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한다발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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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변은 이따금 철새들의 날개짓 소리만 요란할 뿐 무섭도록 적막하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끼고 초라한 행색의 몇 군데가 웅크리고 서 있었지만 이미 철이 지난 듯 그 근처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없다. 보기에도 안스러운 조각배 두 척 만이 지저분한 해면에 앞머리를 처박힌 채 흔들거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바람을 등지고 돌아서서 오버깃을 세웠다. 엉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힐끔, 시계를 곁눈질했다. 이미 예정했던 시간이 훨씬 초과되어 있었다. 늘 상 이랬다. 성애를 만나고 돌아가야 할 시간을 나는 한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다. 아쉬움 때문에 발걸음이 채 떨어지지 않거나, 서러움으로 나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니면 성애의 환영이 내내 나를 놔주지 아니한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도 그랬다. 금방이라도 성애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올 것 같은 착각에 나는 줄곧 사로잡혀야 했다. 그런 기억이 많지 않은데, 오늘 따라 이상하게 성애의 그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가득히 투영돼 왔다. 웃으며 성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언니 춥지, 내 걱정은 하지 마, 여기는 천당이야, 여기 안개꽃이 많이 있어. 언니에게 안개꽃 한 묶음을 묶어주고 싶은데 가능할지 몰라 후후……"
눈이 시려온다. 새하얀 안개꽃 꽃잎들에 파묻힌 성애의 모습이 눈송이처럼 희다. 그래, 그게 네 본래의 모습이었어. 나는 가득 고인 눈물너머로 성애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었다.
강가에 서서, 넘실대는 검푸른 강물을 바라보며 성애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는 성애가 한줌의 가루로 화하여 이 강물에 뿌려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도 성애는 내 가슴속에서 살아있다. 나의 일부분으로 감정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내 가슴속에서 살아있다. 나의 일부분으로 감정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내 의식 깊숙이 또아리 틀고 앉아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곤 한다. 나는 그 사실을 확신한다. 죽음이 결코 성애와 나를 갈라 놓을 수 없다는 그 심증에 나는 한없이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다. 성애는 살아있다.
두달전, 일상의 삶을 충격으로 무너뜨린 성애의 자살소식을 접하고 허겁지겁 달려가서 피투성이 시신을 확인했으면서도 나는 성애는 죽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그 경황 중에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허무했지만 누누이 성애는 죽은 게 아니라고 되풀이 말하고 또 말하였다.
그리고 성애의 장례식 날, 꽃상여가 병원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무장전경들이 진을 친 채 생전에 성애가 그토록 만나보길 갈망하던 높은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게 다투어 애끊는 조사를 낭독하는 등 온통 혼란으로 뒤죽박죽이 된 그 상황 속에서도 나는 성애는 결코 죽지 않았다는 그 한마디를 꼽씹으며 숨막혀 하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그 격했던 감정은 아직까지도 내가 가슴 밑바닥에 짙게 남아있었다.
매운 바람 때문인지 불현듯 한줄기 눈물이 솟아 시야를 가린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또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상념들을 정리해야 했다. 강가 자갈밭으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들 자기만의 상처핥기에 골몰해서, 한 소녀의 영혼이 상처받아 막다른 곳까지 다다랐는데도 미처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을 초래했다는 회한의 감정이 밀려온다. 종국에 내리는 결론은 늘 무관심이라는 책임문제에 귀착되곤 하지만 나로서는 내가 성애를 좀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괜스레 더욱 죄책감이 느껴졌다.
언제였던가, 성애를 처음 만난 날이- 나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우중충한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이런 날씨는 아니었다. 나는 가볍게 도리질을 한다. 맑고 쾌청한 날, 그리고 성애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래, 그 안개꽃이 인연이었다.
