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본문
슬픔이란
돌아보아도
죽음이 모든 것을 씻어 준다면
찾아야 할 얼굴이 있었기에
존재함이 필연으로 부르는
너를 사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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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번째 시집에 수록된 <아직도 너를 부르고 있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자기가 쓴 글을 좋다고 말하기가 우습긴 하지만, 저는 이글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곤 합니다.
간혹 담담하게 미소지을 때도 있지만, 깊은 한숨과 함께 까닭 모를 그리움에 잠기는 시간이 더 많이 있습니다. 쓸쓸하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나, 홀로 술잔 기울이며 어둠 속의 먼 곳 어딘가를 바라보아야 할 때가 대부분이죠. 그 글을 적은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당시의 절실했던 마음에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아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정말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했습니다. 물론 연락 가능한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근원으로부터 밀려드는 향수감은 매일 밤 똑같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반복하게 만들고만 있습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찾고 있는 ‘너’가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이죠. 예전에 만나던 여인이냐, 아니면 짝사랑으로 남겨져서 다신 볼 수 없는, 얼굴이냐 등등 질문의 내용은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대답하지 않고 썩 웃어 버리는 걸로 넘겨내곤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다지 즐겁진 않습니다. 제 자신도 답답하기 때문이죠.
차라리 누구라고 이름 석 자를 부를 만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00, 정00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이름이 있었다면 저도 속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게 아니니까 문제이겠죠.
시를 적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제가 쓰고 있는 ‘너’라는 단어는, 잃어버린 채 간직하고만 있는 본래의 ‘나’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움의 대상과 아픔의 표상으로 늘 ‘너’라는 인물이 쓰여지긴 하지만, 제가 애태워 부르고 있는 것은 망각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는 본질 속의 ‘나 자신’ 이었습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흩뿌려진 추억들을 되씹어야 하는 나날이 늘어갑니다‘
아직 서른 중반밖에 되지 않는 나이로 벌써 이러면 안 될 텐데...... 혼자 분위기를 바꿔 보려 애를 쓰지만, 아직도 ‘나’를 기다라고 있는 누군가가 실재한다는 생각에 젖어들 때면대안도 없이 한숨부터 내질러야 합니다.
그때 어느 순간 이후로 저의 삶이 전혀 다른 길로 바뀌어 버렸으리라는 절망과 좌절 같은 게 뜬구름처럼 떠오르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그런 후에는 구체적으로 잃어 버렸던 내용들이 하니씩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하죠.
‘그래, 맞아.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야 했던 인생이었어.’ . ‘바로 이거야. 나는 이 자리에서 이러이러한 모습으로 살아야만 했던 거야......’ 정말로 잔인한 일입니다. 본래의 ‘나’는 저기에 있고, ‘나’ 아닌 내가 이 자리에 생존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커다랗고 원대한 인생의 환상 따위를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대통령이 되고 장군이 되겠다는 식의 유아기적 발상도 물론 아닙니다. 꿈은 가장 작은 곳에 있는 법이죠. 남들이 뭐라 하든 간에 자기만의 세상은 언제나 남 몰래 간직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한 뻠의 땅에 꽃 몇 송이를 가꾸며 행복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광활한 대지를 소유하고도 불만에 가득 찬 사람이 널려 있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저에겐 저만의 인생, 그 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기에도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때 그 자리로, 당시의 그 호흡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생존의 기법이라며 잃어버린 것들을 잊어버리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잊고 지냈던 자기만의 인생을 되찾으려는 노력 자체를 쉽게 포기하면서 중얼거리곤 하죠. ‘그것이 바로 인생’ 이라고,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 고.
그리고 아직도 너를 부르고 있다는 그 글을 다시 한 번 옮겨 적고 싶습니다.
내가 필요로 했던 ‘네’가 진정 누구였는지, 어디에 있는지, 재회를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까지를 밤 깊도록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끝까지 버릴 수 없는 꿈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그 꿈마저 애써 포기한 채 생존하기엔 너무도 숨막히게 그리운 향수가 또렷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저에게도, 이웃 누군가에게도,
‘너를 사랑했지만 / 내게 네가 없었던 까닭이다 / 부르는 소리 끊어질 듯 길어지는 시간 속에 / 지워질 듯 이어져 온 내 생명이 / 아직도 너를 부르고 있는 것은 / 아직 너를 진정으로 만나보지 못한 까닭이다.’
그 ‘너’와 ‘나’를 찾아 다시 떠나가겠습니다. 단지 살아 있다는 것이 전ㅂ3n가 아닐 때, 우리는 거북이 껍질에 온몸을 감추듯 본래의 자기 자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내 모든 것이 먼지 가득 쌓여져 버려진 채로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죠.
이젠 자기만의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더 늦기 전에, 영원히 되찾을수도 없게끔 더 멀어져 버리기 전에.
글/ 채지민 (시대문학 시부 및 자유문학 소설부 등단. 제25회 삼성문학상 수상. 시집<아직도 너를 부르고 있는 것은 Ⅰ,Ⅱ> 장편소설<그대에게 가는 길> <이별하기에 슬픈 시간> <내안의 자유>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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