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악어는 왜 눈물을 흘리는가<4> > 문화


[연재소설]악어는 왜 눈물을 흘리는가<4>

본문


 고상탁은 몇 군데를 빼고는, 자신이 걸어온 얘기를 무척이나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방바닥에 요를 깔았다. 천정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누운 고상탁의 얼굴.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 이불을 덮어주었다. 얘기하다가 슬그머니 잠들면, 아침까지는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 상탕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장에 도착허니께 점심시간이 폴세 지나부렀더라고. 다섯 시간 가차이 뽈뽈 긴 거여. 땀나데. 첨에 광화문선 암것도 모르고 지하도로 내리갔는디, 올라올 때 워찌케나 애를 묵었는지 몰러. 지나댕기는 사람들 보기도 챙피시럽고, 그러고 나니께 지하도허고 육교만 보이면 흰 말 응뎅이나 백말 궁뎅이나 똑같은 놈이다 잡어서 차도로 막 건너부렀시아. 교통순경이 얼척이 읍다 잡었는지, 차를 세우고는 건네주더랑께. 첫날은 물건 사니라고 점심 저녁 다 굶었시아. 잠은 바로 고 ××파출소 앞에서 잤제머. 순경들이나 방범대원들이 내 꼬라지를 보고는 기냥 내버려두더마."
 다음날 아침, 고상탁은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막연한 상상만으로 앉은뱅이 손수레를 끌고는 시장을 돌아다녔다. 시장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물건을 팔기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헤아리기에 바빴다. 주의를 끌기 위해서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야 하는데도, 위축된 탓에 그러지를 못했다. 그렇게 사흘을 헤매고 다녔지만, 겨우 백 원짜리 수세미 몇 개를 판 것이 전부였다.
 끼니는 시장 안에 있는 먹자좌판에서 파는 가락국수로 해결해 나갔고, 잠은 첫날 그랬던 것처럼 파출소 부근에서 잤다. 돈을 아껴야겠다는 생각 이전에, 여인숙에서조차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출소 당직 경찰관은 자신의 난처한 입장 때문에, 통행금지 시각이 되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고상탁은 갈 곳이 없음을 내세우며 이틀을 더 버텼다. 사흘째 되는 날, 그러한 고상탁을 딱하게 여긴 방범대원이 시장 부근에 있는 시립 노동자 합숙소에 데려다 주어서 그곳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숙박비는 하루 삼백원이었다. 며칠 사이에 고상탁은 시장 생리를 어느 정도 익혀 나갔다. 그를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물건을 사주는 상인들도 있었다.
 "한 열흠쯤 지나니께 쥐방울만헌 놈들이 날 좀 보자는겨. 경비실 옆데기로 끗고 가등만. 워디서 굴러먹던 개뼉따구냐, 누구 허락을 받고서 장사를 시작혔느냐, 은제버텀서 여그에를 왔냐, 너 우들이 누군 중 아냐, 벨벨 소리를 헤감서 겁을 막 주는디, 얼척이 읍드랑께. 그라등만 자릿세를 엘맬 내겄냐는겨. 그체만, 물건이 안 폴리는디 믄놈에 자릿세여, 자릿세는. 그라고, 무담씨 요런 싸가지 없는 벌거지 겉은 놈들헌티 피겉은 돈을 뺏기야 되는가 생각헝께 화가 나불더라고!"
 
