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의 영화이야기]해외영화제 수상의 의미
본문
해외영화제 수상의 의미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의 영화를 만드는데 선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우리의 관객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영화만이 소위 해외영화제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올바른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확고한 역사의식으로 조명하여 우리의 삶을 분석해야만 할 것이다. 즉 문화적 식민의식을 벗어나 당당하게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그것을 우리의 영화 속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보도를 가끔씩 접한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수상자는 물론 제작에 참여한 모든 스타들에게 즐거운 일일 것이다. 특히 제작자로서는 수상을 흥행에 유리한 소재로 이용할 수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 매스컴의 과대 보도나, 정보의 빈곤으로 인한 오보는 대중을 오도하게 된다.
특히 우리사회처럼 오랜 세월동안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고 미국과 몇몇 유럽의 문화만이(그것도 군사정부의 검열을 거치고 난 후에야) 국민의 손에 전해져 왔던 사회로서는 외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없고 외국문화를 분별 없이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당연한 과도기적 현상일지 모른다. 이 현상은 외국에서 수입된 모든 상품을 정신 없이 사들이는 몰지각한 졸부들을 통해 쉽게 관찰할 수 있었고 그 여파는 문화계 일부까지 넘쳐 온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육이오 후의 절대적 빈곤을 겪으며 미군부대에서 버린 깡통으로 만든 국산품을 이용해 왔던 우리로서는 미제로 통칭되는 외국물건을 선호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국민적 정서가 외국의 것이라면 모두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모든 국민을 문화적 식민으로 전락시켰다. 필자 자신도 미국유학시절 자신이 엄청나게 미국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감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외국영화제에 대한 우리의 과민반응도 이해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외국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 그 작품이 우수하다는 것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서 영화란 그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화의 씨그니파이어(signifier:기호학의 용어로 의미 전달 체의 뜻)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이 이론에 대한 설명은 언젠가 다시 상세히 하게 될 것이다).
환언하면 외국영화제의 모든 심사위원들이 우리문화를 숙지하고 있는 전문가가 아니고 설령 동양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민속과 유, 불, 선, 삼교가 혼합되어 있는 우리의 의식세계를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언젠가 한 영화감독이 해외영화제에서 외국 여기자로부터 그 감독의 작품이 유교적인 것이냐? 아니면 도교적인 것이냐? 는 질문을 받고 당황해서 답변을 못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감독의 무지를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체의 우리 문화에 대한 태도가 한심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이 상을 주는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수상한 사실에만 물드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이다.
우리는 항상 해외영화제를 겨냥해서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명화란 외국인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질 수도 없으며 그렇게 만들어져서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화란 어느 나라 어느 종족의 것인지 한가지 척도로 잴 수 없는 것이고 또한 다른 문화와 비교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외영화제를 겨냥해서 만들었다 라는 말은 정녕 문화인으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다.
작고하신 김동리 선생님께서 "민족문학이 곧 세계문학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이것은 영화의 경우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영화가 가장 세계적인 영화"인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년동안 중국의 젊은 감독들이 가장 중국적인 소재를 가장 중국적인 색채와 감성으로 제작한 영화로 깐느 등의 유수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사건이다. 물론 그들의 영화제작 조건이 공산주의 체제인 탓으로 우리 영화인들의 그것보다 월등히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출현 이전의 영화들을 미국에서 본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그들이 이룩한 장족의 발전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제3세계의 영화들이 급성장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영화는 미국영화의 직배와 의욕 없는 제작자들의 안전제일주의 제작 태도, 상업주의에 끌려가는 감독들의 의기소침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0년 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구로자외 아끼리의 "라쇼몽"은 일본적 로고스(Logos)와 서양적 파도스(Pathos)로 만들어졌다. 일본적 이성과 서양적 감성의 조화가 그의 작품을 서양인도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베니스에서 수상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지만 다른 원인 중의 하나는 일본의 국제사회의 위상이다. 이것은 중국의 지금 국제적 위치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논리이다. 이런 까닭에 깐느, 베니스, 베를린 등의 영화제에서조차 각 국의 로비가 치열한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국제 사회적 위치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가 있다. 우리도 우리의 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의 영화를 만드는데 선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우리의 관객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영화만이 소위 해외영화제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올바른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확고한 역서의식으로 조명하여 우리의 삶을 분석해야만 할 것이다. 즉 문화적 식민의식을 벗어나 당당하게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그것을 우리의 영화 속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작업은 더욱 아니다.
문민시대를 맞아 많은 가능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평가도 가능해졌고 어느 정도 제작규제도 완화되었다. 아직도 많은 것들이 더 개선되어야겠지만 군사정권하의 열악했던 조건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개선이라고 볼 수 있다 악조건만을 핑계삼기에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 나라 대중문화의 수준은 곧 그 나라의 정치적 수준과도 같다. 그 중에서도 영화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이제 정치적 수준이 변화하고 있다면 영화의 수준도 변화되어야 한다. 영화의 상업성은 영화예술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커다란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서편제"가 국내 영화시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활발한 영화제작을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해외영화제 성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