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악어는 왜 눈물을 흘리는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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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나는 고상탁에게 찾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연락 주기를 기다렸다. 그에게 얘기를 강요하는 듯한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 날 오후 네 시쯤 되었을까. 뜻밖에도 ××파출소 차석에게서 나를 좀 만났으면 좋겠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나는 순간적이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석이 내 자취방 전화번호를 알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차석은 별다른 일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상탁이 이 친구가 파출소에 와 있습니다. 지금 술에 잔뜩 취해 있어요. 막무가내로 기자양반을 좀 불러달라는 거요. 하하… 어떻게, 피곤하더라도 좀 오시겠소?"
수화기를 통해 고상탁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곧 가겠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파출소로 가면서 어쩌면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를 내 자취방으로 대려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택시에서 내려 파출소로 들어섰을 때, 차석은 고상탁이 숙직실에서 자고 있다면 나를 안내했다. 그는 마치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옹동그리고 있는 것처럼 동그마니 몸을 모은 채 벽을 바라보며 모잽이로 누워 있었다. 차석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고상탁은 무엇에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차석과 나를 찬찬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반갑다는 뜻으로 소리 없는 웃음을 보내주었다. 그가 방문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며 말했다.
"동상, 밖으로 쪼깐 나가서 나허고 야그 좀 혔으면 좋겠네."
나는 그를 들쳐업었다. 또다시 그의 몸무게에서 썰렁한 기운을 느꼈다. 파출소를 나올 때 차석이 문을 열어주었다
고상탁은, 내가 육교를 건너 술집 골목 근처로 갈 때까지 처음에 업힌 그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길 양쪽으로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오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는, 비칠거리거나 황급한 몸놀림으로 물러섰다. 나는 사람들의 그러한 움직임을 보며, 등에 업힌 채 고개를 파묻고 있는 고상탁을 반사적으로 힘껏 추슬러 올렸다.
-이 썰렁함은 도대체 뭐고 이거! 인간의 몸이란 게 이리도 헐거울 수가 있단 말이가? 아무리 두 다리가 없다캐도 그렇제, 와 이리 썰렁하노 말이다. 고마, 해골에다가 창호지를 발라놔도 이라진 않을끼다. 헐겁다, 너무나 헐겁다.
서글픈 마음에 슬그머니 한숨을 쉬자, 눈물이 한방울 돋아났다. 그가 내 왼쪽 어깨를 슬며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동상, 나 말이시…동상헌티 부탁이 한나가 있는디, …말혀도 될랑가 모르겄구마이. 욕 묵을 일인디…"
나는 걸어가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추면서, 말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술에 취해 충혈되어 있는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딴 거이 아니고, …미안허제만, 쩌그 앞에, 전에 동상허고 술 마셨던 일미집에 술값이 좀 있는디, …아까즉에 외상으로 마신 거인디, 소주허고 술안주로 …동상이 삼천오백 원 값만 좀… 난중에 나가 갚아줄 거구마."
그 말을 듣고 있는 내 감정은, 나 자신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점점 더 "아픔이라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단번에 하지 못하는 그가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형요, 그기 그리도 걱정이 되는교? 아무 걱정마이소."
나는 그를 업은 채로 일미집으로 들어가 외상술값을 갚아주었다. 그런 다음, 떨떠름해 하는 술집 주인 여자의 시선을 무시하고 객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곧 이어 주문한 술과 안주고 들어오고, 몇 잔의 술에 얼근하게 취한 우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왠지 이 자리에서 고상탁과 동화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고, 술병이 몇 개비면서 우리는 엉망으로 취했다. 나는, 고상탁이가 누군가를 붙들고 이유 없는 시비라도 걸어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형요. 형 나이가 안있능교 서른아홉이람서, 와 그리 노회한 사람처럼 말투가 그렇능교?"
나는, 시장에서 고상탁과 싸운 뒤 ××파출소로 끌려갔을 때, 그가 젊은 경찰관 앞에서 늙은이 말투를 흉내내며 의뭉스럽게 행동하던 일이 떠올라 불쑥 물어보았다.
"노회? 먼 말이 고런 말이 있다여?"
