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못다 부른 해방의 노래, 시인 정희수 지다4]정희수의 미발표 시
본문
<여의도에서>
젖줄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너도 섬이냐 네 뜻을 생각한다
밤섬길 윤중로 간통절통 지화자
아아, 우리 대한민국 유람선 떠다니고
세계 제일 가는 부자 하나님이
믿습니다 머리머리 위로 날마다
차고 흔들어 넘치도록 지켜주는
너도 섬이냐 네 이름 위로
술을 마시고 방뇨를 한다
강 건너 마포에는 재개발지역
거무티티 표지판이 빛을 뽐내고
63공룡 승강기는
지붕 낮은 재개발 인간을
드낮이 굽이 살펴 쏘아보는 땅
증권거래서 안락의자에서는
꿩 먹고 알 먹고 부채까지 만든다며
삼강오륜을 서냥닷푼으로 읽고
강 건너 마포를
날마다 건너다니면서도
도시 그 고마움을 모른 채
열두 벌 고쟁이를 입고 설치는
네 이름 여의도 너는 섬이냐
<그대의 평화는?>
-행성 최씨-
가진 것 없는 목숨
가위 눌려가며
한세상 살아가기가
억장 파묻히는 진흙 밭인데,
무슨 미련이 그리도 남아 있길래
혼절한 모습으로 곤한 잠자며
내일의 평화를 꿈꾸고 있는
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새벽 도시가 희뿌옇게 밝아오면
어쨌든 살아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골목 짚으며 길을 나서다
응등 묻은 입술로 허감없이 내뱉는 말
"그랬지, 두려운 것은 사람이었지"
새벽 평화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걸어간다
오늘은 누구에게서
재수 옴붙는 마수거리를 하게 될는지
<시작과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1
감출 줄만 알고 훔칠 줄은 모르는
어린것들은 도시로 도시로 가고
곯마른 마을 입구 확성기에선
새마을 노래가
마파람에 개불알 놀 듯하던 날
새 아침이 밝았다는 진주 남강에는
버려진 돼지 주검들이
눈 부릅뜬 채 둥둥 떠다니고
마산 수출자유지역공단에서는
물먹은 솜처럼 후즐근한 몸을 이끌고
쌀과 목숨을 바꾸려는 길군화들이
새벽종 소리에 떠밀려
줄을 잇는데
그들은 알고 있었다
부자가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하는 것을
2
아이들만 곳곳에 남아
흩어진 채 나뒹구는
돌조각을 집어들고 전쟁놀이 하듯
거리를 놀이터로 삼고 있었다
사라진 전경버스와 전투경찰은
광주와 목포로 간 것이라는
소문만 너울너울 무성하게
사람들의 귓바퀴 사이로 흘러다녔고,
그러나 그것은
군 트럭과 공수부대를
잘못 본 것이라고
수군대는 사람들은
포장마차에 앉아 긴 한숨을 안주로
홧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그 수군거림은 살육의 시작이었다
전라도 군인들이 경상도 다 죽이러 왔다는, 말도 끝도 없는 소문이 나돌던 부산과 마산,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소문이 나돌던 광주와 목포…
1979년과 1980년은
시작과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것은 1979년 부마민중항쟁 서시에 해당한다.>
<길군화3>
-맹인 김씨-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마음 한구석에 쌓이는 것은
상채기 난 회한의 부스러기뿐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와 그를 일으킨다
밤사이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재수(財手)라는 환각제를 마시고
집을 나서며
(목사님은, 그건 미신이라고 그랬지)
어느새
저녁이 오고
오늘도 허망에 짓눌렸던 하루
참으로 개털처럼 재수 없는 날
(목사님 말씀이 범털이었나?)
<아버지>
꿈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구나
그리고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사흘 전까지도
자식하고 따뜻한 말 한 마디
서로 나누지 못했던 아버지
배가 고프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찾으시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부르지 마라 제발
네 이름을 부르지 마라 나는
하늘에 있고 싶지도 않으며 결코
너희들 곁을 떠날 자격이 없다
나는 보았다
골방에 갇혀 세월을 갉아먹는
영혼을 보았으며
잠자는 머리맡에 바짝 다가앉아
머리칼을 뽑아 들고
사방에 내던지며 키워 가는 증오심도
보았다
너희가 그 무슨 개꿈이라도
기억으로 남겨 두고 싶겠느냐 모두
내 잘못이다
내가 너희를 축복하지 못하는 세월을 두고
어찌 너희에게 무릎 끓어라 할 수
있겠느냐 안타까워라
이제 내 거룩함을
너희가 가질 시간이다 나는
소멸시효를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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