고상탁은, 시장에서 장사를 계속하려면 이들에게 자신이 녹녹한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어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느물거렸다.
 "나가 암것도 모르는드끼 함시롱 "자릿세가 머다냐?" 물으니께, 고놈들이 팽팽 코웃음을 치더랑께. 겁이 쪼까 나데. 그체만, 요런 싸기지 읍는 새끼들보소야 잡기도 허고, 너거들이 설마 나를 죽이기야 허겄냐 생각헝께, 한번 궁글러보자는 맴이 생기더라고. 나가 그렸지. "나는 자리가 읍시 시장을 뺑뺑 도는디, 뺑뺑이세도 있다여?" 그란디 고 싸가지 읍는 것들이…"
 고상탁은 다른 장소로 끌려가서 죽지 않을 만큼 직사게 두드려맞았다. 물건은 죄다 망가졌고, 앉은 뱅이 손수레도 허리가 부러져나갔다. 그는 그것을 쓸어모은 다음 망연자실 바라보다가 파출소로 갔다. 그 뒤로도 그런 일을 몇 번 당했지만, 뒤집어지지 않으면 엎어지기라도 하겠지 하는 악다구니로 버텨나갔다. 오 년이 흘렀다. 그 동안 고상탁은 시장상인들과 되도록 흉허물없이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단합야유회를 간다고 하면 자신은 가지 않으면서도 회비를 꼬박꼬박 냈다. 시장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앉은뱅이 손수레에 싣고 다녔던 물품은, 수세미와 좀약만 그대로 있을 뿐 종류가 다양해졌다. 그는 밥은 굶지 않을 정도로 수입을 올렸다. 그 오 년 사이에 두 평 크기의 전세방도 구했다. 그는 예전 생활을 거의 잊은 채, 주어진 환경인 시장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애를 썼다. 다만 하나. 하루 일이 끝난 뒤 방에 들어가 누워 있으면, "지금 엄니는 워디서 무얼 헌댜"하는 생각이 그를 괴롭히곤 했다.
 
