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의 연작소설 5] 우리들의 황제를 위하여..
본문
전염병이 발생한 지역처럼 외부의 발길이 딱 끊겼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균자처럼 고립되어 있다. 그곳은 장애인 복지의 로마였었다. 모든 일들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흉가 아닌 흉가가 되었다. 그곳 주인은 로마 황제와 비슷한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 모두를 잃은 미미한 존재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성역이 로마이고 자기가 황제인 줄 안다. 그것이 성역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고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건만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그 곁에서 그를 황제로 모시는 아첨꾼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첨꾼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를 여전히 황제로 대접해주었다. 관습, 인정 또는 동정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오랫동안 황제였다. 그가 황제가 된 것은 그가 선봉자였기에 얻은 프리미엄이었다.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인 아득한 첫날에 장애인 복지를 위해 깃발을 세웠다. 그 깃발 이전에도 장애인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 자선 사업가들이 많았지만 그는 일격에 그들을 모두 밀어낼 수 있었다.
그는 대장으로서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우선 그는 장애인이었다. 장애인 관련 시설이나 단체의 장은 모두 덕망이 있는 또는 돈이 많은 그래서 한없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타나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알 수 있다는 논리를 펴 그들을 꼼짝없이 무릎 꿇게 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의 화려한 배경이었다. 그의 부친은 법조인이었고 그는 의과 대학을 나온 의사였다.
지금도 의사라고 하면 알아주는데 그 당시는 끔뻑 죽는 시대였다. 그런데 그가 의사의 가운을 벗고 장애인 복지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했으니 혜성 같은 존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의 장애인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가정에서까지 버려진 완전한 시혜의 대상이었는데 그는 귀족적인 엘리트였다. 문제의식이 뚜렷했던 그는 문제제후를 서슴지 않고 해 관계자들을 쩔쩔매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바야흐로 그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장애인 하면 무조건 그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애인이었다. 그는 장애인에 관련된 문제는 무엇이나 다 풀 수 있는 해결사였다.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장애인의 대부(代父)라는 타이틀로 그의 얼굴이 실렸다. 그는 정말 장애인의 대부였다. 곧 황제였다.
장애인들은 그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를 한번 만나보는 것이 꿈인 아이들도 있었다. 그가 손을 잡아주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성은을 받은 듯이 감격해했다. 그런 그가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건 있을 수도 없는 반란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반란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 반란을 미리 알려준 제보자도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란군들은 다름 아닌 자기를 가장 존경하던 아이들인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들이나 두어 번 두들겨주고 오래간만에 소주라도 한잔 사주면 마음이 풀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무방비한 상태로 그냥 있었다. 외출을 하려다가 참았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오면 "어서 와라"라고 반갑게 맞이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한 것을 보면 그들의 방문이 그에게 부담을 준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회-회장님, 크-큰일났어요."
직원이 새파랗게 질려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거사 예정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자 그는 심심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해서 회장실에서 나와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권위라곤 10원어치도 없는 남자였다. 그것이 자상함이 나 소박함으로 비칠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인 평은 가볍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유를 부렸다.
"알고 있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유히 걸어갔다. 그런데 회장실 앞에 갔을 때 그 여유는 싹 사라졌다.
긴 몽둥이를 든 아이들이 문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는 그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던지며 문지기 앞을 통과했는데 직원이 따라 들어가려고 하자 제지를 했다. 그래서 그 혼자 들어가게 되었다.
문을 연 순간 그는 너무나 기막힌 광경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반란군들이 서랍과 서류함을 모두 헤집어 놓았다. 감히 자기 물건에 손을 대다니 피가 끓어올랐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그는 있는 대로 고함을 쳤다. 하지만 아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반란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쪽저쪽 둘러보니 엉망진창이었다. 벽에 걸렸던 액자들이 죄다 바닥에 떨어져 유리가 깨어진 채 널려 있었고 그 벽에 대자보가 붙어 있거나 빨간색 페인트로 자기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이름 옆에 "-퇴진"이라는 글씨가 그의 심장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대자보에는 그의 비리 백서가 1항부터 10항까지 나열되어 있었다. 그 하나하나를 침착하게 읽을 수는 없었는데 친절히도 중요한 부분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그 내용은 부정 축재와 공금 횡령, 그리고 복잡한 여자관계 등이었다.
