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완전한 반 1
본문
깃털이 같은 새는 함께 앉기를 거부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통근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이 무거웠다. 깡충 깡충 잘도 뛰어 오르던 버스 계단이 오늘따라 높게 느껴져 하마터면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다.
남들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김준호 얼굴은 벌써 벌겋게 달아올랐다. 낮은 얼굴들이 인사를 퍼부울 생각을 하자 더욱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서 김준호는 평소와는 달리 앞좌석에 몸을 털썩 던져버렸다.
아직은 차가운 봄이었지만 등에 식은땀이 돋았다. 김준호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혀있을 땀을 닦아냈다. 김준호는 땀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는 버릇이 있었다. 마치 땀이 무능함의 표식인 것 같아 그는 맺히지도 않은 땀을 닦아낼 때도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랬다. 남산 머리에 아직 흰눈이 희끗 희끗 남아있는데 땀이 날 리가 없었다.
어느새 구청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으면 내릴 준비를 했겠지만 오늘은 버스에서 내리기가 싫었다. 완전한 자기만의 공간인 버스 좌석이 너무 안락했다. 그대로 어디론가 마냥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철없는 생각을 일깨워준 것은 급정거 브레이크였다.
차가 멈추었다. 벌써부터 버스 입구가 붐볐다. 어느 사이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나 싶어 김준호는 멈짓했다. 김준호는 그 대열에 끼기가 두려웠다. 갑자기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주눅이 들어 숨도 제대로 못쉬고 앉아있었다.
김준호는 물끄러미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발만 쳐다보았다. 무심히 눈길이 닿았는데 참 신기했다. 탄력있게 탁탁 치고 내려가는 모습이 반복되니까 마치 여러 개의 발을 가진 삶이 걷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왜 안내리세여?"
같은 과 박양이었다. 박양은 버스의 가장 구석에 앉아 졸고 온 듯 눈이 부석부석했다.
"응, 내려야지"
김준호는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김준호는 그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해 항상 피를 말리고 있다.
박양은 김준호 뒤를 따를 양 버티고 서 있었다. 직장 상사인지라 촐랑 먼저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예의가 김준호를 당황시켰다. 김준호는 아는 사람이 뒤에 따라오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것은 그의 금기사항이었다.
"먼저 내려. 레이드 퍼스트!"
김준호는 오른손바닥을 펴보이며 자신의 뒷모습을 감추기 위해 계략을 세웠다. 그것도 모르고 박양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김준호 앞으로 지나갔다. 김준호도 박양을 따라 내렸다. 우물쭈물 하다간 박양과 보조를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구청 입구 계단이 출근 인파로 막 채워졌다. 김준호는 그런 복잡한 군중들이 싫어 언제나 서둘렀었는데 오늘은 싫은 것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어머 경사로 개통되었어요."
박양은 마치 경부 고속도로라도 개통된 듯이 기뻐하며 경사로 쪽으로 가로질러갔다. 박양은 김준호에게 오라고 손짓하지는 않았지만 김준호는 그녀가 자기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경비원이 당신은 장애자 길로 오시오 라고 계단의 사용을 금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양도 경비원도 김준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청 안은 변함이 없었다. 김준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김준호는 악몽에서 깨어난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오늘 할 일거리를 정리했다.
"자, 자 잠깐 주목하세요. 이미 알고들 있었겠지만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함께 근무하게 될 여러분의 동료를 소개하겠습니다."
조과장의 들뜬 목소리가 사무실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과장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준호는 일어섰다. 김준호 정면에 있는 그가 그토록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다.
그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있었다. 무엇을 잘 먹고 살이 쪘는지 아주 우람했다. 그런데 상체와 비교가 될 정도로 하체는 가늘었다. 정말 장애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연신 등치에 어울리지 않게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여기 이분은 장애자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하셔서 당당히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장애 때문에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했지만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해서 오늘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조과장의 소개 말은 마치 연설문 같았다. 단 연설문 분석 업무를 맡은 사람처럼 한 단어도 놓치지 않고 반박을 하고 있었다.
-야, 임마! 장애자 공무원 시험이 아냐. 장애인이야 어째 그렇게 꼴통이냐? 장애인으로 고치는게 뭐가 그렇게 힘들어. 뭐 당당히 우리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구? 일반 공채도 아니고 도토리 키재기 해서 들어왔는데 뭐가 당당하냐. 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해서 겨우 구청에 들어 오냐. 흥 영광? 제발 신파조의 그 주접 제발 집어치우라구-
"우리 구청에는 장애자 공무원이 원래 있었지요. 바로 김준호씨인데 김준호씨야말로 강한 의지의 소유자올시다. 김준호씨는 그 몸으로 명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오시고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시어 그야말로 당당하게 입사를 하셨지요. 정말 내가 존경하는 분이올시다."