그러다가 고상탁은 우연한 일을 겪으면서 생활방법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고상탁과 내가 시장에서 싸움질을 하기 석 달 전 초봄의 일이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앉은뱅이 손수레를 끌면서 시장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던 그는, 뒤통수에 왠지 거북살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두 손을 땅바닥에 짚은 다음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댓 살쯤 된 듯싶은 계집아이 하나가 이십대 후반쯤 돼 보이는 여자와 함께, 서너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먹자좌판에 앉아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계집아이를 보면서 "참말로 이쁜 아그구마이"하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 저 아저씨 왜 저래? 너무 무서워." 계집아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왼쪽 팔을 뻗어 검지로 고상탁은 가리키며 오른손으로 젊은 여자의 팔을 흔들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를 너무나 많이 겪어온 고상탁은, 그 전과 마찬가지로 괜히 뒤돌아보았구나 하는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손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가려는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쟁쟁거리며 그의 귀를 후비고 들어왔다.
 "저건요, 엄마 말 안 들어서 저런 거예요. 너도 엄마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젊은 여자는 고상탁의 뒷모습을 흘끗 보고 나서 계집아이에게 무척이나 다감하게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말끝을 끌어올리면서 설명해 주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유치원 선생이 어린아이를 앞에 앉혀놓고 "그래요. 참 잘했어요"식으로 말하는 투였다.
 계집아이는 고상탁을 내려다보는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젊은 여자의 말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그 여자는 말을 마친 다음, 음식을 먹는 데 열중해 있었다.
 고상탁의 마음에는, 뚜렷이 이것이다 하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수치심같은 감정이 스멀거렸다. 그는, 앞쪽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음식을 씹고 있는 젊은 여자의 옆얼굴을 한동안 올려다본 채, 시장바닥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고상탁의 시선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상탁은 여자에게서 시선을 거둔 다음,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앉은뱅이 손수레를 천천히 말면서 기어갔다. 계집아이는 여전히 고상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상탁은 이제 화가 나 있었다. 계집아이는 어리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젊은 여자는?
 -그 기집은 내 자존심을 깡그리 볼바부렀어. 꼭 고로코롬 야그를 혀야만 교육이 되는감? 그 아그가 커감시로 나겉은 빙신을 보믄 워치케 생각허겄는가? 허고 좋은 말 모다 내번져두고 해필이면…. 다쳐서 조로코롬 되어부렀다, 그랑께 니도 장난일랑은 심허게 치들 말어라, 그렸더라면 내 맴이 암시랑토 않을 거인디…. 요새 젊은 지집들은 싸가지가 너무 읍시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픽 웃어넘거면 그만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상탁은 하찮아 보이는 그 마음의 상처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속생각 한쪽 곁에 응어리로 숨어 있던 "한(恨)"이라는 독버석이 싹을 틔운 것일까? 어쩌면 헤어져버린 아내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작용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장이라는 경쟁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얕잡아보이고 무시당해 왔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온 것은 아닐까? 분명히 이번과 같은 일이 평상시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폭발할 수 있는 소지를 꾹꾹 눌러담아 오다가, 생각 짧게 내뱉은 젊은 여자의 말에서 포화점이 넘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장사를 나가기가 싫어졌다. 이렇게 살아봐야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그의 마음을 잡아채고 있었다.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은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편리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술에 취해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적(敵)이 되어 자기에게로 몰려왔다.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우군(友軍)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유일한 우군인 그 어머니는 지금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내가 살기 위해서는 적을 섬멸해야 한다, 섬멸하려면 싸움은 필연적이다.
 고상탁은 거의 날마다 끼니를 거른 채 술만 마시면서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허구한 날 진드기처럼 늘어붙으며 싸웠다. 싸우는 이유야 자가공식(自家公式)에 대입해서 풀면 무조건 성립이 되는 것이었다. 시장상인들은, 처음엔 왜 그러냐며 따뜻한 말로써 걱정해 주었고 이해를 해주려고 했다. 고상탁 또한 술이 깨면 자책에 빠져 괴로워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반복되는 주사에 지쳐버린 시장상인들은 적으로 돌변해 함포사격 하듯이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무도 그에게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마지막 능선만 탈환하면 된다는 식으로, 소총을 팡팡 쏘아댔다. 그러자 적들은 드디어 파출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해 연합전선을 구축한 다음, "진정서"라는 융단폭격을 그에게 퍼붓었다. 단기돌진(團旗突進) 하던 그는, 적에게 무참히 박살나버린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는 작전상 후퇴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목표물을 잃어버린 고상탁은 어느 날 새로운 적을 발견했다. 시장에 물건을 사로 오는 사람들-결코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그의 레이다에 포착된 것이다. 그 바람에 이번에는 파출소를 제집 드나들 듯 날마다 들락거려야만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내가 걸려든 것이었다.
 "나가 도대체 무담시 그렸는지 알들 못허겄드랑께. 미쳐불겄더라고. 그다봉께 죽이고 잡도록 나 자신이 싫어져불고…"
 나는 이제 그의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의 가족사(家族史)를 말하게 된 동기는, 바로 그의 어머니 김말이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9
 고상탁은 자기 어머니를 ○○○시장에서 보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회사를 그만둔 뒤 할 일없이 방황하고 있을 즈음의 일인 것이며, 그 며칠 뒤에 나는 모처럼 그와 만났던 것이다.
 "동상헌티 싫은 소리 듣고 참말로 많이 생각혔어. 서운허기도 혔고…"
 외롭거나 한이 많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말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어머니에 관한 얘기는 그의 아킬레스건과 다름이 없었고, 따라서 사설이 자꾸만 길어지다 보면, 자연히 감정이 격해질 것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어디서 어떻게 보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시장서… 혼자서 여그저그 찌웃거리고 댕기는 거를…."
 내가 고상탁에게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선언했던 그 다음날부터, 그는 다시 앉은뱅이 손수레를 끌고는 시장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장사를 시작했다. 시장 상인들은 그를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앞으로 지켜보겠다는 의미가 담긴 눈길을 보내주었다. 어쨌든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한가위가 가까워진 탓인지 생각 밖으로 수입이 짭짤했다. 하루해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어언 닷새째 아침이 왔다. 시장은 열 시가 넘으면 어제처럼 또다시 북적거릴 것이었다.
 고상탁은 자신이 너무 피곤한 탓에 잘못 본 것이겠거니 싶었다. 쥐어뜯다만 것같이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쪽 손으로 꽉 움켜지고, 먹자좌판을 기웃거리고 있는 늙은 여자! 얼굴과 옷에는 때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한가위가 가까웠는데도 여름옷을 입고 있는 그 여자는 한눈에 보아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행동이 어설펐다. 저 여자? 좌판주인들의 손사래를 받고는, 허여멀검하게 웃으며 음식을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핑하니 설음을 옮겨놓는 저 여자. 엄니? 다시 찬찬히 그 여자를 살펴보았다.
 엄니! 그려, 울 엄니여!
 고상탁은 갑자기 귀가 멍해지면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앞뒤 재어보고 따져보고 할 건덕지가 없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앉은뱅이 손수레를 내버려둔 채 여자 쪽으로 기어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지미럴! 생각대로 빨리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엄니! 엄니, 나여! 나랑께!
 빌어먹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시장상인들과 주변을 오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렸다. 고상탁이 기어가는 방향에서 물건을 사려고 가게를 기웃거리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방어본능 작용으로 황급히 길을 내주었다.
 그 여자는 놀랐는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자기 앞으로 기어오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지극히 짧은 시간. 그 여자는 갑자기 "으, 으, 으"신음을 뱉아내면서 허리를 약간 굽히더니 휙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저만치에서 멈춰 선 다음 고개를 돌려 상탁을 바라보다가 다시 뛰어가는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것이었다.
 고상탁은 그 여자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틀림없는 어머니였다.
 엄니-. 나여, 나-. 상탁이랑께-. 목이 꽉 잠기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여자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쪽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고상탁은, 질척거리는 시장바닥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덩어리덩어리 한 맺힌 설움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자꾸만 목구멍을 치받으며 올라왔다. 시장상인들이 둘셋씩 무리를 지어 수군거렸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자신들 볼일에 열중했다. 한참을 그 자세로 엎드려 울고 난 고상탁은 앉은뱅이 손수레를 내버려둔 채, 천천히 기어서 시장을 벗어났다.
 "형요. 그 여자분이 틀림없이 형 어머닙디꺼?" 나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자기 엄니도 몰라보는 후레아들놈도 있는감!" 고상탁은 내가 묻는 말에 강한 불쾌감을 느꼈는지 쏘아뱉듯 말했다.
 그는 그 뒤로 며칠 동안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방에 들어앉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장에서 어머니를 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또한 그렇게 도망치듯 가버린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자식이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찾아와 멀찌감치에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식의 모습이 비참해 보여서 피해버린 것은 아닐까?….

