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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텍스트에서 장애인의 위치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의 경우

장애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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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소설 <도가니>1)는 광주의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에 관한 짧은 보도기사 한 줄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이후 이 소설이 영화화돼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 사건이 알려지면서, 장애인 인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큰 이슈가 됐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적 반향은 속칭 ‘도가니법’의 제정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

이 소설 <도가니>는 장애아동들의 인권을 유린한 기득권층의 모순과 비리, 그리고 이를 묵인하고 방관한 법제도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비판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장애인 인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소설은, 작중인물 강인호가 무진시에 있는 농아학교인 자애학원에 기간제 교사로 발령을 받아 내려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인호는 부임한 첫날부터 자애학원에서 벌어지는 심상치 않은 사건들을 목도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지적장애와 청각장애를 지닌 복합 장애아가 기차 사고로 죽고(폭력의 고통으로 인한 자살로 의심되는), 열다섯 살 연두와 유리가 자애학원 설립자의 아들인 이강석과 이강복 쌍둥이 형제, 그리고 기숙사 생활지도교사인 청각장애인 박보현으로부터 성추행과 성폭력을 지속적으로 당해왔다는 사실, 학생들에게 끔찍한 린치와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그는 무진인권운동센터에서 일하는 대학 선배 서유진과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면서, 상상할 수 없는 인권 유린의 복판에 서게 된다. 작가는 이 같은 묘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잠재돼 있는 거짓과 폭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진실을 똑바로 보게끔 만든다.

소설 <도가니>에 관한 연구는 『현대문학이론연구』 제50호와 제51호에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각각의 글은 법의 문학적 수용2)과 인권의 측면3), 그리고 사회적 소통의 관계망4)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김정숙(2012)의 글에서 특히 이 소설이 “재현의 측면에서 특정계급이나 소수집단의 전형성을 박제화하고 있다”5)는 지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애학원의 감사요청을 묵살하는 교육청의 장학사나, 진수와 민수 형제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생활지도교사 박보현, 행정실장과 기숙사 사감인 윤자애의 경우 “억센 인상, 눈매가 얍삽하고, 쥐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냉소적인” 등의 부정적 외양묘사가 그러하다.

반면 진실과 정의, 인간 본성의 가치는 강인호와 특히 서유진을 통해 전달되면서 미화되는 측면도 있다. 워낙 이 사건의 실제 인물들이 용서받기 힘든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터이나, 어쨌든 소설이라는 문학적 장치 안에서 인물의 형상화가 단선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은 일정한 한계로 지적할 수 있겠다.

사실 어떠한 인간도 단 한마디의 말로 정의내릴 수 없는 존재다. 착하다거나 악하다거나 등의 말들은 한 인간의 아주 작은 부분만 보여줄 뿐이다. 모든 인간의 내면은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고, 단지 그것이 어떤 시간과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같거나 혹은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소설의 경우 인물의 성격을 형상화할 때 선과 악의 단순한 대립구도로만 처리하면 윤리적 분노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유용할지 모르지만, 왜 그러한 일들이 오래토록 지속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숙고하는 데 있어 부정적 인물들 개인의 성격 결함이라는 차원으로만 한정 지을 염려가 있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는 부분은, 소설 내 인물들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비틀린 시선이다. 아래의 말은 자애학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철저하게 방관자로 일관하는 박 선생이 강인호에게 건네는 말의 일부이다.

앞으로 여기 계시면 알게 되겠지만 모든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피해의식이 심한 것이 농아들이에요. 자기네들 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도 특징이구요.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을 민족이라고 하면 그들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다른 민족이죠. 아시겠어요? 다른 민족이라구요.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거짓말도 그들의 풍습 중 하나지요.(32쪽.)

그러니까 농아학교인 자애학원의 교사들이, 그들이 가르치고 돌봐야 할 장애 아이들을 자신들과는 다른 이방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데서 이 비극의 단초가 이미 마련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은, 황 변호사가 증인신문 중에 하는 다음과 같은 말(①)과 생활관 지도교사 윤자애가 황 변호사의 증인신문에 답하면서 하는 말(②)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난다.

① 여기 이 피고들을 고발한 아이들은 모두가 청각장애인으로 이 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치는 그런 아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격리돼 어쩌면 우리와 아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244쪽.)

