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걸음 문화마당1]이영호의 영화이야기 > 문화


[함께걸음 문화마당1]이영호의 영화이야기

"몽따쥬" 영화기법

본문

"몽따쥬" 영화기법

 우리는 "몽따쥬"(Montage)란 용어를 익히 알고 있다. 일상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몽따쥬란 용어는 영화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용어 중의 하나이다. 불어식 발음으로는 "몽따쥬"라고 하고 영어식 발음으로는 "만타쥬"라고 한다. 몽따쥬란 용어 자체는 비록 사진학에서 기원하였지만, 러시아 혁명기의 영화작가이며 이론가인 아이젠슈타인(Eisenstein)의 영화예술에 응용된 이후로 이론적으로 또 실용적으로 놀랄만한 발전을 하였다.
 현대의 영화관객들은 많은 영화 속의 몽따쥬를 아무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하지만, 아이젠슈타인 시절 러시아 혁명기에 제작된 그의 일련의 영화들(전함포템킨, 10월 혁명, 스트라이크)에 나타난 몽따쥬 기법은 전 세계의 영화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새로 태어난 예술에 관하여 "예술시비"가 분분했었고 그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유치한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젠슈타인은 몽따쥬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몽따쥬란 두 개의 상이한 이미지가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개념이다." 물론 언어적 해석만으로 영화기법을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아이젠슈타인은 그의 자서「Film Form」에서 한자의 합의어를 이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한자가 뜻글자라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계집女와 아들子는 각각 다른 개념을 대표한다. 그러나 두 가지 글자가 합쳐지면서 계집이 아들을 안고 있어 좋아한다는, 새로운 개념인 호(好)라는 글자를 만들어 낸다. 이런 합의어의 생성방식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 두 개의 이미지가 만나게 되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다. 이것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소위 클레쇼프의 실험이다.
 아이젠슈타인과 동시대 영화작가이며 또한 이론가인 클레쇼프는 흥미 있는 실험을 하였다. 그는 한 사나이의 비통한 얼굴을 먼저 보여주고 다음에 여러 가지 다른 영상들을 이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각각의 연결된 영상에 따라 비통한 젊은이의 모습이 각기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것을 실험하였다.
 즉 비통한 사내의 얼굴과 김이 나는 빵이나 커피의 영상이 붙여진다면 사내는 배고픈 사내가 되고, 쓸쓸한 무덤의 영상과 충돌하면 애인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사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몽따쥬의 기본적 기법은 단순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몽따쥬의 응용은 아이젠슈타인의 영화 속에서 조형적, 시간적, 구도적 몽따쥬로 발전해 나간다. 그의 작품 "10월 혁명"에서는 누워있는 사자석상에서부터 점차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는 사자석상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줌으로 "민중의 봉기"를 표현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그의 영화 속에서는 양적인, 시간적인, 구조적인 대비로 발생하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런 모든 몽따쥬의 기법은 아이젠슈타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젊은 혁명가로서의 아이젠슈타인에게는 무지몽매한 대중을 교화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야 할 확실한 영화기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주어진 영상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을 통제하는 방법으로서 몽따쥬는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이렇게 아이젠슈타인의 이론적, 실용적 발전을 통해 이루어진 몽다쥬 기법은 현대영화의 모든 장르에서 응용되고 있다.
 물론 아이젠슈타인의 영화처럼 전편을 통하여 계속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아이젠슈타인 이후로 영화기법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하였고, 아직까지 사용되지 않는 새로운 연출기법이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초기 영화에서의 아이젠슈타인의 이론적, 기술적 업적은 영화매체의 발명만큼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헐리우드의 상업영화에 길들어진 감수성으로 모든 현대영화를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이전의 미술에서도 끊임없이 보여지는 스토리텔링의 강박관념 탓이기도 하지만 초기영화시대의 영화작가(?)들은 영화라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조차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의 평범한 영화관객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헐리우드 영화의 정형이 만들어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시대에 아이젠슈타인의 몽따쥬 기법은 다른 영화작가로선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이젠슈타인의 몽따쥬 이론의 철학적 배경은 변증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편증법의 단순한 개념인 정, 반, 합이 바로 몽따주 이론의 "두 가지 상의한 이미지의 충돌로 발생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설명해 준다. 두 개의 상의한 이미지는 장과 반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바로 합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단순비교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 글의 성격상 변증법적 접근은 피하고자 한다.
 영화란 초기영화시대부터 현재까지 대별하면, 사실주의 영화와 상징주의 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사실주의 특히 1930년대와 40년대의 불란서 영화는 사실주의 기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쟝 르느와르(Jean Renoir)가 그 대표적 영화작가인데 그는 아이젠슈타인과는 반대로 영화작가는 관객에게 많은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영화작가는 관객이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어가서는 안되고 관객이 자유롭게 주어진 모든 영상 속에서 관객 자신의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영화 속은 영상을 언어와는 달리 구체적 의미를 발산하지 못한다. 즉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의미를 발산한다. 이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작가의 의도대로 걸러서 관객에게 전하려고 한 시도가 바로 아이젠슈타인의 몽따쥬 기법인 것이다.
 반면에 쟝 르느와르는 관객에게 걸러지지 않는 많은 아이디어들을 그냥 보여주려고 했다. 두 사람의 영화제작에 대한 접근방법은 이렇게 달랐지만 두 작가의 영화는 제작기 그 영화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아이젠슈타인의 몽따쥬를 중심으로 기본적 영화기법의 두 가지 갈래를 알아보았다. 물론 이 문제는 50년대 불란서 영화이론가들의 논쟁의 대상으로 수없이 올려졌던 것이지만 한정된 지면에서 가능한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글/이영호

 

작성자이영호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