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어느 여름날
본문
아침부터 한바탕 말싸움을 벌였으니 오늘은 보나마나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최씨는 단정했다. 요즘 들어 계절을 타느라고 매상이 예전같이 안 올라 가뜩이나 죽을 쑤는 판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그 몹쓸 영감태기가 고춧가루를 뿌려놨으니 정말 대책 안서는 환장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으이구 성질 같아선 그냥-"
최씨는 방금 자신이 빠져나온 시장보관소 쪽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다가 한순간 움찔했다. 그의 손이 잠시 달구지 손잡이를 놓은 사이, 달구지가 요동을 치면서 그 위에 쌓아놓았던 수세미가 툭,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떨어져 뒹굴었던 것이다. 아연실색, 최씨는 순간,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했다. 참아야 하는데 이까짓 일로 성질을 내면 안되는데- 최씨는 부리나케 갑옷바지를 움직여 수세미를 추슬러 담았다. 그러나 암만 생각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최씨는 다시 한번 보관소 쪽을 향해 이번에는 두 손으로 달구지 손잡이를 꼭 잡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지옥에나 가소 마!"
한낮의 햇살이 시장안 가득히 따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연 삼일 째 계속되는 더위였다.
"참,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나는 어떡하라구 이런 더위를 내리신담…"
최씨는 잠시 골목길에 기대어 하늘을 쳐다보며 애꿎은 푸념을 했다. 생각할수록 숨막히는 더위였다. 시장통로를 달구지를 밀며, 자신의 몸을 끌며, 하루에도 수십차례 왕복을 해야 하는 최씨에게는 위에서 햇빛이 저렇게 내리비치니 얼굴이 타는 것은 고사하고, 또 땀으로 온몸을 적시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머리가 빠개지는 듯이 아프고 현기증이 일어나는 현상은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차라리 비나 쏟아지지…"
최씨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진리인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곧 떠올리곤 체념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달구지 밑에 달린 카세트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곧 스피커에서 이별이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하는 뽕짝노래가 간드러지게 울려나왔다. 볼륨을 조금 높이자 이제 최씨의 시장안 출현은 확연히 드러난 셈이었다.
"그래, 사나이 대장부가 날씨에 질 수 있나, 암 질 수 없고 말고."
최씨는 흥겨운 노래 가락이 울려 퍼지자 잠시 후 잃었던 기운을 되찾아 소리치기 시작했다.
"자, 내가 왔어요. 경상도 사나이가 오늘도 변함 없이 여러분 곁을 찾았습니다. 자 아줌마, 수세미 사세요. 때타 올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신명이 나질 않으니 말이다. 이제 겨우 한 마디를 뱉었는데도 목이 막히고 예전처럼 기운이 나질 않았다.
"제기랄 다 그 영감태기…"
최씨는 고개를 돌려 탁-, 하고 침을 뱉었다. 우라질.
"왜 그래,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겼어?"
낯익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시장 경비원 이가가 어느새 옆에 다가와 최씨를 굽어보고 서 있었다. 이가를 보자. 최씨는 옳거니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바탕 이가에게 속풀이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 마라, 내싸 재수가 없을려니까 원."
어느새 막히던 목소리는 간 곳 없고 최씨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가 쉬임 없이 터져나왔다.
