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알이 닭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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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닭은 알에서 깨어나고 그 닭이 또 알을 낳고, 다시 그 알에서 또 다른 닭이 태어나고… 아니, 그 반대로 이 닭은 알에서 태어났고, 그 알은 어미닭이 낳은 것이고, 그 어미닭은 또 어미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고… 아, 정말 뭐 이따위 질문이 다 있어.
히죽거리며 질문을 던진 친구에게 대뜸 “당연히 닭이 먼저”라고 대답했고, “그럼 그 닭은 어디서 나왔는대?”라고 역습을 받은 직후 머리 속은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대학에 입학해 소위 말하는 ‘학습’이라는 것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대학 초년생들의 필독도서 「철학 에세이」(동녘)는 이 골치 아픈 질문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알이 먼저라고. 진화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 태초에 닭이라는 개체가 먼저 생겨나고 알을 낳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원시적인 형태의 세포들이 모여 분화에 분화를 거듭하면서 닭이라는 개체를 만들어 냈으니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본질과 근원을 생각지 않고 현상적인 상황, 즉 닭이 알을 낳고 그 알이 닭이 되어 또 다시 알을 낳는다는 사실에 집착한다는데에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질문을 또 다시 만난 것은 최재천 교수의 「알이 닭을 낳는다」(도요새)에서였다. 이미 제목에서 드러나 있듯이 당연히 결론은 알이 닭을 낳는다는 것. 어째서? 유전자의 관점에서 닭과 같은 개체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나타나는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의 진정한 주인은 유전자뿐이기 때문이란다.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유전자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예컨대 남성과 여성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 어느 것도 수컷이 암컷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따지는 종은 없단다. 오히려 수컷이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몸을 치장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경쟁자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만큼 암컷의 성 결정권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만은 유별나게 남성중심적 질서 아래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데 광분하고 있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또 세상 흐름에 영합해 이리저리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을 두고 ‘철새 정치인’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철새들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정해진 지역만을 오고 갈 뿐이니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우리 정치꾼들이 ‘상생의 정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체성에 위협을 느낄 만큼 경쟁해야 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라며 실력과 안목을 갖춘 정치인들을 해외에서라도 수입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정치판을 구경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점잖게 비꼬기도 한다.
자연과 생명의 눈으로 풀어놓는 지은이의 이야기 보따리는 풍성하다. 인간 사회를 가로지르는 권력과 정치, 경제 같은 무거운 주제들부터 섹스와 사랑의 문제까지 도마에 오른다. 이 정도 이야기쯤이야 먹물 좀 들었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풀어낼 수 있는 흔한 것들이지만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의 차이 덕분에 읽는 이들은 신선한 자극과 충격 그리고 재미를 맛보게 된다.
지은이 최재천 교수는 ‘시인의 마음을 간직한 생물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학자의 날카로운 시선과 시인의 풍부한 감수성이 어울리는 아래서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글로 풀어낼 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생명철학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전작인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도 함께 읽어볼 것을 적극 권한다.
글 이우일 (웹진 ‘부꾸’ 기자) www.book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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