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의 연작소설] 완전한 반(2)
본문
누가 봐도 그는 천사 같은 남자이다. 장애가 심함 증증장애인만을 골라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투자했다. 축 늘어진 사지를 부추겨 안아 휠체어에 태우고 언덕이든 계단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장애인에게 세상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는 주로 그런 봉사를 했다.
장가도 안 가고 돈도 안 벌고 오직 장애인의 손과 발이 되어주며 사는 그는 바보 아니면 천사였다. 그는 장애인 복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흥분을 한다.
"그느므 새끼들 말야, 몽땅 죽여야 해. 지네들도 언제 병신 될지 모르면서 병신 알기를 우습게 안다니까."
그는 장애인편을 들어 말을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본인들은 그가 자기편이 아닌 다른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한 공적 때문에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누군가 한번 말을 조심해야하지 않겠느냐고 충고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이렇게 취지를 설명했다.
"난 말입니다. 그들을 진짜 병신이라고 생각했으면 장애인들 앞에서 그런 소리 못하지요. 난 그런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왜 그들 앞에서 조심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오히려 벽을 쌓는 일이에요. 장애인들도 병신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래야 일어설 수 있어요."
그 말은 아주 지당했다. 적어도 이론적으론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장애인들은 그것을 이렇게 해석을 했다. "병신 알기를"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이미 병신을 우스운 계층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언제 병신 될지 모른다는 것도 병신이 되면 나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 앞에서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말을 안 했지만 그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완전한 자기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저 부려먹기에 적당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헬렌켈러에게 설리반 선생이 있었기 때문에 삼중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듯이 장애인에게 그가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바깥 세상 구경도 하며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정말 좋은 일 하십니다."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정말 복 받을 거예요." 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칭찬을 본인 앞에서 특히 장애인 앞에서 하는데 그럴 때 그는 당연히 할 일을 할 뿐이라고 겸양을 부리지만 장애인들은 죽을 맛이 된다. 그것이 장애인의 위치를 추락시켜 도움이나 받아야 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한번 당하고 나면 고마운 생각이 싹 가신다. 너는 나 때문에 칭찬 받았지 않았느냐는 반발심이 생긴다. 천사로 만들어주는데 무슨 공치사냐고 대들고 싶어진다.
그래서 장애인과 일반인 사이의 벽은 무너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늘 하소연한다.
"전 말입니다. 그래도 도와야겠다 싶어 뛰어들었어요.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난 정말 행복하구나 싶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을 나누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여기서 돈이 생깁니까. 그렇다고 명예가 올라갑니까. 전 정말 순수해요. 아무런 욕심이 없다구요." 그가 이런 말만하지 않았어도 그는 정말 순수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늘 돈도 명예도 생기지 않는 일을 오직 장애인을 위해서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장애인을 보고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는 것도 사실이었고 돈도 명예도 생기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의심을 받는 것은 너무나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고,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장애인들이 자기 아니면 당장 쓰러질 것처럼 말하고 이 세상에 자기가 모르는 장애인은 없는 것처럼 얘기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장애인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몇몇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처음 몇 년 동안은 통했다. 어리숙했고 범위도 좁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조직이 커가면서 그가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몹시 자존심 상해했다. 자기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는 독점력이 강하고 소유욕이 지나쳐 그하고 1시간 정도만 이야기를 나누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공통으로 집어냈다. 그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 욕심 때문에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해냈다. 그는 자기가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은 들지만 그렇게 하면서 잘난 척을 하는 맛에 그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번은 장애인 주최 행사가 있었는데 그는 그 주최한 사람을 행사장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갔을 뿐인데, 그 사람은 한쪽 구석에 밀어놓고 자기가 주최자가 되어 웃기지도 않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그의 단점이었다. 