② 제가 보기에 청각장애인들은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남의 말 못 듣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니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여길 뿐 아니라 어떤 사실을 잘못 알았다 싶어도 전혀 수정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245쪽.)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발화 중 장애아동들을 ‘그들’이라 부르는 그 우리는 대체 어떤 ‘우리’인가.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다른 언어를 쓰는 이방인이라는 그들의 인식은 이 소설에서뿐 아니라 어쩌면 청각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일반의 고정된 인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란 그래서 장애인들을 은연 중에 타자로 설정하고 있는 비장애인들, 곧 우리 모두인 셈이다. 강인호가 장애아동들과 처음 만났을 때 보인 낯설고 불편한 느낌이나, 성폭행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연루되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자 했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소설 내 부정적인 인물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 <도가니>의 장소인 청각장애인 학교 ‘자애학원’은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소록도’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곳과는 분리된 공간으로 기능한다. 안개 속에 있는 자애학원은 명목상으로는 도교육청의 표창을 여러 해 받은 훌륭한 장애인 복지시설로 포장돼 있지만, 온갖 악행들이 저질러지는 공간이다. 자애(慈愛)라는 이름은 강한 반어적 어휘이다. 자애학원 내에서의 폭행과 억압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자애학원은 고립된 안개 속에서 모든 것을 은폐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에서는 알 길도 없고 외부의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애’ 대신 ‘폭력’이 행해지는 자애학원은 무진의 명물인 두꺼운 안개로 가려진 채 진실을 왜곡한다.6) 교장 등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그들의 악행을 덮으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장애아동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문제는 장애아동들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경우 청각장애아들이 비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 의사소통 수단으로써의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우선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언어(수화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적 교감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인식한다. 그리고 법정에서 자신들을 성폭행했던 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사건이 마무리 된 다음, 그들은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290쪽.) 알게 된다. 이러한 자기 발견은 매우 소중한 가치라 할 수 있다.

한 주체에 대한 신체적 학대는 사랑을 통해 배운, 자기 몸을 자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무시 형태이다. 따라서 신체적 학대의 결과는 사회적 치욕의 형태와 함께 자기에 대한 믿음, 세계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다.7) 지속적인 성적학대를 무방비상태로 견뎌내야 했던 아이들이 자기존중에 대한 인식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들이 주체적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자기존중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뜻한다. 각 개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을 하나의 특수한 인격체로 인정할 때 자신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8) 소설 내 장애아동들에 대해 그들을 둘러싼 외부세계가 그들을 온전하게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인호와 서유진과 같은 사람들의 연대의 힘, 그리고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통해 그들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문학텍스트- 영화-시민사회의 분노-법적 처벌로 이어졌던 일련의 과정 뒤에, 그러니까 오늘의 시점에서 그 자애학원(들), 혹은 비장애인 일반에게서 여전히 장애아들은 ‘우리와는 다른 언어를 쓰는 이방인’이라는 타자의 위치에서 얼마만큼 벗어났는지 자신할 수 있을까.

1)공지영(2009),<도가니>, 서울: 창비. 이 소설은 2008년 11월 26일부터 2009년 5월 7일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했던 내용을 다듬어서 2009년 창비에서 펴냈다. 2005년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현장을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한 뒤 집필했다. 2010년 영화로 개봉돼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2)김정숙(2012),「법의 문학적 수용과 법문학의 가능성— 공지영의 도가니를 중심으로」,『현대문학이론연구』, 제50권 0호. 현대문학이론학회.

3)김경민(2012),「<도가니>에 나타난 “부끄러움”의 미학- “인권”에 대한 문학적 접근」,『현대문학이론연구』, 제51권 0호, 현대문학이론학회.

4)유경수(2012),「부정적인 현실에 대항하는 사회적 소통의 관계망 -공지영의 <도가니>를 중심으로」,『현대문학이론연구』, 제51권 0호. 현대문학이론학회.

5)김정숙, 위의 글, 36쪽

6)유경수(2012),「부정적인 현실에 대항하는 사회적 소통의 관계망 -공지영의 <도가니>를 중심으로」,『현대문학이론연구』, 제51권 0호. 현대문학이론학회,262쪽.

7)악셀 호네트(1996),『인정투쟁』, 문성훈·이현재 옮김, 동녘,224쪽.

8)악셀 호네트, 같은 글,144쪽.

 

작성자글. 심영의 /소설가, 문학박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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