 순탄치가 않다. 랑가를 괴롭히는 건달 패거리들이 등장하고 라자와 무뚜는 이들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 천신만고 끝에 무뚜가 랑가를 구하는 사이 두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 그 사이에도 계속되는 암바라의 음모와 흉계. 이런저런 과정으로 무뚜는 라자의 미움을 사 집에서 내쫓이게 하는데, 라자의 어머니는 무뚜가 부잣집안의 진짜 후계자이며 그가 하인으로 자라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주인공 남녀의 사랑과 모험이 구구절절이 펼쳐지는 동안 영화는 짜릿한 액션과 화려한 춤, 신나는 소동을 뷔페처럼 푸짐하게 차려낸다. 영화의 흐름이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데 어찌어찌해서 이렇게저렇게되고 그래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더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온갖 구경거리를 버무리는 구성은 우리가 보는 시각으로는 촌스럽기가 이를데 없지만 순박한 즐거움과 흠겨움은 미국영화의 세련되고 계산된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 이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이유는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 위안, 짧지만 짜릿한 행복감 같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인도영화는 세상 어느 나라 영화보다도 충실하게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며 군무를 이루는 춤과 노래는 엄청난 스케일과 다이나믹한 율동,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릴 정도의 흥겨움을 선물한다. 수십 대의 마차를 동원하며 연출한 마차 추격장면의 스피디함과 스릴은 그것대로 볼거리를 만들고 주인공이 보여주는 액션의 황당한 과장과 뻥튀기는 그것대로 즐거움이다. 한마디로 재미있고 신나며 볼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함께 엮는 것이다. 철저한 관객 중심의 구성이며 팬서비스 정신이다. 영화는 현실을 그려야 하고 만든 사람의 철학과 사색이 들어가야 하며 기술적으로 짜임새를 갖추어야 한다는 등의 ‘진지한 영화론’은 맛살라영화 앞에서는 쓸데없이 인생을 괴롭히는 번뇌가 될 수도 있다. 인도 사람들이 서양적 시각으로 보면 거지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특유의 철학과 내세관으로 여유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맛살라영화는 여전히 ‘그들의 영화’로 남아 세상과 사람을 위로하고 감싼다. <춤추는 무뚜>는 <신상>(神象)이란 영화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수입된 인도 영화이다. 극장 개봉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비디오라도 늘 보던 영화들과는 다른 세상을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떨까.
글/ 조희문(상명대 영화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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