나랑 단짝이었던 친구 경숙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산재사고를 당했다. 기계가 사정없이 경숙이 오른쪽 다리를 으깨어 놓아서 불시에 찾아든 경숙이의 불행에 나는 어쩔 줄 몰라해야 했다. 경숙이의 고통이야 말할 나위 없었지만 나 또한 강도는 다를 지언정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를 다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시기에 상경해서 그래도 올바르게 살자며 붙어 다니며 공장생활을 한 게 근 십년을 헤아렸다. 오천원도 안 되는 일당을 받으며 동생 학비대랴 생활하랴 고생스러웠지만 그런 중에서도 서로에게 격려를 해주며 꿋꿋하게 버텨 나가리라 다짐했던 우리였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도저히 이럴 수는 없다고 경숙이와 나는 울부짖었다.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지만 어쨌든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산사람은 살아야 했다. 몇 군데 병원을 거쳐 경숙이를 부평에 있는 산업재해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나는 수는 주일마다 인천행 전철을 탔다. 전철문에 돋아난 조그만 창에 정숙, 불행, 아픔이란 단어를 하염없이 끄적거리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문을 들어서면 애써 명랑하게 웃으려 노력하는, 벅찬 생활을 시작했다. 나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었다면 나는 그 생활을 한시도 감당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겨자씨 만한 믿음이었지만 나는 하나님이 경숙이를 도와주시리라 믿고 있었다.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뜻대로 경숙이를 도와 주소서……. 나는 늘 간절하게 기도하곤 했다. 해가 어스름히 넘어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손을 꼭 잡고 "힘을 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 알지…" 하며 토닥거려 주는 것이 나의 주일날 일과였다.
성애는 경숙이와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성애말고도 아줌마 두 분이 같은 병실을 쓰고 있었는데 유독 성애에게 눈길이 간 건 성애가 고향에 있는 내 동생과 엇비슷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심만 있었지 성애에게 쉽사리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성애는 내가 갈 때마다 창가에 붙어있는 침대에서 슬픈 표정으로 내내 창 밖만 쳐다보고 누워있어서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보호자도 없는 듯 해서 그냥 안됐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아무튼 언젠가는 말을 건네보리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성애가 나에게 말을 건네 왔다.
그 날 나는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경숙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본관 앞 잔디밭으로 내려갔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아담한 잔디밭에 잔디가 햇빛을 받으며 출렁대고 있었다. 잔디를 깔고 앉아 나는 모처럼 큰맘 먹고 준비한 안개꽃 한 묶음을 꺼내 들었다. 안개꽃을 경숙이 품에 안겨주며 싱그런 웃음을 웃는 경숙이가 무척 보기 좋다고 말해 주었다. "고마워" 경숙이는 안개꽃더미에 볼을 부비었다. 모처럼 즐거운 기분으로 우리는 유쾌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성애가 다가왔던 것이다.
"언니, 그 꽃 안개꽃 맞죠?"
우리는 놀라 성애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내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미안하지만 향기 좀 맡아볼 수 없을까요?"
불그스레 얼굴에 홍조를 띤 성애가 진정으로 미안한 듯 어눌하게 말했다. 선뜻 경숙이가 안개 꽃다발을 내밀었다. 마치 꽃향기에 취한 듯 성애는 한참동안을 안개꽃더미에 얼굴을 비비며 서있었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서 성애를 부축했다.
"자자, 이리 앉어, 앉아서 맡으련."
"고마워요 언니. 정말 고마워요."
성애의 눈가에 반짝 이슬이 맺히는 걸 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얼마나 안개꽃이 갖고 싶었으면, 그러나 실은 외로움 때문이라고 나는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짐짓 명랑하게 말을 건넸다.
"참 보기 좋다. 꼭 천사 같은데, 후후 어때 우리 인사할까, 나 경숙언니 친구 은영이야."
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성애가 망설이는 듯 하더니 곧 손을 마주 내밀었다. 작고 앙증맞은 성애 손의 감촉이 내 가슴속에 전해왔다.
"저 김성애예요. 나이는……"
"알고 있어. 열 아홉 살이지 이름도 이미 알고 있었는걸"
나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몸짓으로 잡은 손을 흔들었다.
