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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드라마 속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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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

무늬만 장애인, 무늬만 전문직?

올 상반기 최고의 히트작 드라마하면 <태양의 후예>가 떠오르실 것입니다. 38.8%의 경의적인 시청률로 막을 내렸고, 남자주인공인 ‘유시진 신드롬’과 ‘특전사 군인들의 인기 급상승’, ‘한류열풍의 부활’ 등 숱한 화제를 뿌리며 ‘국민 드라마’라는 칭호까지 얻은 핫한 드라마였지요. 이 드라마에서는 ‘표지수’ 라는 병리과 전문의가 등장하는데, 하반신 마비 장애가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 상반기에 뜨거운 감자였던 두 드라마에 장애가 있는 인물들이 조연으로 등장했었네요.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태양의 후예>를 쓴 김은숙 작가의 2008년 작품인 <온에어>에서도 이런 현실을 비추고 있는데,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TV광고비가 가장 비싼 시간대인 프라임타임에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편성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어둡고 우울한 기운을 전파시켜 국민들의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가 첫 번째였고, 시청률도 저조하고 소비성도 약한 장애인이 등장하는 것을 광고주가 기피했기 때문이었지요.

억압과 통제, 획일성이 주류정서였던 시대적인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프라임타임대 드라마에서 장애인 등장이 자연스러워졌다는 점, 화면 속 장애인의 삶을 거부감 없이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은 드라마 속 장애인 모습 중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였네요. 이는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다양성과 자유의 욕구가 깃든 시민사회의 의식변화로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입니다. 사회적 분위기와 대중의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이 대중매체의 속성이니까요. <태양의 후예>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는 그간의 열 작품 중 세 작품에서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킬 만큼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세 작품 중 두 작품의 장애인 캐릭터가 많이 겹쳐진다는 것인데요. <태양의 후예>의 ‘표지수’란 인물은 하반신 마비 장애가 있는 여성으로, 병리과 전문의입니다. 여자 주인공인 강모연의 절친인 동시에 극의 전개상 강모연의 연애담과 고민 등을 들어주는 일종의 상담사 같은 친구입니다. 흥미롭게도 <프라하의 여인>에서 ‘서윤규’라는 인물도 표지수와 같은 하반신 마비 장애가 있는 남성입니다. 외교관이라는 신분의 전문직 종사자라는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여주인공 재희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표지수’와 닮은꼴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여성과 남성이라는 점과 표지수는 거친 언사를 사용하고, 서윤규는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것 정도랄까요? 김은숙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장애인의 모습은 교육을 잘 받아 의사, 외교관 등 전문 직종에 근무하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정돼 주인공이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착한 모습의 장애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표지수’나 ‘서윤규’ 같은 장애인은 우리나라 장애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들입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시스템 속에서 장애인은 교육과 이동, 취업 등에서 불평등을 겪고 있고, 사회제도나 정책에서 차별의 벽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드라마에서 장애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어려움과 장벽과 싸워야 하는 지가 조명되지 않으면, 장애인들과 그 가족에게는 오히려 좌절과 상처, 심지어 ‘희망 고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방송에 현실이 생략된 근사한장애인 캐릭터만 등장하면 장애인 시청자들은 크게 공감할 수 없을 것이고, 무늬만 장애인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병원과 대사관 안에서 업무 대신 친구의 연애담을 들어주고 조언만 해주며 앉아 있는 그들의 바스트 샷으로는 장애인의 현실 개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작가들은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에 장애인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이유를 흔히 ‘편견을 깨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포부를 밝힙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태양의 후예>의 표지수가 CT 촬영과 영상 분석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장면에서 최소한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수반돼야 하는지, 어떤 보조기구들이 지원돼야 하는지 시청자들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과 대사들이 포함됐어야 합니다.

또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외교관인 서윤규가 업무를 볼 때나 해외 출장 시, 특히 비행기 탈 때 장애인(handicap person)을 위한 지원서비스 등을 소개하는 장면 정도는 연출됐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 드라마의 경우 <그레이 아나토미>나 <CSI>에서는 왜소증 장애가 있는 외과의사가 두 단 정도 되는 계단식 보조기구에 올라가 수술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고, 지체(사지 마비) 장애가 있는 법의학자는 휠체어에 장착된 컴퓨터로 사인의 원인을 시뮬레이션으로 재연해 검안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들을 통해 대중들이 장애인의 능력을 존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이 요구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드라마를 통해 장애인의 현실 개선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이처럼 장애인 입장에서고려된 생각과 이를 구현해내는 세심함에서 비롯됨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드라마 중 아쉬웠던 부분을 지적하자면 활동성이 매우 중요한 종합병원 전문의와 외교관이 어째서 수동휠체어를 사용해 주변에서 밀어주도록 했냐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일 텐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도 아니고….’ 라고 혼잣말을 했던 게 떠오릅니다. 이런 장면은 휠체어 장애인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드라마의 이동 장면에서 연출되는데, 이처럼 현실성이 담보되지 않은 장면들이 일상처럼 보이면 장애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제작 의도와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즉 활동하기 불편하고 부담되는 사람으로, ‘장애인은 사회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라 단정해버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앞에 맥락과는 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태양의 후예>에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사장 딸이자 실력 없는 외과의사인 김은지가, 표지수와 임산부인 마취과 동료의사에게 시비를 거는 에피소드였는데, 김은지가 “너 옷 좀 갈아입고 돌아다니지. 배는 남산만 해 가지고 환자들이 불안해하지 않겠어.”라고 하자, 표지수가 “넌 수술 실력 좀늘었니?”로 응수합니다. 이어, 김은지가 “넌 꼭 가운 입고 다녀. 환잔지, 의산지 구분은 가야 되니까.”라고 맞받아칩니다. 참다못한 마취과 레지던트가 김은지의 머리채를 잡고 싸우다가 배에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는 것으로 장면은 마무리되지요. 표지수가 둘의 싸움을 말리다 정작 그 거친 언사를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리더군요.

