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문민정부 마음 공개하라
본문
재판장: 지금부터 장애인시설이 끼친 피해 보상청구에 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오늘 재판은 민사가 아니라 형사재판입니다. 유래 없이 많은 방청객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찾아와 주시고 국내외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어서 본 재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세계의 이목이 주목된 역사적인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탕 탕 탕)
검사: 본 재판은 원고 무정마을이 피고 사랑재활원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하여 시작이 되었습니다. 원고가 피고에게 피해보상청구를 하게 된 것은 피고가 운영하는 재활원 때문에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동네에 재활원이 있다보니 하루도 빠짐없이 장애인을 만나게 되는데 원고는 장애인을 볼 때마다 불쾌했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늘씬하고 잘 생긴 사람을 보는 것이 좋겠지요. 원고는 그들을 볼 때마다 연민이 솟구쳤는데 그럼 감정이 계속 쌓이자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고는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았던 것이지요. 물론 이런 정신적인 피해야 얼마든지 참을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경제적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첫째, 땅값이 폭락했습니다. 재산을 늘린 길은 부동산 밖에 없기에 집 값이 떨어지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원고의 재산 1호인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그 어떤 재산의 피해보다 심각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상 문제가 되었던 거죠. 그래서 원고는 피고에게 여러 차례 재활원을 이전할 것을 권유했습니다만 피고는 주거의 자유를 운운하면서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원고의 주장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의를 할 것입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하신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재판장: 이어서 변호인 변론해 주십시오.
변호사: 변론에 앞서 신성한 법정에서 이런 재판을 하게 된 것을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며 사죄를 드리는 바입니다. 피고가 본 변호인을 찾아와 사정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세상이 왜 이렇게 각박해졌나 싶어 착잡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검사: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재판과 무관한 이야기로 재판장님의 동정을 사고 있습니다.
재판장: 인정합니다. 변호인은 변론만 하십시오.
변호사: 죄송합니다. 그럼 피고에게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면서 변론의 줄기를 잡아가겠습니다. 피고, 피고는 재활원을 운영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피고: 올해로 30년이 되었습니다.
변호사: 30년 동안 재활원을 몇 번이나 옮겼습니까?
피고: 초창기에는 이사를 무척 많이 했지요. 1년에 한번씩은 옮겼을 겁니다. 그러니까 한 열댓 번 이사를 한 것 같습니다.
변호사: 열댓 번의 이사 중 주민이 이전을 요구한 경우는 몇 번이나 됩니까?
피고: 처음입니다.
변호사: 처음이라구요? 그럼 그 전에 살던 동네주민들은 어떠했습니까?
피고: 경우에 따라 다르지요. 아주 잘 해주시는 분도 있었고, 그저 무관심한 분도 있었고, 약간 불친절한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다른데 가서 살라고 쫓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변호사: 거 참 이상하군요. 장애인 복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국민의식도 성숙했는데 왜 그럴까요.
피고: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장애인 복지사업을 하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변호사: 그러실 태죠. 그런데 주민들이 이전 진정서를 내기 전에 무슨 통고를 한 적이 있습니까.
피고: 없었습니다. 그저 간간이 주민들이 우리 재활원 원생들을 싫어한다고 얘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변호사: 그럼 구청에서 이전명령을 받고 무척 놀랐었겠군요.
피고: 말도 못하지요.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을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놀라지 않겠어요.
변호사: 원고주장에 의하면 뻔뻔스럽게 맞섰다고 했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피고: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내 땅에서 내가 사는데 살아라 살지 말아라 할 권리가 있느냐구요.
변호사: 물론 없지요. 대통령에게도 그런 권리는 없습니다. 하느님한테도 그런 권리는 없지요.
검사: 재판장님. 변호인은 지금 유도심문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장: 인정합니다.
변호사: 정말 죄송합니다. 자, 다시 피고에게 묻겠습니다. 이전명령을 받고 난 다음 어떻게 하셨습니까.
피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고 해서 갔었습니다. 가서 저희 재활원 때문에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양심은 있어서 자녀 교육상 나쁘다는 이유만 들더군요. 그러면서 장애인인데 공기 맑은 곳에 가서 휴양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구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명을 했죠. 장애인 자체가 훌륭한 교육이 되고 우리를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휴양할 처지가 아니라고 사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뻔뻔스럽다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제 멱살을 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재활원에 몰려와서 기물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저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저희들입니다. 저희야말로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장애인 때문에 땅값이 내리고 장애인 때문에 교육상 좋지 않다고 하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자기네들은 장애인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라도 받았답니까? 사람 앞일은 모르는 겁니다. 지금 멀쩡하다고 모여서 장애인 내쫓을 음모나 꾸미고 있고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변호사: 아, 아,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재판장님,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상입니다.
재판장: 검사, 별론이 있습니까?
검사: 재판장님, 정확한 상황판단을 위해 증인을 요청했습니다.
재판장: 증인, 심문하시오.
검사: 증인, 증인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증인: 원고 바로 옆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검사: 원고의 피해를 직접 목격하셨겠군요.
증인: 그렇습니다.
검사: 어떤 피해였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습니까.
증인: 있구말구요. 그 동네는 집이 팔리지 않았어요. 사려고 했다가도 재활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사지 않겠다고 했지요. 신도시 아파트분양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집이 안 팔려 발을 동동구르더군요. 그리구.
검사: 그리구 뭡니까.
증인: 아이들이 자꾸 흉내를 낸다고 속상해들 했어요. 뇌성마비 흉내를 내느라구 온몸을 비틀기도 하고 말을 더듬거리기도 하더군요. 또 재활원 사람들이 무섭다고 밖에도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죠. 사실 저도 그 앞을 지날 땐 될 수 있는 대로 부딪히지 않으려고 외면을 해요. 그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거든요. 답답도 하구요. 그리고 도와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요. 아무튼 안보는 편이 훨씬 좋아요.
검사: 이상입니다.
변호사: 본 변호인도 증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증인, 한번이라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내가 만약 장애인이었다면 하고 말입니다. 무- 무슨 그런 재수 없는 말을 다해요. 기가 막혀 정말. 나보구 그 수모를 당하란 말예요. 별꼴이야 정말.
변호사: 바로 그겁니다. 그들이 수모를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 수모를 주고 있다는 뜻인데. 그 누군가가 바로 무정마을 주민, 더 나아가 이 땅에 살고 있는 건강인들 입니다. 그러니까 피해자는 원고가 아니고 피고입니다.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태어난다는 루소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또 우리나라 헌법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그런 비인간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땅값이니 교육이니를 내세워 장애인 시설 건립을 반대하고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이것은 자신의 시각을 왜곡시켜 스스로를 정서적인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육체적이 장애인이 그런 정서장애인들과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고 이전을 요구하는 날이 올 지도 모릅니다.
장애인 시설 이전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장애인 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연좌농성을 벌이면서 혈서까지 쓰고 하는 이런 일이 우리사회에 일어나고 있다는 건 우리 사회가 썩었다는 증거입니다. 더 이상은 썩지 말아야겠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방생한다면 본 변호인은 인간으로서의 사표를 쓰겠습니다. 현명하신 재판장님의 인간다운 판결을 기대하겠습니다.
재판장: 판결을 내리기 전에 변호인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피고가 운영하는 재활원을 변호인 집 옆으로 이전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소.
변호사: 아- 아니, 하구 많은 동네 다 놔두고 하필이면 왜 우리 집입니까?
(탕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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