"왜 안다아이가 저 보관서 영감태기, 아침에 장사하러 나왔는데 암만 찾아도 코빼기도 안 보이는기라. 내싸 성질이 안나게 생겼나, 가뜩이나 요즘 장사가 안돼 약오르는 판인데 물건이라도 빨리 내줘야 일찍 장사 시작해서 보충을 하재, 안 그렇나. 아닌 말로 내가 몸이라도 성하면 직접 찾아나 보재, 한마디로 답답해 죽겠는기라, 그래 막 고함을 질렀다. 아이가, 그제서야 이 영감태기 코빼기를 내미는데 하는 말 좀 보소, 나 화투치는 중이니 다른 사람 데려다가 물건 꺼내가라. 딱 이런다 아이가, 니도 생각 좀 해보그라, 내가 보관료를 안물었나. 영감한테 해꽂이를 했나. 내가 무슨 잘못이 있노. 사람이 경우가 없어도 유분수지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가 있나 말이다. 그래서 내가 점잖게 안 말했나, 주인이 물건을 내줘야 하는게 원칙 아닙니꺼-, 그랬더니 이 영감 하는 행동 좀 보그라, 방에서 화투패를 탁, 소리나게 팽겨치더니 맨발로 뛰어나와 불문곡직하고 나한테 삿대질을 하는기라. 뭐 끗발이 안 서 약오르는데 병신새끼가 다 지랄한다나, 나도 사람인데 성질이 안나게 생겼나, 그래서 따졌제, 할아버지 그 무슨 망발입니꺼, 하고 말여 그랬더니 이 영감태기…"
"그만해라, 말 안 해도 알겠다."
"내가 병신이라고 얕보는기라 으이구 성질 같아선 그냥-"
"관둬 관둬, 그건 그렇고 최가 너 저 소리 안들리냐?"
"무슨 소리-"
순간 최씨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가까운 곳에서 또다른 뽕짝노래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고!"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 따끔하게 한 마디 해서 다시는 못오게 만들라니까 내 말 안듣더니…"
일이 안될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이럴 수도 있을까 싶은 난감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분명 또 다른 최씨 같은 장사치가 이 시장안에 들어와 있다는 증거였다. 연전에도 최씨는 오늘 같은 경우를 당해 심히 낭패해 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거미가 제 살을 깎아먹는 행위가 이 같은 경우에 다름아니었다.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한 사람이 이 장사를 해도 사람들이 사줄까 말까 하는데 이 좁아터진 시장바닥에서 두 대의 달구지가 서로 제 물건을 팔아달라고 왔다갔다하면 피차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차후에 이 장사에 대한 손님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리라는 것쯤은 불 보듯 훤한 것이었다.
최씨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대로는 안된다는 단정을 곧 내렸다. 전에는 사정을 생각해서 봐줬지만 오늘은 기필코 따지리라 다짐했다. 최씨는 서둘러 카세트의 스위치를 끄고 상대방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장사고 뭐고 할 기분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뤄놓은 내 삶의 터전인데 누가 감히 훼방을 놓는단 말인가. 이만큼이라도 살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참 세상 얄궂데이…
최씨는 착잡한 심정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문득 그의 지난 시절이 아련한 기억 저편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애써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최씨 그의 삶은 한마디로 가시밭길을 헤쳐온 삶이었다.
철이 들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의 두 다리가 남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었다. 그는 땅을 딛고 걷고 싶었는데 두 다리는 그의 간절한 심정을 배반했던 것이다. 그래도 한 걸음 이라도 걷고 싶어 벽을 짚고 일어서다가 앞으로 넘어져 최씨는 처음 눈물을 흘렸다. 바깥구경을 하고 싶어 집밖으로 기어나갔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회피하는 눈짓과, 아이들의 앉은뱅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놀림에 고개 숙여 울었고, 아무도 집 안에만 있는 그를 찾아오지 않아 외로움에, 배우고 싶어도 학교를 갈 수 없어 절망감에, 나는 이대로 죽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처절한 회의와 괴로움에, 그는 눈물을 흘렸었다. 그런 삶이었으니 생의 기쁨을 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마치 집을 지키는 개처럼 주는 밥이나 먹고 지내왔던 것이다.
