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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이야기] 캐스트 어웨이-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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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남국의 작은 섬. 야자수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깨끗한 모래가 백사장이 어우러진다면 더욱 제격이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꾸어 봤음직한 "그림같은 풍경" 그 자체가 아닌가. 그곳에서 뭘 할까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철철 넘칠 것 같다.

 

미국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그 느긋한 공상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운다. "남국의 섬으로 떠나고 싶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그곳으로 데려다 주지"라며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어느 섬으로 집어던진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바쁘기로 따지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억울할 정도로 정신없이 사는 택배회사 직원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애인과 헤어져 택배화물 비행기에 오른다.

 

휴일조차 없이 일에 파묻혀 사는 그에게 필요한 것은 편안한 휴식과 여유. 밤하늘을 날던 비행기는 갑자기 닥친 폭풍우 때문에 바다 속으로 추락한다. 허우적거리며 죽을힘을 다해 가라앉는 비행기를 빠져 나와 겨우 어느 섬에 닿는다. 생존자는 단 한 명. 뜻하지 않은 휴가를 얻은 셈이지만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섬에 혼자 남은 그에게 닥치는 것은 두려움과 외로움이다.

 

온갖 잘난 척을 다하던 현대 도시인이 홀로 원시 자연과 마주쳤을 때, 어쩔 수 없이 꿈속에 그리던 남국의 섬은 생존을 검증하는 서바이벌 훈련장으로 바뀐다. 푹신한 침대? 꿈도 꾸지마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곁들인 김치와 고등어 구이? 겨자 소스를 적당히 친 안심 스테이크? 생각해봐야 배만 더 고플 뿐 차려주는 사람도, 주문할 곳도, 찾아 먹을 데도 없다. 당장 잠 잘 곳,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지만 휴대전화로 업무처리하고, 컴퓨터로 인터넷하던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바닷가 모래밭이나 물 속 바위를 맨발로 걸었다가는 칼날같은 조개껍질에 피투성이 되기 쉽상이고, 갈증과 허기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반색을 하며 마신 코코넛 열매 (깨는 일도 장난이 아니지만) 과즙은 설사약으로 둔갑해 사람을 잡는다. 뭔가를 구워먹든 삶아먹든 불이 있어야겠는데, 성냥도 없고 라이터도 없는 처지가 한심하다. 눈으로만, 말로만 익혔던 지식이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를 뼈에 사무치도록 겪어야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 언젠가는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그를 환경에 적응하게 만든다. 결국 불을 피우고, 고기잡고, 보트까지 만든다. 그 사이에, 두툼하게 잡히던 뱃살은 단단한 근육으로 바뀌고, 안전하게 생존하는 법은 어떤 것인지를 터득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술술 흘러간다. 주인공은 절박하지만 관객은 그것조차 구경거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다. 간간이 웃음까지 섞어 가면서.

 

척의 고난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날까. 영화는 여기서 한 번 뒤집기를 한다. 천신만고 끝에 작은 배를 만들어 섬을 탈출한 척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애인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이까지 낳고 사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이런 세상에, 하지만 이때부터 영화는 늘어진다. 이러고 저러고 하는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지는데다, 여자는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며 눈물로 설명을 하는 부분은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겠다는 의도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군더더기같은 느낌이 더 크다.

 

주인공 역의 톰 행크스는 어쨌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시작부분에서는 군살이 디룩디룩하지만 후반에서는 고생한 사람답게 강단이 비치는 몸매로 바뀐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다시 손을 잡고 또 다시 "재미"와 "감동"을 겨냥했지만 얼마나 나누어 갖는가는 보는 사람의 몫이다.

 

눈물 

 

- 청소년들의 방황을 바라보는 어느 "어른"의 시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소년들은 그 시대와 사회의 희망이자 위험하고 불안한 존재였다. 기성세대들처럼 굳은 존재가 아니라 덜 여물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완의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사랑과 관심을 원하면서도 간섭과 제약은 습관처럼 거부하는 이중적 행태는 수많은 "청소년 문제"의 중요한 소재였다.

 

영화가 이를 놓칠 수 있는가. 제임스 딘을 전설적인 배우로 만든 영화 이유없는 반항은 "청소년 영화"의 고전이다. 청바지에 가죽 점퍼를 입은 젊은 반항아는 스피드에 열광하고, 거친 폭력과 반항에 매료된다. 억압과 구속, 무관심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의 풍경이다.

 

2001년, 21세기의 첫머리에서 임상수 감독은 눈물이란 영화로 한국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혼한 부모가 싫어 가출한 한, 말끝마다 욕을 달고,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며 여자아이들 등쳐먹고 사는 창, 술집 접대부로 일하며 몸과 마음을 망가트리고 있는 란, 스피드에 열광하는 터프 걸 새리.....

 

이들의 생활은 절망의 끝에서 허우적댄다. 술 마시고, 몸 팔고, 본드 흡입하고, 때리고 훔치고..... 험악한 모습으로이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인연으로 그룹을 이룬 이들 4명은 새로운 생활로 시작하지만 곧 무력감에 빠진다. 뭔가 새로운 희망을 찾아 바다로 달려가지만 그곳은 물 빠진 갯벌, 진흙밭일 뿐이다. 그들의 생활은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청소년이라고 다 문제아는 아닐 터이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남녀불문하고 모두 갈데까지 간 문제아들이다. 그것도 극단적이다. 세상과 타협하며 적응하겠다는 의지나 여지는 애시당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문제를 다룬 영화의 미묘한 모순은 그것이 청소년 스스로의 발언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을 빌어서 발언한다는 것이다. 그 시선은 바로 제작자나 감독의 것이다. 제작자나 감독은 당사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위치에 있다. 이는 "청소년 문제"라는 포괄적 주제에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를 전제한다는 것을 뜻한다.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인생"이니 "사랑"이니 하는 문제들을 다룬다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함축적으로 상징할 수 있는 특정한 상황과 인물, 사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임상수 감독의 시선은 지극히 냉소적이며 아웃사이더같은 분노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의 인물은 대부분 세대의 유형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부모들은 이기적이며 탐욕스럽고 무책임하며,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을 미워하고 욕하며 반항한다. 성장의 고민이나 세대간 소통은 관심에서 밀려나고, 그들이 얼마나 고통받으며 험악하게 살고 있는가를 난폭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집을 나간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 함께 살겠다고 해도 아버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건성으로 넘기고, 딸을 찾으러 간 또 다른 아버지는 또래 아이들에게 듣기도 민망한 막말을 퍼부어댄다. 그런 아버지에게 딸아이의 남자친구는 당장에라도 패대기쳐서 짓밟을 듯한 표정으로 덤벼든다. 그 사이에 진지한 성찰이나 문제를 풀기 위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청소년 문제를 빌어서 맘껏 휘두르는 감독의 삿대질만 크게 보일 뿐이다. 청소년의 문제는 곧 어른들의 문제라는 것을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글/ 조희문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작성자조희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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