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가장 큰 사명은 완전성을 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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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포트라이트' 중 |
우리나라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공포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도 있습니다. 또한 21조와 22조에서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등이 보장돼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헌법 조항에 기초한 평범한 여당 전 원내대표의 연설은 파격적이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정치판을 흔들었지만, 그 결과 청와대로부터 사퇴압박을 받고 물러났습니다.
국경 없는 기자회에 의해 2002년부터 평가받는 각 나라의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는 노무현 정부 때 31위를 제외하고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69위, 현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60위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일본이 61위, 표현의 자유가 넘친다는 미국도 49위에 머무른다는 점이 위로 아닌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문제로 인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집행위원장이 물러나야 했으며 많은 영화인들이 올해 영화제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냐 합창이냐를 놓고 논점 없는 정치적 소모전을 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혼란의 시작점에 한국 언론의 기형적 구조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정권과 야합하는 언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거대 권력과의 유착 또한 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가 더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한국 언론의 한심한 현실에 기인한다는 역설이 전제돼 있습니다. 보스톤 글로브 탐사보도팀의 활약을 그린 ‘스포트라이트’를 소개합니다.
가톨릭의 영향이 전통적으로 강한 보스톤은 전 도시 인구의 절반이 신자입니다. 1879년 창간된 보스톤 글로브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나타난 언론의 자유를 실천하는 신문으로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탐사보도팀의 이름인 ‘스포트라이트’는 편집국장 직속 기구로 특정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보도를 목적으로 하는 곳입니다.
실제 인물인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 분)이 지금도 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총 4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새로 부임한 편집국장의 지시 하에 이들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추적합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기자실에서 진실을 추적하는 그들의 활동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플롯을 지닌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을 쫓는 기자들의 내면세계와 갈등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종교 권력을 추적하는 긴장감이 카메라에 담백하게 담겨 있고, 압박에 시달리는 기자들의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소수의 성직자들이 저지른 개인차원의 비리가 아닌, 보스톤 교구 전체가 사건을 은폐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무려 250명 가까운 신부들이 성추행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런 진실이 어떻게 수십 년간 조직적으로 은폐됐는가를 묻습니다.
이례적으로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이 영화가 가톨릭의 어두운 면을 진실하게 담았다는 평을 했고 아카데미는 작품상이라는 영예를 안겼습니다.
언론의 가장 큰 사명은 사건에 대한 완전성을 담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겨레21 안수찬 기자의 시각을 빌리자면, 객관성 수준이 아닌 사건을 통째로 조명하는 완전성의 추구가 이 영화의 초점이라는 것이지요. 한 개인의 비리를 파헤치는 기사는 넘쳐나지만, 시스템을 그대로 고발할 수 있는 기사는 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린내가 진동하는 사건에 깃털 수사, 꼬리자르기 등의 표현이 난무하는 우리 언론의 폭로 수준은 아직도 정통 언론이 아닌 찌라시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한국의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완전성을 추구하지 못하고, 폭로 수준도 최대한 낮추고, 사실을 비틀어버리는 왜곡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은 여전히 보스톤 글로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연봉은 영화의 배경인 21세기 초반보다 더 줄어들었고, 글로브의 경영은 매우 위태롭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스톤 글로브는 여전히 언론사의 독립성과 보도지침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자본이 아닌 진실을 선택한 그들의 용기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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