장애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뒤에서 보조해주지 않고 자기가 항상 한 걸음 앞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모일에 참석하였을 때 모임 분위기를 자기가 이끌어가며 휘어잡아야 그 모임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그렇지 않고 자기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거나 무시되면 여지없이 악평을 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남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면서도 자기 잘못은 누가 지적을 하는 것도 언짢아했고 그 지적에 인정을 하지도 않았다. 항상 그릴 수도 있다는 식이었다. 남은 그릴 수 없으면서 자기는 그릴 수 있다는 아주 이기적인 논리로 사람들에겐 인심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약속을 철저히 지켜 신용이 있었다. 대개 봉사자들이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아 약속 시간보다 앞당겨 시간 약속을 하는데 그에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봉사 요청이 들어오면 파송나갔다. 그는 마치 불을 끄러 가는 소방관 같았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움직였으니 말이다. 또 그는 봉사를 하는 동안은 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다른 봉사자들은 시계도 보도 전화도 걸고 다른 봉사자들과 얘기도 나누고 약간은 짜증스럽고 불만스런 표정을 짖곤 하지만 그는 봉사를 나오면 일단 그 사람의 완벽한 보호자가 되었다. 뒤로 물러나서 끝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해서 시간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늘 환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고마워하면서도 장애인들은 그의 성실함에 부담을 꼈다. 그런 부담이 배부른 소리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장애인이 원하는 참 봉사의 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가 많은 장애인을 돌보는 대신 한 명의 장애인을 돌봐주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활동을 끊고 한 사람을 선택하면서부터 발생했다.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장애인들에게는 배신이었다. 그래서 그의 행동에 화살이 꽂혔다. 그가 설리반 여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고 했고 그가 그 여자한테 홀딱 빠져서 그려는 것이라고도 했다.
둘 다 타당성이 있었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처녀인데 입에 붓을 들고 그을 그렸다. 사지마비가 된 후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고 교회 지하실 방에서 시체처럼 살고있었다.
그녀는 무척 미인이었다. 사지가 마비되어 축 늘어진 채 누워있지만 그녀의 얼굴만큼은 미스코리아를 뺨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딱한 사정에 그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그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었고 그녀의 재능을 살려주면 그녀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해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다만 그는 남자이고 그녀는 여자라는 사실이 그들을 남녀의 관계로 규정지었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데는 그녀의 미모와 유혹적인 화술이 크게 작용했다.
아무튼 그들은 한 집에, 아니 한 방에 살았다. 흔히 말하는 계약 결혼 형태였지만 그들이 부부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의사, 그것도 재활의학과 의사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그의 얼빠진 봉사로 받아들였다.
그는 그녀의 완전한 손과 발이었다. 그녀가 침대에서 눈을 뜨면 세숫물을 갖다바쳐 얼굴 씻어주고 양치질을 해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얼굴에 화장까지 해주었다. 그녀는 얼굴에 화장을 꼭 하는 성격이었다. 눈썹도 아주 굵게 그리고 입술에는 반드시 빨간색 루즈를 발랐다. 눈 화장에도 주문이 많아 그녀를 화장시키는 일로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그리고 아침밥을 지어 그녀가 좋아하는 반찬까지 만들어서 밥상을 쟁반에 차려 그녀 앞에 놓고 입에 일일이 떠 넣어 주었다. 그녀가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그는 자기 식사를 했다. 그녀가 남긴 밥을 긁어먹고 그만 둘 때가 많았다. 하루에 세끼 식사가 이렇게 반복되었다.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뽑아내는 것도 그가 해결해주었다. 하기스를 채워주는 일, 관장시켜 대변을 쉽게 보게 하는 일, 남이 하기엔 가장 더러운 일까지 그가 도맡아했다. 그녀 하체는 많이 골아 있었지만 까만 음모(陰毛)는 힘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손길이 닿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없었지만 그는 손끝이 음모에 닿을 때마다 남근(男根)이 뻐근해 왔다. 그는 적어도 하루에 세차례씩 이런 고통 아닌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봉사 활동을 한답시고 연애 한번 못했던 그로서는 처음으로 여자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소·대변을 받아내는 일이 즐거웠다. 그녀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아 휠체어에 앉혀야 했는데 그 일 역시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그녀를 안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온 몸이 축 쳐져있기 때문에 무척 무거웠지만 그는 정말 힘든 줄을 몰랐다.