-흥, 날 존경한다구. 날 무시하는 일에 앞장선 사람이 누군데, 존경? 입에 침이나 발라라-
김준호는 자기가 화제에 올랐다는 것에 비참한 슬픔을 느꼈다. 바로 이렇게 될 것 같아서 김준호는 그의 출현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악수들을 나누며 한잔하자는 인사를 으레 하게 되는데 그에게 악수를 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김준호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저 짜식들이 사람 차별하네. 못되먹은 것들. 야 임마! 악수하란 말야, 악수-
김준호는 마치 최면을 걸 듯이 속으로 이렇게 유도를 했지만 모두 그 앞을 스쳐지나가버렸다. 가제는 게 편이라고 그를 무시하는 태도에 분개를 느꼈다.
그래서 김준호는 잠시 갈등했다. 자기라도 가서 악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김준호는 결국 못했다. 끼리끼리가 되기는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그 다음 날부터 출근과 퇴근을 할 때 반드시 그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김준호의 직장 생활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는 구청 입구 민원 창구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김준호는 출퇴근을 할 때 절대로 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으로 그를 피했다. 하지만 그 앞을 지나올 때는 영락없이 그의 시선이 느껴져 가슴으로부터 뜨거운 불덩어리가 치솟아 올랐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주 정답게 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는 듯했다.
"지금 퇴근하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무슨 좋은 약속 있으신가 봅니다. 얼굴이 아주 환하신데요."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안히 돌아가세요."
"미스 김, 퇴근할 때 보이까 탈렌트 같다." 등등 인사를 나누는 내용이 아주 다양했다.
-녀석 아부는, 에구 밸도 없어. 인사도 안받아 주는구만. 그래 허공에 대고 인사해라. 한심한 놈 같으니라구-
김준호는 그를 비웃는 일이 마치 자기 일의 전부인 듯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도 어쩔 수가 없었다.
점심 시간의 나른함에 사무실이 아주 조용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런 소식이 날아왔다.
장애인 공무원을 격려하기 위한 다과회를 열라는 지사가 서울시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신입사원 축하파티도 열어주지 않았던 조과장은 불똥을 맞을 듯 허겁지겁 다과회 준비를 지시했다. 여자직원들은 종종 걸음을 치며 매점을 오고갔고, 남자 직원들은 다과회장 준비를 하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김준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이 얼마나 얄팍한 존재인가를 확인했다.
도깨비 방망이를 두들겼는지 다과회 준비는 서울시 국장이 도착하기 전에 거의 완벽하게 끝났다. 벽에는 종이에 붓글씨로 써서 만든 플랭카드까지 걸려 있었다. 그 플랭카드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애자 공무원 박정식 축하 및 격려 다과회>
과자 몇 조각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와 약간의 떡, 그것이 전부인 다과회에 그렇게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이 우스웠다. 그리고 장애인 공무원이라고 꼭 저렇게 명시해야 하는 가에도 불만이 있었다.
-생색내기 되게 좋아하네-
비위가 상해 헛구역질이 나려하는데 정말 가관도 아닌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과장이 그의 휠체어를 밀고 등장했다.
"자, 박선생은 우리 김준호씨 옆에 앉는 것이 좋겠지요. 나란히"라며 조과장은 그를 김준호 옆에 밀어다놓았다 그렇다. 그것은 밀어다 놓은 것이다. 그에게 어디에 앉을 것인지를 묻지 않았으니 말이다.
김준호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벌써 어른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숨소리가 김준호를 질식시켰다.
서울시에서 나온 국장은 장애인 공무원을 선발한 것이 장애인 복지의 최대 서비스 인양 그것이 선진 복지 국가의 징표인양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어려우시더라도 많이 도와 주십시오. 함께 사는 사회 아닙니까? 따지고 보면 장애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박선생 같은 분은 몸이 불편하지만 우리는 이 정신에 때가 묻은 정신적인 장애인들입니다."
서울시 국장은 장애인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 사람 같았다. 조과장처럼 무식한 말을 불쑥 불쑥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더 큰 사람인지도 몰랐다. 함께 살아야한다고 하면서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이기주의의 표상이라고 보아도 지나친 판단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그는 감동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그가 바보스러워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그는 넉살 좋게도 감히 발언을 했다.
