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의 영화이야기]참다운 인간애의 승리, "기적을 만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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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인간애의 승리, "기적을 만든 사람"
<윌리엄 깁슨이 자신의 희곡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헬렌켈러의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어 새로운 충격을 주기에는 부족한 이야기 거리인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 "기적을 만든 사람"(The Miracle Worker)은 또 다른 새로운 감동을 우리에게 준다.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이 자신의 희곡을 시나리오화하고 아써 펜(Arthur Penn)이 연출한 이 영화는 헬렌켈러의 생애 중 그녀가 애니 설리반을 만나 동물적 상태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부분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제목이 이미 시사하듯 그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열 살 남짓의 동물과 같은 계집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일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린 헬렌켈러에게 일어난 기적은 애니 설리반이라는 한 젊은 여자, 그것도 전혀 보지 못하다가 아홉 번의 수술을 받고 겨우 보게 된, 더구나 헬렌을 가르치기 위하여 오기 직전에도 수술을 받아 검은 안경으로 자신의 눈을 햇빛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갓 스물의 여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좋은 스승을 찾아 세상을 헤매는 이야기는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항상 들어왔다. 그만큼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지금에 와서는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되었다. 우리는 "기적을 만든 사람"을 통해 스승의 참모습과 진정한 인간애란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진정한 사랑을 향한 여로>
영화의 첫 장면은 아씨 펜의 고약한(?) 연출기법을 감지할 수 있는 조금은 괴기스러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어린 헬렌이 침대에 누워있고 앙각으로 헬렌의 어머니와 의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헬렌의 위와 뇌의 충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의사가 돌아가고 케이트(헬렌의 어머니)는 남편의 신문에 실린 현대의학의 경이에 관한 기사를 떠올리며 자위하려 한다. 그러나 곧 아이의 눈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경악한다.
다음 장면은 헬렌의 앞으로 뻗은 손의 그림자가 "프레임 인"(Frame In)하면서 시작된다. 아써 펜의 괴팍함을 영화의 여러 장면에서 보여진다. 애니의 이빨이 헬렌의 인형에 맞아 빠지는 장면, 애니가 헬렌이 잠궈버린 방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 헬렌의 이복오빠인 제임스의 성격묘사, 당시 미국의 정신병원 묘사 등등.
물론 당시 19세기 말의 전신병원의 실상은 영화 속의 그것보다 더 열악했을 것이고 장애인, 더욱이 시각장애인이며 고아인 헬렌 남매가 어떻게 취급당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써 펜의 괴팍함이 그것을 더욱 극사실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감동적 전개가 아써 펜의 연출을 무색하게 한다. 그리고 앤 반크로프트(Anne Bancroft. 애니 설리반 역)의 연기와 어린 패티 듀크(Patty Duke, 헬렌켈러)의 연기가 이야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이 영화는 두 종류의 사랑을 보여주며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를 보여준다. 헬렌의 부모의 사랑은 지극하고 원초적인 것이지만 헬렌을 교육하기위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동정심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애니의 헬렌에 대한 사랑은 이성적 차가움은 가지고 있으나 헬렌의 교육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보여진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동물적(이 표현이 지나치다면 본능적) 모성애를, 인간적 모성애(진정한 의미의 모성애)와 구별하여 인식하고 있지 않다.
동물적 모성애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연한 것이다. 진정한 모성애란 보기 드문 것이고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가 질주하는 거리에서 자신과 전혀 혈연을 맺지 않은 아이가 윤화를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그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모성애인 것이다.
동물은 자기 자신의 새끼를 구하기 위하여 다른 새끼의 생명을 앗을 수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새끼의 목숨을 다른 타인의 새끼를 위해 자신을 이런 희생적 모성애 아니 인간애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극단 "소리"에서 연극으로 선보일 예정>
애니 설리반은 먼저 동물처럼 생활하고 있는 헬렌을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바꾸려고 안간힘을 슨다. 포크와 나이프와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반복하여 내프킨을 접게 한다. 우선 동물적 행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성이란 본능을 억제하기 위하여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애니는 헬렌에게 농아들의 알파벳을 가르친다. 그저 흉내만 내는 헬렌에게 그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시도하며 안타까워한다.
영화의 대부분이 애니와 헬렌의 전투와 같은 수업장면으로 점철되지만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가 지루함을 잊게 한다. 애니의 회상에 등장하는 애니의 동생 지미(제임스의 애칭)는 애니의 심리적 상태를 잘 보여준다. 애니는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사랑을 헬렌을 통하여 보상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구성을 가진이야기를 영화화하는 작업은 감동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할 때에 가능하게 된다. 더욱이 윌리엄 깁슨이 자신의 희곡을 바탕으로 쓴 시나리오이기에 이 연극적인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작업이 아써 펜에게 많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와 이야기 자체가 담고 있는 공간적 제한이 영화를 사뭇 연극적 영화로 만들었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공의 자유로움을 조금 안이한 방법이긴 하지만 회상을 적절히 사용하였고 카메라의 움직임도 무리가 없는 민첩함과 섬세함을 보여준다.
패티 듀크는 지금은 이미 중년을 넘긴 배우이지만 이 영화의 제작 당시는 천재적 아동배우라고 극찬을 받았고 오스카 상을 수상했다. 그 후 페티 듀크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제작된 텔레비전 씨추에이션 드라마 "패티 듀크 쇼"에 출연하고 가수활동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몇 편의 영화에 살찐 중년 여성으로 출연하고 있다. 앤 반크로프트는 이 영화로 오스카 상을 수상했고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졸업"의 로빈슨 부인, "나자렛 예수"의 막달라 마리아, "신의 아그네스"의 수녀원장 등.
물론 제작한지 30년이 지난 흑백영화이고 지금의 관객에게는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지만 이번 달에 이 영화를 소개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좋은 영화에 굶주린 관객에겐 볼만한 영화이고, 특히 요즈음 쓰레기 같은 미국영화들이 판을 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영화는 한 여름 낮의 시원한 소나기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인 이유로는 필자가 대표를 맡고 있는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극단 소리"가 가을 정기공연 작품으로 "기적을 만든 사람"을 선정하였기 때문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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