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이야기마당] 종이 카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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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이(가명)는 우리 나이로 세 살이 된, 꽃보다 예쁘고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사진 속의 밝은 웃음으로만 남아 있지만, 간호하는 언니들을 "이모"라고 부르면서 해맑은 얼굴과 함께 모두를 따르곤 했죠. 병실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아픔을 떠올리기 전에, 그 나이 또래의 천진난만한 놀이를 혜린이는 즐기고 싶어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혜린이가 입원하게된 건, 횡문근육종(橫紋筋肉腫)이라는 희귀한 병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횡문(橫紋). 그러니까 사람의 몸에 가로로 펼쳐져 있는 근육과 맞닿은 내부 기관에 발생하는 불치에 가까운 병이지요.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경기(驚氣)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다가, 증세가 갈수록 심각해져 CT 촬영을 해 본 결과,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뇌까지 암세포가 전이되고 나면, 이미 항암 치료도 할 수 없을 상태가 된 이후입니다.
혜린이 부모님은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는 치료비를 어쩔 수 없어, "합의이혼"이라는 편법까지 동원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인 "의료보호" 혜택을 받기 위해서, 인위적인 이혼을 결정해야 했던 겁니다. 서른 살 안팎의 젊은 부모였던 혜린이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고.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의료보험과 다른 "의료보호"는 가입자의 부담이 없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제도였지만. 까다로운 조건이 뒤따랐죠. 부모가 직장이 없고 정해진 수입도 없어야 하며. 신청할 당시 소유한 일정의 재산도 없어야 하는 전제조건이 복잡하게 충족되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살이기 위한 부모의 심정을 제삼자가 이해할 순 없겠지만. 혜린이는 재산도 없이 이혼을 한 어머니의 자식으로 평가되어 치료할 방안을 찾았습니다.
경련은 계속되고 연이어지는 항암치료에 의해 모두 헐어버린 입 속의 가래를 제거하며 하릴없이 견디다가, 혜린이 부모님은 결국 심페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치료가 이미 공식적으로 불가능해졌음이 판명됐을 때, 소생을 위한 재활 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 내리는 결론이었죠. 항암 치료를 받다 보면, 거의 대부분 발열 증상이 일어나 다시 입원을 하곤 합니다. 폐렴까지 겹치는 경우가 다반사죠. 호전되었다 해도, 다른 종류의 암으로 재발되어 항암치료를 새로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안타깝게도 백혈 수치는 계속 떨어지고,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정상 피부까지 감염되는 과정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끔찍한 항암 주사를 연이어 받던 얼마 후, 자정을 알리는 시계 종소리가 울리기 20분전에, 결국 혜린이는 두 어깨에 날개를 달고 머나 먼 곳으로 소리 없이 따나고 말았습니다. 제야의 종이 자신의 여음을 지우기도 전인 올해 1월말의 일이었죠.
모두의 가슴에 슬픈 미소를 남긴 혜린이가 떠나간 지 3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아암 병동에 다시 찾아온 혜린이 엄마를 보고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의 병간호를 위해 옷 갈아입는 것은 고사하고 세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고은 화장과 깨끗한 정장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어머, 혜린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혜린이를 기억하는 모든 간호사와 의사들이 반갑게 인사를 전하며 안부를 물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았습니다. 혜린이는 이미 떠나갔는데, 그 이름을 다시 부른 것이 실수가 아니었나 걱정이 됐던 것이죠.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뵙게 될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어머니는 뜻밖의 밝은 표정으로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그건 두툼하게 모아 온 헌혈증서였습니다. 혜린이가 떠나간 후 취업을 했고 자신의 뜻에 동감한 회사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매달 헌혈증을 모아.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증하기로 했다는 얘기였습니다.