"국장님께서 정말 저희 장애인에 대한 사랑이 깊으신 분인 것 같습니다. 과장도 만족스러워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그 분위기와 전혀 다른 표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김준호 하나였다.
김준호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나 가증스러워 경멸스럽기까지 했다. 김준호는 그에게 처음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러다 발견한 사실은 그도 자기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기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그는 김준호에겐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출퇴근을 할 때나 근무 중에 우연히 부딪쳤을 때고 그는 김준호를 영원했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김준호는 자기가 먼저 눈길을 피하느라고 그런 사실을 알아차지리 못했었는데 오늘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갑자기 괘씸한 생각이 들어 가슴을 부글부글 끓게 했다.
-주제에, 감히 나한테-
김준호는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분개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따지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혼자 삭히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김준호는 민원창구에서 올라온 서류를 정성껏 살폈다. 잘못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김준호는 그 잘못을 낱낱이 공개했다. 그것이 나쁜 일인줄 알면서, 그것이 비열한 방법인줄 알면서 김준호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그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김준호에게 아주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커피 한잔 드시겠어요?" 박양이 김준호에게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잔을 내밀었다.
"고마워"
김준호는 커피잔을 들고 절룩거리며 걷기가 싫어 자핀가 앞에서 커피를 마시곤 하는데 오늘은 그가 있어 그냥 왔다. 그런데 아마 그것을 박양이 본 모양이었다.
"저……"
박양은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김준호는 박양이 말할 수 있도록 커피를 마시며 박양을 응시했다.
"박정식씨하고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이……"
박양은 말을 채 맺지 않았다. 김준호는 마신 커피가 소주로 변했는지 확 달아올랐다.
"나, 나쁘고 좋을 게 어딨어."라고 일축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당황되었다. 치부를 드러내 보인 것 같아 부끄러웠다. 김준호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 졸렬했다는 반성을 했다. 좀 더 고도의 수법으로, 완전한 시나리오로 은밀히 실행했어야 하는데 너무 허술했다. 평소 치밀하기로 유명했지만 김준호는 상대를 얕보았기 때문에 머리를 쓰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이성을 잃었던 탓이 더 컸다.
김준호는 하루 종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아프면 일찍 퇴근하라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머리 속은 진공 상태였다.
김준호는 술 생각이 났다. 하지만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회식 때도 밥만 겨우 먹고 도망치다시피 나왔기 때문에 술친구가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술친구가 없다는 것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김준호는 그렇게 어울려다니는 사람들을 한심스럽게 생각했었다. 밤이 늦도록 술을 퍼마시고 아침에 채 깨지도 않은 상태로 출근을 하며 마치 사탄을 보는 것 같아 상종도 하지 않았다.
김준호는 그 사이 대학원 공부를 했었고 대학원을 마친 후에는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했다. 김준호는 꼭 자격증에 걸신이 든 사람처럼 필요도 없는 자격증을 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김준호는 박양에게 넌지시 친구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미스 박 오늘 바뻐?"
"저야 늘 바쁘죠."
박양은 퇴근 준비에 바빠 김준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괜찮으면 저녁이나……"
김준호는 말꼬리를 흐렸다. 처음 해보는 말이어서 쑥스러웠다.
"어머 왠일이세여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박양은 약간 빈정거리는 듯했지만 승낙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 김준호는 빈정거림을 탓하지 않았다.
"좀 더 일찍 말씀을 하시죠. 조금 전에 친구와 약속을 했어요. 모처럼 베풀어주신 은혠데 어떡하죠?"
뒤돌아서서 가는 김준호의 뒤통수에 전기가 오르는 듯 찌릇찌릇 했다. 김준호는 퇴근 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탔다. 딱히 갈곳이 생각나지 않아 집으로 향했다. 그리곤 몸살이 온양 저녁도 먹지 않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말이다.
김준호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비참하고 참혹했던 적은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좌절감에 빠져야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김준호는 대담해지려는 노력을 했다. 자기가 그렇게 하찮은 일로 상처를 받는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될 수 있으면 관심 밖에 두려고 했다. 무관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야 더러워서 차 사야지, 안되겠다."
"아니 왜?"
"박정식씨 차 몰고 다녀요 장애자들도 운전하나봐요. 신기하더라구요."