"우리 친구하기로 해. 사실은 전부터 성애에게 말을 하고 싶었는데 괜시리 부담을 줄 것 같아서 못했어. 너무 슬퍼하지마. 성애야. 고통스런 날들이 지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테니까 말야. 성애. 언니 없지, 좋았어 내가 성애 언니 해줄게, 어때 괜찮지."
나는 앞뒤 두서 없이 지껄였다. 그런 나를 성애가 어리벙벙한 듯 바라봤다. 나는 그윽한 눈길로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성애가 경숙이에게 눈길을 주었다. 경숙이가 덩달아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정말이예요, 방금 하신 말?"
"그럼, 정말이고 말고."
나는 성애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않았다.
그 다음 주일부터 병실에 들어서면 나는 경숙이 못지 않게 성애에게도 많은 정성을 쏟았다. 성애를 보면 동생 생각이 나서기도 해서였지만 무엇보다 경숙이에게서 들은 성애의 기구한 사연이 못내 내 가슴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성애는 반신불수의 심한 장애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작업장에서 빈혈로 쓰러져 신체의 절반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장애를 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향은 나처럼 먼 남쪽 땅 시골이고 가족은 엄마와 오빠 세분이 계신데 성애가 집을 나온 결정적인 계기는 웬일인지 오빠들과 사이가 무척 안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겨우 연락이 닿는 분이 엄마인데 엄마마저 성애가 속을 썩였다고 백안시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번 오시라고 전화를 하면, "차라리 빨리 내 앞에서 없어져라. 왜 자꾸 전화를 하느냐, 나도 먹고살기 바쁘다. 네가 얼마나 내 속을 썩였는데 이제 와서 나를 찾느냐."며 면박을 주기 일쑤라는 것이다.
열 일곱 살 때 처음 공장생활을 시작한 성애는 2년 남짓 줄곧 목공예 공장에서 먹고 자며 일을 해왔다고 한다. 일을 하다보니 나무가루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만 밥맛을 잃게 되었고, 암울한 현실 때문에 괴로움까지 겹쳐 몸져눕게 되었지만 누워있는 다고 누가 신경 써주는 사람도 없었고 더욱이 눈치까지 보여 할 수 없이 밥을 거의 거르다시피 하면서 무리하게 일만 하다가 과로와 빈혈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겨우 정신은 차렸지만 쓰러질 때의 충격으로 반신불수가 된 신체며 더욱이 후유증으로 몸을 겨우 몇 발자국 떼어 좋았으면서도 숨이 차 헉헉대는 그런 상태였다. 거기다가 보호자도 없었으니 성애의 심적 고통 또한 매우 심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 능력이 닿는 한 힘껏 성애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아무도 성애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병원에 수용돼 있는 환자들 모두는 중도에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원망의 감정과 주체할 길 없는 서러움으로 대부분이 자신의 상처핥기에도 급급한 형편에 놓여 있었다.) 나라도 따뜻하게 대해주며 용기를 붇돋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병원엘 가면 성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먹을 것을 사가서 건네주기도 하고 책이나 악세사리, 인형들을 내 여우가 허락하는 한도에서 성애를 위해 준비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성애와 나는 제법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는 친숙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보통 소녀로 돌아가 티 없이 웃는 성애의 모습을 볼라치면 나는 일주일의 피로가 한꺼번에 싹 가시는 상쾌함을 맛보았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성애를 통해 얻는 감동도 많았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갑자기 성애가 나를 위해 사과를 깎아주겠노라고 했다. 나는 성애가 한 손을 못쓴다는 걸 염두에 두고 괜찮다고, 내가 깎아먹겠노라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성애는 샐쭉해져서 무시하지 말라고 말한 뒤 경숙이에게 다가가 붙잡아 달라고 하며 조심스레 과도를 놀려 사과를 깎는 것이었다. 그 진지함이라니, 흡사 작품을 만들 듯 정성스런 그 손놀림에 나는 감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상 깎은 사과를 건네줬을 때 차마 눈물이 나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성애는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언니, 빨리 먹어. 내가 깎은 거 훨씬 더 맛있다. 우리는 빨래도 항상 같이 하는 걸 뭐. 서로 돕고 살아야지 어떻하겠어. 안 그래? 이 사과 먹으면 언니 많이 예뻐질 거야."