처음 이 장사를 시작했을 때, 구걸행위나 다름없다는 자책감이 그를 몹시도 괴롭혔지만 그는 그래도 집 안에만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선뜻 용기를 내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믿어 고무로 된 바지, 갑옷을 선뜻 입었던 것이다. 초기에는 시장바닥으로 달구지를 밀며 기어나갈 때 흡사 온 세상 사람이 자신만을 쳐다보는 것 같아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해결책으로 주위사람이 권한 술을 단호히 거부했다. 술을 먹고 자신의 처지를 잊고 싶다는 간절한 유혹이 그를 괴롭혔지만 눈물을 흘릴지언정 정녕 술만은 먹지 않았다. 정말 타락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시일이 조금 지나자, 어차피 구걸행위이니 마이크를 잡고 흘러간 유행가를 불러라. 그러면 사람들이 더 잘 사줄 것이다. 그리고 겨울에는 동정심을 유발하도록 옷을 벗고 기어다녀라. 여자를 구해 부부처럼 꾸미고 장사를 하면 정말 많이 팔릴 것이다…. 주위에서 자칭 베테랑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이런 충고를 했지만 그는 한마디로 거부했다. 물론 그도 그 같은 행위들이 그에게 좀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차마 자신을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성격이 조금은 호전적 성격으로 변해갔지만 다른 것은 적어도 자신을 지켜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언제 이 장사를 그만두고 살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었지만 그날까지 정직하게 열심히 노력하리라고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버텨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최씨는 감았던 눈을 떴다. 사람 복창 터지게 만들어도 유분수지 이런 얼토당토않은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최씨는 먼발치로 다가오는 달구지를 노려보았다. 엎어진 놈 짓밟는다고 한술 더 떠 상대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오야 두고보자…"
최씨는 순간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한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 도저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최씨는 달구지를 버려 둔 채 땅바닥을 기어 상대에게 나아갔다.
"이봐, 나 좀 보그라."
"왜 그러오."
가까이서 보니 새까만 젊은 애였다. 그런데 눈동자가 예사롭지 않았다. 최씨를 쏘아보는 품이 만만치 않아 최씨는 잠시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너 어디서 왔나?"
겨우 할 말을 생각해 내고 최씨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러나 그 젊은애는 이미 최씨를 보고 있지 않았다. 상관 않겠다는 듯 달구지를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최씨의 화가 폭발했다.
"야,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아무리 경우가 없더라도 유분수지 니는 웃사람도 몰라보나. 그리고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노. 아무리 할 수 없어 이 장사를 한다지만 기본적 예의는 지켜야 할 거 아이가. 니 내 죽고 너 죽고 한번 해볼래."
최씨는 흡사 금방이라도 달구지를 엎어버리겠다는 몸짓으로 젊은애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그럼 어떡합니까. 나도 먹고살아야지요. 세상에 아저씨만 살란 법이 있습니까?"
젊은애가 얄밉도록 차분하게 말대꾸를 해왔다.
"누가 니더러 먹고살지 말라고 그랬나.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울 자리를 보고 누워야 할거 아이가, 니도 알다시피 이 좁은 바닥에서 둘이 이 장사를 하면 도대체 무엇이 남겠노."
"참, 아저씨도 답답하시긴."
젊은애는 그제서야 최씨의 하는 폼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태도를 유순하게 고쳤다.
"내가 여기 와서 장사를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십니까? 잘 알면서 왜 그래요."
"뭐라꼬!"
"운전사가 여기 내려놓으니 하는 수 없이 하는 거잖아요."
"……"
최씨는 뭐라고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가슴 가득 답답함만 차오를 뿐 젊은애를 상대로 달리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젊은애의 말은 하나도 틀린게 없었다. 어차피 불편한 육신으로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 그들 같은 사람들로서는 비싼 돈을 주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비장애인이 모는 차를 탈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 운전사들이 좀 더 나은 수입을 올려준다며 이곳 저곳 떠돌며 장사를 시키는 것은 하등의 잘못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굳이 잘못이 있다면 고집스레 한 시장을 고수하는 최씨 그 자신일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최씨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서 길을 터주며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역시, 오늘은 일진이 나쁜 날이었어."
최씨는 중얼거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그놈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역시 덩그마니 떠있었다.
※6월호 소설 "안개꽃 한 다발 묶어"의 마지막 저자의 말 중 실제 주인공은 김경숙이 아니라 김성애양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글/이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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