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 "자유"와 "희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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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신년초인 1월 4일, 지하철역 등지의 노숙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대신 노숙자들을 이끈 곳이 바로 "자유"의 집(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옛 방직공장 기숙사 건물로 4백여명이 수용 가능한 이 곳에는 첫날부터 7백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직원과 자원활동자의 수는 40여명.
"자유"의 집에서 "희망"의 집으로의 이전도 가능하다. 지난해 겨울을 맞기 전 서울시가 각 지역복지관을 중심으로 마련한 "희망"의 집에서는 일단 입소와 함께 공공근로와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그래서 희망의 집에 갔던 사람들 중에는 다시 이 자유의 집으로 오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이곳에서는 술을 제한적으로나마 먹을 수 있고 그 이름대로 더 많은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건장한 체격의 박동길 씨는 노숙생활을 한 지 9개월 정도 됐지만 처음엔 이곳 "자유"의 집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거기 서울역 지하차도 있지, 거기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내 사촌동생이 거기를 자주 지나다니더라고. 두 번이나 들켰지, 그래서 여기 왔어." 사업실패로 거리로 나오게 됐지만 아직까지 그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이유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본인도 실직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기 씨도 보일러 사업과 선박사업을 하던, 한 때 유망한 사업가였지만 IMF로 인해 사업이 부도가 났고 결국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조금이라도 몸을 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곳에서 자원활동을 한다. "여기 오기 전엔 보일러 공사를 했고, 그 후엔 배도 탔었지. 꽤 잘 나갔었어. 그놈의 IMF가 뭔지 어음으로 받았던 오천만원을 부도 맞고 완전히 망했어. 돈 받을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던 중에 말이야. 니미... 여기 와서 그래도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원활동을 지원했어. 움직이지 않고 주는 밥만 먹고 자고 그러니까 못살겠더라고. 방에서 잠만 자고 있는 사람들은 글렀어. 그게 자기 몸만 축내는 일이야."
다른 노숙자들은 대부분 "추우니까 왔고, 추우니까 술 마시게 됐다. 결국엔 나도 모르게 술을 안 마시면 잠도 안 올 정도가 됐고, 그러다가 밥을 먹는 곳을 알게 됐고, 그런 생활을 23개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추위가 문제였다면 다가오는 춘삼월, 이들의 거주지는 다시 지하철역이 될 것인가? "자유"와 "희망"을 사이를 오가는 노숙자들에게 봄은 아득하기만 하다.
글 ․ 사진/ 김학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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