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읽는 동화] 칡넝쿨과 소나무
본문
양지바른 산기슭에 소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어휴! 더워! 저리로 좀 가!”
곧게 자란 소나무가 짜증을 내며 햇살을 향해 뾰족한 잎을 세웠습니다.
“하루 종일 너희들하고만 노는 게 정말 싫어!”
가지 많은 소나무도 그 옆에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쪽으로 조금만 비켜 줘! 응?”
키 작은 소나무까지 짜증을 냈습니다.
‘칫! 가지 말라고 붙잡던 때는 언제고!’
햇살은 추운 겨울을 그리워합니다.
“내가 없었다면 너희들은 그 때 얼어 죽고 말았을 거야!.”
햇살은 지난 해 겨울에도 나무들 곁에서 언 몸을 녹여 주었습니다. 이른 봄에는 새로운 줄기와 잎들이 자라나도록 따뜻이 보살펴 주었습니다.
“벌써 잊었니? 내가 없으면 너희들의 잎과 키는 잘 자랄 수 없단 말야! “
초여름의 햇살은 소나무 곁을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이야기꾼 바람과 온갖 벌레들을 만날 수 있어서입니다.
“너희들이 뭐라 해도 난, 여기가 좋아!”
며칠이 지나도 햇살은 여전히 소나무들 잎새들 옆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소나무들은 더 이상 햇살과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리로 오세요.”
그런데 햇살을 부르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햇살은 반가운 마음으로 소리나는 쪽을 향해 천천히 비켜 갔습니다.
“어휴! 겨우 살 것 같네. 그런데 따가운 햇살을 반기는 저 나무는 도대체 누구지?”
가지 많은 소나무가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이 곳에서 처음보는 나무인데……. 얘, 네 이름이 뭐니?”
키 작은 소나무가, 손짓했던 넝쿨 손을 발돋움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칡나무야.”
“별……이상한 이름도 다 있구나.”
키작은 소나무는 심드렁해하며 금세 칡나무를 잊었습니다. 햇살이 비켜간 자리에 찾아온 그늘이 너무나 반가웠기 때문입니다.
곧게 자란 소나무와 가지 많은 소나무도, 시원한 그늘을 두 팔 벌려 반겼습니다.
초여름 햇살은 그사이 칡나무와 다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호호호호 호호호호.”
칡나무는 간드러진 웃음소리로 햇살과 어울렸습니다.
“호호호호 호호호호.”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칡나무의 웃음소리는 하루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늘 구경 좀 시켜주세요.”
어느 날, 칡나무는 가느다란 넝쿨 손으로 곧게 자란 소나무를 간질였습니다.
“허락하면 안돼! 칡넝쿨은 눈 깜짝할 사이에 널 덮어버리고 말거야!”
소나무 위에 앉아 있던 찌르레기가 소리쳤습니다.
“이렇게 조그마한데 어떻게 날 덮는다는 거니?”
곧게 자란 소나무는 칡나무의 넝쿨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칡나무는 그 때를 놓칠세라 살그머니 소나무 줄기에 넝쿨을 감았습니다.
“후후후후. 아유! 간지러워!”
곧게 자란 소나무는 은근히 그런 새 친구가 반가웠습니다.
“넌 잠도 안자고 매일매일 키만 크는 모양이구나.”
곧게 자란 소나무는 어느 새 눈만 뜨면 칡넝쿨과 노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아직도 하늘이 잘 안 보여요. 소나무님처럼 나도 어서 빨리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요. 조금만 더 올라가도 되죠?”
칡넝쿨은 또다시 곧게 자란 소나무 줄기를 살살 간질였습니다.
“그럼 그럼!”
곧게 자란 소나무는 그런 칡넝쿨이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어휴! 숨 막혀! 누가 이 넝쿨과 잎사귀들 좀 치워 줘!”
키작은 소나무가 밑에서 소리치는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어머나! 이게 어찌된 일이지?”
찌르레기가 다시 날아왔습니다.
“모두들 정신 차려! 칡넝쿨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단 말야.”
찌르레기는 목이 쉴 정도로 소리쳤습니다.
“상관 마!”
양지 바른 곳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너도나도 칡넝쿨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칡나무는 너희들을 몽땅 쫓아 내려고 그런단 말야! 모두 이 곳에서 살지 못하게 할거라구!”
찌르레기는 날개를 파닥이며 소나무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소나무들은 찌르레기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걱정 말고 어서어서 올라오렴!”
칡나무는 안심하고 넝쿨 사이에 커다란 잎새를 펼치면서 부지런히 소나무 위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장마철이 지난 뒤, 칡나무는 드디어 소나무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늘을 만들어 드릴까요?”
칡나무는 넓다란 잎사귀 한 장을 곧게 자란 소나무 위에 펼쳐보였습니다.
“여름마다 뜨거운 햇살 때문에 무덥고 짜증이 났는데 참 잘 되었구나.”
소나무들은 하늘을 가리고 있는 칡나무 잎을 올려다보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습니다. 소나무들은 어느 새 칡나무 잎이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칡나무는 소나무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칡나무야, 그 위에서 뭐하고 있니?”
그러나 칡나무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칡나무가 펼친 수많은 잎새 때문에 소나무는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햇살아, 어디 있니?”
곧게 자란 소나무는 그때서야 옛친구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불러봐도 소용없어!”
넓게 펼친 칡나무 잎 하나가 소나무를 내려다보며 심술궂게 말했습니다.
“햇살들과 노는 것이 지겹다고 했지? 내 그늘에서 얼마나 견디나 두고보자!”
칡나무 잎은 바람이 들어올 구멍까지 막아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칡나무는 친구로 있어 준 햇살 친구에게 예쁜 보라색 꽃을 피워 보였습니다. 햇살은 양지 바른 곳에 있던 소나무 친구들도 잊은 채, 널따란 칡나무 잎과 보라색 꽃 옆에서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머나! 이 향기 좀 봐!”
칡나무는 감탄하며 지나가는 바람까지 붙잡고, 어떻게 이 곳에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를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칡나무는 여름이 가기도 전에 양지바른 산기슭의 소나무들 사이에서 대장이 되었습니다.
“나를 이길 수 있는 나무 있으면 나와 봐!”
칡나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수많은 넝쿨손을 휘휘 저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느라 밑에서 사람들이 두런거리며 올라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 곳에도 칡나무들이 자라고 있군요. 뿌리는 캐서 즙으로 만들고, 잎은 뜯어다 소에게 먹입시다. 그냥 놔 두었다간 잘 자란 소나무들을 몽땅 뒤엎어 죽이고 말거요."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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