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 여름휴가 (3)
본문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섬을 떠올리면 단연 ‘제주도’가 먼저 생각난다. 일본에도 제주도와 비슷한 섬 ‘오키나와’가 있다. 필자는 지난 봄 우연한 기회에 오키나와로 여행을 갔다. 다른 여행과 달리 오키나와 여행 준비는 여행 일정을 짜기 위해 여행 정보를 얻는 것부터 순조로웠다. 장애인 여행객을 맞이하는 오키나와 관광지, 식당, 숙소는 나름의 체계를 잘 갖추고 있었다. 대중교통 시스템을 제외하면 오키나와 여행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둘째 날과 셋째 날
펜션 이페를 떠나 차를 몰고 코우리 대교로 향했다. 코우리 섬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이다.
펜션 이페가 있는 야가지 섬에서 코우리 섬까지는 대략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야가지 섬에서 코우리 섬으로 넘어가는 대교 양 옆으로 잔잔하게 펼쳐져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다는 아름답다 못해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필자는 차를 몰고 우선 코우리 섬을 일주했다. 생각보다 작은 섬이지만 곳곳에 숨겨진 명소가 무척 많았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작은 해수욕장부터 쌍둥이바위, 코우리섬 전망대 등 아기자기한 관광지가 많았다.
필자는 다음 이동 행선지를 고려해 코우리섬을 짧게 즐기기로 했다. 야가지 섬에서 코우리 대교에 오르면 대교 끝자락에 작은 휴게소가 있었다. 이 곳에는 오키나와 특산품과 간단한 간식거리,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또 가까운 곳에 백사장이 있어서 샤워시설 및 화장실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접근 가능한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다).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백사장이 있는 곳으로 질주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휠체어가 백사장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백사장 초입까지는 휠체어가 어느 정도 접근 가능했지만, 점점 더 휠체어 바퀴가 모래 구덩이에 빠져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조금은 먼발치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를 눈에 담아 왔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휴게소로 왔다. 더위를 식혀보려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오키나와에서만 먹을 수 있는 ‘블루씰’ 아이스크림. 그 중에서도 소금 쿠키 아이스크림을 골라보았다. 역시, 필자의 선택은 탁월했다. 너무 달큼해서 질리기 쉬운 아이스크림에 간간히 짭조름한 맛이 가미되니 꿀맛이었다.
해도곶 ☞ 카야우치반타
코우리 섬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오키나와의 끝을 보기 위해 최북단 해도곶을 향해 달렸다. 해도곶은 코우리 섬에서도 1시간 정도 걸렸다. 에메랄드 빛 바다 옆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해안도로 곳곳에는 주차가 가능한 작은 쉼터가 많았다. 그 곳에 잠시 멈춰 관광객 모드로 사진도 찍고 바다 경치도 감상하기에 만점이었다.
그런데 해도곶으로 이동하는 동안 날씨가 점점 급격하게 변해갔다. 바람도 강해져 에메랄드 빛 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운 색으로 변해갔다. 사전에 찾아보았던 여행정보에서 해도곶은 비나 바람을 피할 곳이 없으니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각별히 주의하라는 것을 본 적 있었다. 필자의 근심은 점점 더 커져갔다. 해도곶을 10여분 앞두고 다시 차를 돌려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때마침 필자의 눈 앞에 보이는 하얀색 간판이 있었다. ‘Kayauchibanta Cliff Viewpoint(카야우치반타 절벽 전망대)’. 해도곶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고생을 하거나 유턴을 해 이튿날 숙소가 있는 나고시로 가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오키나와 관광을 즐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부랴부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 언덕길로 차를 몰았다. 속력을 줄이고 절벽 전망대를 찾기 위해 목을 빼며 운전을 했다. 가면 갈수록 으슥하고 거대한 풀숲 속을 향해 차가 움직였고, 전망대처럼 생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차를 몰고 올라가는데, 붉은 색 차량 한 대가 엉금엉금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다. 필자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저 차도 나와 같은 곳을 가고 있구나, 낯선 곳에서 만난 붉은 색 차량에 의지해 정글 같은 숲길을 오르자 아주 잘 갖추어진 전망대 주차장이 나타났다. 숲길 끝에서 마주한 아주 잘 정돈된 전망대(심지어 장애인용 화장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필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붉은 색 차량의 운전자에게 말을 걸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던 운전자는 중국인이었다. 그 역시 나를 보자 활짝 웃는 것이 전망대로 오르는 정글 숲 길이 내심 무서웠던 모양이다(그냥 필자의 추측이다). 우리는 서로의 여행이 즐겁기를 바란다는 짧은 인사를 하고는 각자 전망대로 올랐다.
