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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괴물과 마주하며 어른이 됩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감독 장준환, 2013,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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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남자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꾸었던 꿈을 기억하시나요? 높은 낭떠러지 위에서 뛰어내리거나, 누군가를 찔렀는데 바로 아버지 얼굴이어서 흠칫 놀라서 깼던 기억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성장은 그 방식이 크게 다릅니다. 대개 남자아이들은 마주 보는 대응관계 속에서 상대와 경쟁하며 함께 싸우고 놀면서 어른이 됩니다. 칼싸움, 총싸움, 자동차 싸움 등도 그러하고, 사춘기 시절 맺어진 친구들도 한 번쯤 주먹다짐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면에서 프로이트에 의해 언급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심리현상입니다. 개인별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많은 남성은 3세 전후에 자신의 돌봄 주체인 엄마를 둘러싼 큰 심리전쟁을 치릅니다. 이때의 적대적 공생관계는 동성의 아빠가 되는 것이지요.

오랜만에 거대한 한국형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대형 스크린을 메웠습니다. 선과 악의 대립 속에 화려한 캐릭터들을 앞세운 우리 시대의 우울과 광기를 가득 삼킨 괴물과 같은 영화 ‘화이(장준환 감독, 한국, 2013)’입니다.

   
 

‘지구를 지켜라’(2003)를 통해 우리의 문화적 상상력을 우주까지 확장했다고 평가받는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만든 영화이기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영화 ‘화이’는 유괴된 아이 ‘화이(여진구 분)’가 5명의 무시무시한 범죄 집단인 ‘낮도깨비’들에 의해 길러지고, 선과 악의 분기점에 노출되면서 생부를 죽이게 되는 과정이 전반부에 담겨있습니다.

후반부는 생부를 죽이도록 만든 5명의 양부에게 차례로 복수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룬 영화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맛은 ‘왜 그랬을까’라는 큰 의문에 답하는 과정입니다.

첫 번째 의문은 ‘화이’를 유괴한 양부들의 상징에 대한 것입니다. 왜 양부들은 생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요? 그러면서 ‘괴물’이 아닌 ‘화이’를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려는 것일까요?

인간의 무의식에는 ‘억압’과 ‘동일시’라는 중요한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선으로 상징되는 ‘화이’의 생부 임형택(이경영 분)은 유괴당한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죽는 순간까지 붙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화이’라는 아이보다 세상에 대한 구원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선지자적 구도의 자세에 억압된 석태(김윤석 분)는 본질에서 악이 될 수밖에 없는 위치입니다. 절대 선은 절대 악을 언제나 억압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는 빛과 그림자, 해와 달 그리고 사랑과 증오의 모순적 대립관계와 같습니다.

석태의 얼굴(김윤석의 연기는 석태를 절대 악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에 교차하는 아버지로서의 선과 살인을 지시하는 낮도깨비의 악을 통해 우리는 인간구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화이’는 석태에게 묻습니다, 왜 나를 키웠느냐고. 석태는 조용히 말합니다. “아버지가 괴물인데 너도 괴물이 돼야지. 넌 아빠들과 다르다고? 넌 깨끗하다고?”라고 말하며 ‘화이’를 압박합니다.

모든 기성세대는 세상살이로부터 괴물이 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 순수한 아이들을 키우고, 그 순수한 아이가 괴물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늙어갑니다. “그래 내가 처음부터 악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해. 적어도 내가 괴물은 아니지 않은가?” 동일시의 효과는 뜻밖에 인간에게 위안을 줍니다.

자식들의 성공 혹은 치열한 세상살이를 지켜보며 부모세대는 자신의 인생이 새삼 위대했음을 깨닫습니다. 일종의 자기 최면 과정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화이’ 스스로에 대한 정체감입니다. 왜 화이는 같은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용서받는 것일까요?

가장 큰 답은 괴물이 ‘된 사람’(석태)과 괴물에 맞서 ‘싸우는 사람’의 차이일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기성세대들의 모순(살부, 생부의식을 통칭합니다)을 하나둘씩 파괴하면서 어른이 됩니다.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매몰차게 밀쳐버리고, 싫으면서도 따라 하게 되는 수많은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됩니다.

영화 속 나무 괴물은 우리가 떨쳐버리고 싶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마침내 그 나무를 물리쳤을 때, 세상이라는 공포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영화의 부제목인 ‘괴물을 삼켜버린 아이’를 떠올리면 됩니다).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소년의 성장의식을 화려하고 잔혹하게 사회범죄와 연결하는 장준환 감독의 상상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화이’는 결코 홍콩 누아르식 공식을 지닌 영화가 아닙니다.

인정받고 싶은 남자아이와 어른의 내면을 통해 우리가 모두 한 가지 정도는 지니고 있는 마음의 ‘괴물’을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족 하나를 붙이자면, 여진구라는 명배우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김윤석의 기에 전혀 기죽지 않는 그의 연기 또한 ‘화이’에 몰입할 수 있는 내공을 심어줍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꾸벅.

 

   
 
작성자이영문 국립공주병원 원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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