이 장면에 특히 아쉬움이 컸던 점은 코믹하게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장면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분명 김은지의 대사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사였는데 표지수가 그에 맞서 주특기인 거친 언사로 돌직구를 날려주었더라면…어땠을까요? 자신의 문제에 더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장애인으로 인식되지 않을까요? 또, 장애인의 왜곡된 시선을 꼬집고 정정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되고 회자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점에서 아쉬운 장면이었습니다. 분명 김은숙 작가는 장애인도 사회구성원 중에 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고, 친숙하게 느껴지게 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려냈을 것입니다. 저로서도 <태양의 후예>처럼 많은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을 장애인 의사로, 그것도 여성장애인으로 그려낸 시도가 새롭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기대가 컸고, 등장자체로만 의미를 둬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 캐릭터를 강모연의 친구로만 고정해놓고 무늬만 장애인, 무늬만 전문직 여성장애인으로 보이게 한 것은 못내 아쉽기만 했습니다.

 

왜’와 ‘무엇’을 고민하는 진정성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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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의 ‘2015~2016년 상반기까지의 드라마 속 장애인 캐릭터’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장애인의 모습은 착하고, 동정심을 일으키는 존재, 죄의 대가나 비윤리적으로 장애를 이용하는 부정적인 모습, 천재성, 장애유형과 상황에 맞지 않는 보조기구의 사용 등으로 비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주체적이지 못하고 독립적이지 못한 캐릭터 등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10년 전에도, 그 전에도 꾸준히 지적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방송모니터단’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모니터 자료집을 살펴보면 현재의 문제들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4년 내내 지적되고 있더군요. 인식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동안 장애인권에 기반한 시청자운동에 대한 성과가 너무나 미미해 보여 솔직히 좌절감도 들었습니다. 이 문제는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미디어 속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으로 소수이거나 약자라고 하는 계층을 다루는 전개에서도 유사하게 지적되곤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현실 왜곡입니다.

단적으로 한낮에 거리로 나와 뜨거운 태양과 맞서며 자신들을 차별하는 사회구조와 정책, 제도 등의 불합리함을 알리는 장애인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과 독립성에의 욕구를 간직한 장애인들의 모습을 간과한 채 진실을 가리는 영상과 스토리텔링으로 이 세상 모든 장애인들을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만 보여주는 것은 문제입니다. 물론 제작 일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현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그려내려는 대상에 대한 충분한 사전조사와 고민이 기본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조차 무시되는 정서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대부분 방송을 가장 진보적이고 열린 매체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방송이 권력화 되고 상업적 논리가 우선시되면서 그에 편승하는 매체가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보수적으로, 현실보다도 훨씬 뒤처진 인식에 의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풍토가 자리 잡게 됐습니다. 당연히 힘없고 소비성이 약한 계층의 이야기는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로만 활용되고 선별적으로 등장시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작진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힘과 다수 중심의 사회체재를 유지시켜 주는 내용들을 만들고,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시대는 이미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고, 실제로 우리사회도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방송이 다수를 대변하는 매체로써 소수를 차별하는 내용들을 전파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시청자에게 외면당할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양성 존중의 기본은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드라마에서 그려내는 장애인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장애를 질병이나 일시적 현상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장애인의 어려움을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고, 기적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장애가 완치되거나, 수술로 극복한다거나, ‘장애를 앓고 있다’는 표현들까지 서슴지 않고 나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는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며, 오해입니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라, 신체적 조건입니다. 장애는 평생 함께 가야 할 신체의 일부이며 특성입니다. 수술이나 재활로 팔과 다리의 기능이 호전될 수는 있으나 여전히 행동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생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보조기구, 재활과 수술, 활동보조인 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체제로 인한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정서를 갖게 되면 편견과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애는 개성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인식하는 사회의 시선도 동등해질 테니까요. 저마다 눈, 코, 입이 다르듯 장애로 인한 다름을 자연스럽게 보는 인식 말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드라마 작가들이 장애인 캐릭터를 극 속에 등장시키는 것에 의미를 두던 시대는 지나갔고, 어떻게 그리는가가 중요한 화두가 됐습니다. 작가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일조하는 대사를 단지 극 속에 넣는데 만족한다면 무리가 따릅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뒤떨어진 경우엔 문제되는 것들을 적시에 짚어주지 않으면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대사들 뒤에 바른 인식을 위한 대사들을 바로바로 쳐주는 돌직구적 구성이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고, 장애인이 처한 상황에 해결의 단서들이 될 수 있는 장면들을 세심하게 연출해주는 것이 현실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좀 더 장애인의 입장에서 현실을 그려내려는 자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철저한 조사와 고민을 거쳐 한 장면 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제작 풍토가 자리 잡아가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 분위기가 우선돼야합니다. 상투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해답이어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당사자 입장이 바탕이 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질문들, ‘왜’와 ‘무엇’은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고, 대중매체, 특히 방송도 본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작성자글. 백수정/ 서울 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부회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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