 고상탁은 얘기를 끝내고 나서 하루를 더 내 자취방에서 지내다가 돌아갔다. 그는, 어머니를 만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다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번 한가위를 고상탁과 함께 지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가 돌아간 다음에야 오늘이 그 날임을 알고 비실비실 웃고 말았다. 한심한 놈 캍으니.

10
 "거기가 김민수씨 집입니까?"
 한가위가 지난 지 이틀째 되는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아침 늦게까지 자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기분 나쁠 정도로 한껏 가성(假聲)으로 굵게 뽑아대는 남자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귓속을 쑤시고 들어왔다.
 "댁이 김민수씨 맞습니까? …여긴 ○○○경찰서 수사괍니다. 지금 곧바로 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와서 수사과 김 형사를 찾으면 됩니다."
 전화는 툭 끊어졌다. 일방적이었다.
 -이런 우라질 자식! 지가 형사면 형사제, 잠자는 사람 깨바놓고는 이유도 대지 않고 오라가라? 내가 저거 집에서 키우는 강새이새낀 줄 아나. 이건 이래서 똥이고 저건 저래서 된장이다, 간단하게 설명이라도 해주야 가든 말든 할 거 아이가.
 나는 다시 잠에 빠져 들어갔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그 김 형사라는 사람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뭔가 잔뜩 볼이 부어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김민수씨. 바빠 죽겠는데 왜 자꾸 전화 걸게 하는 거요? …뭐요? 볼일이 있으니까 전화한 거라니까. 그건 그렇고, 당신, 고상탁이란 사람 알아요?"
 나는 순간적으로, 고상탁이가 이번에는 형사입건이 될 만한 사고를 저질렀는가 생각했다. 김 형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상탁이에 관해서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으니까, 빨리 좀 나오시오. …뭐요? …아니, 이 양반이. …나참, 이유야 여기 오면 다 알게 된다니까. …이거, 되게 골치 아프게 따지기는. …좌우간, 나올 거요 말거요?"
 이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노. 내가 니한테 이유도 말하지 않고 오라카면, 니는 올 수 있겠나?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는 감정을 누르고 다시 물어보았다. 이유도 모르고 경찰서에 가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이봐요! 고상탁이가 당신 앞으로 유서를 써 놓고 자살했단 말야. 알아들으셨어? 알았으면 빨리 좀 나오쇼!"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세수하는 것조차도 잊고, 경찰서로 갔다. 한가위 연휴 탓인지 내부는 한산했다. 바싹 마른 몸집인 김 형사라는 사람은 사십대에 막 접어든 것 같았다. 그는, 나와 고상탁과의 관계를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넙죽넙죽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고상탁이는 추석 다음날, 집주인이 발견하고 신고를 한 거요."
 김 형사 말대로라면, 고상탁은 한가위 날 아침에 내 자취방에서 나가서는, 자신의 셋방으로 가서 자살한 것이다. 김 형사는 그가 목을 매었다고 했다.
 "그런데, 유서에 김민수씨 당신 얘기가 꽤 많이 나오던데…?"
 그는 마치 범죄혐의라도 잡아내려는 듯, 끊임없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윽고 자신의 책상서랍을 열더니, 고상탁의 유서 가운데서 내 앞으로 남겨놓은 것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수사자료로 쓰일 것이니 읽은 다음에 반드시 돌려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뭣좀 없습니까?"
 이십대 중반을 간신히 턱걸이했을 성싶은 청년 하나가, 김 형사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나는 그 청년이 경찰서 출입기자(사스마아리) 임을 알 수 있었다. 김 형사는, "추석연휴라, 뭐 신통한 게 있어야죠. 여기, 그저께 자살한 사람얘기도 기사거린론 괜찮을거 같은데…" 하며, 청년 쪽으로 몸을 돌려 얘기하기 시작했다. 유서를 읽는 동안, 두 다리가 없는 고상탁이가 목에 줄을 매려고 애쓰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왔다. 눈시울이 뜨뜻해져왔다.

