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날아간 휠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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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1995년 1월호에 실린 김순석 씨의 사연을 소설로 각색한 글을 다시 정리해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1984년 9월19일 서울 강동면 마천2동 104-6지하셋방 한구석에서 휠체어를 탄 소아마비 장애인 김순석씨가 음독자살했다. 그의 품에서는 "스스로 부딪쳐 보지 못하고 피부로 느껴보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서울시장 앞으로 남긴 편지지5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1984년 9월 22일 조선일보
▲ ⓒ이상윤 |
후-우, 김순석씨는 오늘도 버릇이 된 한숨을 내쉬었다. 남대문시장에 있는 납품처를 찾아가는 날은 늘 일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그는 잔뜩 긴장해야했다.
김순석씨는 머리핀 샘플을 넣은 손가방을 챙겨들고 아내 등에 업혔다. 아내는 그를 업고 지하방을 벗어나 밖으로 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아내 등에 업혀 있는 김순석씨의 귓가에 늘 그랬듯이 웅-사이렌 소리가 파고들었다.
국민 여러분 이건 실제상황입니다. 실제상황입니다...언젠가 도로를 건너다가 도로 한가운데서 맞닥뜨린 공습경보를 김순석씨는 잊지 못했다. 길가던 모든 사람이 대피하고 정적만이 감도는 도로에서 그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야 했는데 , 짓눌러 오는 사이렌과 호루라기 소리에 쫓겨 황급히 휠체어 바퀴를 굴리다가 그만 도로 한가운데 이마를 박고 넘어졌던 것이다.
그때 땅을 베고 누워 맛보았던 공포감은 그 후 내내 그를 괴롭혔다.
김순석씨는 외출하는 날은 자신도 모르게 그 상황을 떠올리게 됐고, 귓속에서 환청으로 사이렌 소리를 들어야했다.
김순석씨는 귓속을 파고드는 사이렌 소리를 지우려 애써 고개를 내저었다. 다시 한 번 한 숨을 내쉬는 사이 어느새 아내는 그를 계단 앞에 세워진 휠체어에 태웠다.
햇빛이 눈부셨다. 김순석씨는 휠체어에 앉아 문득 힘에 부쳐 씩씩거리는 아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햇빛아래 드러난 아내 얼굴은 백지장 같이 창백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기다 하루 종일 지하에서 지내는 아내이고 보면 병색이 완연한 게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봐.."갑자기 가슴이 시려온 김순석씨는 아내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그만뒀다. 아내는 자신을 쳐다보는 김순석씨의 눈길을 외면하고 방금 그녀가 빠져나온 지하셋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서있었다. 생활고에 지쳐서일까, 요즘 들어 부쩍 말이 없어진 아내였다.
말이 없어진 것뿐만 아니라 생각해보면 아내가 지쳐가고 있다는 징조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한밤중에 휑하니 밖에 나갔다 오는 횟수도 잦아지고 있는데 그럴 때면 아내의 두 눈은 어김없이 퉁퉁 부어 있었다.
급기야는 얼마 전에 아내는 좀체 하지 않던 말을 김순석씨에게 꺼내기도 했다.
"여보 우리 이사 가요. 나는 견딜 수 있지만 동민이 때문에 더 이상 안 되겠어요. 보세요. 동민이가 시들어가고 있잖아요. 제발 우리 햇볕 드는 지상으로 이사 가요. 당신이 어떻게 좀 해보세요. 제발 여보..."
매달리는 아내에게 김순석씨는 아무런 언지도 줄 수 없었다. 그가 세 들어 있는 전세보증금 200만원으로 방 한 칸과 작업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지상에서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아내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내가 급속하게 무너져가고 있다는 반응으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 다녀올 테니까 동민이 잘보고 있어"
김순석씨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고 아내의 무표정한 얼굴에다 빠르게 말을 던졌다. 그런 다음 두 손으로 휠체어를 굴려 골목길로 나섰다.
김동심씨는 남편이 빠져나간 골목길에 서있었다. 저만치 남편의 휠체어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김동심씨는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큰길가까지 배웅하려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거부했다.
그녀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자 남편은 "됐어, 됐어. 나 혼자 갈수 있으니까 동민이나 잘보고 있어"라고 완강한 어조로 말했다. 남편의 자존심을 아는 터라 그녀는 순순히 포기했다.
어느 순간 남편의 휠체어가 그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한올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김동심씨 또한 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갑자기 남편이 탄 휠체어가 보이지 않으면 그녀는 두려움 때문에 안절부절 해야 했다.
