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못다 부른 해방의 노래, 시인 정희수 지다2]시퍼런 대팻날로 살아오거라 -정희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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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대팻날로 살아오거라
-정희수에게-
그만 일어나거라
물근물근 주눅들어 산 이승이 그렇게 헐겁더냐
쓰러져 밟히느니 차라리 이 악물고 죽어
손톱독 피가래질로 맨땅만 빡빡 가는
너처럼 못 생긴 꽃넝쿨 하나 또 만들겠다는 것이냐.
우리 짜서 만들손 찔긴 눈물 어디 그리 쉽더냐
부녘 개풍땅 훑던 바람이 남녘 김포땅 대구 할퀴며
놋쇠울음 장만해서 쇠기러기 띄우고
조선의 어진 산들 東學軍 죽창 기세재며
내 염통을 겨누는
꿈자리 한 번 징하게 살천스럽더니
마흔살 푸른 목숨의 등껍질 홀라당 벗은 네가
삭연한 산날망 넘어넘어 겨울새 됐다는
소식 들었어
웃음 한 겹 억지로 만들지 못했던 네가 그랬듯이
이 놈도 졸연한 눈물줄 만들 길 없어
장작개비 마흔개 네 나이 채워 싸보듬고
희붐한 새벽까지 불만 됐었다.
꿈이구나, 모지락스러운 꿈 한자리로구나
술 취하면 밤새도록 전화통 붙들고
"선생님 살기가 괴롭습니다 지 고만 죽어도 되겠임니꺼"
애구대구 목젖 쥐나도록 울며 보채고
배고프면 내 돈 5천원 따먹고싶어 제초제 먹은 잡초처럼
마포까지 빡빡 기어들어 바둑알 쥐던
그 회수가 참말로 참말로 죽었단 말이냐
애만 누명 색색으로 알로록달로록 뒤집어쓰면
남청색 눈커풀 海深처럼 깊게 닫고
투구게 化石처럼 시퍼렇게 굳던
그 희수가 참말로 죽었단 말이냐.
사라진다, 그리운 별들은
오늘은 마포에 白堊期의 삭풍이 불어 네 죽음 놓고
사인이·형철이·승철이 늙은 공룡되어 마른비듬만 갈퀴질해도
네가 감긴 울음을 대신 울어 줄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네 저승을 맘놓고 울어 줄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가네가네 겨울새되어 가네, 눈물밥을 등에 지고 드난살이
서러워서, 어허 춥다 손 비비며 백설이 부르는 소리 들으며,
갔네 갔네 겨울새 되어 갔네,
네 이승 그리 잘 알고 輓歌 미리 읊었거늘
네 참말로 죽었거든 산 사람들 설움까지
마자 거두어 가라."
그만 일어나거라
삭는 무릎뼈 다시 깎아들고
마포 꽁꽁 언 새벽을 빡빡기는, 차라리
조선 대팻날 번갯불 서슬로 시퍼렇게 시퍼렇게 살아
오면 안되겠느냐.
*정수희수 쓴 "겨울새" 시편의 제2편
글/천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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