사실 카야우치반타 전망대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절벽 끝자락에서 먼바다까지 내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가 전부였다. 그러나 코우리섬에서 보던 바다나 해안도로에서 보던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의 오키나와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저 먼바다에 있던 검은 먹구름이 천천히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필자의 코 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우산도 우비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소나기 구름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구름이 다가오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차 안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 사이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전망대 뒤편에 있는 오두막으로 몸을 피했다. 부리나케 처마 밑으로 몸을 숨기자마자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대성 기후인 오키나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스콜(squall)이었다.
아메리칸 빌리지
한바탕 소나기 소동이 끝나고, 잠시 비가 멈추는 틈을 타 빨리 이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날씨를 보아하니 계속해서 비가 내릴 것처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었지만, 휠체어와 비는 상극이다. 하는 수 없이 이튿날을 보내기로 한 숙소로 차를 돌렸다. 그 사이 어느덧 시계는 오후 3시에 가까워졌고, 비를 피하느라 운전하느라 점심시간은 이미 훌쩍 넘어 버렸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제대로 점심을 먹지 못해 식당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휴식시간입니다~’ 였다.
배는 고픈데 밥 주는 식당이 없어 속상했다. 그렇다고 굶을 수는 없었다. 차를 몰고 근처 대형 슈퍼마켓에 갔다. 장바구니 하나를 들고 먹고 싶은 음식을 모조리 담았다. 커피, 생수, 과자, 빵을 왕창 담았다. 이 코너 저 코너 돌아다니다 보니 즉석음식을 파는 코너가 보였다. 주먹밥부터 꼬치요리, 돈 가스, 덮밥에 초밥까지 음식이 넘치고 흘렀다. 사실 필자는 이 순간을 위하여 초장을 준비해왔다. 당당히 장바구니를 들고 회 코너에서 포장된 회와 초밥을 담았다.
제대로 충동구매와 먹거리 과소비를 한 봉투를 들고서 가까운 바닷가로 갔다. 오키나와의 좋은 점은 바다를 쉽게 볼 수 있는 장소가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항구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하고는 준비해둔 초장에 초밥과 회를 찍어서 허기를 채웠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맛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지 꿀맛 중에서도 꿀맛이었다.
한 상 거하게 차려먹고서는 차를 몰고 숙소로 향했다. 이튿날 숙소는 미군기지가 들어선 차탄 해변을 중심으로 조성된 아메리칸 빌리지 근처로 잡았다. 오키나와 북부에서 심야 운전은 정말 힘겨웠다. 우리나라처럼 불빛이 화려하지도, 밝지도 않을 뿐더러, 숲이 우거진 좁은 길은 불빛조차 없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필자는 해가 지기 전 숙소에 도착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첫날엔 우측 운전이 낯설었지만, 이튿날부터는 가끔씩 좌우 방향지시등과 빗물을 닦아주는 와이퍼와의 위치가 헷갈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부드럽고 안정되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우회전 방향지시등을 켜야겠다고 자연스럽게 조작했는데 와이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바람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나고시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아메리칸 빌리지에 도착했다. 바다 전망이 잘 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휠체어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숙소의 편의시설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적이 많다. 그런데 일본은 필자가 다녀 본 해외 여행지 중에서 숙소 걱정 없기로는 으뜸이라고 칭찬하고 싶었다. 비즈니스급 호텔에서부터 5성급 호텔까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숙소가 많아서 선택의 폭이 아주 넓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을 겸 아메리칸 빌리지로 향했다. 아메리칸 빌리지에는 식당도 찻집도 상점도 많았다. 숙소에서 약 10여분 정도 이동하면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회전초밥집이 있었다. 아주 유명해서 줄을 서서 먹을 정도였다. 수동 휠체어는 들어갈 수 있으나 전동 휠체어는 내부가 좁아서 들어갈 수 없고, 테이블 높이가 높아서 주의해야 했다.