삼 개월 전 그 일이 있고 난후부터 생긴 그 두려움은 그녀를 쉽게 놔주지 않고 있었다. 그날 남편은 거래처에 간다며 외출했다가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귀가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마치 경기에 들린 사내아이처럼 끙끙 앓았다.
그것뿐 처음에는 남편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땀을 비 오듯이 쏟으며 누워있던 남편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앉았다. 그때 남편이 지었던,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진 채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살기 넘친 그 표정을 그녀는 죽을 때 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남편과 팔년을 살았지만 남편의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김동심씨는 순간 "뭔지 모르지만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꼿듯 남편의 광폭한 행동이 이어졌다. 남편은 베게부터 내던졌다. 그리고 그릇, 밥상..손에 잡히는 대로 내던지는 남편의 광기 앞에서 그녀는 속수무책이었다.
닥치는 대로 살림살이를 내던진 남편은 그것만으로는 서에 차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셋방 옆 추녀 밑에 있는 작업실로 갔다. 거기에는 금형과 공구와 그녀와 남편이 공들여 만든 액세서리 제품이 쌓여있었다. 남편은 작업실에서도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내던졌다. 공구가 창문을 뚫고 날아가고 비싼 금형이 바닥에서 박살났다. 남편의 손은 이제 머리핀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동심씨는 순간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황급히 남편에게 달려갔다.
"안돼요, 여보, 그것만은 안돼요. 그 물건은 내일 납품할 물건이잖아요. 그걸 내던지면 우리는 굶는다고요. 당신도 잘 알잖아요. 여보 제발 참아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잘못했어요. 당신제발 화내지 말아요. 내가 엎드려 빌게요. 제발 여보...."
그녀는 남편을 뒤에서 껴안았다. 서러움에 복받쳐 올라 그녀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 손에 잡힌 남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적막감이 찾아왔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남편을 안았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남편은 조금 전 광폭함이 언제 있었냐는 듯 아이처럼 고분고분했다."불쌍한 내 아기..."그녀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나왔다. 얼마큼의 시간이 지나갔을까, 남편이 "크으윽..."깊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남편은 울고 있었다.
"절단기를 빌리려고 박씨를 찾아가는 길이었어. 어제따라 웬일인지 쉽게 택시가 잡히더군. 아니야, 당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게, 택시기사에게 요금의 두 배를 줄 테니 제발 태워달라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얻어 탄 택시였어, 성수동에 갔지, 그런데 박씨가 전화로 가르쳐준 건물을 찾지 못한 거야. 할 수 없이 길가에 내렸어. 그때부터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물어 건물을 찾아 나섰지. 박씨가 일러준 건물을 찾는데 얼마큼의 시간이 걸린지 알아. 무려 한 시간이야. 한 시간이나 그 동네를 헤멨다구, 그렇게 겨우 성진빌딩을 찾아냈어.
그런데 겨우 찾아낸 건물이 내가 서있는 길 반대쪽에 있는 거야. 별수 없이 차도를 건너야 했어. 처음에는 나도 횡단보도로 건너려고 했다고. 실제로 횡단보도 근처까지 갔어. 그런데 그 망할 놈의 도로 턱 때문에 도저히 횡단보도에 내려설 수가 없었던 거야. 할수 없이 인도를 거슬러 올라갔지.
마침 인도 끄트머리에 인도와 차도가 경사로로 이어진 길이 있었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길로 차도를 건넜지. 달리는 차가 몇 번 클렉션을 울려대는 소리는 듣긴 했지만 나는 별 탈 없이 차도를 건넜어. 그런데 차도를 건너 막 인도로 올라서려는 순간이었어. 어 디서 나타났는지 교통순경이 다가와 나를 잡는 거야.
나를 잡으며 교통순경이 뭐랬는지 알아? 내가 무단횡단을 했다는 것이었어. 사정하는 수밖에 없었지.
나는 다시는 무단횡단을 안 할 테니 한번만 봐달라고 순경에게 사정했어. 그랬는데 순경이 나한테 묻는 거야. 장애인은 무단횡단을 해도 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그 물음 앞에 나는 아무대꾸도 할 수 없었지.
꼼짝없이 경범죄 위반으로 경찰서에 실려 갈 수밖에 없었어. 나는 혹시나 해서 경찰서에 가서도 순경들을 붙잡고 사정했어. 한번만 봐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테니 한번만 봐주십시오....
수치스러웠지만 내 동생뻘 되는 순경들에게 빌고 또 빌었던 거야.
그랬는데 그 자식들은 누구도 내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화가 난 나는 소리쳤지. 이 자식들아 누가 무단횡단하고 싶어서 했냐! 횡단보도 건널 수가 없으니까 차도로 건넜잖아! 나는 죄가 없어 죄가 없다구....
