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또 한 해 더 알차고 여물게 맺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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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장애인직업재활센터 30주년 기념식 |
얼마 전 모처럼 한국에 다녀왔어요.
일을 겸해 간 거지만 어머니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더 중요한 일인 것 같아 그냥 곁에 앉아서, 같이 텔레비전 보고, 같이 식사하며 이 삼일 보내다 왔어요. 오사카로 돌아오는 날 점심, 딸자식 맛있는 거 먹고 가라며 고깃집에 들렀어요. 특별히 한우로 주문해 숯불에 올려 굽는 사이 큼지막하게 썰어 먹음직해 보이는 깍두기가 있길래 얼른 입에 넣었죠. 맛있게 먹는 저를 보며 저희 어머니가 이제는 이가 약해져 먹고 싶어도 깍두기를 먹을 수가 없구나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슬쩍 깍두기 양념 국물을 떠서 입으로 옮기는 어머니를 보며 참 뭐라 표현할 길 없는 심정이 되더라고요. 비행기 1시간 반만 타면 오가는 서울 오사카간이라고 하지만 역시 가고 싶고 보고 싶을 때 마음 놓고 갈 수 없는 외국에 산다는 걸 실감하는 한국 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온 후 마음이 허전하고 다 귀찮기만 한데 전부터 해 놓은 약속이 있었어요.
오사카직업재활센터 30주년 기념식인데 한국에서 손님이 오시면 견학도 부탁하는 곳이니 약속을 어길 수 없고 얼굴만 내밀고 앉아다 와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참석을 했답니다. 9시 30분부터 12시 반까지로 예정된 기념식, 예정시간이 좀 지나 회장에 들어가 보니 손님들로 꽉 찬 가운데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뜻 깊은 자리지만 대부분의 기념식이 그렇듯 큰 식일수록 소개되는 내빈들이 많고 그 수만큼 이어지는 축사는 대부분 내용도 비슷하고 형식적인 의식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 않아요? 오사카시 행정부의 간부, 무슨 복지법인 대표, 무슨 회사 대표…. 그렇게 축사로만 한 시간인 1부 식이 끝나고, 이어서 창립 때부터 20년간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전 센터 소장의 기념강연. 장애인직업재활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980년대 초 오사카시에서부터 장애인의 취업의 길을 열어가자는 뜨거운 열의로 활동했던 초창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인 심포지움. 처음에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지만 이 심포지움 때는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데요. 무엇보다 심포지움 발표자들이 30년에 걸쳐 오사카직업재활센터를 수료한 장애인 당사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상까지는 꽤 멀어서 발표자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단상 위 오른편 테이블에 발표자 네 명, 왼쪽 테이블에 사회자 두 사람, 가운데 스크린에는 발표자의 자료들이 비춰지며 진행됐습니다.
제일 먼저 발표한 사람은 직업재활센터의 초기 1988년 수료생인 아이이 씨(46세)로 하반신마비의 전동휠체어를 타는 신체장애인, 현재 일본생명보험회사의 특례자회사 업무부 과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27년간 근속하고 있다고 했어요. 본인이 입사할 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신체장애인에게조차 취업의 장벽이 높던 때로 취업에 어려움이 많았으며 초기에는 대기업의 장애인고용률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측면이 강한 특례자회사였지만, 지금은 과장 등 대리 이상의 관리직에 위치한 장애인 당사자가 39명이 넘는다고 말하며 안정적이고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두 번째 발표한 사람은 1998년 수료생인 모리가와 씨(36세), 모리가와 씨는 지적장애인으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읽으며 발표했는데 처음에 사무보조로 취업한 회사에서 해고된 후 두 번째로 취업한 곳에서는 5년 계약직으로 일한 후 다시 훈련센터에서 컴퓨터훈련을 받고 현재 일하는 세 번째 직장을 소개받아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직장을 옮기게 되어 겪는 어려움은 많지만 앞으로의 꿈은 집에서 독립하여 친구와 둘이서 생활해 보고 싶은 거라고요. 사회자가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으니까 훈련센터 지도원과 같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세 번째 발표자는 2003년 수료생인 나가세 씨(30세), 지적장애인인 나가세 씨는 훈련 센터에서 새로 도입한 홈헬퍼(활동보조인) 양성과정을 수료한 1기생으로 3급과 2급 자격증을 따 현재 노인요양센터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활동보조인으로 11년째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양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게 꿈인데 글자를 쓰고 읽는 게 힘드니까 5년째 실패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도전할 생각이라며, 운전면허증이 있어 취미는 운전이라고 신나게 얘기했어요.
마지막으로 발표한 사람은 2010년 수료생인 고토 씨(37세),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으로 13살 때 정신분열증이 발병하여 28살 때까지 사회와 단절되어 살다가 병원치료센터와 직업재활센터를 거쳐 조금씩 사회로 발을 내딛는 시도를 하게 되었으며 10군데 이상 회사에서 떨어진 끝에 현재 재직중인 학용품회사에 취직하게 됐고, 지금까지 한번의 지각도 없이 혼자서 생활하며 근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뇌졸증을 앓아 가벼운 마비가 있는 상사로부터의 따뜻한 격려였다며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그리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네 사람의 발표와 직업재활센터에 놓여진 과제를 소개하며 30주년 기념식은 무사히 끝을 맺었습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참석한 감이 있었지만 비상한 노력 끝에 이루어낸 인간승리의 체험담이 아닌 그저 보통의 꿈이지만 아직은 높은 장벽 앞에서 고민하고 실패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발표자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단 한방에 티가 나고 화끈하게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일이 아닌 장애인의 취업이라는 과제를 내 일로 끌어 안고 고민하고 시도하며 행정과 기업을 연계하며 네트워크를 짜온 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의 30년 이야기를 들으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늙고 낡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성숙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 살 한 살 그어져 가는 나이테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요.
고운 잎 다 지고 머잖아 흰눈 내리는 계절, 지치고 녹록하지 않겠지만 겨울도 그 맛이 제법이라고 말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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