"음흉한 늙은 같다는 말 아인교. 형이 말하는걸 가마이 들어보면, 꼭, 한 오십쯤 된 사람처럼 느껴진께네…"
그는 내 말을 듣다 말고 피글피글 웃으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파출소에선 마시, 나가 마흔여섯인 중 알고 있시아. 나헌티 주민등록증이 읍다 봉께 나가 마흔여섯이라고 우겨뿔면 믿어야제, 즈그드리 으짤 것이여. 그라고, 내 얼굴에 "고상탁이는 마흔여섯이다아" 허고 쓰여 있잖는감. 첨에 나가 파출소로 붙들려갔을 때, 얼굴을 들이댐시로 딱 고로코롬 우겨뿌렀당께. 그러들 않으면 동상보다 어린 순경헌티 당허는디.
흐흐흐-."
그의 말인즉슨, 부대끼며 살다 보니 자연히 살아 남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뜻보다는 말투와 표정을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웃는 것을 한동안보고 있다가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혔을 땐디, 울 엄니가 나헌티 혀준 말이 있당께. …첨엔 무신 말인지 한나도 몰렀지만, 살다 봉께 알겄더랑께. 먼 말인고 허니, "상탁아이. 니는 말이여, 아무헌티나 정을 주믄 안되아" 그라더란 마시. 그란디, 참말로 요상시럽더랑께. 동상헌티는 욕을 묵어도 암치도 안흐니 말여. 동상. 우리, 마지막으로 노래나 한자락 같이 혀. 강원도버텀 먼첨 가보더라고."
고상탁이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덩달아 그의 행동을 따라갔다.
"해에 저어문 소오양강양에 황호온이 지이이이미은, 하이고메! 소양강만 강이랑가 낙똥강도 강이시. 나또오옹강…"
고상탁과 나는 두만강 기슭까지 거슬러 올라가서야 술집을 나왔다. 밖은 아직도 환했다. 내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고 했으나, 등에 업힌 고상탁을 보고는 택시마다 모조리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우리는 결국 타고난 팔자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고상탁과 나는, 큰소리로 "×팔×팔" 욕을 해가면서 걸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도 바쁠 이유가 없는 우리를 보고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곁눈질하거나 쯧쯧 혀를 차면서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군산총각"이 차린 "군산식당"은 그런 대로 꾸준히 이문을 쌓아갔다. 어머니의 병세는 조금씩이나마 차도가 있었다. 그러기를 사 년, 웬만큼 재산을 모은 상탁이 모자는 식당을 다른 사람에게 팔고 서울로 이사한 다음, 입시학원이 몰려 있는 종로2가에 자그마한 분식집을 차렸다. 그때까지 군산 양아버지와는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그다지 마음에 담아두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호적만 정리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완전히 남남이 된 상태였다.
"날이 날마다 봄날씨등만. 학원 댕기는 아그들이 워찌나 몰려와 쌌는지, 정신이 한나도 읍었이아. 일하는 아짐씨를 둘이나 두었응께. 울 엄니? 엄니는 일주일에 두 번썩 청량리 정신병원엘 댕겼어."
고상탁은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게 무엇보다도 기뻤다. 지지리도 고생보따리만 주렁주렁 차고 다니던 어머니가 제 정신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상탁은 나이 서른한 살 때, 식당에서 일을 해주던 "아짐씨" 딸과 몇 번 만난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혼인신고를 하면서, 아직 군산 양아버지와의 호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감정의 응어리를 마음 속에 담은 채 군산으로 내려간다는 사실이 탐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살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호적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일곱 달인가 여덟 달인가, 참으로 정신이 쏙 빠지게 휘딱 지나가데. 그때가 나가 태어나서 첨으로, 행복이란 거이 바로 이런 거이구나 잡드랑께. 마누라가 꽥꽥 소락때기를 질러도 이뻐 비더라고. 그란디…"
그렇게 신혼 재미에 날 가는 줄 모르고 지내던 어느 날 새벽, 고상탁은 통행금지가 막 끝난 시각인 네시에 남대문시장으로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그는 시장에서 그날 장사에 쓸 물품을 사람 키 높이만큼 산 다음 자전거 뒤에 싣고는 명동 입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상 남아 있는 시각이었다. 폐달을 한참 밟아대고 있는데 느닷없이 둔중한 물체에 자전거 한가운데를 들이받혔다. 승용차였다. 고상탁이 타고 가던 자전거는 짐칸에 실은 물품 무게 때문에, 부딪힌 그 자리에서 모로 엎어졌다. 그 바람에 승용차 앞바퀴와 뒷바퀴에 연쇄적으로 두 다리를 깔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들이받은 둔중한 물체가 검은색 자가용 승용차라는 것만 얼핏 보았을 뿐, 곧 정신을 잃었다.
