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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통신 이야기]만남의 새 장 "통신 대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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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새 장 "통신 대화방"

 오늘도 모임이 있는 날이다. 검은 화면의 흰 글자로만 만난 사람들을 직접 얼굴을 맞대며 살아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다. 사실 컴퓨터라는 기계가 컴퓨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처럼 그렇게 딱딱한 것이 아님을 난 이 통신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알게 됐다. 사람들이 모이는 나름의 곳마다 있는 갈등이며 서로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넓은 사랑이며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통신이라는 이 새로운 세계에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통신을 하는 사람들, 특히 장애로 인해 외출이 어려운 우리들에게는 이 통신이 아는 사람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준다는 것이 늘 행복하다.
 자신의 일상을 차분하게 글로 옮겨 게시판에 올려놓은 어느 회원의 그을 읽으면서는 내 생활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또 신나고 재미있는 문체로 게시판을 장식한 회원의 글을 읽으면서는 삶의 괴로웠던 순간들을 조금씩은 잊기도 한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삶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진솔한 자기고백의 글을 접하면서는 그 회원이 용기를 갖길 바라는 뜻으로 서로들 미흡하나마 힘이 될 수 있는 위로의 글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한다. 이렇듯 통신이라는 조금은 비인간적인 매체가 담고 있는 내용 속에는 인간의 따뜻한 감정이 흐르고 서로의 마음들이 교류하고 있다.
 나는 통신이라는 이 기계의 발달을 인류가 조금이라도 늦게 이룩했다면 어떠했을까 요즘은 아찔한 생각마저 든다. 단 한 발자국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과연 지금같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머리 속에 외우며 그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또 "함께"라는 공동체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마도 도저히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난 바로 이 통신이라는 것을 통해 내가 안고 있는 장애를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통신을 하기 전의 내게도 친구들은 찾아왔다. 물론 그들은 모두가 정상인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방문은 늘 나의 입장을 고려한 그들 사고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늘 난 그들의 방문에 준비태세를 갖추고 살아야 했다. 그나마 조금씩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다쳤던 초창기의 그 잦은 방문도 뜸해졌다.
 통신이라는 세계를 내가 접하고부터는 나의 세계 속에서도 내 의지에 의한 타인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예전같이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 속에 부딪히곤 했던 내 장애의 벽이 이젠 이 통신이라는 인류발달로 인해 내가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제는 전화기에 모뎀선을 연결하고 대화방이라는 곳을 찾아 들어가면 언제나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내가 겪고 있는 삶 속에서 늘 보는 일상의 사람들에게서 찾지 못하는 새로운 사랑의 기운을 느끼고 싶을 때라든가, 외로움에 텅 빈 가슴을 부여안고 누군가와 말하고 싶을 때, 늘 그 곳에 찾아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예전에 느꼈던 내 의지로 친구를 만나러 갈 수 없다는 좌절로부터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든 만남을 가져야만 성숙하나보다. 자기 자시의 고립된 세계 속에 빠져 살면 그만큼 그는 더욱 자기만의 이기심에 빠져들기 마련인가보다. 나 또한 이 통신으로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장애라는 한계를 핑계삼아 얼마나 이기심만을 키웠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장애가 가장 심하다는 그릇된 사고와 이 사회에서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게 적대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 등 내 나름의 왜곡된 사고의 틀을 겹겹이 쌓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찾아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더한 장애에도 꿋꿋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나를 처음 대하는 비장애우가 적대감은커녕 나의 입장을 소박하게 이해하고 싶다며 다가오기도 했다. 이렇듯 만남은 내 사고의 이기심을 조금씩 허물어갔다.
 사람은 만나면 친해지고 친해지면 서로의 입장과 생각들을 나누는데 부담이 없어진다. 사실 통신이라는 기계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주관적인 의지가 많이 좌우하는 기계이다. 본인이 그 대화방을 벗어나고 싶으면 전화를 끊는 단순한 행동으로 그 대화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얼굴을 대하고 만난 사람들처럼 감정의 상태를 얼굴로 읽을 수 없다. 또 논쟁 중에 얽힌 서로의 입장차이를 일방적으로 깨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든지 하면 그런 일에서는 조금은 오해의 소지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 중에 통신이라는 중간자가 낀 것을 십분 이해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수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 만남이 그렇게 조심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난 대화방에 처음 들어가서는 물에 뜬 기름처럼 겉돌기 일쑤였다. 어느 곳에 가든 처음이라는 자리는 늘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통신이라는 또 하나의 특징은 누구나 쉽게 친숙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음을 사전 지식으로 알고 들어간 대화방이라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도 대화는 인사에서 인사로 끝날 뿐 더는 진전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원인은 내게 있었다.
 그때까지도 난 고립된 세계에서 쌓은 이기심의 벽을 허물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 대화방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날 드러내는 것에 인색했다. 상대방이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먼저 평가하고 난 후에야 나를 드러내야겠다는 자기보호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분명 사람은 만나고 있지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점점 대화방이라는 만남의 광장이 자꾸만 무의미해져 갔다. 그러다 몇 년간 장애라는 상황을 받아들여보려고 발버둥쳤던 몇 해 전을 떠올렸다.
