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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을 떠나 다시 찾은짐의 자유

동정은 싫다 제 10장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

본문

 시설 정신지체 장애우인 짐을 놓고 짐이 가진 문제점만을 크게 보고 사회에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는 직원들에 맞서 자립생활을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짐은 그대로였지만, 짐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보는 시각과 짐이 갖고 있는 능력을 살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시각만이 있었던 것이다. 시설을 떠날 즈음에야 짐이 가진 장점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가 있은지 19개월이나 지난 후였지만 결국 짐은 비로소 가족을 다시 찾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됐다.

 

 

  저자 : 조셉 피 쉐피로 

    이 책을 쓴 조셉 피 쉐피로는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유에스월드앤리포트지 기자로서

    사회정책에 관한 다수의 기사를 썼다. 그는 미국 알리샤 페터슨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 장애우 인권 운동을 연구해서 이 책을 썼다.

 

  역자 : 서동명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 중에 있다.

 

 " 짐은 식물인간이 아니었어"

  에블린과 나는 서른 한번째 짐의 생일 전날에 페리볼트에 갔다. 우리가 정오에 도착했을 때, 짐은 자기 침대에 누워서 자기 소유의 12인치 텔레비전에서 하는 미식축구경기를 보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 집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한데 모여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바로 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짐은 반소매의 흰셔츠를 입고 있었다.
  페기, 줄리에 그리고 짐의 형제 중의 한 명인 랍은 각기 따로 운전하고 왔다.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한참을 헤매다가 에블린과 내가 도착한지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짐은 아주 오랜간만에 형제들을 보면서도 매주 보아왔던 것처럼 친근하게 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만나지 않은 그들에 대해 일종의 분노를 느꼈을 법한데도 그런 기색을 전혀 내비추지 않았다.
  짐은 그의 여자형제들과 이모와 악수를 하고, 남자형제들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레스토랑으로 갔다. 초기의 소란스러움이 진정된 후에, 페기와 줄리에는 밖에서 일하기 때문에 짐의 입술의 부르튼 상처와 검게 타고 주름진 얼굴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짐은 그이 형제들고 많은 부분에서 닮았는데, 예를 들면 모두 금발이고, 매력적인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시설에 돌아와서 짐은 침대에 앉았고 페기, 줄리에 그리고 랍으로부터 받은 생일 축하카드를 열어보았다. 그는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지금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매우 행복해 했고, 밝게 미소짓고 있었다.
  짐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은 자신의 프로젝트와 작업을 수행하는 지하실 창고로 우리를 데리고 갔을 때 많이 바뀌었다. 2개의 자전거 바퀴와 나무로 된 작은 바퀴가 달려 있는 높은 등받이가 있는 나무로 된 휠체어는 쓰기 불편하게 보였다. 그러나 짐은 이것을 능숙하게 다뤄서 앞으로 끌로 나갔다. 에블린은 이 곳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짐의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줄리에는 자전거 페달 모양을 하고 작은 나무뼈대로 되어 있는 물건을 집어들었다. 짐은 이것이 페달을 동력으로 하는 비행체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그녀에게 보드지와 철사로 만든 날개 보여주고, 그리고 나서 자신이 만든 자전거의 뼈대는 너무나 무겁다고 설명하고 날기 위해서는 더 가볍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짐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연구재료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오른팔을 걷어올리고 왼손으로 열심히 가리키면서, 마치 대학교수가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것처럼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에블린, 페기, 줄리엣의 약간 어리벙벙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밥은 "지미, 자전거도 고칠 수 있어? "라고 한 쪽 구석에 있는 고장난 자전거를 가리키면서 물어보았다. 바로 몇 주일 전에, 형제들은 짐을 "무기력한 사람(vegetable)"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들은 그가 자전거 수리점에서 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고 있었다. 이것은 그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짐은 이게 문제야"

 