전혀 자기 얘기 같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자기와 상관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내용이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반란군을 어떻게 해서든지 진압시켜야 했다. 그는 우선 앉았다.
"누가 시켰니?"
"장애 민중이 시켰습니다."
"이건 음모야. 날 시기하는 자들의 계획적인 음모라구."
"회장님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음모가 아니라 자연 현상입니다."
반란군 대장은 제법 위압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저 비리 백서 누가 제보한 거야?"
"우리들 사이에서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전에 양심을 먼저 보여주십시오."
"뭐 - 뭐 라고?"
아무리 긴 시간 예기를 해도 통하지 않자 그는 화를 내며 나와 버렸다. 그는 나오면서 반란군들을 향해 소리쳤다.
"남들이 알면 병신 육갑한다고 해. 알겠니?"
그는 이 사건을 되먹지도 않은 것들이 운동권 흉내를 내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남이 장에 간다니까 무릎팍에 망건 쓰고 나오는 모방 정도로 받아들였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설명을 하고 다녔다. 그 설명의 대략의 줄거리는 이러했다.
"내가 부정 축재를 했답니다. 아니 이 바닥에서 주울 게 뭐 있습니까. 수용 시설이라면 몰라도 우리는 이용 시설이라 장애 아이들 미끼로 장사할 것이 없어요. 그리고 횡령이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보사부 지원 가지고 살림 꾸려 나가기가 얼마나 빠듯한데 횡령할 것이 어디 있어요? 그저 위턱 빼서 아래턱 괴고 하며 없는 살림 꾸리느라 머리가 다 세었는데 그게 횡령이래요. 말 같지도 않아서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뭐 여자관계가 복잡하대나요. 아니 성한 사람은 바람 피워도 되고 장애인은 바람 피워서 안 된다는 법 있어요? 장애인 일하는 게 성직자는 아니잖아요. 여자 있는 집에 가서 술 마실 수 있잖아요. 나 정말 이럴 줄 몰랐어요. 그래도 난 하느라고 했어요. 내가 당한 아픔이 너무나 커서 후배들에게만큼은 그 고통을 물려주지 말자고 이 일을 시작한 건대 애들이 몰라도 너무 몰라요.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의사 노릇했으면 지금 떵떵거리고 살 거예요. 내가 바보짓을 했지."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사건 경위를 죽 설명하면서 이 말을 빼놓지 않고 했다. 사림들은 그 앞에서 "그럼요, 그럼요, 고생 많이 하셨죠. 그럴 수는 없는 거죠." 하면서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로는 "내 그럴 줄 알았어. 너무 설친다 했어." 라고 고소해 했다.
그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반란군들하고 대화를 나누려하지 않고 바깥에서 지지군단을 만들어 몰아내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공전되었다. 반란군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었다. 협상이란 것이 없고 무조건 자기네 주장만 했다. 그의 퇴진만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반란군들이 유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리해져 갔다. 큰 무기로 작용했던 비리 백서도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관계로 조작 시나리오로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고 반란군 내부에서도 너무나 지쳐 하산을 하는 사람이 하나 둘씩 생겨 수적 줄어들자 힘을 잃어갔다. 특이나 시간을 질질 끌자 바깥세상의 관심이 희석되어 구경꾼들이 없어져 가는 것이 더 전위를 상실케 했다. 반란군들은 명분만 찾으면 당장이라도 사건을 매듭지을 생각이었지만 황제도 명분을 세워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반란군들이 스스로 걸어 나갈 때까지 그대로 방치해 둘 생각이었다.
바로 그런 과정에서 장애판에 뚜렷한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반란군들을 지원하는 세력과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이 형성되었다. 물론 그 둘 사이를 왔다가며 하며 유리한 쪽을 계산하는 자칭 중간계층이 있었다. 우익 좌익 하는 단어가 공공연하게 오고갈 전도로 파가 갈라졌다. 아주 심각했다. 반란군 측에서는 자기네들이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를 이끌어가고 있고 이끌어갈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황제 측에서는 쥐뿔도 모르는 녀석들이 생떼를 부린다고 무시해 버리고 뭐니뭐니해도 장애인 복지는 황제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장애인의 적은 성한 사람들이었다. 장애로 인해 받는 설움이 성한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한 사람들과 싸워 이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설움들이 조금씩 없어지자 적이 바뀌었다. 지네들끼리 주도권 싸움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싸움은 모양새가 정말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었다. 새우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고 잔챙이 싸움에 거목들이 흔들렸다.
