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 비범함이 있습니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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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을 좋아하시는지요? 빵의 향기와 어울려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달콤한 단팥이 입안에 가득 퍼지는 그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오늘 소개드릴 영화는 단팥으로 만든 일본 빵 ‘도라야끼’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담은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년, 일본)’입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연출 때문입니다. 그녀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어버린 기억으로 인해(정확히는 버림받았다는 표현이 맞습니다)그녀는 카메라를 통해 가족의 복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몇 편의 영화를 통해 수줍은 소녀의 일기와도 같던 그녀의 영화는 이제 완숙한 경지에 올랐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생물학적 가족의 복원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그 속에 존재하는 작은 연결고리를 찾아냅니다. 이번 영화는 바로 ‘단팥 만들기’를 통한 그녀의 또 다른 독백입니다. 깊은 시련이 있을 것 같은 무표정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투박한 손으로 도라야끼를 만들고 있지만 맛이 신통치 않아 보입니다. 도라야끼의 생명력은 단팥 맛에 달려 있는데 그는 단팥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 분)는 이혼으로 인한 빚을 갚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도라야끼를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벚꽃이 휘날리는 어느 봄날 손가락에 장애가 있는 도쿠에 할머니(기키 기린 분)가 아르바이트를 자청합니다. 부담스러워 하는 센타로에게 가게 단골 와카나(우치다 카라 분)는 도쿠에를 받아들이도록 용기를 줍니다. 도쿠에는 이른 새벽부터 오전 11시까지 긴 시간을 들여 팥을 천천히 씻어내고, 팥에게 말을 걸고, 한참을 기다려주면서 단팥을 만듭니다. 단팥은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센타로에게 일깨워줍니다.
순식간에 센타로의 도라야끼는 사람들의 인기를 끕니다. 그러나 도쿠에가 한센병 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로부터 금새 외면당하게 되지요. 한센병이 더 이상 전염되지 않는 병이고 치료 또한 가능한 시대임에도 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온 도쿠에 할머니에게 센타로의 도라야끼는 유일한 세상 나들이였던 것이지요. 도쿠에의 삶과 죽음을 통해 센타로와 와카나는 새로운 세상살이를 배웁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의 비범함은 평범 속에 있다고 합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지만 비범함을 평범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녀의 모든 영화에는 소녀가 바라보는 제3자 시각이 존재합니다. 바로 나오미 감독 자신의 관점이지요. 이 영화에도 외롭고 가난한 여중생 와카나가 있습니다. 그녀는 도쿠에와 센타로의 중간지점에서 두 사람의 삶을 대비시키고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의 외할머니가 바로 일본의 국민배우 기키 기린이라는 점입니다. 영화의 설정과 현실은 동일한 상황으로 두 사람을 담아냅니다. 새를 기르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실제 촬영이 아닌 두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를 담은 것이지요. 역시나 평범속에 우리는 비범함을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다 보면,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감금되고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가 나옵니다. 한센병, 결핵, 그리고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리나라 보건의 역사에서도 이들에 대한 지독한 차별이 존재합니다. 특히 일본은 한국을 병합한 이후 소위 ‘문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남해안 소록도에 강제 이주시키고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시킵니다. 이곳에서 자행된 인권유린은 일일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70년대 이후 한센병 치료가 진행되면서 이제 국립소록도병원은 국제적인 한센병 치료센터가 됐고, 완치된 한센병 식구들이 노년의 삶을 영위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소록도를 찾았습니다. 특히 조용필 씨는 몇 차례나 조용히 소록도를 방문했고, 19집 앨범을 제일 먼저 소록도 식구들에게 전해줬다고 합니다. 그가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평범함에 있다고 봅니다. 또한 해방 이후 뜻있는 보건의료인들이 소록도병원을 지켜주셨습니다. 불편한 교통과 고립된 생활 속에서도 한센병 환자들과 삶을 함께 해오신 많은 분들의 평범함이 비범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요?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 국립소록도병원 식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으로 이 글을 보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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