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시] 어머님 영전에
본문
"그저 참는거여"
면서기가 오면
대문밖으로 맨발로 달려나가고
순경이 오면
코가 땅에 닿도록 엎드리는
그렇게 살아오신 당신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서고
내 당 서너마지기 살 돈만 되면 돌아오리라
고향을 떠나셨지요
못 만드는 일본공장 노동자로
청춘을 다 바쳐
내 집 한 칸 마련 못해도
고층빌딩 청소부가 되어
있는 놈들 술 한잔 값도 못한 임금을 받아도
"욕심내면 못쓰는 거여
부자는 타고난 거여"
늘 고개 숙이고 살아온 당신
진작 병이 깊은 줄 알면서도
어찌 한마디 말씀도 없이
하얀 약봉지로만 버티셨나요
고려병원 중환자실에서도
일반병원보다 치료비가 비싸다고
돈걱정만 하시던 당신
한 평 남짓
아버님이 잠드신 공동묘지를 내려오다
50평은 족히 됨직한
부산 ××건설 회장묘를 보며
한평생 빼앗김만 당해온 아버님 묘와
아직도 방 한칸에 네 식구가 돼지처럼 엉켜서 사는
우리 이웃들 생각에
가진 자와 못가진 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같을 수 없는 현실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살아생전 묵묵한 침묵으로 이어오신
아버님 당신의 아들이
부정한 권력
그 권력과 공생하며
이땅의 선한 민중들을 짓밟는
불순한 무리들의 개이기를 결단코 거부했을 때
"몸도 성치 않은 내가" 하시던
더 이상 말씀없이 담배만 피우시던
그 속마음……
아버님 슬픔
꼭꼭 다져 가슴에 묻고
빼앗김도
짓밟힘도 없는
참 좋은 세상 만드는 대오 속으로
돌아갑니다
동강난 허리 이어놓고
압제와 착취 없는
새 날
새 세상
해방술잔에 술 가득 따라올리며
찾아뵙겠습니다
편히 쉬소서
한관호씨는 올해 서른 셋으로 군 제대후 사고로 한쪽 다리를 다친 장애우다. 마창노련 노동자 문화패 "갯벌"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마창지역 일용공 모임터"의 간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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