다행히 성애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얘기를 나누기가 조금은 수월했다. 내가 성애에게 주로 하는 얘기는 같은 신앙인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테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고 괴로워하지도 말고 용기를 가지라는 요지의 말이다. 그러면 성애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네, 알았어요. 언니 그렇게 할께요. 하고 답을 하긴 했다. 하지만 늘 내 말에 수긍할 수는 없어서 "언니, 언니 나 어떡해, 나 어떻게 살어 응……"
하며 흐느끼고 내 품에 안기기도 하는 것이어서 나는 난감해 하기도 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애에게 신경이 쓰였던 건 성애가 밥을 비롯한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후유증 때문인지 성애는 먹는 행위를 기피했다. 내가 안 먹는다고 뭐라고 그래야지만 겨우 먹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였다. 나뿐만 아니라 간호원들이 반 강제로 밥 먹기를 강요해도 겨우 몇 숟갈을 뜨는 둥 좀체 밥그릇을 비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어느새 고집불통으로 낙인 찍혀 따돌림을 받게 되었는데도 성애는 인식하지 못하는지 먹을 것을 멀리했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붙어 있으면서 성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문제는 성애 엄마의 성애를 대하는 태도였다. 가뜩이나 주변사람들의 냉대로 위축된 성애에게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쌀쌀맞게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제발 좀 와달라고 성애가 울며불며 사정을 해도 냉정하게 거부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혹 찾아온다 해도 폭언을 퍼부으며 구박을 하기가 예사였다.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광경이었다.
어느 날,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성애 엄마를 몰아세웠다. 성애가 화장실이라도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또 쓰러졌다. 내가 얼른 다가가 부축하려 하자 마침 곁에 있던 간호원과 성애 엄마가 막 화를 내는 것이었다. 부축해 주지 마라. 자꾸 옆에서 도와주니까 의지 할려고만 한다. 혼자 일어서게 내버려둬야 한다. 아가씨가 뭔데 성애를 자꾸 감싸고도느냐…… 대충 이런 말을 나한테 퍼부었다. 나는 참을 수 없어 맞받았다.
"혼자 일어서는 것도 좋지만 그것도 상황을 봐서 강요해야지 지금 성애가 일어 설 기운이 있는지 아세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힘들어하는 아인데 도대체 무슨 힘으로 혼자 서겠어요. 아줌마는 성애 엄마이면서 성애를 위해 도대체 뭘 해주셨나요. 아무리 속마음을 헤아려 주기는커녕 왜 자꾸 구박을 주냔 말예요. 대답 좀 해보세요. 성애가 왜 자꾸 쓰러져야 하고 또 섧게 울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라도 하셨냔 말이 예요……"
성애가 팔에 매달리며 말렸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나뒀으면 나는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없을 뻔 했다. 그 정도로 분하고 억울했던 것이다.
×월 ×일
오늘 처음 일기를 쓴다. 오늘 낮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은영언니가 엄마와 막 다투었다. 화장실에 갈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또 그 현기증이 일어 내가 쓰러졌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간호원과 엄마가 언니를 꽉 몰아세우고 있었다. 나 때문에 언니가 피해를 입는 광경을 보니 미칠 것 같이 가슴이 쓰려왔다. 가만히 당하고 있던 언니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마주 화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은영언니의 화난 모습이었다. 나는 언니가 손찌검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은영언니 팔에 매달리며 나는 괜찮으니까 제발 화내지 말라고 사정했다. 처음에는 언니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나 딴 방 사람들이 몰려오고 간호부장님까지 가세해서 언니를 몰아세우자 언니는 나에게 딴 생각하지 말라고 속삭였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채 닦지 못하고 언니는 서울로 올라갔다. 생전 이렇게 마음이 아파 본 건 처음이다. 엄마가 정말 밉다. 나에게 구박을 주는 것도 참을 수 없는 노릇인데 언니한테까지 화를 내다니. - 엄마가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죽어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견디기 힘든 하루였다. 새벽녘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은영언니가 심심할 때 끄적여 보라며 사다 준 이 노트에 하염없이 은영언니 이름을 썼다. 언니에게 정말 미안하다. 늘 실망만 주며 마음 아프게 하는 것 같아서…….