"그래? 그 친구 돈 많네. 가난하다고 하더니."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김준호는 훔쳐들었다. 관심을 안둔다고 하면서도 그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어쩔 수가 없이 모든 촉각이 세워진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들과 의견이 달랐다. 그에겐 차가 꼭 필요했다. 그가 퇴근을 하기 위해 길가에서 택시를 잡는 모습을 통근 버스 속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럴 땐 무척 안타까웠었다. 김준호는 그가 사람들 앞에서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었는데 차를 샀다니 그 걱정은 하나 덜게 되었다.
"김준호씨도 차 사지 그래?"
동료들은 아무 뜻 없이 건넨 말이겠지만 그 말이 김준호에겐 큰 상처를 주었다. 사람들이 자기와 그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뒤틀리기 시작하곤 했다.
김준호 혼자 있을 때는 사람들도 김준호 자신도 장애에 대해 잊고 살았었다. 그런데 박정식 그가 돌아오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확실히 지어지기 시작했다. 김준호는 그것이 가슴아팠다. 박정식 그가 미웠던 것이 아니고, 그가 갖고 들어온 "장애인 공무원"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생긴 이런 변화들에 화가 났던 것이다.
또 그가 민원 창구에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쓸데없이 이리 저리 휠체어 바퀴를 굴리고 다닐 때 그를 더 미워했던 것은 그것이 "장애인의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김준호는 그가 그렇게 푼수처럼 구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런 그의 용기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김준호는 그런 용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김준호는 지금까지 장애를 은폐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는 오히려 장애를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준호는 어디를 가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고 했는데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정말 납득이 안갔다.
그렇게 전혀 다른 성격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큰 차이로 드러났다. 김준호를 보며 장애인을 판단했던 사람들은 박정식을 보면서 그동안 자기네들이 생각했던 장애인관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비교들을 종종 했다.
"박정식씨는 얼마나 사교적인지 몰라. 성격이 아주 좋더라구."
그 말 뒤에는 김준호는 비사교적이고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었다.
박정식이 언론 매체에 오르내리는 일이 많아질수록 김준호와 박정식은 더욱 심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박정식은 구청의 홍보를 위해 큰 몫을 했지만 김준호는 그렇지를 못해 오히려 김준호가 위척되어 가고 있었다.
박정식은 점점 기가 살아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적어도 김준호의 눈에는 그랬다. 김준호는 가의 교만함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음을 알기에 그의 잘난 척이 눈에 가시가 되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했다더니. 바로 그격이야. 아 글쎄 월급이 너무 적다고 불평을 하더래요. 처음에는 월급 같은건 상관하지 않고 일만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하더니 말예요."
다른 사람들보다 박정식에 대한 소문이 항상 빨리 돌았다. 작은 것도 아주 크게 확대되어서 말이다. 구청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월급이 적다는 불평을 하지만 그것은 흉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가 한 불평은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마치 장애인은 그런 불평을 할 수 없는, 아니 해서는 안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김준호는 자기에게 직접 닥친 일은 아니어도 그를 통해 장애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박정식을 통해 애써 잊었던 장애의 모습을 더욱 확연하게 보게되었다. 그것이 김준호를 괴롭혔다
박정식은 이상하게 소문에 계속 휩싸였다. 이번에는 김양을 좋아하다가 김양에게 발로 차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월급에 대한 불평 이상으로 오래 갔고 또 수많은 억측들이 나돌았다.
특히 김양은 같은 방 박양과 친한 사이여서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 정보가 제공되었다. 몇 명만 모이면 그 얘기였다.
"그 친구 재주 좋군. 김양을 다 꼬득인 것을 보면 말야."
"김양이 뭐 좋아서 그랬나요? 불쌍하니까 거절을 못했던 거죠 뭐!"
"그래두 여행까지 함께 갔다며?"
"그거야 김양이 그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아서였죠. 설마 그 몸으로 자기를 덮칠까 싶었데요."
"그래 거기는 실하더래?"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길래 도망쳐 버렸대요."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김준호의 귀에는 웃음소리가 아니라 비난의 욕으로 들렸다. 김준호가 그 나이가 되도록 여자를 사귀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점이 두려워서였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을 벌리기만 하는 것이 그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갔다.
김양을 좋아하던 사람이 노골적으로 이런 항의를 김준호에게 했다.
"왠일이세요. 내게 전화를 다 하고."
자다 말고 받은 전화라 어리둥절했다.
