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그 마지막 의미를
본문
1
너와 나 마주앉아 기쁘기만 한 마음
정치 얘기는 하지 말게나
세상 얘기는 생각지도 마세
물가가 얼마나 오르고
경제 사정이 어떻다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마세
세상 인심 각박해졌다느니
누가 유명해졌다느니……
다 필요 없는 것들이라네
2
너와 나 마주하여 행복하기만 한 마음
외로움을 털어 보세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세
인생 얘기도 좋고
문학도
예술도 좋네
하다못해 어린 시절 추억거리라 해도 괜찮고
어느 여인의 사랑 얘기라 해도 상관없네
희미하게 퍼져 가는 담배 연기같이
조용히
허나 여한 없는
자네와 나만의 대화를 나누기로 하세
지금 이 자리는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잠시 시야 밖에 두셨다고 믿어 보며
옷 먼지 털어내듯 미련 없이
그 모두를 털어놓아 보세
답답했던 거
괴로웠던 거
홀로 삭혀야만 했던 슬픔 같은 거
잊지 못해 몸부림쳤던 그 모든 것들을
남김 없이 털어버리기 위해
깨끗이 잊어버리기 위해
우리가 지금 마주앉은 걸세
그리고 나선
다신 생각지 않기로 하세
말로 못할 거라면 눈빛으로라도 좋네
자네와 나 사이인데 눈빛으로 얘길 못하겠나
쓸데없는 얘기 괜히 했다 생각된다 해도
우리 사이기에 후회는 안 하겠네
그럼
내 얘기하지
3
어리석은 존재였다고 나를 말하겠네
그 누구보다도 모자란 놈이었다 고백하겠네
사실은 여린 소녀 마음보다 더 소심한 놈이라고
아직도 한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는 채로
끝이 없는 허공을 방황하는 놈이라고
홀로 있을 때
밤 깊어 차가워진 새벽 공기에 몸을 사리며
두 손 모아 쥐고
떠나가 버린 여인의 이름 부르며
그렇게 수많은 밤들을 울어야만 했다고
내
자네에게만 솔직히 시인하겠네
일기를 적어도
못다 한 사연이 남아 있음 느낄 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수없이 지껄이고 얘기해도
다하지 못한 대화 텅빈 채로 남아
빈 공간에 가득 맴돌고 있음을 느껴야 할 때
단 하나의 사랑 위해 내 모든 마음 다 주어도
끝끝내 남겨진 채로 전해 줄 수 없었던
그 한마디
영혼 가득 흩뿌려진 채로
남겨져 있음을 느껴야만 할 때
완성 뒤에서야 비로소 미완성임을
어쩔 수 없이 깨달아야만 하게 될 때
친구는 어떻게 하겠나
술도
담배도
눈물로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그 마지막 의미를
4
떠나고 싶네
외롭고
그립고
슬퍼했던 것들
사랑해 오던 모든 것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만큼 벗어나기 위해
지금 우리 함께 앉아 있는 걸세
자네와 나 하나되어 마주앉은 이 시간에
이젠 얘기를 털어놓아 보세
풀어내지 못한 일들
끝끝내 해결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그 마지막 의미를
그래,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단지 그것 뿐이라네.
글/ 채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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