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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살림]91 자, 우리 손을 잡자

과학적 세계관 부재로 인해 한계 드러낸 공연

본문

 문화예술은 그 사회의 물질적 기초인 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최후의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체제하의 문예는 계급적인 성격을 띠게 되며, 이에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계급투쟁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사용된다.
 때문에 어떠한 문예가 올바르고 진보적이냐는 문제는 합법칙적인 역사발전에 입각하여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서 있느냐에 의 해 결정된다.
 즉, 올바르고 진보적인 문예가 되기 위해서는 생산하는 근로대중의 입장을 과학적으로 구현한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담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 지난 3월 30, 31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민족음악협의회 주최로 열린 민주세력 총 단결을 위한 노래한마당 "91 자, 우리 손을 잡자"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작년에 이어 똑같은 제목으로 치러진 이번 공연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동자노래단, 예울림, 민족음악연구회, 정태춘 등 진보적 노래패와 가수들이 출연하여 노래를 불렀는데, 두 번의 공연에 5만여명이 관람하는 성황을 이뤘다.
 "우리", "우리네 살림살이", "이제 우리 손을 잡고"의 3부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은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자·농민·학생·민주시민·열사 등을 "우리"로 놓고, 그들의 생활과 삶과 투쟁 그리고 단결과 연대를 노래하였다.
 1부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진짜노동자 2" "아스팔트 농사" "결전가"(학생) "구속동지구출가"(양심수) "임을 위한 행진곡"(열사) "어머니"(민주시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풍자가 아니고서는 "똑같아 똑같아", "영상이의 일기", "들어나봤나", "노가리타령" 등으로 날카롭게 그려내 쓴웃음과 분노를 관중들에게 맛보여 줬다.

 2부는 1부에서 설정해 놓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밝은 미래를 담아내었다. "사장님네 하루 술값 안 되는 월급"("월급날")과 "맞벌이 부부가 문을 잠궈놓고 일나간 사이에 죽은 아이들"("우리들의 죽음")이 있고, "시장을 돌아보니 눈알이 핑핑도는"("핑도는 세상") 세상인 지금을, "가슴을 열어 민주노조 깃발을 들고"("볼패의 전사들")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서지 않아"("바리케이트") "가거라 자본가세상 오거라 우리의 세상"("핑도는 세상")으로 변화시켜야 함을 제시해 주었다. 
 3부는 "우리"가 주인 되는 해맑은 새 세상을 위해, "단결만이 살길"("철의 노동자")이고 "우리 총칼에도 굴하지 않으며"("지금은 우리가 만나서")이에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단결투쟁가")으로 나아가 서로 손을 굳게 잡아야 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우리"가 건설할 새 세상에 대해 "인간답게 살고"("철의 노동자") "마침내 가리라 자유와 평등"("단결투쟁가")이 있는 인간해방의 세상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전대협진군가") 떨쳐 일어서서 "서울에서 평양까지 신명나게 달려" ("서울에서 평양까지")"통일조국 산천"("출정전야")을 이룰 것을 제시해 주었다.
 한편 이렇게 진행된 공연은 지난해부터 노래공연의 단순함을 극복하기 위해 정착되기 시작한 춤과 풍물, 슬라이드가 등장해 흐드러진 몸짓과 흥겨운 사물놀이로 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이와 같은 공연형식은 관객들에게 다양함을 맛보게 해주며 강렬한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를 줘 본래 목적인 선전선동의 과세를 어느 정도 소화해 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뛰어난 가창력과 반주실력, 사회자의 재치 있는 진행, 무대 뒤에 걸린 장산곶매 걸개그림 등이 조화를 이뤄, 때아닌 눈보라와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관중들을 동요시키지 않고 하나로 묶어낸 좋은 공연이었다.  
 하지만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와 호응만으로 이 공연을 "성공적"이었다고는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전제했듯이 어떠한 공연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정서, 이해와 요구, 합법칙적인 역사 발전에 따른 미래상의 제시 등을 얼마만큼 확보하고 있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현시기 전체 변혁운동의 맥락에서 그 공연이 어떤 위상과 역할을 가지고 있느냐는 문제와 문예의 목적인 선전선동을 대중에게 명확히 관철시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쓰였는가에 대한 판단이 결부돼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이번 공연을 평가해 보자면―단적으로 얘기할 수 없겠지만―대체적으로 그동안 계속 있어왔던 공연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과학적 세계관의 부재"를 들 수 있겠다. 이 사회의 성격이나 그에 따른 계급구성의 분석이 운동의 밑받침이 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설정돼 있지 않은 것이다. 즉 노래 선곡에 있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아 현시기 운동의 과제가 "반제반파쇼"인지 "반제반봉건"인지가 확실하게 제시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또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단결과 연대를 호소하고 있긴 하지만 어떠한 방법과 원칙 하에 통일 전선을 구축해야 되는지는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우리"의 범위에 있어서도 양심수와 열사를 포함시킨 점은 특이한 일로 주목을 끌긴 하지만, "민주시민"의 경우 쁘띠부르조아인지 반프롤레타리아인지, 자유주의적 부르조아인지가 명확하지 못했다. 이에 1부의 노래에 있어서 이들을 대표할 노래를 선곡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현 노래운동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과학적 인식의 결여로 근로대중의 단순한 삶과 지배계급에 대한 도덕적 차원의 분노에만 머무른 노래의 선곡이 많았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될 수 있겠다.
 그리고 관중들의 호응이 좋은 것은 성공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는데,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 위대한 예술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예술일수록 가장 대중적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전체 변혁운동의 맥락에서 이번 공연을 보자면, "음반 법 개악", "민중가요 테이프 압수", "진보적 음악가 구속"등 일련의 노래운동탄압 상황 속에서 이것들을 이겨내고 공연이 진행되었다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노래운동, 나아가 문예운동은 현실인식의 최고 방법은 아니지만, 중요한 통로임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선전운동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문예활동가들이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이론을 갖추고, 전문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실천활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글/안병훈
 

작성자안병훈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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