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장애인차별해소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본문
올 여름 제가 가장 땀도 많이 흘리고 가슴으로 느끼는 게 많았던 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일본 공동련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에 갔던 때예요. 오늘은 세미나에서 만난 분 중 일본의 발제자 한 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틀간 열린 세미나의 둘째 날 오후, 한일간의 장애인권리옹호 법률에 관한 분과회가 마련됐는데 한국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2013년에 제정된 장애인차별해소법에 대한 발제가 있었답니다. 한국에서는 법이 제정된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므로 그리 신선한 내용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UN의 장애인권리조약 비준에 앞서 정부가 조약이 실효성을 갖추도록 국내법을 정비하는 게 먼저라고 주장하며 활발한 운동을 벌여왔고, 5, 6년에 걸친 치열한 운동 끝에 드디어 장애인차별해소법을 제정시켰으며, 그에 이어 일본 정부가 2014년 UN의 장애인권리조약에 비준하기에 이르렀기에 그간 정부와 한 테이블에서 직접 머리를 맞대고 줄다리기 하며 싸워온 과정과 성과, 과제에 대해 발표해 주었습니다.
자세히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법률의 이름을 비교해보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비해 일본은 장애인차별해소법이라는 이름인 걸 봐도, 한국은 차별을 금지한다는 뜻이 법률명에 명확히 표기된 것에 비해 일본은 차별을 해소해 나가겠다는 약간 애매한 뜻으로 보이잖아요. 발표자가 지적한 것도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한국의 법 제정의 추진력과 강한 의지를 부러워하면서 일본에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일단 제도의 발판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당사자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정부를 조르고 달래고 어느 정도 양보도 해가면서 만들어낸 디딤돌이라는 말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제정 3년 뒤인 2016년의 개정안을 더욱 실효성 있는 법으로 보완시켜 나가겠다는 말에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장애인차별해소법이 제정된 후, 각 지자체에서의 장애인차별금지조례 제정도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도 덧붙였습니다. 발제를 하신 분은 오노우에 고지 씨로, 현재 DPI일본회의 부의장이라는 직함과 더불어 일본 정부의 내각부 장애인제도개혁담당실 정책기획조사관이라는 직함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본인이 뇌성마비 장애인이기에 법제정 과정에 참여하여 당사자로서의 입장을 반영시켰고, 이어서 정책을 만드는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죠.
▲ 오노우에씨 |
오노우에 씨가 발제에 앞서 본인 소개를 했는데요. 오사카 출신으로 한 살 때 뇌성마비로 진단받고 초등학교는 특수학교를 다니게 되어 시설에 입소해서 지냈기에 중학교는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일반학교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장애아에게 일반학교는 벽이 높았기에 입학하기 위해 부모님이 학교측과 많은 충돌을 겪었고, 「학교에서의 『특별한 취급』은 요구하지 않겠다」,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나, 선생님의 도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입학할 수 있었던 쓰라린 경험을 이야기 하더라고요.
당시 조금이라도 장애인과 더불어 산다는 생각, 장애인에게 합리적인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그런 아픈 경험은 없었을 거라고 하면서, 그 때부터 장애인 차별과 싸워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다고 하더군요. 뇌성마비 장애인단체 푸른잔디회는 일본 장애인운동사에서 당사자 인권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으로 아주 유명한데요. 오노우에 씨가 오사카시립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 장애인 운동에 참가하게 된 곳도 바로 오사카의 푸른잔디회라고 하네요. 오노우에 씨는 1980년 초부터 역의 엘리베이터 설치나 저상버스 도입 등 이동권 운동, 복지마을 만들기 활동, 자립생활센터 등의 일선에서 논리적으로 힘차게 운동을 펼쳐 왔기에 오사카에서는 잘 알려진 분이고, 저도 만난 적이 있어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법이나 제도를 만드는 일의 전문가는 있겠지만, 당사자가 빠져 있고 당사자들이 문제가 많다고 느끼는 법은 진짜 법이 아니잖아요. 쓰라린 경험을 통해, 그 아픔이 다음 세대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문제를 제안하고 개선하는 법을 만들도록 하는 일, 그리고 제대로 알맹이가 담기도록 지켜보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역할이 꼭 필요한 거 같아요. 오노우에 씨도 그런 역할을 하시는 한 분인 것 같은데, 발제를 마무리 하면서 앞서 법을 만든 한국에서 앞으로도 많은 조언을 해주기 바란다고 하시더군요.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