 "동상 보개여.
 믄 이린지 자른 몰르것찌만 동상을 만네고 도라온디로 작구만 개로아지니 도댓체 으쩌면 조을지 한나도 몰르것네. 작구만 우리 엄니가 눈 압페서 왓따리 갓따리 하네. 나는 마리여 동상. 인자 더 이상 사라갈 방버비 생가기 나지가 안네. 나가 쩌번에 시장서 본 사람은 틀림읍시 우리 엄니연네. 나는 마리여 동상을 이른 다음붓터 나를 인가느로 아라주는 사람도 잇꾸나 차므로 기부니 조안네. 나가 동상헌티 이븐 은얘는 은젠가는 갑퍼야 헌다고 허민서도 갑지 모털거 간네. 동상헌티는 섭섭판 거슨 한나도 업네. 나가 동상허고 술를 마심시롱 깽파늘 지긴 건 참마로 미안혀구마. 그체만 동상이 이해를 헐 거스로 믹꼬 그런 거싱께 이해를 허개여. 옌날 나가 군산서 살 때 우리 동네 압산에는 개두르비라는 나무리 만엇당께. 몬뭉는 나무리엇제. 나는 마리여 나가 바로 개두릅나무리나 다름읍다고 생각험시롱 사라왓시아. 그체만 동상은 나를 고록코롬 대허지 아낫시아. 나가 그려서 동사를 조와헌 거시제. ××파출소 차성님헌티도 마는 은얘를 이번네. 나 대신 마를 쪽깐저네주게여. 나헌티는 소워니 한 가지 이선는디 동상도 잘 알 거시여. 우리 엄니허고 갓치 사는 거시엿서. 지금 우리 엄니는 어디에 기실까 생각커니께 작꾸만 눈무리 나올라고 허네. 찬말로 우리 엄니는 나 땀시 고상만 헌 양바니네.
 동상헌티 마지마그로 부타글 헐라네. 꼭 드러주게여. 다르미 아니라 길꺼리를 가다가 우리 엄니 보거등 자네가 쪽깐 돌바주시게여. 그란다고 공짜로 혀라는 거슨 아니여. 나가 전세 드러 인는 지비 팔뱅마난인께 그거슬 동상이 가지고 잇따가 우리 엄니를 도라가실 때꺼정 돌바주라는 거시여. 마냐게 모질른다면 나가 구시니 데아서락또 갑파줄 거시구마. 그라고 나믄 거시 잇쓰면 동상이 가지소. 동상 나 말 아라 득건는가? 꼭 부타기네. 나허고 약소글 허는겨!
 동상. 동상이 나를 동상 등에 업고 댕기면서도 한나도 기찬아허지 안는 거슬 보고 동상이 참말로 조은 친구구마 생가글 혓써.
 동상. 조은 여자 만네서 잘 살게요. 막상 주즐라구 생각커닉께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따는 마리 생강나네.
 우리 엄니 꼭 부탁커네. 동상. 잘 살게여. 고상탁이가. 한나 빠진 거이 인네. 호저근 정니 못트고 가네. 군산에는 절때로 열락카지 말게여."