그때 젊은 순경 한 놈이 천천히 유치장으로 다가왔어.
그놈이 나한테 뭐랬는지 알아. 병신 꼴값하고 있네. 여보 그놈이 나한테 병신 꼴값한다고 욕을 했다구.
그놈이..동생뻘도 안 되는 그놈이 흐흐흑... 내가 그놈한테 어떻게 대응할 수 있었겠어. 내겐 아무런 대항 수단이 없었어. 그래서 나는 사람도 아니구나. 사람도 아니야... 그말 만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지. 꼬박 밤을 뜬눈으로 지샜어. 새벽녘이 돼서야 그놈들이 나를 풀어주더군. 여보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 이젠 무서워서 차도로 나설 수도 없어. 어떡하지 여보...."
그녀는 남편의 아픔을 이해했다. 진저리치며 뼈속 깊이 남편의 아픔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녀는 두려웠다. 남편이 외출할 때면 혹이나 잘못되면 어떡하나, 또 잡혀가지나 않을까, 저러다 차에 치이기라도 한다면, 조바심에 그녀는 몸둘바를 몰라 했다.
생각이 그날의 악몽에 미치자 그녀는 도저히 가만히 서 있을수 없었다. 그녀는 황망히 사라져간 골목길로 달음박질쳤다. 골목길을 벗어나 큰길가에 다다른 그녀는 남편의 그림자를 찾으려 사방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러나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남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김순석씨는 남대문 시장으로 들어섰다. 그가 찾아가고자 하는 액세서리 상가는 시장 안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 가기위해 상인들이 노점을 벌여놓은 좁고 어지러운 길을 헤쳐 나가야 했다. 그가 이 길을 지날 때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오늘도 김순석씨는 뒤통수에 와 닿는 상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 웬일인지 그가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은 그의 출현을 못마땅해 했다.
하긴 휠체어가 지나가려면 노점에서 물건을 고르던 행인들이 한켠으로 비켜서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고, 그 때문에 장사에 지장을 받는다고, 상인들이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건 김순석씨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못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물건을 잔뜩 내어놓은 노점상들에게 있었다. 길이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이상 그에게도 길을 갈 권리가 있는 것이다.
권리- 김순석씨는 입술을 앙다물고 사람들 사이를 헤져나가면서 잠시 이 말이 주는 의미를 생각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그가 길을 갈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 길을 가는데 무슨 거창한 권리를 내세우냐고 반박하며 십중팔구 웃음보를 터뜨릴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길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은 없었다.
길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도로턱, 그리고 산처럼 버티고 서있는 계단, 계단들, 그런 한계상황에 맞닥뜨릴 때 마다 그는 가슴이 서늘해 오는 절망감을 곱씹어야했다. 계단 앞에서면 그는 자신이 아무렇지 않은 게 오르내리는 행인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생활방식을 공유하며 사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외계에서 뚝 떨어진 이방인이 미로에서 출구를 몰라 헤매는 것처럼 그는 계단 앞에서 가로막힌 자신의 생의 출구를 찾지 못해 늘 허둥거려야했던 것이다.
계단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이 계단의 강을 건너면 나를 따듯이 맞아주는 꽃향기 가득한 온실이 있을까, 나는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내가 갈수 있을까, 그는 바보 같은 짓이긴 했지만 계단 앞에만 서면 매번 이런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쓸쓸해 하는 것으로 자신을 달래야 했다.
그 생각 끝에서 그는 만약 내가 도로 턱과 계단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여건만 허락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텐데, 라는 이루어질리 없는 바람을 애타게 갈구하곤 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애기지만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상인들의 따가운 눈길과 멸시가 모두다 자신이 장애인이기보다는 가고 싶은 곳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무능력자이기 때문에 비롯된다고 믿고 있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아장아장 걷는 세 살 먹은 어린애보다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를 깔보기는 지금 그가 찾아가고 있는 액세서리상점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삼십이 됐을까, 새파랗게 젊은 것이 그를 대놓고 깔보았다. 상점주인이 그를 깔보는 것은 우선 그를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상점주인은 나이로 보아 당연히 존칭을 써야 함에도 그를 김씨라고 낮춰 불렀다. 상점 주인이 그런 호칭으로 불렀을 때 그는 무척화가 났지만 참았다.
그런데 호칭뿐만 아니라 제작 단가를 대놓고 깎으려 하는 데에는 인내심이 많은 그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주인은 어떻게 된 게 처음 구두로 계약을 할 때는 개당 70원이나 80원밖에 줄 수 없다고 완강하게 우겨댔다. 그가 아닌 다른 하청업자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을 술수였다.
