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리카에서 불어오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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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의식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깊숙이 스며들기 희구하는 인권운동가들의 꿈과 영화를 통해 사회와 인간이 한없이 착해질 수 있다는 영화인들의 믿음은 작년 제1회 인권영화제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메마른 이 사회에서 ‘인간’이 복권되는 기쁨을 관객들에게 전하기 위한 인권영화제는 올해도 세계 곳곳에서 ‘인강늘 위한 영상’을 모아 이 땅에, 새로운 영상문화를 마들고 있다. 모두 14개국의 영화 24편이 선보이는 이번 2회 인권영화제에는 현대영화의 고전에서 재해석해 낸 ‘인권’ 영화 뿐만 아니라 상업성이 없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하는 전세계의 인권영화를 모았다. 아동의 인권, 여성의 인권, 저항권 등 인간의 존업에 대해 이들 영화를 통해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장애우의 권리를 다룬<시가라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미나마타>를 상영하게 되었다.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곧잘 소외당하고 있는 장애우에 대해 인권영화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 중에서 <시가라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있으면 자꾸 웃음이 나온다. 이 웃음은 무엇인가? 어둡고 칙칙한 웃음이 아니라 산들바람 같은 웃음이다. 그들의 너글너글함이 우리에게 전해져 온다.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시가라키(?樂)에는 약 2천명의 노동자가 있으며, 그 중 106명이 정신지체장애우다. 이들은 보통 10년 이상 이곳에서 직업을 얻어 살아왔다. 이 산속의 작은 도시에 이들은 완전히 녹아들어 있다. 그들은 여기서는 전혀 새삼스러운 존재가 아니며, 일을 하고 있어도 외출을 해도 그들은 이 도시에 잘 어울린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특수학교인 ‘양호학교’를 졸업하고 이 도시에 와서 2주간의 실습기간을 거친 후 취직한다. 가내공업 규모의 작은 도자기공장들, 거기에는 ‘사람’이 있고 흙이 있다. 즉 원초적인 것과의 접촉이 있다. 그들은 이런 자연 속에서, 음산한 이미지의 장애우가 아닌, ‘사람’이 된다.
우리나라의 어느 장애우마을이 ‘자활’을 말하면서 그들을 공장의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것과는 천국과 지옥 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가라키 어느 공장에서 8년 동안 일했다는 어느 장애우는 대단한 장난꾸러기다. 사장은 그를 두고 이런 말을 한다. “처음 3년 동안은 정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장난꾸러기 장애우노동자를 쫓아내지 않았다. 거기에는 ‘경제’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장난꾸러기가 일하는 모습은 지금 좀 더 나아졌다. 그러나 사장 말에 의하면 ‘나쁜 짓거리’도 가끔 한다. 영화의 이 장면을 보는 사람은 흔히 장애우단체에서 주장하는 ‘장애우가 능력에 있어 일반인과 같다’는 주장은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 경제논리에 끌려들어 간 괴로운 논리가 아니냐는 의심을 가져볼 만하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가 좋다. 시가라키에서 만난 여러 장애우의 말들을 그대로 옮겨 모자이크 한 듯한 이 노래말은 “바람처럼 웃으면서 살아간다네”로 끝을 맺는다. 우리나라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인가?
글/ 인권영화제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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