 나는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김 형사에게 유서를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복사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김 형사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동의해 주었다. 유서와 전세계약서는 나중에 수사가 종결되면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일어서는 나를, 그 기자가 붙드는 것이었다. 자신을 ○○일보 사회부 기자라고 밝힌 그는, 고상탁과 나에 대한 "우정"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취재에 응해달라고 했다. 나는 잠시동안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는, 그 취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장에서 아들을 보고도 스스로 피해버린 어머니라면 어느 순간에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고, 설서 신문기사를 직접 읽지 않더라도 타인을 통해서 전해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제대로 아퀴만 맞아떨어지면 고상탁이가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찾는 事緣

 "…이러한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은 金敏守씨(35세· 前 잡지사 기자), 高相卓씨(39세·사망), 그리고 高씨의 어머니인 金末伊씨(56세·행방불명)다. 이들 세 사람은…. 그런 관계로 金敏守씨는 지금 金末伊씨를 애타게 찾고 있다. …고달프다는 말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겹게 살아온 高相卓씨,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했다. 그가 남긴 것은, 어머니의 老後를 걱정한 傳貰金 8백만 원. 그것은 앞으로 수사가 종결되는 대로 金敏守씨가…."

 기사가 나간 지 이틀 뒤, 나는 텔레비전 방송국으로부터 출연섭외를 받았다. 나와 고상탁 사이에 얽힌 "우정"을 방송으로 내보내자는 것이었다. 나는 하루만 말미를 달라고 했다. 다음날 나는, 장애인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애환도 아울러 거론할 것을 조건으로 방송출연을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눈에 선하게 들어오는 고상탁이가 받았을 수많은 비인간적 처사와 함께, 내가 잡지사에 있을 때 취재하면서 생생하게 보고 느꼈던 가슴 아픈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류봉투 속에 정리해놓았던 옛 취재자료와, 내가 기사화 했던 과월호(過月號) 잡지를 펼치며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허고한 날 버스는 고사하고라도 택시조차 태워주지 않는 일, 업종에 관계없이 첫 손님이 맹인이면 그 날은 재수가 없다는 사람들, 고객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견학 나온 장애 어린이들을 몰아내면서도 "장애인 돕기 사랑의 바자회"라는 미명 아래 잇속을 챙기는 수많은 백화점들, 장애인들이 주변에 들어와 살면 자녀교육에 해롭고 집 값 땅값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관계공무원과 "복지상인(福祉商人)"이 결탁해서 복지기금을 횡령하는 일, 미성년 장애인을 강간하고도 구청 무슨무슨 자문위원이라는 위력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자들, 맹인들이 앵벌이 해놓은 돈 통을 들고튀는 후안무치한 자들, ….
 기사 마감 때문에 원고지 메꾸는 것에만 급급했던 나머지, 취재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졌다.
 -내는, 상탁이형을 대신하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앉을 것이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토요일 오후 두 시. 나는 ○○○텔레비전 토요일 생방송 대담프로인 "사랑열차"에 출연하기 위해 출연자 대기실에서, 대담 내용에 대해 사회자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삼십 분이었다.
 방송시간이 되었다. 백여 명이 넘는 주부들, 그들은 조명을 근사하게 받기 좋도록 색색이 원색인 옷을 입은 채 스튜디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스텐바이- 큐!" 소리와 함께, 출연자를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고, "…고상탁씨를 어떻게 알게 되셨는가부터 말씀해주시죠"로 방송은 진행되어 나갔다. 고상탁의 유서를 사회자가 요점을 정리해 읽어 준 다음 간단히 설명하는 순서에 이르자, 방청석 여기저기에서 쿨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명이 소리나는 곳을 비추자, 메인 카메라가 재빨리 그 부분을 클로즈업시키는 장면이 소튜디오 대형화면에 나타났다.
 