그는 그녀가 미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명한 화가를 그녀의 독선생으로 모셔왔다. 장애인을 돕는 일을 마다할 만큼 염치없는 명사는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 끈질기게 부탁하여 한 달에 한번씩 집으로 와서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자주 못 오는 대신 숙제를 내주기 때문에 낮에는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는 옆애서 먹을 갈아 붓에 찍어 입에 물어주는 일을 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그녀를 침대에 뒤이고 몸이 굳지 않도록 운동을 시키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났다. 침대아래 바닥에 요를 깔고 누우면 온몸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침대 위에서는 온몸에서 살이 붙는 소리가 들렸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배설도 아무렇게나 흘리고, 하루 종일 천장을 보고 누워서 생을 비관만 했었기 때문에 눈뜨고 볼 수 없는 몰골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행복했다. 이린 행복을 누리게 될 줄 몰랐었다. 그가 한없이 고마웠다. 그가 자기 곁에 영원히 있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목욕을 했으면‥‥‥‥"
그녀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목욕? "
"네. 병원에 입원해 일을 때는 그래도 목욕을 가끔 했었는데 그 후는 목욕을 한번도 못했어요. 물수건으로 닦기만 했지."
그는 그제야 그녀를 목욕시킨 일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목욕시킬 계획을 세웠다. 대중탕에 데려가서 때밀이 아가씨한테 부탁을 해볼 까도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집에서 자기가 씻길 수밖에 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는 큰 고무다라이를 샀다. 그리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정말 큰 행사였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통 속에 넣기 위해 옷을 벗기려 했을 때 그녀는 약간 난색을 표했다.
"괜찮아 임 마."
그는 자원봉사를 할 때 많이 쓰던 "임마" 소리를 오래간만에 했다. 낯선 사이를 가깝게 하는데 가장 좋은 단어였다.
그런데 막상 젖가슴이 드러나자 괜찮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은 탄력이 있어 보였다. 그녀의 가슴이 저렇게 컸었나 싶을 만큼 잘 부풀어 있었다. 그는 그녀를 그 어느 때보다 가기 가슴에 바싹 붙어 안아 물통에 넣었다.
몇 년을 묵은 때인지 굵은 때가 국수처럼 밀렸다. 미안했던지 그녀는 계속 "때 정말 많죠?"라고 물었다. 때가 물을 불투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가슴을 흘깃 흘깃 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가슴을 밀며 원 없이 만져 볼 수 있었다. 등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본능을 내리누르느라고 그는 어금니를 꼭 깨물고 있었다. 그녀가 묻는 말에 그저 짧게 "응" 정도로 대답했다. 어금니를 떼면 본능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것 같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사히 목욕을 다 마치고 침대에 누이고 큰 수건을 덮어놓았다. 물기가 다 말라야 옷을 입히기 편하기 때문에 물통부터 치우기로 했다. 그가 뒷설거지를 다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울고 있었다. 베개 닢이 흥건히 젖어 있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왜 그래?"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계속 흐느꼈다. 그는 겁이 났다. 자기의 검은 마음이 들통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래서 계속 이유를 물었다.
"내 몸이 그렇게 형편없어요? 알몸을 보고서도 여자로 느껴지지 않아요? 정말 내가 그렇게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여자예요?"
그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대신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덥석 물었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리듬이 있는 키스를 구사할 능력도 없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거칠고 멋없는 키스가 되고 있었지만 황홀했다.
그 순간 이후 그들 관계는 봉사자와 장애인이 아닌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때도 없이 입맞춤을 했고 밤에 나란히 누워 부부처럼 잠을 잤다.
그녀는 이제 미안함에서 벗어났다. 그가 자기 곁을 떠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전과는 달리 무엇이든지 당당하게 그에게 요구를 했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다만 한가지 그를 위해 밤에 여자가 할 일을 못해주는 것이 늘 미안했다. 그래서 그녀는 입술과 혀, 그리고 이빨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그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몹시 힘이 들었다. 특히 그림을 많이 그린 날은 하루 종일 붓을 물고 있었기 때문에 입술과 잇몸에서 피가 흘러 도저히 봉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이해심도 많고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그 일에서만큼은 참을성도 없고 이해심도 없었다.