황제에 이어 장애판에서 힘 왜나 썼던 사람들이 하나씩 발가벗겨져 망신을 당했다. 모두 돈과 남녀 관계가 주요 메뉴였다. 그런데 거목들의 특징은 뻔뻔하다는 사실이었다. 발가벗겨져 그런 대로 추한 부분이 많이 노출되었는데도 얼굴을 똑바로 쳐들고 다녔다. 역시 거목이구나 싶을 만금 잘도 견디어냈다. 피해를 보는 것은 잔챙이 바로 위에 있는 개구리였다. 한번 껑충 뛰어 보려고 잔챙이한테 붙어 일을 도모했었는데 뛰나 싶더니 곧 잡혀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있는 대로 난도질을 당하고 쫓겨났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은 장애인의 "장"자만 들어도 불쾌해 했다.
사회 복지나 특수교육을 전공하여 나름대로는 뭔가 해보려고 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장애인과 원수가 된 것은 장애판의 큰 손실이었다. 꼭대기와 바닥은 있는데 가운데가 텅 비어 기형적인 모습으로 남게 했다.
그런 싸움 때문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장애인들이 풍년 속에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다. 뭔가를 준다고 잔뜩 떠드는 것은 들었는데 아무 것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것은 장애인 복지를 맡은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바로 잡아보고자 하는 움직임도 일기는 일었지만 이미 깊이 파인 두 파 사이의 골을 메우지 못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이런 기현상 속에서 막강한 세력이 출현했다.
그는 새로운 황제를 노리는 사나이였다. 그러나 황제하고는 아주 달랐다. 황제가 문(文) 출신이면 그는 무(武) 출신이었다. 그래서 스타일 딴판이었다. 그는 염치도 눈치도 없는 사나이였다. 그는 중도에 산업재해로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장애를 팔자가 아닌 국가적 책임 문제로 생각하기에 아주 당당했다. 그는 장애인 왕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권력층은 모두 장애인이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로, 장애인 복지를 앞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촌스럽게 만들고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따로 살자는, 더 후퇴한 장애 복지론을 들고 나왔다.
이론에서 지면 그는 큰 소리로 "당신네들은 장애인을 몰라. 장애인만이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어"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성하다는 죄로 그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반박하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가곤 했다.
장애판이 아주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과도기라고는 해도 너무 안타까운 현상이 많아 장애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숨을 지었다. 하지만 그 한숨 역시 순수한 것인지는 하늘만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황제가 독주하던 시절에는 그래도 평화로웠다. 황제 이외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황제를 망나니로 만들었던 것이다.
황제는 언제까지나 독주하리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게을렀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황제에게 붙었던 해결사라는 별명이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제가 생기기를 기다리고만 있는 듯했다. 그리고 황제의 또 다른 실수는 해결사로 나서준 대상이 주로 상류층이고 개인적인 문제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입학 거부나 임용탈락, 입사 불능 등의 문제를 주로 해결해주었는데 그런 엘리트 계급들은 이기적이라 문제만 해결이 되면 두어 번 인사를 온 후 자기 생활에 빠져 자기만을 위해 살았다.
그래서 하나의 힘으로 모아지질 않아 황제를 보좌해주지 못했다. 황제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를 보좌해주기 위해 나타난 녀석들은 그를 진정으로 위해서 그만을 위한 작전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황제를 써먹기 위한 작전을 세워 주었다. 그것이 그를 두 번 죽게 했다. 황제를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연설을 할 때 온 국민의 가슴을 뒤흔들어 그를 용서하게 만들었던 말-국민이 원하면 언제라도 떠나겠다는 더욱 멋있게 각색하여 "너희들을 위해 횐 가운도 벗었는데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인들 못 버리겠니"라는 것으로 반란군들이 제시한 명분 세워주기에 대응하라고 충언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황제는 꿈에서라도 황제 자리를 내놓는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그 충언은 오히려 배신으로 받아들여졌다.
황제의 손길 아래에서 황제의 자식들처럼 지내던 사람들은 어느덧 뿔뿔이 다 흩어졌고 게다가 서로 반목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바로 이런 일들 때문에 복지관이 방역지역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만 남으면 찾아가던 사람이 발길을 딱 끊었으니 말이다. 황제는 사람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다. 그리고 황제는 귀족 계급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 것이 실수였다.
