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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고 늙고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영화 ‘화장(2015, 한국)’

본문

육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계신지요? 여기서 언급한 ‘인지’라는 개념은 ‘의식’이라는 형식을 빌린 인간 고유의 사고능력을 말합니다. ‘늙음을 인지한다’는 명제는 반대로 젊음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인간은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아름다움과 추함의 극한을 오가는 존재입니다.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은 늘 삶과 죽음과의 관계를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역사성을 통해 조명해왔습니다.

2014년 부산영화제를 통해 발표됐고 2015년 4월에 개봉한 ‘화장’을 따라가 봅니다. 동명의 김훈 소설을 각본, 각색하고 연출한 이 영화는 중년 남성의 고단한 삶을 추적하면서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 그 사이에 흐르는 인간 욕망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뇌종양을 두 차례나 앓고 있는 아내(김호정 분)를 매일 간호하는 오정식(안성기 분)은 화장품 회사의 매우 유능한 상무로 평생을 일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성공한 한국 중년 남성들과 같이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고, 그 나이에 걸맞는 무덤덤한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표정하고 기계적인 성실함으로 아내를 간호하고 있지만 관객들은 그에게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나 연민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매일 죽어가는 아내를 간호하던 오정식에게 어느날 문득 회사에 새로 들어온 홍보팀 대리 추은주(김규리 분)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죽음의 길목에서 삶의 상징과도 같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닌 추은주의 존재는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줍니다. 지친 오정식의 굳은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 그는 고뇌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사활이 달린 신제품 광고의 방향도 결정해야 하고 죽어가는 아내의 몸을 씻어주며 추은주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영화는 아내의 죽음 이후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하는 3일의 궤적을 따라가며 과거의 흔적들이 곳곳에 삽입되는 방식을 취합니다. 90분의 러닝타임은 마치 수묵화처럼 느껴집니다. 영상이 흑백이었더라도 별다른 차이가 없을 장면이 많습니다. 화려함에 어울리는 장면은 모두 추은주와 관련 있습니다. 마케팅부의 직원들과 함께 하는 회식, 추은주와의 사랑을 꿈꾸는 현대 무용 장면 등이 그것입니다.

화장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몸을 치장하는 화장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생활방식을 상징하지만, 시신을 불사르는 화장은 ‘죽음을 향한 의식’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반대로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과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의 운명은 시계추와 같고 아내와 추은주의 육신을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 오정식의 심리는 지난 시간 침묵해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항변입니다. 아내의 죽음을 보며 오정식은 자신의 죽음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현재 소변누기도 어려운 전립선 비대증이라는 노화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추은주가 주는 아름다움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욕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욕망마저도 드러내기가 어려운 것이 오정식의 삶입니다. 이 영화는 사건을 따라 전개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단조롭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안성기의 감정선입니다.

아내와의 무덤덤한 관계, 무표정한 얼굴로부터 추은주를 만나며 겪는 설레임과 어설픔, 다시 아내의 몸을 씻어주며 흐느끼는 아내를 바라볼 때의 미묘함, 아내의 유품을 태우다가 발견한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들여다 보며 처음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 그리고 추은주를 떠나보내는 아픔, 아내의 강아지를 안락사 시킨 후 광고의 방향을 지시하는 단호함과 가벼움에 이르기까지 그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젊은 관객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단언컨대 임권택 감독은 안성기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연출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55세 중년남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의 경계에 서있는 영화속 모습은 정확하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저의 현재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현실의 무게속에서 느끼는 삶의 가벼움은 영화속 장면처럼 화장할 수가 없습니다. 미처 이루지 못한 꿈 혹은 욕망에 대한 미련,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담백하게 가야겠다는 의지를 흔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욕망의 찌꺼기로 돌아와 저를 여전히 힘들게 합니다. 또한 안성기가 연기한 오정식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서 나이듦을 인지하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추해지고 병으로 죽습니다. 다만 그 늙음을 언제 어떻게 인지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이는 부정을 하고 또 어떤 이는 우울에 빠지기도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모두 욕망의 찌꺼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 마주하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죽음과 마주하기. 이제는 죽음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건강하세요.

 

작성자이영문(공립 공주병원 원장)  gypsy7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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