하루는 너무 힘이 들어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아래로 한번 해봐요. 막히진 않을 거예요."
그는 그녀가 화가 나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은 모르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아래로 위치를 바꾸었다. 그 육중한 몸을 종이에 그린 것 같이 않게 퍼져 있는 그녀 몸 위에 얹었다. 그녀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팔굽혀펴기 형태로 기어코 그 일을 행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그는 정말 하는 것 같았다. 그 전에는 잔뜩 키워놓고 자기 손으로 그것을 죽이느라고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공연히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지 이렇게 해보면 안 될 것도 없었다. 그녀도 자기가 해냈다는 자부심에 한껏 행복했다. 이제 그에게 꿀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그것도 있는 대로 퍼부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욕심이 생겼다. 그가 다른 남편들처럼 돈을 벌어왔으면 싶었다. 사실 생활이 어려워 돈이 필요하긴 했다. 그래서 그는 하루 품삯 노동 일에 가끔 나가게 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해놓고 나가면서 주인집 할머니에게 그녀를 가끔 들여다 봐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하고 나갔다. 나가서도 내내 그녀 생각만 했다. 대포 한잔하자는 권유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밀린 일을 해야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빨리 일을 하고 그녀와 사랑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피곤할 줄도 모르고 몸을 움직였다. 일을 다 마치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면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 오세요. 하루 종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그녀처럼 달콤한 키스를 할 수 있는 여자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키스를 할 때 중간 중간 말을 했다. 옛날에 다른 여자들과 키스를 할 때는 그렇지가 않았다. 정열적이고 짧게 끝났다. 그런데 그녀는 가장 무르익어 갈 때 혓바닥을 쏙 뽑아가 아름다운 시어(詩語) 같은 말을 귓속에 넣어주었다. 그것은 그녀의 성적(性的) 부족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시어들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가 다가가면 땀 냄새난다고 씻고 오라고 호통을 쳤다. 처음에는 땀 냄새가 좋다고 씻지 말라고 하며 그의 땀 냄새를 맡기 위해 그의 몸 구석구석에 코를 갖다대며 코끝으로 자기를 간지러피던 그녀였는데 그 냄새가 싫다고 했다.
그가 그녀 위에 올라가려고 하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고 핑계를 댔다. 어느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강행을 하면 짐승 같은 놈이라고 욕을 했다.
급기야 그녀는 그가 옆에서 누워 자는 것도 싫어했다. 코를 골아서 잠을 한숨도 못잤다고 그를 바닥으로 밀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이런 제안을 했다.
"취직을 해요."
"당신은 어떡하구."
"파출부 두지."
"요즘 파출부 값이 얼마나 비싼데 벌어서 파출부 값 대기도 힘들걸."
그녀는 속으로 돈 많이 못 버는 병신이라며 그를 욕했다. 하지만 것이 현실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그녀의 생활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림을 가르쳐주는 선생님 덕분으로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고, 그 그림을 손이 아닌 입으로 그렸다는데 대해 사람들은 그것이 기적이라 칭송했다. 급기야 그녀가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는 이제 꿈을 이루게 되었다고 환성을 질렀다. 그가 원하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정말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그것은 그에겐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진심으로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주겠다는 여자도 있었고 그녀가 아무 걱정 없이 그림만 그릴 수 있도록 재정을 후원해 주겠나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그보다 훨씬 나은 것처럼 보였다. 공부도 많이 했고 매너도 있었고 풍기는 멋이 그와 달랐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그의 존재였다. 어떤 사이냐고 묻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친척 오빠라고 하고, 고마우신 자원봉사자라고도 했지만 사람들 눈을 속일 수가 없었다. 모두 이상한 사이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이 오면 그가 그녀 앞에서 사라져주기를 원했다. 그가 없으면 분위기가 자유로운데 그가 있으면 어색해지고 딱딱해지기 때문에 그가 정말 귀찮았다.