황제는 같은 귀족만 좋아하고 서민이나 영세민은 싫어한다는 소문이 언제부터인가 황제 주위에서 심심지 않게 일어났다. 다시 말해 황제는 민중 속에 깊이 자리하지 못했다. 진정으로 돌봐야 할 대상들을 내팽개쳤던 죄값을 그는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 나름대로 그에 대한 변(辯)은 있다. 조금만 잡아주면 금방 일어날 수 있는 사람 먼저 구제해 주어야 그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도 맞는 말이긴 했다. 다만 그 역할을 너무 오래 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노력이 있었더라면 그는 정말 역사에 남는 황제가 췄을 것이다.
그런데 황제의 그런 실수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조금씩 죽이고 있다. 황제는 반란군을 그리고 반란군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증오에 찬 눈동자로 바라보며 복수를 할 꿈을 꾸고 있다. 자기가 당한 만큼 그대로 똑같이 당해보고 자기한테 와서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그의 복수 방안이었다.
이렇게 가슴속에 증오와 복수를 가지고 있기에 그의 얼굴은 항상 굳어 있고 냉기가 돌았다. 이제 황제는 장애인을 위해 부정(父情)을 쏟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장애 어린이들은 아직도 그에게서 그런 사랑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는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다. 반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들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황제는 모르고 있었다. 황제는 순진하게도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마음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말을 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었지만 그것 역시 모르고 있었다.
황제는 아무 일도 안하고 방관하며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나나 되니까 해냈지. 너희들은 못한다"는 식으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기는 따라오지 못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황제에게 또 다른 재난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했다.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정말 꼴값을 떨고 있어. 무식한 사람한텐 대책이 안 서. 나 원 참,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장애인이 된 것이 무슨 큰 벼슬이라고 말끝마다 장애인 장애인, 크기 전에 잘라냈어야지, 내 말을 안 들으니까 이 모양이 됐지,"
황제는 자기 문제에는 어두워도 다른 상황 판단은 빨랐다. 그래서 이런 걱정을 했다. 장애인 복지에 갑자기 뛰어든 사나이를 무척 경계했다. 그는 여태껏 경계를 해본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은근히 질투를 하고 있었다. 같은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 그 사나이는 질투를 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나이는 그가 신경을 써야 할 대상이긴 하다. 그는 황제보다 장애가 더 심했는데 그것이 이쪽에서는 아주 큰 장점이었다. 게다가 민중적이 어서 동원 능력이 뛰어난 수완가였다. 또 돈도 있고 뒷배경도 있어서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에겐 경험과 경력이 짧은 것이 큰 단점이었다. 황제는 바로 이 경력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났다. 자기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이쪽에서 일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이론과 실제는 다릅니다. 제가 해보니까요‥‥‥‥"하면서 경험을 자랑했다. 그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긴 해도 경험만이 최고라는 황제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론가들이 무섭게 등장하고 있을 뿐더러 그의 경험의 대부분인 호소하는 방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할 만한 이론이 있고 그 위에 퍼스낼리티가 작용을 하지 무조건 얼굴 하나만 달랑 가지고는 먹혀들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과거 속에 빠져 있었고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황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밑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기 위로 올라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기와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는 쉬지 않고 과거 얘기만을 했다. 그 과거 얘기는 하나 같이 자기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 얘기가 끝나면 반란군에 대한 얘기로 이어갔다.
"차라리 성한 사람들한테 당했다면 이렇게 참혹한 기분은 아닐 거야. 어떻게 지네들이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구. 후레자식들이지."
"내 앞에서 머리 긁적거리며 애교를 있는 대로 부리던 아이들이 안면을 바꾸는데 정말 무섭더라."
"설사 내가 죽을죄를 지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나한테 얘기 한마디 없었다니까."
"그 따위로 처신을 하니까 사람들한테 욕을 먹는 거야. 나도 아픈 사람이지만 욕을 먹어 싸. 뭘 믿고 그렇게 기세가 당당한지 정말 알 수가 없어."
황제에게 반란은 큰 상처였다. 황제에게 뿐만이 아니라 장애 판에도 큰 상처가 되었다. 황제가 자기 역할을 못했다 할지라도 그가 평생을 바쳐 해온 일에 대한 평가는 있는 것이 당연한 과정일 텐데 그 과정 없이 문제점만을 충분한 분석 없이 터트린 것은 공로자와 선배로서 의 위계질서를 잡는데 혼란을 일으켰다.