그럴 때 마다 그는 거래처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솟았지만 기동력이 없는 그로서는 새로운 거래처를 찾는다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달래건 아니건 사정을 하곤 해서 그 주인에게 계속 제품을 납품해야 했다. 그러려면, 샘플을 선보이는 오늘은 확실하게 주인과 담판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 ⓒ이상윤 |
김순석씨는 북적거리는 길을 벗어나 액세서리 상가에 도착했다. 그가 찾아가려는 상점은 3층에 있었다. 그는 정문을 놔두고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는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점 안에 마침 주인이 있었다.
김순석씨는 상점 문을 밀고 들어서며 주인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넸다. "응, 김씨 왔구먼, 오느라고 고생 많았겠소" 주인이 아는 체를 했다. 그러나 그것 뿐 주인은 잠시 김순석씨를 일별하고 나서 하던 일인 제품을 포장하는 일에 다시 매달렸다. 그런 주인의 모습에서는 의도적으로 김순석씨를 무시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묻어나왔다.
김순석씨는 뜻밖의 냉대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도 말을 먼저 꺼낸 것은 김순석씨였다." 저 전에 말한 머리핀 샘플을 가져왔는데요..." "무슨 샘플? 아 그거..." 비로소 주인이 관심을 보였다.
관심이 사라질세라 김순석씨는 재빨리 손가방을 열어 머리핀 샘플을 건네줬다.
샘플을 받아든 주인은 전등 아래로 샘플을 들고 가 한참을 비춰보았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마침내 주인이 입을 열었다. " 이거 얼마면 되겠소?" " 개당 120원은 주셔야 합니다" 김순석씨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120원? 김씨, 지금 나 하고 농담하자는 거요?" 주인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보시다시피... 심혈을 기울여서...만든 겁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손도 훨씬 더 많이 가고..."
김순석씨는 주눅이 들어 말을 더듬거렸다. "웃기는 소리 작작하쇼, 누굴 호구로 아나본데, 개당 육십 원에 할려면 하고 말려면 그만두쇼" 주인이 단호하게 말을 내뱉고 귀찮다는 듯이 그가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든 샘플을 그의 무릎위로 던졌다.
김순석씨는 정시니 아득해져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불현 듯 가난에 찌들어 헬쓱해 진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온통 마른버짐이 하얗게 핀 동민이 얼굴도 떠올랐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김순석씨는 정신을 차리고 휠체어를 움직여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런 다음 주인의 손을 찾아 잡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이러지 마십시오. 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장님이 왜 이러십니까, 제빌 봐주십쇼. 저에겐 딸린 식구가 있습니다. 제가 일을 해야 식구들이 먹고 산다는 사실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사장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품 기일을 지킬테니 더도 말고 개당 100원만 쳐주십시오. 사장님 제발...."
"이봐 김씨, 똑똑히 알아두라구, 내가 그동안 김씨에게 일을 맡긴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 해, 아닌 말로 병신이 제품을 만들었다면 누가 사가기나 하는 줄 알아, 나니깐 김씨 제품을 받는 거지. 그러면 내가 김씨 사정을 생각해 줬으면 김씨도 내 사정을 봐줘야 할 거 아냐, 나도 남는 게 있어야지 장시를 하지. 안 그래? 내 긴말 않겠어. 60원에 하려면 하고 아니면 딴데 가서 알아봐"
"사장님. 제발..."
"글쎄 사장님이고 뭐고 딴데 가서 알아보라니까"
순간 김순석씨 가슴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34년을 지탱해 온 삶의 무게였다. 삶이 우두둑, 뿌리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김순석씨는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삶의 버팀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김순석씨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상점을 벗어나서 그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내 삶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왜나는 매사에 당당하지 못해야 하나, 왜나는 이렇게 비굴하게 살아야하지, 왜 나는....그는 몹시 자신이 저주스러워져서 한참동안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남편은 꿈을 이야기하곤 했다. 남편의 꿈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김동심씨가 보기에 그 꿈은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남들에게 말하기조차 창피한 것이었다. 남편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집 한채를 마련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생각만 해도 지겨운 액세서리 공장을 차리는 것이었다.
"액세서리 공장을 차려 나같이 몸이 불편해 설움 받으며 사는 사람들과 같이 살거야"남편은 아이처럼 수줍어하며 말을 꺼내곤 했다.
김동심씨는 그런 남편의 꿈이 소박해서 정말이지 곧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남편의 꿈이 이루어지려면 큰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단지 장애인들이 먹고 잘 공간인 넓은 방만 있으면 가능했다. 지금 들어있는 월세 보증금에 몇 백만 원만 더하면 남편은 큰 방을 세낼 수가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던 것이다.