×월 ×일
하루종일 은영언니를 기다리며 보냈다. 아침에 경숙언니가 전화를 받고 오더니 은영언니가 몸이 아파 오늘은 오지 못한다고 전해 주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저번 주일 엄마랑 다퉈서 그런 거 아니냐고 캐묻듯 경숙언니에게 물었다. 실은 나도 그 일 때문에 걱정했는데 그런 것 같진 않다고 경숙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얘, 그래도 네 걱정은 굉장히 하더라. 기집애, 나는 안중에도 안 두고서 말야. 성애가 별탈 없이 잘 있느냐, 또 쓰러지진 않았느냐는 둥, 말도 마라 시시콜콜 묻고 또 묻는데 내가 몇 번이나 괜찮다고 대답을 했는데도 안심을 못하길래 성애 너 바꿔주마고 했더니 또 걱정하며 놔두라고 하더라니까, 얘 이러다가 은영이 성애, 너 때문에 노이로제 걸리겠다. 아무튼 다음 주에 꼭 온다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렇지만 안심이 안되었다. 경숙언니는 단순한 몸살감기일 것이라고 그랬지만 나는 웬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몸이라도 성하면 달려가 보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교회를 갔다와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종일 창 밖을 내다보고 앉아 있었다. 뉘엿뉘엿 해가 져 깜깜해졌는데도 끝내 언니는 오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또 울었다. 그러다가 이럴 때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별을 보며 하나님께 은영언니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다.
언니를 못 보니까 더욱 외롭다.
×월 ×일
오늘은 아침부터 간호부장님이 와서 밥을 안 먹는다고 심한 면박을 주고 갔다. 그 때 이후로 고집을 부리면 강제퇴원 시키겠다고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여기서 쫓겨나면 내가 갈 데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나 보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점심때는 쌀쌀맞은 박 간호원이 갖다 준 밥을 어거지로 씹어 넘기느라 무척 애를 썼다. 잘 넘어가지 않아 구역질이 치미는 걸 억지로 참으며 밥 한 그릇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박 간호원은 "그렇지, 이제야 성애가 사람되는구나……."
하며 좋아했지만 나는 채 삼십 분이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 달려가 먹은 음식을 다 토해냈다. 속이 울렁거리고 명치끝이 아팠다. 급히 먹느라 체한 것 같은데 간호원한테 약을 달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토해냈다는 걸 알면 또 화를 낼 것이다. 아무소리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지냈다. 못 견디게 아프던 속이 시간이 지나자 차츰 괜찮아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월 ×일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 제일 싫다. 왠지 마음까지 우울해진다.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공상을 하며 지냈다.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이 내가 다치지 않고 사회에서 남들처럼 학교에 다녔다면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을 것 같다.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옷을 해 입고 맘껏 거리를 활보했을 것이다. 잘하면 남자친구도 생겨서 같이 영화나 연극을 보러도 다녔을 것이다. 남자친구 생각을 하자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남자친구, 키가 크고 우람한 남자는 싫다. 나랑 체격이 비슷한 정이 많은 남자가 좋을 것 같다. 푸른 초원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면서 인형같이 예쁜 아기를 낳고…….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픽-, 자조적인 웃음을 웃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김성애 네 분수를 알아야지. 네 주제에 학교, 그림 같은 집, 아기……, 웃기는 노릇이야. 병이나 낫게 해달라고 기도나 열심히 하렴.
×월 ×일
오늘 은영언니가 왔다. 아파서 그런지 약간은 수척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언니는 언제나 웃는다. 은영언니, 경숙언니, 그리고 나는 교회를 다녀와서 함께 잔디밭으로 나갔다. 모처럼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어서 마음마저 절로 상쾌했다. 언젠가 들은 속담 중에 여자가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던데 그 속담이 생각날 정도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영언니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 저절로 유머나 늘어나는가 보다. 끊임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저녁이 되어서 헤어질 시간이 되자. 나는 용기를 내어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풀리지 않은 의문 한가지를 은영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엄마가 나를 미워하는 것이 내가 몸이 이러니까 그러는 것 같지 않아?"