장애인 쪽에서는 존경받는 선배가 영원히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평생을 변함 없이 바치겠다는 의욕도 줄어들지도 모른다. 출발할 당시의 그는 아주 순수했고, 약간 변질이 되었더라도 그래도 아직은 순수한 사람이 황제인데 그 순수성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이제 정말 의무적인 직업인만이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황제와 반란군 사이의 싸움은 겉으로는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반란군들은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말하겠지만 그들이야말로 실패했다. 아무 것도 이루어 낸 것이 없으니 말이다.
황제는 황제대로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황제 자리를 지킨 것으로 승리를 결정할 수 는 없다. 진짜 패자는 황제인지도 모른다. 황제의 과거가 짓밟히고 황제의 현재가 추락했으며 황제의 미래가 불분명하니 말이다.
아무튼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양쪽에서 열심히 작전을 짜고 있다.
"털어도 털어도 법적 하자는 없습니다. 무시해 버리십시오. 그리고 공인이기 때문에 개인 적인 의사로 거취 문제를 결정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은 무식한 자식들이에요. 반기를 들었던 직원들부터 한 명씩 한 명씩 가지치기를 해가세요.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서서히요. 그리고 이 문제를 시기하는 세력에서 아이들을 앞세워 일으킨 반란으로 규정지어 야 합니다. 아니 또 실제로도 그렇구요. 알만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너무 다정히 대해주지 마세요. 그것들은 잘해주면 기어오른 다니까요. 권위를 세우셔야 합니다."
이런 작전 때문인지 황제는 지나치리만큼 근엄해졌다. 그리고 모든 결정을 보류하는 신중파가 되었다. 신중함이 지나쳐 무능함이 되어갈 정도였다.
또 한쪽에서는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그가 망신당한 횟수와 그 정도를 일지로 작성하고 있었다. 뭔가 있을 줄 알고 멋진 주먹을 날려보려고 했었지만 비리를 찾아내는 데도 돈이 들었고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뭔가가 있을 것이란 확신은 있지만 실질적인 물증을 잡아 내지 못해 기껏 한다는 것이 황제의 겉모습을 탐지하여 작은 지면에 추측 기사를 쓰는 것으로 대응했다.
반란군 내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수뇌들이 떠나 반란 당시의 팽팽한 분위기가 많이 없어졌고 이미 전향을 하여 저쪽으로 붙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변이 일었다. 큰물에서 한가닥했던 사람이 자기도 장애인인 이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뛰어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싸움은 고단수의 비인간적인 유혈전이 예상된다. 그런데 한 가지 묘한 것은 아직도 황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첫정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황제와 장애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끈이 있었다.
장애인 을 사람만 모여도 황제가 화제에 올랐다. 소주병과 몇 점 안 되는 돼지고기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술자리에서였다.
"우리는 그를 죽여선 안 돼. 죽일 필요도 없고. 그를 더 높은 곳에 근사하게 모셔놓고 실질적인 일은 새 세대가 하는 그런 구도였어 야 해."
"정말 안타까워, 어떻게 그 상황까지 갔지 ? 이건 악순환이야. 앞으로 계속 죽이고 죽고 그러겠지."
"누구를 위해서이지? 그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새 세력을 위해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장애 민중을 위해서인가?"
"흥. 장애 민중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그 구호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돼. 자신 있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해."
술기운에 흔들거리는 것인지. 장애 현실에 비틀거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몹시 불안정한 자세로 흐트러져 있다.
"자, 자, 정신 차려. 우리까지 이러면 안 되지. 자, 건배를 하자구."
누군가 외쳤다.
"사람답게 사는 그 날을 위하여."
"시끄러. 바로 그런 낭만주의적 감상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된 거야. 뭐 좋은 것 없니?"
"장애 해방을 위하여."
어디에선가 선창이 뛰어나왔다.
"야야, 그만 해. 그런 현실주의적 몽상 때문에 또 우리가 당하고 있는 거야. 뭐 좋은 거 없어. 쌈박한 게 좀 없냐구?"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황제를 위하여. "
"그래, 좋다. 바로 그거야. 자! 우리 건배합시다. 우리들의 황제를 위하여."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어 한과 설움과 아픔을 토해냈다.
"우리들의 황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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