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신중현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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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나 영화, 공연 등을 좋아하면서도 편의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거나 관람료가 비싸서 가지 못했던 장애우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월부터 "한국 락(ROck)의 대부" 63세 신중현 씨가 장애우들을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무료공연을 한다는 것. 그 반가운 소식에 송파구 문정동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문화공연의 현장, "신중현음악세계" 찾았다.
장애우들을 위한 작은 문화공간
장애우를 위한 무료고연장인 "신중현음악세계"는출입구부터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였다. 2층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있고, 입구에는 턱이 없으며, 문도 자동문이다.
한쪽에 피아노, 기타 등 밴드가 있고, 방음벽으로 막혀 있는데 유리이기 때문에 공연하는 모습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벽면엔 신중현 씨의 음반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공간 한 구석엔 공연을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끔 차 마시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천장에서 줄이 연결되어 있는 헤드폰과 가운데 놓여진 몇 개의 의자, 그리고 휠체어가 들어와도 어디든 자리잡을 수 있는 여유있는 공간이 무척이나 깔끔해 보였다. 알고 보니 이곳은 공연도 하지만 녹음도 하고, 공연 기획도 하고, 락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배움터가 되기도 하는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장애인들을 위한 신중현밴드의 공연이 열리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공연을 하게 됐냐는 질문에 신중현 씨는 "전 콘서트 체질이라 원래 공연을 좋아하고 또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연장인 우드스탁(Wood stock)은 지하라서 장애우들이 공연을 보러 오셨다가 편의시설이 안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돌아가신 적이 있어요. 그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애우들도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하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엘리베이터나 자동문 등의 편의시설은 그렇다 치더라도 찾아온 사람들이 십게 접근할 수 있게끔 이곳저곳에 예쁘게 꾸며져 있는 신중현음악세계 소개글과 음악정보를 찾을 수 있는 컴퓨터, 너무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을 위해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헤드폰 장치까지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장애우들을 위한 공연은 매주 화요일 오후 두 시에 열리지만 일반인들을 위한 공연은 토요일 오후 다섯 시에 스튜디오 우드스탁에서 지속적으로 열리는데, 신중현 씨의 음악매니아들이 주로 온다고 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 공연은 성인 2만 원 학생 1만 원의 관람료를 받는데, 시중의 다른 공연들에 비하면 턱없이 싼 가격이다.
"돈"이 목적이 아닌 진정한 음악을 알려주고 들려주기 위함일 것이다. 우드스탁은 신중현 씨의 공연장으로 라이브 시스템이 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생생한 라이브를 즐길 수 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하라서 장애우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오히려 그것이 장애우를 위한 공연을 따로 마련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1월 16일 신중현음악세계에서의 장애우를 위한 두 번째 무료 공연을 보러 온 장애우는 불과 세 명. 섣불리 밖에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날씨와 눈이 쌓여 미끄러운 길 때문이었다. 사소한 날씨변화에도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 애를 태우는 장애우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신중현 씨였기에 공연을 보러 온 장애우들이 고맙기만 하다고 했다. 애써 준비한 공연을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해 서운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자의 생각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한 장애우는 신중현 씨 공연이 끝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장애우가 문화생활을 하면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이 공연이 다 웬 말이냐며 색안경을 끼고 본다. 그런데 신중현 씨가 이렇게 우리를 위해 공연까지 해주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받았다"며 눈물까지 보였다. 또한 벌써 골수팬이 되어 버린 한 시각장애우는 신중현 씨의 공연뿐만 아니라 제자 여성 그룹 다달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라도 빠지지 않고 화요일만 되면 이곳을 찾는다.
장애우 비장애우가 한데 어우러지는
라이브의 현장을 꿈꾸며
이렇게 문화접근의 기회가 없었던 장애우들은 작은 규모지만 콘서트를 보고 감동을 받는데, 신중현 씨는 또 욕심이 생긴다고 한다. 락 공연은 라이브로 생생하게 가수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들어야 하는데, 유리벽에 막혀 있는 공간에다, 헤드폰을 끼고 들으니 전혀 실감이 안 날 것 같다나. 직접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헤드폰을 통해서 음악을 들으면 집에서 음반을 듣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고, 또 공연을 하는 자신도 신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락은 자유입니다. 락은 정신적인 세계를 주면서 우주공간을 확보시켜주지요. 그래서 듣는 사람들은 그 우주세계에서 음악을 통해 자기를 느끼고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락의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생생한 라이브를 통해 관객과 하나가 되고 싶은 거죠."
그래서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 우드스탁공연을 장애우와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벌써 우드스탁은 휠체어리프트 공사에 들어갔고, 3월부터는 장애우, 비장애우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 생생한 공연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누구보다 문화발전에 앞장서 온 신중현 씨에게 우리 장애우들의 문화접근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졌더니 신중현 씨는 "장애우들도 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당연히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회적인 인식과 편견의 압박으로 지쳐있는 장애우들에게는 정신적인 세계를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 생각하구요. 마음이 침체되고 앙금이 있다면 어떻게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바로 그것을 풀기 위해 문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죠. 그래서 혼자서 즐기는 것보다 함께 호흡하면서 즐겨야 합니다" 라고 강조했다.
장애우들을 위한 무료공연도 좋고, 공연문화가 발전하는 것도 좋은데, 공연을 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이 슬슬 걱정된다. 그러나 정작 신중현 씨는 별 걱정이 없는 듯하다.
"운영을 딴 데서 해야죠. 다른 가수에게 곡을 준다든지, 씨디를 판매한다든지. 지금은 초기투자단계라 힘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하다보면 차차 나아지겠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 그 음악을 남들에게도 알린다는 것. 더군다나 공연에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우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다는 게 그의 걱정을 사라지게 하는 모양이다.
한 기관에서 실시한 장애우들의 문화욕구 설문조사에서 장애우들이 가장 하고 싶은 문화활동이 영화, 연극을 비롯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비장애우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소박한 욕구지만 이 작은 문화욕구조차 해소하기가 힘들었던 게 우리 장애우의 현실이었다. 그 욕구를 이 작은 문화공간에서부터, 그리고 정신세계음악이라고 불리우는 락을 통해 해소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중현음악세계 문의 02)403-3473//www.sjhmvd.com
글 김경희/사진 김학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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