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그때,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 문화


[채지민의 테마에세이] 그때,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미리 적어 보는 2020년 신년특집 신문

본문

기사 1 - 정치·통일

연방제 통일 이후 4년간의 시행착오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한민족 적응도시」가 다음달 착공된다. 남북 행정당국이 지난 두달간 마라톤회의를 거듭한 결과로 발표된 이번 대책은, 그 동안의 혼란과 역기능을 완화시킬 ‘완충역할’과 ‘완충지역’을 설정했다는 데에 역사적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고향찾기’와 ‘이산가족상봉’의 열풍으로 시작된 통일시대 개막은 치안부재와 토지소유문제에 대한 권리다툼으로 점철된 민족적 혼란기였다는 게 정설이다. 경제력 차이에 의한 국민소득의 급격한 감소와 천문학적 통일재건비용으로 갈등을 빚었던 남북이 이번 결정을 통해 마음을 열고, 본격적으로 민족 단일성 확보를 위한 범국가적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옛 휴전선 서부지역에 건설될 「한민족 적응도시」는 국가백년대계 차원에 따라 다섯개 도시가 연결된 신도시군으로 건립되며, 건설이 완료될 2035년부터는 사실상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정부 대변인은 밝혔다. 우선 1차로 조선시대의 풍수사상과 민간풍습을 기초로 한 가칭 ‘만남의 도시’가 10만명 규모로 건설되고, 2, 3차로 ‘적응의 도시’ ‘일치의 도시’가 각각 만들어질 예정이다. 위성도시들의 중심에 서울 면적 3분의 2규모로 미래의 수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한민족 적응도시」 건설은 마무리된다.
이에 따라 남북 정부는 각계 전문가로 구성될 「한민족 적응도시 건설추진위원회」를 남북 동수(同數)로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내년에 완결될 경의선 복원공사 및 고속철도화 작업이 마무리되면 영국에서 시베리아를 걸쳐 부산, 일본까지 연결되는 대륙열차가 범세계적 이벤트로 운행을 개시하게 될 전망이다.

 

기사 2 - 과학·우주


지난 2017년에 건설된 네 번째 달기지 B3W에 근무하는 미국의 과학자 셜리 맥클레인(29)씨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서 건강한 여자아이를 출산했다.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탄생한 여아는 3.47kg의 건강한 몸으로, 지구 이외의 지역에서 탄생한 첫 번째 인류로 기록되게 됐다.
달에서 인류 최초의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던 맥클레인 씨는 “격려를 보내 준 지구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지도자들은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세계인이 평화를 위한 실천적 이상을 간직하기를 바란다”고 각각의 소감을 발표했다.
한편 최초의 복제인간으로 탄생해서 지구 전체에 충격을 안겨 주었던 영국의 제임스 호너(17) 군은 현재 면역력 저하로 인해 특수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제인간을 연이어 탄생시키며 모든 이들의 비난과 지탄을 한몸에 받고 있는 윈스턴 싱어(67)박사는 호너 군의 건강 상태에 대한 답변을 일체 거부하고 있어 파문을 확대시키고 있다.
호너 군이 치명적인 결함을 갖거나 생명을 잃게 될 경우, 싱어 박사의 사법처리와 형사상 책임 추궁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독일의 인공장기생산연구소는 호너 군을 위한 긴급 지원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사 3 - 문학


지난 15일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는 2020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소설가 홍길동(59)씨가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수상작은 그의 2016년 작품 쫅시민의 힘으로 나아가는 세상?이다. 지난 20년간 물리학상, 의학상 등 각종 노벨상을 일곱 차례나 휩쓴 한국에서 유독 문학상만 답보상태였지만, 이번 홍길동 씨의 수상으로 전부문 수상자 소유국이라는 국가적 명예를 아시아 최초로 가지게 됐다.
정부는 홍길동씨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결정을 기념하는 범국민적 행사를 개최하기로 하고, 2020년 1월 1일 자정을 기해 ‘홍길동의 날’을 선포하기로 했다. 아울러 새로운 문학인을 양성하고 적극적으로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독서문화부 산하에 ‘작가정신위원회(가칭)’를 신설하고 생활 보장과 창작 환경 마련에 총력을 가하기로 했다.