상탁은 병원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그가 맨 처음 느낀 것은 허벅지 아래쪽으로 전해져 오는 휑뎅그렁하게 비어버린 듯한 썰렁함과 아울러 온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었다. 가슴에는 움직일 수 없도록 압박밸트가 채워져 있었다. 병상 옆에서 쿨척거리며 울고 있는 어머니와 아내의 얼굴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상탁은 통증 때문에 이를 악문 채 하체를 움직여보려고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면서 버둥거렸다. 그렇지만 몸에 덮여 있는 하얀 시트는, 하체의 움직임과는 하등 관계없이 납작하게 꺼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전혀 꼼짝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까지, 온갖 공상을 다하며 몸을 움직여보려고 애썼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온몸에 흐르는 식은땀과 쥐어뜯는 듯한 써늘한 통증밖에는 없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통증 때문에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을 그저 망연자실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바라보아야만 했다.
고상탁은 며칠 동안을 버르적거리며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다. 그러나 다급한 생각만 굴뚝을 빠져나가는 연기처럼 무럭무럭 피어날 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고상탁은 자신이 처해 있는 엄연한 현실에 울화만 치밀어 올랐다. 벌건 대낮에 벼락을 맞아도 그에 따르는 이유가 있는 법이고, 길을 가다 엄한 놈한테 뺨을 맞으면 왜 때리느냐고 따져보기라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도무지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 도리가 없다는데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는 지쳐서 잠을 잘 때를 빼고는 잠시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는 애꿎은 어머니와 아내에게 버럭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도 트집을 잡아 신경질을 부리며 병실을 소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어떤 날은 보다 못한 어머니가 "니가 말이다, 올해 삼재수(三災手)가 쪄서 그런갑다"고 상탁을 위로한다는 뜻으로 말했다가, 차마 삭이기 힘든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시일이 흐르면서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더 이상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한 그는 시도때도 없이 담당의사를 데려오라고 악을 썼다. 의사는 하루에 두 번씩 아침저녁으로만 들를 뿐, 고상탁이 오란 다고 해서 오고 가란 다고 해서 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의사가 고상탁에게 하는 말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다. 통증은 어느 정도냐, 다른 데는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느냐, 수술자리가 아문 다음 재활치료를 받고 보행장구(步行裝具)를 착용하면 생활하는데는 커다른 지장은 없다. 그러니 우선 마음의 안정부터 찾아라….
고상탁은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그 말이,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는 의사에게 삿대질과 아울러 고래고래 악을 쓰며 따졌다. 야 이눔아, 니눔이 머이간디 남으 다리르 내 허락도 읍시 함부로 짤라번짓냐. 뒈져도 나가 뒈지는 거이다. 나가 "알아묵도록" 짤라낸 이유를 말해 도라. 그잖으면, 나가 니눔 다리몽뎅이를 짤라볼 거이다…. 그때마다 의사는 아무러한 표정 변화도 없이 쉬운 말로 몇 마디하고는 나가버렸다. 당신은 두 다리 모두 오금부분 힘줄이 완전히 끊어져버렸고, 정강이뼈하고 무릎 뼈도 산산조각으로 으스러졌다. 따라서, 다를 절단하지 않으며 두 다리가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어 있었다. 알겠느냐? 그리고 갈비뼈도 세 대가 부러졌다.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 바란다….
병원에 있은 날이 꽤나 흘렀음에도, 고상탁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도무지 생각의 앞뒤를 정리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경우를 놓고 사람들은 "미치고 폴짝 뛴다"고 말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난 말이시, 사고가 나서 다치고 뒈지고 빙신이 되는 거이… 다른 사람들 야근 줄로만 알고 있었당께. 다른 사람은 다 고로코름 되어도, 나만은…"
고상탁은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나로서는 실컷 울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던가? 한이 맺힌 사람은 우는 것으로나마 절대적인 박탈감을 보상받으려고 하며, 그것마저 억제 당하면 홧병이 생기고, 종당에는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고.