"미안합니다. 윽― 한잔했습니다. 내가 성한 사람 같으면 가만히 놔두지 않았어요. 내가 참긴 합니다만 그 친구에게 전해주세요. 냉수 먹고 일찌감치 속 차리라고 말입니다. 계속 추근거리면 그땐 봐주지 않는다고 꼭 전해 주십시오."
딸그닥.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김준호는 그 내용을 다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개인 김준호와 박정식으로 보아주지 않고 장애인과(科)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 소문과 함께 사람들은 김준호에게 장가 언제 가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했다. 그런 질문을 좀처럼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 소문으로 장애인의 성(性)을 인정해주는 듯했다. 긍정적인 일이지만 김준호는 아직 면역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엎친데 덮친다고 한층 상승하던 박정식의 인기가 급격히 하강했다. 그가 저지른 업무상의 실수로 다시 이런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능력이 아무래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은 지금까지의 소문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박정식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들어 올 장애인 공무원에게 더 나아가서는 장애인 전체에게 치명타가 되는 소문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김준호 자신에게 가장 치욕적인 소문이었다. 김준호는 그것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는 것을 입증시키기 위해 언젠가 하던 것처럼 서류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것은 동료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 또 다시 이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성격이 몹시 모났다는 정말 참기 힘든 모독적인 소문이 끈질기게 나돌았다.
김준호는 정말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피부로 느꼈다. 동료들이 그전처럼 그를 대해주지 않았다. 그를 자꾸 피했다. 아주 필요한 말 이외에는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김준호는 회사에 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정말 하루에도 열두번씩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목숨을 걸고 들어온 곳이고 그만둔다 해도 갈 곳이 없었기에 사표를 제출할 수가 없었다.
김준호는 사표를 내던질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에 더욱 비애를 느꼈다.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한 것 이상으로 기뻐하셨고 구청에 근무하게 된 것을 청와대에 근무하는 것인양 자랑하던 어머니를 배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준호는 매일 매일 죽음과 같은 출근을 하고 있었다 김준호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 행정고시 시험 준비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때르르릉.
"네, 김준호입니다."
"안녕하세요. 마침 김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받으시네요. 여기는 TV 방송국이에요. 이번에 장애인의 날 특집 방송을 준비하는데요, 장애인 공무원 박정식씨와 함께 다정한 선후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해요."
여자의 음성은 아주 부드러웠다. 그런데 그 여자는 출연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출연은 기정 사실이고 김준호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저 그런 거 안합니다." 김준호는 딱 잘라 거절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일도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TV에서 어쩌다 장애인에 대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마치 타인의 일처럼 생각했었다. 대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장애인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자기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처럼 느겼었다. 그런데 자기에게 출연을 하라니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퇴근할 때쯤 조과장이 그를 불렀다.
"자네, 방송국 출연을 거부했다구?"
"……"
어느새 일러 바쳤구나 싶어 더욱 불쾌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무조건 높은데서 찍어누르면 통과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음에 분개심이 솟구쳤다.
"그렇게 거절할 게 뭐 있어. 우리 구청의 자랑인데."
과장의 말 자체는 부드러웠지만 억양은 아주 강했다.
"저는 텔레비전에 출연할 만큼 잘 한 것도 없습니다."
"누가 자네가 잘 한 게 있어서 출연하라는 겐가?"
"전 박정식한테 잘 해준 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잘해주게."
"TV 출연은 생리에 맞지 않습니다."
"자넨말야 너무 자기 자만이 심해. 그냥 넘어가는 게 없어. 출연하게. 국장님께도 이미 보고가 됐네."
그것은 매춘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김준호는 너무나 치욕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김준호는 벼랑 끝에 밀려난 절박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김준호는 자리로 돌아와 서랍 정리를 했다. 그리고 중요한 물건을 챙겨 며칠 전 야유회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가방에 챙겨 넣었다.
나오는 길에 민원 창구에 있는 박정식을 보았다. 그는 여직원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어떤 소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전천후 사나이 같았다. 그런 그가 부러워졌다. 그가 혼자 있었으면 김준호는 그와 긴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구청 앞에 마침 빈 택시가 있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서울역."
그렇다 김준호는 떠날 결심을 했다. 그런 모욕을 견딜 수 없었다. 어쩌다 거리의 쇼윈도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는데 TV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판박이가 된다는 것은 발가벗고 명동 한가운데 서 있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정다운 선후배라는 부분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정다운 것과 정반대로 해동을 했는데 어떻게 자기에게 맞지도 않은 역할을 억지춘향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연극 배우도 아닌데 말이야.