  미네소타의 장애우 부모들에게 학교 이사회와 건강관련기관 그리고 다른 관료들에 대해서 어떻게 압력을 가할 것인가를 교육하는 프로그램- 그는 이것을『Personal Futures Planning』이라고 불렀다-을 운영하는 사람이 바로 데이빗 핸콕스였다. 미네소타에 있는 가족들은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장애우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위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러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사용하였다. 이 곳을 통해서 짐을 원조하는 소규모 집단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 팀은 짐의 요구와 희망사항들을 토대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나는 10월경 이 회의에 합류했다.
  한편 이 회의 사이에 이와는 대조적인 회의가 개최됐는데, 바로 시설 직원들이 지난 1년간의 짐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이 것은 짐이 가진 문제점이나 단점에만 초점을 맞춰져 있었다. 짐이 지닌 장점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다.
  "나는 회의를 증오한다" 짐은 자신을 비난하기만 하는, 매년 열리는 이 평가회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Personal Futures Planning』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즉 친절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을 살펴보았다.
  이 회의장에는 4개의 긴 회의용 탁자가 있었는데, 짐은 그 중 한 의자 가운데 앉아 있었다. 미네소타대학에서 온 우리의 지원자인 마리요 맥브라이드는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 그에게 중요한지를 짐 스스로가 정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그 후 그가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계획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짐의 개인사가 담긴 대자보를 보면서 논의했다.
  나는 이 회의에 짐을 시설로부터 나오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와 시의 사회복지사들을 초청했다. 초대받은 12명 중에는 페리볼트에서 짐에게 강력한 원조자라고 느꼈던 두세 명도 있었다. 또 그와는 반대로 방어적이고 의심이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의 흠잡기가 곧 시작되었다. 시설의 심리상담가인 네일 피른스워스는 짐이 얼마나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맥브라이드가 짐은 충분히 사교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 심리학자는 "당신은 당신 목에 짐이 강제로 타이어를 두르려고 한다면, 당신은 결코 그가 사교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응수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내용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결코 어떠한 구체적인 사건을 아야기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페리볼트의 직원은 짐이 자기가 뭘 만드려고 하다가 물품이 필요하면 그걸 다른 데서 훔친다고 이야기했다. 그 심리학자는 짐을 "좀도둑"이라고 까지 표현했다.
  이렇게 격렬한 흠잡기를 하는 동안에 짐은 그 내용을 전혀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짐은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페리볼트의 상담원인 뎁 렌웨이를 보고서 성난 얼굴로 노려보았다. 짐을 자신의 차로 이 회의에 데리고 왔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당신은 죽어야 돼" 짐은 나직하지만 성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 차를 부숴버리겠어."
  나는 몇 년간 짐의 담당 사회복지사였던 홀이 짐이 페리볼트를 떠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그는 내가 짐의 기록들에 접근하는 것도 거부했다. 그 이유는 짐의 기록들을 훑어보면서 알게 됐다. 법적으로는 매년 짐에 대한 개별적인 평가가 요구되지만 그건 지난 수 년 동안 전혀 작성되지 않았다.
  또 짐이 자신만의 아파트로 나가 사는 것을 논의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여러 가지 심사결과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홀이 담당하고 있는 시설 생활자의 수가 너무나 많은데 반해 누구도 짐을 위해 이러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도 쉽게 짐의 욕구가 서류함 바닥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사회복지사와의 만남


  나는 새로운 사회복지사가 짐을 담당하기를 요구했고,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스티븐 슈미트라는 새로운 사회복지사가 맡게 됐다.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젊었으며, 정열적이었고, 그리고 창조적이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또 짐에 관한 파일을 보고 짐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홀과 달리, 그는 짐이 시설을 떠나 생활할 때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는 전화로 짐은 페리볼트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새로운 사회복지사의 첫 번째 만남에서 짐의 다혈질적인 성격이 짐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변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단지 기우에 불과했다. 슈미트는 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며, 단지 스스로 불합리한 비난을 받을 때에만 짐이 과격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 회의의 마지막 시간에 재결합했다. 그 사이의 여러 가지 일은 더 잘 진행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맥브라이드는 긍정적인 것을 유지시켜 나가도록 했다. 여러 가지 것들은 잘 되어 가는 것 같았고, 다음 회의는 가족들이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며칠 후에 열리기로 했다. 다음 회의 장소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 회의에는 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직원들의 수가 줄어 있었다. 짐은 회의장소에 들어가서 그의 이모와 누이인 페기를 보았고, 회의에서 나올 때는 형제인 데니스를 보았다. 짐은 이들을 보면서 커다랗게 웃음을 지었다.
  나는 또한 어빙 마틴에게 이 회의에 참석할 것을 부탁했다. 큰 키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듯한 미소와 친절한 매너가 몸에 배인 마틴은 부시 대통령이  "장애를 가진 미국인 법(ADA법)"에 서명하는 것을 보기 위해 워싱턴에 왔다. 마틴은 요양원의 식이요법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음식을 준비하고 배급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일이 끝난 후 그는 매일 미키의 조그마한 노천까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곤 하였다.
  그러나 "내 삶의 하이라이트"라고 그가 말하는 것은 교회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될 때였다고 말한다. 이것이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짐의 가족들이 정신지체 장애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변화시킨 사람이 바로 마틴이었다. 첫 회의에서 시설의 심리학자는 만일 짐이 시설을 떠나 살게 된다면 짐의 훔치는 버룻은 결국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것이며, 결국 감옥에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짐은 이러한 이야기를 너무나 자주 들어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언가 스스로 잘못했다고 느꼈을 때 비굴하게 "나는 정상이 아니에요. 나는 감옥에 가야만 돼요."라고 얘기하곤 했다.) 두 번째 회의에서 마틴은 짐이 자신의 잘못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그를 사회에서 성장시켜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틴은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정신지체이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은 당신이 한 번에 한 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다. 만약 그가 여러 가지 실수를 할 여지를 가지고 있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내딛는다면 그는 평범한 사람이 될 것이다. 자신이 삶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그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수에서부터 배우는 것이다."