방송 진행 이십 분이 넘어가면서 나는 서서히 부아가 돋았다. 출연섭외 때 내게 했던 약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회자 때문이었다. 결국 하나의 흥밋거리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내 머리 속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면서 내가 말하는 이 "환장할 사연"을 들을 것인가? 시청자들은 고상탁 모자, 그리고 이 들과 비슷한 여타 사람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현실을 어떤 식으로 연관시킬 것인가? 적당히 비판적인 발언은 하되, 생방송임을 유념하고 위험수위를 넘어가는 말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는 언질까지 주었던 사회자는,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밥줄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겠지! 내가 이런 자리에서-방송내용에 대해 이미 입을 맞춘 것은 물론이고,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표정관리라는 똥구멍까지 맞춘 상태에서-각본에 따른 인형극을 펼치고 있다니! 이따위가 도대체 장애인에게 무슨 소용이 되는가! 이건 악취미다. 한껏 행복에 겨워하다가 타인의 구멍난 가슴을 들여다보고는, "슬픔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래 이게 바로 슬픔이야" 하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고는 그만인, 식도락 같은 악취미!  
 "유서를 보니까 김민수씨께서 고상탁씨를 무척아껴주신 것 같군요."
 "글쎄요. …같이 술 마신 거밖엔…"
 "하하하. 좋은 일은 감출수록 은은하게 빛이 나는 법이죠. 이제 고상탁씨가 장애인이 된 사연을 좀 말씀해 주시죠."
 나는 심호흡 끝에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빠른 속도록 말했다.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간단하게 할말이 있십니더. 제가 알기로는, 정부에서는 칠십칠년 칠십구년 팔십이년 팔십육년의 장애인 숫자를 변함 없이 구십칠만오천 명 정도로 발표하고 있십니더. 그라모, 매년 이만오천 명씩 생기는 산재장애인은 우애 된 깁니까? 모두 죽었십니꺼, 이민을 갔십니꺼? 지난 십년 동안 이십오만 명입니다. 그라고, 교통사고와 약물중독으로…"
 입을 맞출 때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었던 내용이었다. 방청석을 메운 사람들 사이에서 자그마한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사회자는 당황한 나머지 담당피디(PD)의 얼굴을 멀겋게 바라보기만 했다. 피디는 주조정실(主調整室)을 올려다보며, 마이크를 빨리 끄라는 뜻으로 오른손을 칼날처럼 가로로 세운 다음 자신의 목을 자르는 동작을 계속했다.
 방송은 중단되었다. 조금 뒤 나는 출연자 대기실에서 담당피디와 핏대를 올려가며 한바탕 "해라잡이"를 벌인 다음, 방송국을 나섰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돌발적인 흥분을 했을까 생각하니, 쓴웃음이 삐어져나왔다. 내가 방송에 출연했던 목적은 고상탁의 어머니를 찾자는 게 아니었던가. 하지만, 어쨌든 속은 후련했다. 거대한 물체를 때려 부슨 느낌이었다. 어쩌면 고상탁도 내가 그래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 내 행동은 옳았던 거야.
 -상탁이 형요. 인자부터서는 절대로 기어댕기지 마이소. 나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왼걸음 오른걸음, 일부러 비칠거리며 걸어보았다. 저만치 앞에서 고상탁이가 활짝 웃는 얼굴로 오른손 왼손,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어기적어기적 기어오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뺀질뺀질했다. 손바닥으로 냅다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김말이씨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씽긋 웃고 말았던가?
 "이 배라묵을 자석아. 그 팔백만 원은 상탁이형묘지 꾸미는데 쓸끼다."
 내 눈에서 병아리 오줌 같은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끝)

글/정희수

 

작성자정희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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