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 21세기 서울의 마지막 판지촌 기능지 난곡
본문
7동에 내려 한쪽 언덕길로 접어들어 언덕 끝까지 올라보면 마치 어머니의 팔을 감싸안은 듯한 풍경으로 판자집이 둥그렇게 펼쳐져 있다. 드문드문 신가옥이라 불리는 빠알간 벽돌로 지은 집이 기세 등등하게 우뚝 서 있고, 세상 풍파에 시달려 빛이 바래버린 회색빛 집들이 빼곡이 들어서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들은 사람 둘이 나란히 지나갈 수도 없을 정도로 가냘프다.
저쪽 골목 끝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그 곳에 가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메아리치고 있다.
난곡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장애우 오병성 씨의 삶의 모습은 이곳 주민들의 한 단면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오 씨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 손가락이 세 개 뿐이었단다. 그 손가락들은 각각의 크기가 마치 갓난아기의 팔뚝만큼 커서 손가락 끝까지 혈액 순환이 되지 않아 해마다 겨울이면 동상에 시달려 왔다.
"내가 목수로 일할 때였어. 겨울이었는데 그때도 여지없이 이놈의 손가락에 동상이 걸려 버렸었지. 그러면 칼로 손가락을 째서 피를 빼곤 했는데 더 이상 못견디겠더라고, 그래서 옆에 있던 끌로 눈 질끈 감고 제일 큰 가운데 손가락을 잘라 버렸어.
그때는 약을 살 돈이 어디 있나. 그거 옛날 갑오징어 있지 그 갑오징어 뼈가 상처 낫게 하는 데에는 특효약이야. 그거 발랐지 뭐, 소독약을 한 아홉 통은 써 버렸을걸.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겨우 상처가 아물더라고 그땐 참 독했지..."
그에겐 뇌성마비 3급의 장애우인 부인과 장애를 갖고 있는 두 아들도 가슴의 짐이 되고 있다. 첫째 아들은 약간의 언어 장애가 있고, 둘째아들은 멀쩡하게 잘 자라다가 가방공장에서 가죽의 모양을 내는 프레스작업을 하던 도중에 손가락 세 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손가락 절단은 대부분 봉합수술이 가능하지만 오 씨 둘째 아들의 경우는 달랐다. 뜨거운 가방 가죽의 열기에 잘려진 손가락이 익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손가락을 살린다고 자신의 배를 갈라 잘려진 손가락을 넣고 병원을 가보았으나 뜨거운 열기에 익어버린 손가락을 살린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IMF 전에는 이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도 공사장의 잡일로 먹고 살만했다. 목수나 미장 등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한달 월수입이 1백50만원에서 2백만원 정도 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 실직된 상태다.
난곡은 원래 모 건설회사에서 이 지역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해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IMF 영향으로 공사를 포기해서 현재의 상태로 놓이게 됐다.
그렇다고 여기 땅값이 그렇게 싸지는 않다. 타지의 부동산 업자들의 투기로 언덕 꼭대기의 한 집은 30평 정도 되는데 1억5천에서 2억원 가까이 된다고 하였다.
아직까지는 개발의 여지가 충분히 남아있는 땅, 난곡.
경제혼란이 오기 전 이 언덕은 아직은 살만한 희망의 언덕이었지만 지금은 다리만 아픈 고난의 언덕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 풍파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난곡 사람들, 그들의 힘겨운 삶의 보금자리인 이 난곡동은 21세기를 앞두고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얼굴로 변모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삶의 흔적이 너무나 깊게 배여 있는 땅. 손을 흔드는 이 아이의 해 맑은 웃음이 개발로 인한 아픔의 눈물로 바뀌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 글/ 김학리 기자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