 

기사 4 - 환경


각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종이 사용을 부활하자는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네트워크 지배에 따라 사용자가 격감해 생산이 중단되었던 종이 문화를 재생시키지 않을 경우, 늘어나는 삼림지대 때문에 인류의 생활 터전이 위협받게 된다며 시급한 대책을 촉구했다.
이는 1인 1컴퓨터 시대를 맞이한 21세기 초부터 불기 시작한 문명 왜곡화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고 있어 찬반 논쟁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민의 재택근무와 영상교육이 불러 온 인간관계 단절 현상과 운동의 절대적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계속 발표되는 현실에 비춰 볼 때, 종이 생산의 재개는 정부와 업계에서도 신중히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림지역의 면적은 지난 2000년에 비해 1.8배가 늘어났으며, 환경의 정화작용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비책과 함께 삼림지역 축소 문제도 지구 차원의 현안으로 본격 거론될 전망이다.

 

기사 5 - 문화


성인층들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색 전시회가 열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달 준공식과 함께 준공기념 전시회를 열고 있는 고대문화보존센터에서는 과거 문명 속으로 사라진 예전의 전자기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회에는 브라운관이 달린 TV, 석유를 이용해 움직이는 자동차, 총알을 사용하는 무기, 바늘이 움직이는 시계, 테이프를 넣고 영상을 보는 비디오 플레이어, 20세기의 대중 교통수단이었던 버스 등을 전시해 관람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보존센터측은 “시간상으로는 이삼십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얼마나 빠른 변천이 우리에게 이뤄졌는가를 젊은 세대에게 알려 주고자 행사를 주최했다”면서, 구하기 힘든 예전 물건들을 제공해 준 소장자 및 각 기업체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전시회는 두 달간 계속되며, 정식 보관을 위해 연말까지 제품 처리를 마친 뒤 내년부터는 보존센터에서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위에 적은 내용은 뜻을 같이 한 신문기자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본 〈2020년 신년특집호〉신문기사의 일부이다. 예측 가능한 가정과 추측에 사실적 근거를 마련하고, 또한 각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섞어가며 특집을 마련하느라고 꼬박 한달이 흘러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작업 기간 내내 우리를 짓눌렀던 것은 위의 기사들이 어쩌면 2010년도 채 되지 않아 이미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었다. 그만큼 세상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자리에서 총알보다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게 실제 현실이기 때문이다.
신석기혁명 이후 농경사회가 정착되면서 인류의 틀이 만들어진 것이 3천년 걸렸다고 한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가 정착되는 데에는 3백년이, 정보통신의 첨단사회가 뿌리내리는 일에는 불과 30년 남짓의 시간이 소비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이 3년에 걸쳐 인류를 바꿔 놓을 것이며, 그 무엇이 등장해서 단 3개월만에 우리의 환경 전체를 변혁시켜 놓을까. 생각만으로도 숨이 차오르는 일이다.
세상은 그렇게 따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시점에 다다른 듯 하다. 얼굴만 바뀌었을 뿐 매년 신문에 똑같이 장식되는 정쟁(政爭), 투쟁, 대형사건, 대책안 마련, 과소비, 시행착오, 패륜, 십대 문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실천했던가.
이젠 나만의, 우리들만의 2020년 자화상을 그려 볼 때가 됐다. 어쩌면 그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 달력은 이미 2020년으로 넘어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고 자기 발걸음만 옮기고 있는 시간 앞에서, 한숨만 짓고 있었던 건 바로 나 자신과 우리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시점에 와서 섰다. 20년 후에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그건 절대적으로 ‘나’와 ‘우리’의 몫일 뿐이다. 출발선상에 함께 서자. 신발끈을 질끈 묶고 저 먼 곳을 바라보자. 누가, 무엇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가? 이젠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소리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며 떠들고 있던 동안에, 제야의 종은 이미 서른세 번이나 울리고 사라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채지민(시인,소설가)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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