 


짐이 누리게 된 자유


  이 팀은 이제 짐이 페리볼트를 떠나야 한며 이제 더 이상 큰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짐이 가족과의 관계를 더 깊게 가지는 것에 동의하고, 짐이 계속해서 기계에 대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도우며, 짐이 자전거가게, 자동차가게 등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찾는데 가능한 도움을 줄 것이다. 짐이 그룹홈이나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에도 동의했다. 이것은 짐의 성격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더 이상 지루해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맥브라이드가 짐에게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드는지를 물어보았다. "이 집에서 고양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짐은 천천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신이 마음대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Personal Futures Planning』 회의 사이에, 짐과 나는 쇼핑을 하기 위해서 오와토나로 갔었다. 그것은 자동차 가게, 타이어 가게, 그리고 농기구 판매상들의 가게가 모여있는 곳을 답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차의 타이어와 트랙터 타이어 모터 싸이클 타이어, 그외 모든 타이어를 돌아 보았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짐은 페리볼트에서 생활했던 로빈이라는 여성이 지금은 오와토나에 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로빈이라는 이름은 첫 번째 회의에서였다. 그녀는 짐의 가까운 친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짐, 만약 로빈을 찾는다면 저녁식사 후에 로빈을 찾아가고 싶어요?"라고 묻자 "예"라고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30분쯤 후에 우리는 로빈의 그룹홈 문앞에 서 있었다.
  이곳은 깔끔한 "소녀들"의 아파트였다. 멋진 4개의 침대가 로빈과 룸메이트를 위해 놓여 있었으며 벽에는 말린꽃이 꽂혀있었다. 분홍과 녹색 꽃무늬 디자인의 하얀색 쇼파가 있었다. 커다란 텔레비젼은 부엌과 식사장소로 사용되는 작은 거실 한쪽에 놓여 있었다. 우리가 걸어 들어갔을 때 로빈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4명의 여성들이 인사를 했지만 아무도 특별히 반갑게 맞아주지는 않았다.
  짐은 내 옆에 붙어 서 있었다. "혹시 로빈이 여기에 사나요?" 라고 내가 큰소리로 묻자, 예쁘장한 둥근 얼굴과 짧은 머리, 그리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한 여성이 고개를 들고 웃었다. 짐과 로빈은 우리들이 TV영화를 보는 동안 쇼파에 앉았다. 로빈은 그녀와 짐 사이에 오렌지색의 팝콘용기를 가져다 놓았다. 처음에 그들은 더듬거리고 어색하게 수줍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곧 짐이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전에 어디선가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조금 후에 로비는 그녀의 침실로 잠깐 들어갔다. 로빈도 짐에게 무언인가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커피포트, 언니로부터 받은 새 신발이나 방 열쇠로 열어 보여주면서 짐에게 누구도 이것들을 훔쳐갈 수 없다고 말했다. 로빈은 그들 사이에 있는 팝콘 용기를 치워버렸다. 나는 그들 앞에 앉아 있었다. 짐은 눈을 나에게 맞추고 있었다, 내가 흘낏 두 사람을 엿보았을 때 짐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로빈의 무릎에 자신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나는 갑자기 만약 페리볼트의 직원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31살의 짐은 데이트나 혹은 무엇을 하든지간에 괜찮을 정도로 충분히 나이를 먹은 것이 사실이다.

