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의 영화이야기] 개같은 날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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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의 영화이야기]
개같은 날의 오후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는 창작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이민용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의 여러 가지 비민주적 행태 중에서도 가장 저급한 배우자폭행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여성에 대한 성희롱, 언어폭행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남성들이 마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 도로에서 여성운전자에게 폭언을 하는 남성운전자를 보면서도 그냥 웃어넘기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한다. 소위 스스로 지식인연하는 남성들조차도 봉건시대부터 내려오는 뿌리 깊은 남존여비의 고루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자에게 대한 물리적 폭행은 비록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봉건적 사고에 젖어있다 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야만적인 행동이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이건 아니건 이 야만적 폭력행위에는 많은 남성들도 분개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남성들은 어린 시절 자신들의 어머니들이 그들의 남편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자랐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전통적 가치관의 몰락과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쉽다. 이러한 혼돈은 장기적인 순화과정을 통하여 서서히 정화될 것이다.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열등감을 상습적으로 아내를 구타하는 것으로 해소하려고 한 성구라는 남성이 이웃의 선량한 여성들에게 뭇매를 맞고 죽은 사건에서 시작된다. 여성들은 경찰이 현장에 급파되자 얼떨결에 아파트의 옥상으로 피신하게 되고 며칠 동안 결창과 경찰과 대치하게 된다. 한 외로운 할머니의 죽음이 마치 여성들의 항변처럼 오인되기도 하며, 여성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문제를 서로 이해하고 돕게 된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정당방위를 입증하기 위하여 많은 여성단체의 도움과 여론의 도움으로 옥상에서 무사히 내려오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한 여성의 문제를 여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가 서로 다른 것을 경찰과의 대처라는 한계상황 속에서 극복하고 공동체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맡은 주부로서 호수테스로서 식당여주인으로서 그리고 이혼녀로서의 역할이 요구해온 편협한 사고의 벽을 넘어섬으로써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유미를 동성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행함으로 자신들의 남성에 대한 적개심을 승화한다. 다시 말하면 "개같은 날의 오후"에 등장한 여성들은 유미를 받아들임으로 남성과의 화해를 행한 것이다.
"개같은 날의 오후"는 어쩌면 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단순한 구성의 이야기일 수 있다.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연출자인 이민용 감독은 두 명의 좀도둑을 등장시킨다. 두 명의 도둑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적절히 배치되어 관객의 지루함을 더러 준다. 감독 이민용은 신인감독으로서는 매우 안정되고 세심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단지 그가 장면전환에서 사용한 단순한 기법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희극적 요소를 조금은 과장해서 보여줌으로 이야기의 단순함과 지루함을 잊게 한다. 기동대장과 그의 보이지 않는 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보여지는 기동대장 부인의 의식변화와 여론의 움직임과의 맞물림도 재미있는 착상이고 홍기자와 부장과의 변화도 유치하지 않게 잘 처리했다. 단지 조형기가 연기한 인물의 설정은 의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지도 않고 드라마의 구축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 실수이다.
인물의 설정 이외에도 줄거리의 진행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드라마의 도입부이다. 여자들이 상구에게서 도망쳐 나온 정희를 구하려다 성구를 집단구타하게 되고 결국 성구가 죽게되는 과정이 비록 재미있긴 하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부분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좀더 치밀하게 계산되어져야 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이야기 자체의 당위성이 이 부분의 타당성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이 장면에서 보여지는 비현실적 요소는 간과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편 이 영화는 캐스팅이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각 역할의 비중이 모두 큰 작품이어서 많은 주연급 배우의 기용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제작자의 용단이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성옥숙, 김보연, 정선경 등 대부분의 연기자가 제몫을 다함으로써 이야기의 허술함이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아마추어 연기자인 가수 이희숙의 미숙함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깬 것이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손숙이 연기한 경숙이라는 인물의 성격이 충분히 살려지질 못한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경숙이라는 인물이 여성 지식인의 몫을 해낸 것은 구성상의 포석에는 성공하였지만 인물들이 성격을 발전시켜 나가는 점에서는 미흡했다.
단순한 이야기를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또한 연출자의 메세지를 전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준다는 것을 더욱이 힘든 일이다. 물론 요즈음 소위 페미니즘을 다룬 많은 연극과 영화가 선을 보였지만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는 평범한 여성들이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하여 경험하는 의식의 전환을 지루하지 않게 또 진지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글/ 이영호 (시각장애우이며, 연극영화인이다. 현재 EBS라디오 "사랑의 한가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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