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소리를 들어 주세요! 다 같이 웃고 즐기는 집회
본문
요즘 일본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뉴스가 뭔지 아세요? 바로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뉴스입니다. 2주일 넘게 매일같이 주요 채널의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어요. 외국에 사니 가끔이나마 모국 뉴스를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데, 이건 반갑다고 해야 할지, 망신스럽다고 해야 할지 곤란하네요. 처음에는 사태가 사태이니 만큼 귀가 솔깃해서 들었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나 시시콜콜 인물들과 관계기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대중의 안줏거리로 삼기에 여념이 없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자 불편한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한편에서는 많은 국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평화로운 시위를 벌인다는, 그리고 그 집회가 분노와 욕설로 점철되는 싸움터가 아니라 남녀노소가 같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노래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불빛 파도타기까지 연출하는 영상을 보며 압도당했으며, 한국 국민들의 참여의식에 놀랐다는 의견도 들었어요. 지금 일본에서는 문제가 있어도 그만한 민중들의 결집과 행동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아쉬움을 덧붙이면서 말이에요.
30년 전, 1986년의 최루탄 가스 자욱한 광화문 거리를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세월을 실감하게 되지만, 하루 빨리 행동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수렴해 사태를 해결하는 정치의 성숙한 모습이 보이기를 바랄 뿐이네요.
한국의 집회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일본에서도 제 눈길을 끈 집회가 지난 11월 13일 도쿄 시부야에서 열렸는데, ‘버디 워크(Buddy Walk, 버디는 친구라는 뜻) 2016’라는 거였어요. 영어로 표현하니까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다운증 당사자 자녀와 부모들이 함께하는 행진이었어요.
먼저 버디워크란, 다운증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행사로, 1995년 미국 전미다운증협의회에서 다운증에 대한 계몽 행사의 하나로 뉴욕에서 개최하게 됐어요. 다운증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식 개선과 사회적 평등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약 1.6킬로미터를 행진한다고 합니다. 그 후 세계 각지로 퍼지게 됐는데, 일본에서는 2012년 10월 도쿄 시부야 요요기공원에서 처음으로 개최됐고, 올해 5회째로 600여 명의 당사자와 부모들이 같이 행진했다고 해요. 시부야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가장 큰 번화가 중 하나인데 이번에는 시부야 행정기관으로부터 대대적인 협력을 받아 치뤘다네요.
행사 주제는 “함께 웃으며, 함께 행동하자!”로, 다운증 있는 사람들의 매력을 어필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운증에 대해 친근하게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했어요. 그러나 “다운증에 대해 이해해 주세요”라는 것만으로는 현실적으로는 좀처럼 관심을 받기 어려우니까, 가장 다가가기 쉬운 방법으로 웃음에 그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려고 했대요. 다운증 당사자들의 밝고 맑은 웃음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으니까. 참가자끼리는 물론 집회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선사하며 행진을 했어요.
집회는 공원에서 시작되고 시부야의 중심지를 돌아 다시 공원에서 집회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경찰의 협조를 받으며 안전하게 진행된다는 주최 측의 안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원에 마련된 메인 무대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는데 다운증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선보이는 댄스, 스포츠에 특기가 있는 사람, 자신만의 활동을 하는 사람,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며 이야기를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됐어요. 사진은 주최 측의 페이스북에 올려진 건데, 집회 행렬의 맨 앞줄에 횡단막 옆에서 거침없이 외치고 있는 다운증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힘차게 들리는 것 같죠. 또 한 장은 무대에서 댄스를 선보이는 팀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고등학생에서부터 성인까지 다운증이 있는 당사자와 엄마들로 구성된 팀으로 지역의 여러 행사에도 출연하며 댄스를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 모임을 주최하는 비영리법인 ‘포용(acceptions)’은 다운증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뜻을 모아 만든 단체로, 다운증 당사자나 가족이 건강하게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운증을 더 많이 알리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남의 자리를 만들려고 활동하고 있으며,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운증 자녀를 가진 방송인 등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많다고 해요. 당일에는 집회뿐만 아니라, 저녁 때는 다양성 추구라는 주제로 개최된 심포지엄에 유명 미용연구가가 출연해 다운증 아이를 키우는 육아에 대한 경험담을 소개하는 등, 10시부터 시작해 19시에 마무리되는 꽉 찬 하루 행사였습니다.
주목할 만한 건 이 행사에 관할 행정기관은 물론, 많은 기업들의 협찬이 있었다는 점과 많은 방송, 신문에 소개됐다는 것으로 집회의 발전적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아무튼 이번 집회의 모습과 목소리가 행여라도 지금 어디선가 ‘쉬쉬’ 소리를 죽이며 가슴 졸이고 있는 다운증 자녀를 둔 가족들이 가슴을 펴도록, 그리고 함께 웃을 수 있도록 사회 곳곳에 보여지고 들려졌기를 바랍니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