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화관 편의시설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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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독자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지난 10월에 저의 책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 한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출간 준비와 홍보 활동 등으로 많이 바빴기 때문에 지난 두 달은 글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특히, 처음으로 함께걸음 측에서 칼럼 주제를 청탁받았던 터라, 조사도 해보고 될 수 있으면 제가 직접 한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칼럼이 늦어졌습니다.
미국 영화관들은 어떻게 장애인 고객들에게 편의 지원을 하는지에 대해 칼럼을 써달라는 청탁은 사실 10월초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영화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아는 것만으로 글을 술술 써나갈 수 없었습니다. 저의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정도는 영화관에 가는데요, 저도 종종 같이 갑니다. 14살난 딸과 10살난 아들이 돌아가며 영화를 고르기 때문에, 그렇게 어른이 관심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본 적은 꽤 오래전 일인 것 같아요. 게다가 대화 중심의 영화는 어느 정도까지 제가 같이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를 볼 때면 저는 가족 옆에 앉아서 탄산음료와 팝콘에 더 신경을 쓰고 너무 지루하면 그냥 낮잠을 자곤 했습니다.
비싼 티켓 사서 낮잠만 많이 잔 것도 좀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고, 좋은 칼럼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다음에 영화관에 가면 저같은 시각장애인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12월 12일은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저와 아들은 영화를 보고 아내와 딸은 쇼핑을 하기로 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는 큰 영화관도 있어서, 우리는 거기로 향했지요. 우선 장애인을 위한 편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고객 서비스데스크에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그 쪽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가, 저는 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에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설명 서비스가 가능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오디오 설명은 영화 스크린에 일어나는 장면을 대화 사이사이에 말로 설명해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전문작가가 설명을 쓰고, 성우가 이것을 읽어주기 때문에 스크린을 보지 않고도 영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고객서비스에서 저는 시간이 많이 걸릴거란 짐작을 했었습니다. 오디오 설명 서비스 요청은 자주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직원이 즉시 서비스의 가능여부나 어떤 영화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도 모를거라고 상상했습니다.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거라고 확신하면서, 가족에게 좀 참고 기다리자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짐작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질문을 하자마자, 직원은 영화 리스트를 아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리스트에는 오디오 설명 표시가 되어 있는 영화들이 명백히 나와 있었는데요, 그 날 그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12개의 영화 중 하나만 제외하고 다 오디오 설명이 가능하다고 아내가 말해주었습니다. 이 영화 리스트를 아들에게 보여주고, 저와 아들은 아들이 선택한 애니메이션 영화 “굿 다이노”를 보기로 했습니다.
영화 선택은 그래도 쉬웠지만, 오디오 설명을 들으려면 특별한 좌석에 앉아야한다는 얘기를 오래전에 들었기 때문에 저는 그 좌석에서 아들이 영화를 잘 볼 수 있을 지 염려를 했습니다. 그런데 직원은 어느 좌석에 앉으라는 말은 해주지 않고, 담뱃갑만한 기계 하나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 기계에는 이어폰이 연결돼 있었고, 소리 크기를 올리고 내리는 버튼과 파워버튼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직원은 영화 시작전에 자신이 저를 보러오겠다는 말을 하고, 다음 고객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3~4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대화였습니다.
약속대로, 같은 직원이 영화관 좌석에 앉아있는 저에게 와서, 오디오 설명을 자기가 직접 켜놓았다면서 문제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고, 저는 덕분에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무선으로 오디오설명을 들으면서 영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 좋았는데, 이어폰이 질이 그렇게 좋지 않은지라 설명소리를 잘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항상 갖고 다니는 이어폰으로 바꿔 설명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고객서비스데스크에 기계를 반납하면서 저는 직원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얼마나 자주 이런 요청을 받느냐는 질문에, 직원은 아주 드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별 불편없이, 착오없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캡션서비스도 비슷하게, 스크린이 달린 작은 기계를 통해 제공된다는 것과, 휠체어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위한 공간 넓은 자리는 어느 영화관이나 다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질 높은 서비스가 미국 전국에 있는 모든 영화관에서 제공되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의 첫 경험은 아주 긍정적이었고 적어도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좌석 제공은 훨씬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편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도 멀지 않아 비슷한 서비스와 편한 서비스 제공이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 새 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안하세요.
신순규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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