 


가족들의 변화


  페리볼트와『Personal Futures Planning』회의에서 짐을 본 이후에 짐의 형제 자매들은 흥분해서 짐이 가진 능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짐이 추수감사절에 집에 방문할 것을 원한다는 기별을 보냈다. 에블린은 이 편지를 시설로 보내 외출을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추수감사절 아침에 짐의 어머니는 짐을 위해서 2개의 애플 파이를 구웠다. 그런데 저녁식사가 시작됐지만 짐은 도착하지 못했다. 후에 시설 직원들은 실망한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에블린의 편지를 받지 못했고, 가족들이 짐을 만나기를 몹시 원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변명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추수감사절 일주일 전에 두 번이나 전화해서 약속이 잡혀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관료들로부터 무시를 당한 것이다.
  결국 가족의 재회는 크리스마스에 이루어졌다. 나중에 살펴본 가족 비디오에서 짐은 조용하게 그의 누이의 거실의 의자에 앉아 밝게 미소짓고 있었다. 짐은 행복하게 그 분위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마치 크리스마스에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에 이루어질 뻔한 이들의 재회를 가로막았던 잘못된 의사전달체계와 계속되는 관료적인 행태는 짐이 페리볼트를 떠나는 날짜를 지연시켰다.
  짐이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두 번이나 더 보낸 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그는 계속해서 자립생활을 원하는 대기자 명단에 남아있었다. 10월의 회의에서 벌써 19개월이 지난 것이었다.
  그러한 동안 나는 미시간에서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서 일하는 제랄드 프로벤칼이 일반인들이 장애우에게 적용하는 시간의 이중 잣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도 그들의 시간의 경과에 훨씬 더 많은 참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즉 장애우에게는 19개월이라는 시간이 한 사람이 시설을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결코 터무니없는 시간이 아닌 것이었다.
  결국, 장애우로서의 짐의 지워는 그를 덜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덜 우선권이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소위동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또한 약간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짐은 그를 위한 원조제공자도 있고, 친구와 가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장애라는 시스템 안에 잡아놓는 시간에 대한 이중잣대에서 나오게 할 수 없었다.
  드디어 페리볼트에서 나가는 것이 현실이 되자, 짐은 갑자기 존중을 받게 되었다. 시설 직원들은 그에게 전에 없이 긍정적인 태도로 대했다. 짐은 그가 이사가기 전에 3개월 동안 여러 가지 시험을 다시 받았다. 이제 그를 페리볼트에 남아있게 했던, 그리고 삶의 대부분을 따라다녔던 "중증 정신지체"라는 꼬리표가 "경증 정신지체 "로 바뀌게 됐다.
  그가 이사하기 2주전의 기획회의에서, 시설 직원들은 짐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이야기했다. 시설 인근의 주민들이 자기네 잔디를 깎기 위해 짐을 불러 부탁했다고 했다. 직무 지도원은 짐은 너무나 책임감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하러 가는 동안에도 집에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한 시간 혹은 그 이후에 돌아왔을 때, 짐은 변함없이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는 얘기도 했다.

 


페리볼트에 남겨진 짐의 비행기


 짐은 1992년 5월에 페리볼트를 떠났으며 미네아폴리스에서 약간 떨어진 교외에 10에이커의 땅을 가지고 있는 농장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2명의 다른 사람들과 작은 집을 함께 나누어 썼지만 2층을 완전히 혼자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쉽게 적응해갔다. 마치 그가 오랫동안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짐에게 있어서 자유란 라디오를 들으면서 잠을 자고 옷을 입은 채로, 머리맡에 불을 켜놓은 채로 잠이 드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3명이나 혹은 더 많은 룸메이트와의 삶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또 그에게 자유는 농장 작업장에서 비 장애우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했다. 어느 누구도 짐이 비장애우들보다 더 빠르게 일을 마치고, 작은 트랙터를 몰고, 소프트볼 운동장의 잔디를 키우는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유는 또한 이웃에게서 도구를 빌려오는 것이었고, 자전거를 타고 몇 불럭 떨어져 있는 곳까지 가서 다시 되돌려주는 것을 의미했다. 자유는 그가 하루 중에 언제라도 원하는 시간에 헤머질을 하고 톱질을 하면서 수리를 할 수 있는 헛간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짐이 만든 차들은 터 커지고 정교해졌다. 그러나 짐은 그의 비행체를 페리볼트에 남겨두었다. 누군가가 도망칠 수 있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계속)

 

글/ 서동명

 

 

작성자서동명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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