아메리칸 빌리지가 유명한 이유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시내를 제외하고 밤 구경이 어려운 오키나와 여행지 중 유일하게 밤 마실이 가능했다. 특히 아메리칸 빌리지 근처에 있는 호텔에 묵는다면, 맥주나 사케 한 잔 하며 흥겨운 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특징 있는 점포가 많았다. 편집샵부터 특색 있는 식당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서 기념품 쇼핑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셋째, 아메리칸 빌리지의 상징적인 대관람차가 밤이면 아메리칸 빌리지의 야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츄라우미 수족관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날. 하늘은 더 이상 필자의 편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목표했던 세 곳의 일정 중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은 바로 츄라우미 수족관 뿐이었다.
오키나와현 이시카와 해양박람회 기념공원 내에 있는 츄라우미 수족관에는 세계 최초로 사육된 고래상어와 쥐가오리가 있었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관람하는데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워낙 보행약자와 유모차가 수도 없이 자주 방문하는 유명한 여행지기 때문에 무작정 출발했다.
비를 뚫고 츄라우미 수족관에 도착했다. 주차장을 찾기 위해 속도를 낮추고 기웃기웃 거리고 있자 먼발치에서 주차안내요원이 나를 불렀다. 필자는 창문을 열고 짧은 한마디와 함께 손가락으로 렌터카 차량 보닛 위에 붙어 있는 파란색 네잎크로버를 가리켰다. “휠체어”. 안내요원은 마크를 확인하고는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바로 안내를 했다. 사실 마크가 없어도 휠체어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면 얼마든지 주차할 수 있었다. 때마침 차 옆으로 승용차 한 대도 나란히 주차했는데, 휠체어를 탄 한국인 관광객 가족이었다.
츄라우미 수족관이 있는 해양박람회기념공원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필자는 고래상어가 밥을 먹는 광경을 보기 위해 천천히 발길을 옮기며 구경을 했다. 손으로 해양생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코너에서 개불과 해삼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고, 만화영화 ‘니모’에서 나오는 열대어부터 뱀장어까지 수많은 해양생물을 만났다. 츄라우미 수족관에서는 오후 3시와 오후 5시, 하루 두 차례 고래상어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츄라우미 수족관에 간다면 꼭 보고 오기를 추천한다).
조금은 교육적이고, 조금은 신기한 상어의 식사시간이 오기 전 수족관에 가깝게 붙어 상어의 자태를 감상했다. 카메라로 담는 모습보다 실제로 고래상어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거대한 고래상어 세 마리와 함께 마치 독수리 날갯짓을 하듯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쥐가오리도 볼 수 있었다.
수족관 관람도 끝이 났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어서 펼쳐지는 돌고래 쇼를 보려고 했으나, 출구를 나서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는 아쉬웠던 찰나, 셔틀버스 한대가 도착했다. 그것도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된 셔틀버스였다. 필자는 빗방울을 뚫고 지나가 셔틀에 탑승하겠다고 했다. 기사님은 자연스럽게 차량 뒤쪽에 설치된 리프트를 내려주었다. 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기념공원에서 셔틀버스 창 밖으로 이곳 저곳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시나바 아울렛
‘날씨가 맑았더라면…’
비 오는 날 오키나와에서 머릿속으로 수 백 번 곱씹은 이야기였다. 점점 더 굵어지는 빗방울을 지켜 볼 수 없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오키나와의 마지막 날인데, 고작 상어 먹방만 보고 끝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쇼핑이었다.
츄라우미 수족관과 나하 공항 근처에 있는 아시나바 아울렛은 비 오는 오키나와에서 관광객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거리가 극과 극이었다. 그래도 필자는 아시나바 아울렛으로 향했다. 아시나바 아울렛 주변으로 거대한 쇼핑 타운이 조성되어 있어, 의류, 잡화, 식품, 전자기기 등 관심거리에 따라 아이쇼핑을 즐기기에도 좋았다. 물론,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식당과 차가운 냉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카페도 많아서 비 때문에 망쳐버린 여행 일정을 조금은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짧은 시간 오키나와 여행을 했다. 사실 오키나와의 관광지는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남부 나하시부터 북부 나고시까지 속속들이 살펴본다면 한달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에서 휴양과 레저 스포츠까지 즐긴다면 석 달 열흘로도 부족할 만큼 매력적인 관광 명소였다. 필자가 만난 오키나와는 휠체어와 장애인에게 무척 친절한 곳이었다. 비록 필자는 계획에 없던 비를 만나 원하던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었다. 큰 불편함 없이 ‘가족’들과 함께 가기 좋은 해외여행지로는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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