고상탁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병원 측 견해를 무시하고 퇴원했다. 의사에 대한 이유 없는 반감이 어느 정도 작용한 위에, 그때까지 엄청나게 나왔을 성싶은 병원 비를 어떤 식으로 처리해 왔는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퇴원혀서 집으로 돌아와 봉께, 허이고 말도 말어야. 치료비 대니라고 식당을 넘헌티 냉겨부렀더랑께. 그거이 워치케 혀서 맹근 식당이라고… 인자는 죽는길빼기는 읍구나 잡으니께, 미치고 홀라당 뒤집어지겄더라고. 마누라는 날마다 징징 짬시러 잔소릴 늘어놓제, 거그다 엄니는…"
어머니는, 아들이 사고로 불구가 되어버린 것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 때문에 거의 완치나 다름없이 호전되어가던 정신질환이 퇴원 직전부터 재발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제정신일 때는 온갖 궂은 일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도, 증세가 발작이 되면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가서는 며칠만에 온갖 때에 찌들은 채 산발한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상탁은 자신의 고통은 젖혀놓고라도, 당장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는 현실이 죽기보다 싫었다.
한동안 상탁의 대소변을 싫다 좋다 말없이 받아내던 아내는 날이 갈수록 짜증을 부리는 날이 많아졌다. 어떤 날은 술냄새를 풍기며 신세한탄을 하다가, 종당에는 동네가 떠나갈 듯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으로 아내의 투정을 속으로만 삭이던 상탁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같이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결국 부부싸움으로 발전했다.
집안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가족들은 저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탓에, 하루 하루를 제각기 살아가는 콩가루 집안 꼴이 되어갔다. 상탁이 어머니는, 어느 날 입은 옷 그대로 집을 나간 뒤로 두 달이 넘도록 종내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일 뿐 자기 한 몸조차 제대로 추스르기가 힘들었던 상탁은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들어갔다.
그러다가 상탁은 월남에서도 입에 대지 않았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를 윽박지르다시피 해서 술을 사오게 했고, 그도 여의치 않을 때는 자신이 길바닥을 벌벌 기어서 동네 가게를 다녀왔다. 그런 날이 계속되자 아내는 거의 날마다 친정에만 가 있었다. 모든 것이 꼬여가기만 했다.
"나가 아무리 눈치코치 읍다 혀도, 마누라 그 심정 모르까이, 다 안단마시. 그체만, 나가 요로코름 되고잡아서 된 거이 아닌디, 마누라는, 나를 똥친짝대기 취급을 허는 겨. 난중에는 밥상을 채려 주민서 벨벨 희한한 소릴 다 허드랑께. 막가더라고. 엄니하고 자석이 똑같다는 둥,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둥, …그런 말을 들으니께 속에서 열불이 나는디, 이 마누라쟁이는 꼭 저만치 떨어져서 사람 약발을 올리는 겨. 손에 잽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니께, 옷보따리를 싸들고 핑허니 나가불더라고. 메칠 지나니께 장모하고 같이 오데. 이유야 물어보지 안혀도 거울이다 잡더라고. …호적은 알아서 정리 허라고 도장을 주어부렀어. 그걸로 끝장이었시야. 위자료 돌라고 않는 것만도 고맙등마."
고상탁은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술에 취해 있을 때는 포만감 때문에 그다지 배고품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맨 정신일 때가 문제였다. 그는, 생각 끝에 가게로 기어가서는 몇 푼 남아있던 돈으로 라면을 샀다. 그리고는 자신이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석유곤로를 방으로 가져다 놓은 다음, 검붉은 플래스틱 물통에 하나 가득 물을 채워달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보름여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고, 용변은 변소까지 기어다니면서 처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이 고상탁에게 한 달 안으로 방을 비워달라고 했다. 화재가 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상탁은 사정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곧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말투에서 이미 집주인의 생각은 확고한 것 같았고, 또한 아무리 하는 일이 없이 하냥 부지하세월로 굶다가는 죽어서 나갈 일만 남았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집을 비워주기 며칠 전, 그는 예전에 남대문시장으로 물품을 사러 다녔을 때 심심찮게 보았던 광경을 떠올려가면서 앞으로 살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는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엉덩이에 댈 자동차 타이어 튜브 외에 중고품 녹음기 한 대와 스피커 두 개, 유행가 테임 몇 개를 사들였다. 앉은뱅이 손수레는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 이제 손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팔 물품만 시장에서 사들이면 되는 것이다.
방을 비워줘야 하는 날 아침, 고상탁은 옷가지 몇 벌을 제외한 세간 살이 일체를 집주인에게 거저 주어버렸다. 가지고 갈 수도 없었거니와, 마땅한 거처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셋집을 나선 상탁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해야만 했다. 남대문시장으로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ㅇㅇㅇ시장으로 방향을 정한다음, 땅바닥을 기면서 앉은뱅이 손수레를 밀고 갔다. 거리에는 출근길 시민들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계속>
글/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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