김동심씨는 작업실에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공구를 정리했다. 하나하나 남편의 손때가 묻어 있는 공구였다. 언젠가 그녀도 돈으로 따지면 몇 푼 되지 않은 이공구들로 장밋빛 미래를 설계한 적이 있었다. 그이와 내가 열심히 일하면 3년 지나면 전세방을 얻고, 길어도 10년이면 집을 살 수 있을 거야, 동민이도 다른 아이들 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고, 잘하면 가게도 낼 수 있겠지, 그렇게만 되면 그이는 더 이상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지만 남편의 꿈이 멀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꿈도 시간이 지날수록 한점 한점 허공으로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삼년을 훨씬 넘기고 오 년째 숱하게 밤을 새며 일했지만 전세방을 얻기는커녕 지하방을 벗어나는 것도 힘에 부쳐야 했다. 그녀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수 없었다.
그녀와 남편은 열심히 일했는데 늘 돈에 쪼들려야했고, 이제는 당장의 끼니 걱정을 해야할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공구를 정리하다 말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젠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어떻게든 남편을 설득해 그녀가 파출부 일을 나가는 것이 그나마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녀가 파출부로 나서면 남편의 자존심은 커다란 상처를 받겠지만 별수 없었다. 동민이를 생각해서라도 파출부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았다.
김동심씨는 방으로 돌아와 외투를 걸쳐 입었다. 파출부 일을 나가려면 언젠가 봐둔 동네 입구 용역회사에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해야 했다. 그리고 노느라 돌아오지 않고 있는 동민이도 찾아 데려와야 했기에 그녀는 밖으로 나섰다.
그 날 김동심씨가 용역회사에 등록을 하고, 동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동민이를 찾아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도 집에 돌아와 있었다. 김동심씨는 남편에게 "나갔던 일은 잘됐느냐?"고 물어보았다.
김순석씨는 그녀의 질문에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마치 넋이 빠진 사람처럼 허공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김동심씨는 그런 남편의 표정에서 직감적으로 일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체념했다. 그렇지만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했다. 그녀는 우선 저녁을 먹고 나서 남편에게 다시 물어볼 요량으로 찬거리를 사기위해 동네 슈퍼에 갔다.
그녀가 미역과 콩나물을 사들고 돌아왔을 때, 집에 있어야할 남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처음 "남편이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날 남편은 새벽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다음날도 김순석씨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김동심씨는 남편이 갈만한 곳을 수소문해 찾아 봤지만 세상 어디에고 남편은 없었다. 그녀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김순석씨가 집에 돌아온 것은 가출한지 사흘이 지나서였다. 김순석씨는 초췌해진 채 거의 실성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김동심씨는 남편이 살아 돌아온 반가움에 김순석씨를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여보, 이제 다시는 집을 나가지 말아요, 당신이 없으면 나도 살수 없어요. 여보 일하느라고 가슴 졸이지 말고 그냥 제 곁에만 있어주세요. 제가 열심히 일할 테니 당신은 모든 것 다 잊고 그냥 있어요. 제발 여보..."
이번에도 김순석씨는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왔는지 김동심씨에게 일절 말하지 않았다. 대신 김순석씨는 김동심씨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 당신에게 너무 미안하구려.."
그 말이 김순석씨가 김동심씨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이튿날 김동심씨가 파출부 일을 나간 사이 김순석씨는 서울시장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영원한 작별을 했다.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 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우리는 횡단보고를 건널때 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택시를 잡으려고 온종일을 발버둥 치다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휠체어만 눈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고 마는 빈 택시들과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저렸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저에게 보내는 그까짓 신경질과 욕설이야 차라리 살아보려는 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져보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은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꺾어놓았습니다. 시장님 을지로의 보도블록은 턱을 없애고 경사지게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밖에는 시내 어느 곳을 다녀도 그놈의 턱과 부딪혀 씨름을 해야 합니다. 또 저 같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은 어디 한군데라도 마련해 주셨습니까..
장애인들은 사람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대우를 받아도 끝내는 이용당합니다. 저는 그동안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시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나 같은 장애인들에게도 살길을 열어주십시요..."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당시 서울시장 김아무개 씨는 아침 간부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오늘 기가 막힌 얘기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몸이 불편한 어떤 사람이 내 앞으로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는데, 그 유서 내용이 너무 가슴 아파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뿐 그후 그의 자살을 계기로 당시 서울시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편의시설 설치에 나섰다는 보도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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