혈액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쌉니다. 헌혈증이 많을수록 치료 혜택이 생기고, 비용과 과정이 수월해진다는 걸 어머니는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죠, 혜린이는 떠났지만, 또 다른 혜린이를 위해 매달 병원을 찾아와 헌혈증을 전달하겠다는 어머니의 모습. 그 온화한 얼굴은 지금도 변함없이 모두의 마음에 따스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동석 씨 (가명)는 올해로 41살이 되었습니다. 같은 병상에 누워 있기를 10년, 그는 오늘도 아무런 움직임 없이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촉망받는 엘리트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그는, 인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채 뇌의 호흡중추만 살아 있는 상태로 10년을 보냈습니다. 신혼이었던 그의 아내는 사고 소식에 대한 충격으로 심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입원하였고, 그녀 역시도 현재까지 입원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할머니의 품에서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가 이직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계신 줄 알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어머니인 팔순(八旬)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들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 중환자실을 찾았습니다. 중환자실은 아침 저녁으로 30분씩 면회가 허용되는 구역이었지만, 할머니는 예외가 됐죠. 아무도 병원 규정에 대해 얘기할 수 없을 만큼 할머니의 정성은 끝이 없었습니다. 식사도 직원 식당에서 하면서, 매일 6시간 정도를 환자 간호에 바쳤습니다.
중환자실 의사와 간호사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게 되어 친한 관계를 유지했고 지금은 주변 환자들의 가족에게 상담까지 해 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하시는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우선 환자를 매일 목욕시킵니다. 그것도 의식 잃은 환자를 주위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씻기시는 겁니다. 일반 환자와 달리, 의식이 없는 성인 환자의 몸을 다루는 건 정상인들도 힘든 일입니다. 머리감기부터 발끝까지 깨끗하게 목욕시킵니다. 그리고 근육이 마비되지 않도록 손과 발을 치켜들고 계속 운동도 시킵니다. 그렇게 보내는 6시간 동안, 할머니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환자에게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나눕니다. 듣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마음으로 어린 아기를 다루듯이 정겨운 대화를 끊임없이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내 온 10년,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을 씻길 물을 받아 병실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그런 환자가 오래 입원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폐렴 등에 쉽게 감염되곤 합니다. 오랫동안 바라보던 병원 관계자 모두는 얼마 전부터 새로운 걱정에 잠겼습니다. 자식을 끝까지 포기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환자보다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된 것입니다. 10년을 하루와 같이 아들 간호에 전념하시는 어머니.... 그분은 지금도 믿고 계십니다. 의식을 잃은 환자가 기력을 되찾아 소생하는 기적 같은 극소수의 케이스를, 할머니는 변함없는 신앙처럼 간직하고 계신 겁니다.
올 어버이날이었습니다. 11살이 된 환자의 아들은, 그 동안 미국에 계신 걸로 알았던 아버지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표정도, 움직임도 없는 아버지께 서먹한 첫인사를 올린 아들은, 학교에서 만든 빨간색 종이 카네이션을 아버지의 환자복에 달아드렸습니다.
성장한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을 드렸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환자와 할 말을 잃은 아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그런 환자를 숱하게 보아왔던 간호사들도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최악의 것이라 단정지으며 한숨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나 자신의 상황만큼 편하고 안락한 건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어디선가 푸른 하늘을 날고 있을 혜린이와 헌혈증을 모으는 어머니의 정성, 또한 환자복 가슴에 카네이션을 단 아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아직은 우리에게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건강이 남아 있다는 소중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우리 주위엔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운 분들이 너무도 많이 있었습니다.
바쁜 업무 중에도 취재에 적극 협조하고, 진솔한 사연을 전해 주신 서울대학병원 소아과 혈액종양병동 간호사 강선실 님과 외과 중환자실 간호사 임상희 님께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모아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글/ 채지민 (시대문학 시부 및 자유문학 소설부 등단. 제25회 삼성문학상 수상. 시집 <아직도 너를 부르고 있는 것은ⅠㆍⅡ>, 장편소설 <그대에게 가는 길> <이별하기에 슬픈 시간><내안의 자유>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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