아니 그보다 더 구역질이 나는 것은 꼭 필요한 인력으로서 자기들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랑거리로, 다시 말해 선전용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김준호는 서울역에 도착할 동안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서울역 광장은 쓸쓸했다. 늦은 시간인데 차표를 샀다. 만약 하늘 나라까지 가는 차표가 있었으면 주저 없이 샀을 것이다.
부산행 완행열차 표를 손에 들고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조금만 늦어도 걱정하시는 부모님 모습이 떠올랐다. 자기 하나만을 위해 희생을 하신 분인데, 그분들을 아프게 해드리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가슴 저렸다. 조금만 늦어도 대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어머니 얼굴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어머니, 전대요. 저 오늘 집에 못 들어가요."
"왜? 출장 가니?"
"네."
내일이면 발각이 날 거짓말이었지만 김준호는 오늘밤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긴 여행길에 올랐다. 마치 지구 끝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어둠을 가르고 달리는 기차는 김준호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기차 안이 텅 비어 있어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 주었다.
김준호는 가방 안에서 준비해온 종이와 봉투를 꺼냈다. 그는 기차가 멈추기 전에 세 통의 편지를 써야했기에 서둘렀다. 처음 한 통은 조과장한테, 두 번째 편지는 부모님께, 그리고 세 번째는 박정식에게 쓸 것이었다.
그런데 김준호는 순서를 바꿔 세 번째 편지부터 쓰기로 했다.
박군! 내가 자네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겠군. 나의 옹졸함을 이해해 달라고 말하진 않겠네. 하지만 이것만은 꼭 알아두었으면 하네. 내가 자네를 그리고 자네가 나를 멀리서 바라보았던 것은 우리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일세.
우리의 사랑이 이토록 미숙한 상태인 것은 세상이 우리의 가슴에 냉혹함을 심어주었기 때문이겠지.
사람들은 또 비웃을 것일세. 지네들끼리 싸운다고 말일세, 하지만 우리들이 손을 잡았다 해도 사람들은 비웃었을 걸세. 이도 저도 못하는 사면초가에 부딪혀 나는 이렇게 떠나고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비겁하고 바보스런 일인지 난 알고 있네
알고 있으면서 이럴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혐오스럽지만 지금으로선 이 길 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렸지.
박군, 우리가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군……
김준호는 기차가 종착역에 도달하도록 박정식에게 보낸 편지를 완성하지 못했다. 쓰고 찢고 또 쓰고, 그러다 결국 기차에서 떠 내밀리듯이 쫓겨났다.
아침 공기가 아주 맑았다. 서울 공기하고는 다른 신선함이 피부에 생기를 주었다. 해운대 바다 공기는 더욱 신선한 충격을 줄 것 같아 서둘러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택시가 없었다.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온 대형 트럭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마냥 서 있을 수가 없어 트럭을 얻어 탔다. 한참을 가다가 물었다.
"이 트럭 어디로 갑니까?"
"영도예."
"영도라니요?"
"영도 다리도 몰라예?"
김준호는 계획이 없었던 영도로 가고 있었다.
"영도 다리도 이제 옛날 같지 않아예. 하도 사람들이 죽어싸니까 영도 부두가에 철조망이 쳐진 기라예."
김준호는 그 말에 가슴이 섬뜩했다.
"죽은 사람에게 물어볼 수 없으이 알 길은 없지만도 별 것도 아닌데 죽는기라. 바보 짓이제."
"야야! 아침부터 재수 없게 왠 죽는 타령이가"
"이 총각을 보니까이 순덕이네 생각이 안 나서 그렇습니꺼."
"맞다. 정말 아까운 아이가 죽었제. 다리를 절룩거려서 그렇지 마음씨도 착하고 얼굴도 예뻤는데 말이다. 근데 무슨 사연인지 모르것서?"
그들 부부의 대화가 김준호의 머리에 쇠망치질을 했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약간 들뜬 목소리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안이 안보리(安保理) 의안으로 상정되어 채택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제 우리도 별 수 없이 반쪽을 인정하게 됐구만."
"그렇게라도 허야제 별 수 있겠서예.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소용 없지예. 인정할 것은 인정 해야제. 안 그렇습니꺼 손님?"
"아, 네에."
김준호는 남북한 대표들이 서로 만나 악수를 나누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자기와 박정식의 눈빛을 떠올려 보았다. 모두 가깝고도 먼 사이의 모습들이다.
글/방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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