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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행상 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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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화장지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내 유일한 밥줄

열 개들이 한 묶음 팔면 천이백원이 남는 화장지는

변함없이 내 삶의 무게처럼 무겁기만 하구나

오늘은 어디 가서 마수걸이를 해야 하나

가게문을 밀고 들어가서

화장지 하나 사주세요

장애우가 만든 겁니다. 애원하면

있으니까 다음에 오세요.

사람들은 외면하지만

싸늘한 눈길로 쳐다보지만

맥없이 돌아서면 밥줄이 끊겨서

내 삶의 버팀목이 무너지는 게 보여서

입 앙 다물고 버티고 서 있는다

결국 화장지는 팔지 못하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백 원 동전 하나, 천 원 지폐 한 장

떨리는 손으로 집어들고 돌아서 나올 때

나는 늘 다리가 후들거려서 주저앉고 싶었다

그만둬야지, 나는 거지가 아니야! 외쳐보지만

망할 천이백원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구나

이 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팔면 국민연금에 가입시켜 준다는

회사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몇 푼 벌어 가지고 들어가면

좋아하는 엄마, 아들로 인정해 주는 아버지

비로소 사람으로 대접받는 가슴 벅찬 순간이 있어서

나는 절망과 시름과 수치심을 한꺼번에 묻어버릴 수 있다

뇌성마비 장애우로 태어나

밥만 축내는 기생충으로 전락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취업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나는 믿고 있는데

왜 이렇게 사는 게 고단하기만 한지

하루종일 겨우 화장지 세 묶음 팔고

집에 가기 위해 막차를 타면

창문을 덮은 뿌연 성애가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장애우로 태어난 걸 원망하면 뭐하나

식당에서 불쌍하다고 그냥 주는 한 끼 밥 만한 가치도 없는 걸

나는 툭 툭 털어버리고 잊고 싶은데

장애는 왜 나를 놓아주지 않는지

질기게 붙잡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나는 눈물 흘린다

갈라진 손등으로 젖은 눈가를 훔치고

창문 너머 흐릿한 불빛을 바라보면

거기 내가 마음속에 키우는 꿈 하나 있다

화장지가 많이 팔리면

한푼 두푼 돈을 모아서

꼭 아메리카에 가야지

아메리카는 장애우 천국이라던데

차별하지 않는다는데

나라에서 먹고 살만한 돈을 준다는데

장애를 팔아 동정을 구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아메리카에 가서 살아야지

희미한 웃음 띄우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내일 장사는 청주에 내려가서 한다는데

더도 말고 화장지 열 묶음만 팔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 가슴에 묻는다

            

 글/ 이하진(자유기고가)

 

작성자이하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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