은영언니가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글세,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겠지, 하지만 성애야, 너도 이해는 해드려야 돼 내가 생각하기엔 성애 엄마도 삶에 몹시 시달리셨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 결코 네가 미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실 거야. 나도 화를 내긴 했지만 후회가 돼. 성애야, 엄마를 너무 원망하지마. 미워하면 안돼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영언니가 새삼 고마웠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미워하지 않아. 나에겐 그럴 자격도 없는 걸, 다만 엄마가 무서울 뿐이야…….
×월 ×일
오늘 아침 경숙언니가 링게르줄로 만든 반지 하나를 나에게 줬다. 남자병실에 있는 영호 오빠가 은영언니 오면 주라고 건네준 것인데 속셈이 응큼하다며 "옛다, 너나 끼고 다녀."하며 내 손에 끼워주었다. 검지 손가락에 꼭 맞았다. 정말 예뻤다. 그런데 이 반지 때문에 심한 욕을 먹게될 줄이야.
반지를 쓰다듬으며 복도를 걷다가 영호오빠와 마주쳤던 것이다. 영호오빠는 내가 끼고 있는 반지를 보자 대뜸 화부터 냈다. 내가 어떻게 만든 반지인데 네가 끼고 있느냐, 은영아가씨 오면 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네가 훔쳤지 않느냐, 이 고집불통, 갖고 싶다고 떼를 쓰지 않았느냐는 등 금방이라도 손찌검을 할 태세로 으르렁거렸다. 나는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나쁜 기집애."라는 말과 함께 뺨을 한 대 얻어맞았다. 나는 화가 나서 이 알량한 반지 필요 없다고 던져주곤 울면서 돌아왔다. 우리 방에 들어서자, 정아 엄마가 내가 또 질질 짠다고 화를 내며 면박을 주었다. 정말 서러웠다. 죽고 싶었다.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무서워 침대에서 덜덜 떨어야 했다.
×월 ×일
오늘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박 간호원이 그러는데 나는 남들이 다 받는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단다. 법에 그렇게 돼있단다. 이럴 수가!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또 쓰러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여태까지 견뎌온 게 순전히 그 보상금 때문이었는데 그러면 나는 몸도 망쳐버리고 돈도 못 받고 거리로 쫓겨나게 된단 말인가? 빈혈로 쓰러졌기 때문에 안 된다니, 내가 왜 빈혈에 걸렸는데……
황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엄마 나 어떻게 하면 좋아, 나는 보상금을 안 준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응, 엄마 어쩌면 좋아. 주위에선 다 받는데 나만 못 받는데…."
"어이구, 이 원수 기집애야. 보상금은 무슨 보상금이니 몸만 치료하면 됐지, 그것도 감지덕지 해야지 무슨 염치로 돈을 요구하니, 응 돈 받아서 떼 부자라도 될려고 그랬어?"
"아냐, 아냐, 엄마. 그게 아냐…."
나는 설움이 북받쳐서 수화기를 놓았다. 그게 아냐, 엄마. 돈 받으면 엄마한테 효도하려고 그랬어. 은영언니 옷 한 벌 사주고 나머지는 다 엄마한테 줄려고 그랬어. 정말이야 그럴려고 다 계획을 세워놨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이게 뭐야. 나의 마지막 소망이 이렇게 무참히 짓밟혀도 되는 거야. 엄마 엄마 무서워. 마지막 부탁이야 제발 와서 뭐라고 말 좀 해줘. 언니, 은영언니 어디 있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아. 응 언니……
×월 ×일
일주일 내내 엄마를 기다렸는데 끝내 엄마는 오지 않았다. 대신 은영언니가 왔다. 언니를 붙잡고 울며 사정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언니는 충격을 받은 듯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언니가 간호원실에 다녀오겠다며 병실문을 나섰다. 한참 후에 언니가 돌아왔다. 그런데 그 표정이 어두었다. 아! 이젠 끝장이구나, 난 지레짐작을 해야 했다. 언니가 나를 붙들고 오열을 터트렸다.
