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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이야기] 우리 부모가 사회를 설득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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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 쥐를 물고 있는 커다란 고양이를 꿈에서 본 후 태어난 아이가 홍주이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우리 가정에 큰 기쁨과 벅찬 희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가슴 두근거렸던 감동은 생후2개월 만에 깨지고 말았다. 홍주의 병명은 다운증후군(일명 몽고리즘)이었다. 선천적인 정박아이다. 아가인 홍주는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고개를 가누었다.
  어느 날 급성폐렴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때 홍주 아빠는 "병원에 가서 내 아들이란 말을 하지 말아!"라고 하였다. 아빠는 그 당시 대학교수였다.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홍주가 나 혼자만의 아이는 아니지 않는가!
  홍주가 아빠에게서만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병에 대해서 일체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다. 학교 동창회, 계모임 등 어느 곳에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이영애의 아들이 정신지체아이다."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없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이건 꿈이겠지" "아니, 꿈이었으면‥‥‥‥" 온갖 망상에 젖기도 하였다.
  우리 부부는 가톨릭신자로 성당에서 혼배를 올렸고 아이도 유아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아들이라 훌륭한 학자가 되었으면 하고 중세의 학자였던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름으로 했다. 신앙이 깊지 않아서인지 홍주를 우리 가정에 보내주신 뜻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이후 나는 성당을 나가지 않았다.
  어쩌다 아이를 데리고 시내에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아이를 쳐다보았다. 우리 아가는 외모가 특이하다. 아이들은 홍주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무서워했다.

  취학연령이 되어 통지서가 왔다. 그동안 억제했던 설움이 복받쳐 통곡을 하였다. 그때 그저 무심히 누워있는 내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미로서 저 애를 버릴 수 없다는 강한 힘이 솟았다. 나는 내 아이를 꼬옥 껴안아 보았다. 아이는 아무런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다.  특수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학교에서 홍주는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 걷기는 하지만 구름 속을 헤매듯 팔 따로 다리 따로 움직이는 아이, 온몸이 뒤틀려 있는 아이, 머리만 덩그렇고 하체 발육이 잘 되지 않는 아이‥‥‥ 그야말로 요지경이었다. 어떤 아이가 자기 딴에는 반가와 나에게로 다가왔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그 애를 받아줄 마음이 전혀 안 되었다.
  매일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 다른 학생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하루 이틀 한달 두 달 만나다보니, 그 아이들도 정이 들어서인지 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내 가슴에 안겨오는 대로 안아줄 수도 있었다. 내가 먼저 그 애들 코도 닦아 주었다. 입학식 날 보았던 그 아이들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늘 사랑에 굶주려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조금 친절하게 해주니까 나를 보면 아주 반가워했다.
  장애아를 둔 우리 부모들은 흔히 사회적인 편견을 얘기한다. 그런데 사회에서 우리 장애아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부모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동창회에 홍주를 데리고 갔다. 나는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친구들의 표정을 살폈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향하여 "얼마나 고생하니?" "얼마나 힘드니?" "아이는 무얼 먹니?" 말은 알아듣니? ‥‥‥‥ 각오는 하였지만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동정의 눈빛이 제일 싫다. 그 다음 계속하여 몇 차례 데리고 갔다. 차차 친구들의 표정도 달라졌다. 이제는 경계하는 빛이 없이 그저 어린아이로 대해주었다.
  우리 장애아 부모들은 괴상하게 생기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일수록 자꾸 사회에 드러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인 모두가 이런 아이에 익숙해지고 정이 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는 다른 누가 해 줄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부모들의 의무이고 책임이다. 우리 아이들을 동정의 대상에서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당당한 인격체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의 장애아들을 돈 몇 푼 접어주면 되는 동물쯤으로 추락시키지 말자. 또한 장애아 문제를 다루는 수많은 모임이나 단체도 구걸의차원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수학교도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봄 소풍도 가고, 가을운동회도 개최한다. 우리 엄마들은 음식을 준비해 가서 먹으며 얘기한다. 일반학교 학부모들을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우리 특유의 공감대를 가지고 서로들 하소연도 하구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럴 때 꼭 빠지는 엄마가 있다. 학교에 와서도 자기는 뚝 떨어져 있곤 자기 아이에게도 될 수 있으면 다른 애들과 어울리지 않게 하려고 한다. 나는 이상하여 그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아이는 잠시 지체될 뿐이지 절대로 정박아가 아니에요. 그러니 바보들과 같이 놀아서는 안 되지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나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잠간이나마 그게 사실이라면 부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는 그대로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홍주만 못하다. 그러니 그 기간 동안 그 엄마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으며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겠는가. 장애아를 둔 부모는 현재 아이의 상태를 곧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시기가 빠를수록 서로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매스컴에 여러 차례 특수학교와 장애아 시설을 건립하는 데 주변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어렵다는 보도가 있다. 이유인즉, 주위의 땅값 하락과 자식들의 교육을 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일반 사회인들이 우리 장애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결과라고 여겨진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는 특별한 부류가 아니다. 나쁘게 선택된 게 아니다. 어제의 정상아 엄마가 오늘의 장애아 엄마가 될 수도 있고 내일의 장애아 할머니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모든 정상아 부모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는 매스컴에 있는 게 아니다. 현재의 장애아 부모들에게 있다고 본다. 우리장애아 부모들은 사회를 향하여 스스로 벽을 쌓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한 수 위에서 사회를 설득시키자. 이러한 과정에서 매스 미디어들의 협조를 얻으면 기간이 단축되리라 본다.
  모든 장애아와 정상아들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이는 절대로 가능한 일이다.

이영애씨는 서초구 방배3동에 사는 주부이다. 딸 홍주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작성자이영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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