손님들이 왔다 가면 영락없이 싸움을 했다. 서로의 태도에 대해 비난하는 싸움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자기를 왜 떳떳하게 남편이라고 소개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질투를 하는 것이 우스웠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자기를 소유하려고 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녀는 그가 점점 싫어졌다. 그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그를 향해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며 차가운 언어로 그가 물러서도록 했다. 그가 다가오려고 하면 침을 뱉었고 그래도 억지로 그녀의 입술을 빼앗으려고 하면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도 알았다. 더 이상 그녀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드디어 그가 손을 들고야 말았다.
그의 이사 가방은 아주 작았다. 팬티, 러닝 셔츠, 양말, 티셔츠, 청바지, 책 몇 권, 그게 진부였다. 자기가 처음 그 방에 들어설 때와 똑같은 품목이었다. 그 옷가지들이 낡았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자가 되어 있었다. 살림도 많이 늘었고 통장에 현금도 들어가 있고 그녀 얼굴에 기름진 살도 붙어있고, 더군다나 명성까지 얻었다. 또 그녀가 아무 부담 없이 일을 부릴 아가씨까지 있었다. 그녀는 그 사이에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그는 착잡한 기분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지만. 당신을 위해 해야겠어. 당신 키스는 일품이야.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해. 하지만 섹스는 잼뱅이야. 고무 호스일 뿐이야. 앞으론 키스만을 허락하라구. "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그 뒤통수에 대고 쏘았다.
"병신 같은 놈."
그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계속 되뇌고 있었다. 그러면서 같은 을 빼고 "놈"을 "년"으로 고쳐 갔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그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혼자서 일어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자기 임무가 다 끝나서 나온 것이라 말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헌신적인 태도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정말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예전보다 더 많은 찬사를 쏟아 부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헌신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장애는 반드시 극복될 수 있다는 강연 아닌 강연을 하고 다녔다. 공석에서는 그녀에 대한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다. 의지가 강하고 밝고 현명하고, 하면서 주로 극복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이런 푸념을 했다.
"장애인들이 공을 모릅니다. 내가 아주 질렸어요. 해줄수록 양양이에요. 어쩌다 발을 디뎌놓았지만 정말 할 일이 아녜요. 난 아주 정나미가 뚝 떨어졌어요. 잘 봐주려고 해도 마음이 안 가요 이제는."
그는 그녀와 있었던 일로 장애인을 싸잡아 욕을 했다. 그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한 장애인들도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옛날에 하던 가락이 있어 다시 장애인들을 자기 손에 넣고 주무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가 떠나있는 동안 장애인을 정말 편견 없이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장애인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봉사를 원치 않았다. 나란히 앉아서 보살펴주는 우정을 더 바랬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애인들의 변한 태도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는 자기 청춘을 아낌없이 바쳤는데 그 대가가 배신이라는데 대해 심한 증오와 복수심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글로 써서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방안에 틀어박혀 원고지를 메워 가고있었다. 가슴속에 분노심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원고지가 쏙쏙 잘 메워졌다. 그러다 그녀와 키스를 하던 일을 쓸 때는 너무나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어 잠시 펜을 놓고 엊그제 복지관에 갔다가 가져온 UN에서 나온 장애인 복지 핸드북을 뒤적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그러다 이런 항목을 발견했다. 장애인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을 가장 무시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장애인 사이에는 더 두터운 벽이 쌓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위해서라는 생각을 버리고 진정으로 자기와 동등하다는 의식을 가져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맨날 하던 소리려니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자기는 항상 장애인을 위해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성공한 장애인을 보아도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그들이, 그리고 그녀가 왜 자기를 밀어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지금까지 써놓은 원고지 한 장 한 장에 불을 붙였다.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봉사를 내세워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 급급했던 지난 시간들이 창피했다. 앞으로는 정말 참 봉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결심을 계속 지키지 못했다. 석간 신문에 그녀가 쓴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는데 읽고 또 읽어보아도 자기 이름이 나오지 않자 이렇게 욕을 했다.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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