 그 당시 나는 비장애우에 대한 복귀를 끊임없이 마음에 되뇌이며 하루도 나의 이런 장애의 상황을 용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런 상태로 나를 끝없이 소모하며 지내기에는 한 번뿐인 삶이 너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장애를 인정해야 내 삶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부터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컴퓨터를 사게 되었고 통신도 하게 됐다는 생각을 대화방에서 움츠리는 내 자신에게 떠올렸었다. 그러고 나니 조금씩 용기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일단 내 자신을 남들 앞에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 용기가 싹텄던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임을 내가 먼저 남들 앞에 얘기하게 되었다. 통신이라는 매체는 사실 내가 숨기려든다면 상대방은 영원히 나의 처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스스로가 진실하지 못한 상태로 남들을 대해야 하니 남들에게서도 진실한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나는 장애우임을 밝혔다. 내 자신이 나의 장애를 먼저 받아들이고 사람들을 만났다. 비인간적인 매체를 통해 가면이 벗겨지는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내가나를 드러내는 용기를 발휘하고 난 후부터는 만남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다. 인사에서 인사만으로 이어지던 대화방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달려가 자랑하고 싶은 상대들도 많아졌다.
 또 오늘 하루를 그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하기도 한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장애를 입고 고민했던 외로움을 잊게 됐다. 내 생활 속에 허전함이 파고들 때마다 늘 그리워지곤 하던 커다란 구멍이 조금씩 조금씩 채워지는 것이다. 친구가 생긴 때문이다.
 이렇게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내 허전함을 위해 친구의 방문을 부탁해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이제는 내가 친구를 찾아가 나의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황으로 발전한 것이다.
 조금씩 대화방에서의 만남이 풍성해지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많아지니 이젠 그 만남 속에서 알게 된 여러 사람들로 인해 내 자신이 커감을 느끼게 됐다. 내가 그 동안 장애우라고 남들에 의해 불리워졌지만 실상 나 아닌 장애우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대화방에서 만남 사람들에게서 그들 나름의 아픔을 듣고부터는 나만이 고립되어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과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알게 됐다.
 나같이 집을 나서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 통신이라는 것으로 얼마나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지도 알게 됐다. 그들도 나처럼 사람이 그립고 대화가 하고 싶고 정을 나누고 싶어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만의 이기심에 빠져 이해 받기만을 응석부리던 자신에서 탈피해 남의 아픔도 보담을 수 있는 성장을 이 대화방을 통해서 얻게 됐다.
 통신이 대화방이라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있으므로 언제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외출이 어려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통신을 매개로 모여든 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얼굴 없이 나눠지는 대화의 폭을 넓히고 싶은 생각들이 있게 마련이다. 대화방에서 점잔을 빼며 이야기하는 어느 친구의 얼굴이 무척 궁금하고, 늘 우스개소리로 대화방을 휘젓는 친구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진지한 토론주제를 갖고 대화방을 방문하는 형님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통신 동호회나 그렇듯 통신이라는 한계성을 극복해 보자는 의미로 외출이 어렵지만 모임을 갖는 것이다.
 그동안 대화방의 문자를 통해서 서로의 아픔과 처지를 이야기하다가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더 깊이 알아 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모임은 대화방에서 이미 많은 대화로 친숙한 사람들의 만남이기에 어떤 친교의 자리보다도 스스럼이 없다. 그래서들 더 화기애애한가보다.
 오늘도 이런 모임이 있는 날이다. 많은 얼굴들이 모임에서 잘 조화를 이룰지 걱정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미 대화방이라는 만남의 장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이니 더욱 가까워지리라는 확신은 있다. 빨리 가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리고 대화방에서 못 다 나눈 얘기를 나누고 싶다. 아마 다들 어려운 외출을 마다 않고 모임 장소로 찾아들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한결같이 대화방에서 장시간 동안의 추억과 갈등들이 소복히 담겨져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대화방에서 만난 친구의 사랑학 강의에 장애와 비장애우를 들먹이며 끝없는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라든지 비장애우인 친구의 못내 미안함을 감추며 들려주었던 지리산 자락의 녹음이라든지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의 강아지 예찬에 옆에 동참했던 친구의 식욕에 넘치는 영양탕 얘기로 옥신각신했던 기억들하며 정말 대화방의 그 깜빡이는 커서 위에 쏟아졌던 온갖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여 살아있는 웃음이며 즐거움을 나눌 것이다.
 나도 이제는 고립에서 벗어나서 그들과 마음을 열고 만날 수 있다. 그건 아마 대화방이라는 통신의 매체가 내게 열어준 새로운 세계의 덕이리라.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그들과 함께 라는 생각뿐 아니라 비장애우와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분명 이 사회는 기계나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기계나 시설을 관통하는 정신 속에는 따뜻한 인간의 정이 통하고 있음을 통신이라는 것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만남의 광장에서 어우러졌으면 한다.

글/윤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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