"성애야, 포기해. 그까짓 보상금 안 받으면 어떠니, 흑흑, 아무리 얘기해도 너는 안 된대 어디가 잘린 게 아니고 단순히 빈혈로 쓰러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구나……"
"언니,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하루였다.
×월 ×일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서 하루하루를 지냈다. 혼이 빠져나간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춥고 정말 무섭다. 그 감정뿐이었다. 오후에 은영언니가 왔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못올건데 내가 걱정돼서 안부라도 확인할 요령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단다. 많이 걱정했다며 애써 웃는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언니, 나 좀 부축해 줘."
"왜 어딜 가려고?"
"나하고 잠깐 어디 좀 같이 가줘."
"그래 화장실에 갈려고 그러니."
나는 은영언니한테 기대 복도로 나왔다. 현기증이 일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나 간호원실에 좀 데려다 줘."
"뭐라구, 거긴 왜? 성애야 가봤자 소용없어. 가면 실망만 하게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물어볼 거야."
"어떡하지 부모님 때문에 내가 빨리 올라가 봐야 하는데, 성애 혼자 얘기할 수 있어?"
"응, 언니. 데려다만 주고 언니는 가도 돼."
"그럼 빨리 얘기하고 부축해 달라고 해서 돌아가. 언니 다음주에 꼭 올게 알았지."
간호원실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은영언니는 돌아갔다. 내가 들어서자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따가운 눈길들이 쏟아졌다. "아아, 무서워 언니……." 나는 채 말을 꺼내기도 전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월 ×일
경숙언니한테 물었더니 오늘이 수요일이란다. 문득 기도하고 싶어졌다. 하나님이라도 나를 위로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성경책을 찾아들고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교회로 향했다. 겨우겨우 교회에 닿았더니 대낮이라 그런지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나는 쓰러지듯 교회문에 기대어 문을 두드렸다. 전도사님, 전도사님,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그러나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반드시 전도사님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이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전도사님을 찾으러 병원 안을 헤매였다. 제발, 제발, 나를 받아주세요. 전도사님…… 그러나 병원안 어디에도 전도사님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병실에 다다랐다. 헉헉대며 문을 열었다. 순간 병신안의 싸늘한 공기가 나를 덮쳐왔다.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나를 외면한다. 왜일까…, 나는 힘없이 성경책을 내려놓았다. 한순간 의식이 맑게 개여 나는 전율해야 했다.
문득 은영언니 생각이 난다. 은영언니는 뭐라고 할까? 나를 원망할까? 아냐, 언니는 내 마음을 이해하니까 나를 용서해 주실 거야. 언니에게 뭐라구 해야하나.
언니 고마웠어요. 언니 은혜 죽어서라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이 성애는 무서워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답니다. 언니에 대한 도리가 아닌 줄 알지만 무서워서, 너무나 무서워서…, 언니, 안녕!
경숙에게 "은영언니 이번 일요일에도 오죠? 라고 말한 것이 성애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한다. 잠시 후 악-, 하는 비명소리가 진동했고 나가보니 성애가 7층 옥상에서 몸을 던진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있더라는 것이다.
결국 성애는 죽어서 뜻을 이루었다. 울지도 않는 성애 엄마에게 성애가 갈구한 보상금이 주어졌다. 그리고 시위였다. 성애 생전엔 관심도 안 두던 환자들이 성애의 죽음을 계기로 들고일어났다.
"성애를 살려내라. 우리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라…."
일몰의 어스름한 빛이 어느새 강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성애에게 작별을 고했다. 성애가 살아있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또 올게 밥 잘먹고 건강하게 있어"하며 성애를 향해 손을 흔든다. 가까이서 들리던 바람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이 소설은 86년 11월 산재병원에서 투신자살한 김경숙(당시 19세)양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글/이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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