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의 정신과 약물 투약기
느림보 엄마의 성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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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의 사진
우리 집 막내 서호는 잘 웃고 장난기가 많은 7살의 남자아이이고, 자폐성 장애가 있다. 서호는 호기심 이 많고 명랑한 아이이다. 그리고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몸이 먼저 움직이고, 그러다가도 금방 질 려서 다른 흥밋거리를 향해 달려간다. 다른 말로 하면, 충동적이고 산만한 편이다.
2년 전인 다섯살 무렵에는 이런 성향이 지금보다 훨씬 두드러졌다. 서호는 자동차를 예전부터 무척 좋 아했는데, 그 무렵에는 큰 덤프트럭에 아주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주차된 덤프트럭을 보면 차를 빙 둘러 가며 보고, 특히 바퀴를 한참 바라보고 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도로 옆길을 손을 잡고 같이 가다가 달려가는 덤프트럭을 보고 흥분해서 도로쪽으로 뛰어간 날이 있었다. 다행히 얼른 서호를 잡아서 아무 일도 없었지만, 너무 놀라서 머리가 하얘졌었다. 이러다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일단 뛰기 시작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서호의 특징 때문에 위험했던 순간도 있다. 손을 잡고 걷다가 갑자기 뛰기 시작한 서호. 혼자 신나서 속도를 올리다가 사차선 교차로 에서 멈추지 않고 도로로 뛰어들 뻔한 일이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쫓아 달렸고, 도로로 뛰어들기 직전에 서호를 낚아챌 수 있었다. 경악과 당황과 분노의 감정이 널뛰는 가운데 바라보는 서호의 표정 은 그저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라 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외에도 10층인 우리 집 베란다에 방충망을 열고 난간에 매달려서 바깥을 구경한다든가, 역시 베란다 의 방충망을 열고 집 안에 있던 물건을 밖으로 던진다든가 하는 충동적인 행동들이 하루걸러 하루꼴로 일어나다 보니 주 양육자인 나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많이 소진되어 서호에게 건강한 상호작용을 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서호의 상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기존에 다니고 있던 소아정신과를 방문해 서 상담받았다. 정신과 전문의는 약물 투약을 권유했다. 사실 서호는 5살 때부터 약물 투약을 권유받 았는데, 어린아이에게 정신과 약물을 먹이는 것에 대한 걱정과 부담감 때문에 조금 더 크면 시도해보 겠다고 했던 차였다. 그렇지만 약물을 투여했을 때의 부작용으로 인한 실보다, 약물을 통해 충동성이 조절되었을 때의 득이 지금의 서호에게는 더 크다고 판단해서 6살인 지난해 3월부터 투약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호가 먹는 약의 상품명은 아빌리파이(Abilify), 성분명은 아리피프라졸(Aripiprazole)이다. 본래는 조현병 치료제로 개발되었고 서호와 같은 자폐성 장애인들의 정서 조절을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상용 화된 약제이기에 당연히 임상을 거쳐서 여러 부작용이 밝혀져 있지만, 그것은 성인을 대상으로 투약 한 결과이고 윤리적 문제로 서호와 같은 아동에게서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통계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 져 있지는 않다. 아빌리파이뿐 아니라, 자폐증 아동들이 복용하는 대부분의 약물이 아동에게서 나타나 는 단기 투여, 장기 투여에서의 부작용이 연구로 입증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동이 약물을 복용하는 동안 주 양육자와 아동 관련 종사자들이 약물 부작용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아리피프라졸은 비슷한 효능을 보이는 약물 중에서도 부작용이 가장 적고,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많은 자폐성 장애 아동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약물이 기도 하다. 그렇지만 부작용이 적은 것이지 없는 것은 아니다. 서호도 이 약을 처음 투약하기 시작했을 때와 중간에 3차례 정도 증량을 할 때마다, 코피, 변비, 기분 변화와 식욕 증진 같은 부작용들이 1~2주 정도 나타났다.
서호의 담당의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 보호자인 나에게 투약 전 자세하게 알려 주었고, 부작용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법들(충분한 수분을 섭 취하고 유산균을 같이 먹기)도 미리 안내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서호의 투약 사실과 서호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증상에 대해 또 다른 보호자인 아빠와 서호가 다니고 있는 기관의 선생님들과 공유했다. 그래서 서호에게서 기대했던 약물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그리고 부작용이 관찰되지는 않는지에 대해 자주 소통했다.
다행히 약물 투약 초기에 나타났던 코피나 변비 같은 부작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지 않았고, 약 물 투여로 인해 충동성과 산만함이 줄어들어 서호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더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모습 을 볼 수 있었다. 서호의 충동성과 산만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투약 이후에는 차도로 뛰어들거 나 난간 위로 올라가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게 되었는데, 약물로 인해 충동성이 줄어드니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더 분명하게 인식 할 수 있게 된 결과로 생각된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서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서호의 행동을 제한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줄 때보다, 서호와 편안하게 상호작용을 하고 새로운 행동들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약물의 장기 투여로 인한 부작용은 염려가 되는 부분이다. 정신과 약물의 장기 사용으 로 인한 부작용은 성인 투약에서도 문제시되는 부분이라, 어린 서호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전문의의 안내에 따라 투약 후 6개월 되는 시점에서 혈액검사, 흉부 엑스레이 촬영, 심전도 검사를 하였다. 약물의 혈중농도가 적절하게 유지되고 심혈관계에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들었다. 또한 약물로 인해서 서호의 정서가 안정되는 시점이 되면, 단약을 하고 경과를 관찰할 예정이라고 한다.
▲ 서호가 신나게 북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서호처럼 장애와 더불어 정서행동 문제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에게 정신과 약물 투여는 양육자가 고려 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이다. 약물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 또는 부작용을 간과한 채 약물의 효과만 보고 무조건 좋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약으로 인해 아이가 누릴 수 있는 득과 실을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약물 투여의 장점은, 아이의 정서와 행동이 안정 되고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더 긍정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이는 가족, 학교,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통합됨으로써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 할 수 있게 된다. 부연하자면, 약물이 그 자체로 아이에게 새로운 지식이나 행동을 습득하게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배울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약물의 단점은 말할 것도 없이, 성장기 아동의 신체에 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코피나 변비 같은 소소한 부작용뿐 아니라, 약통 안에 있는 설명서를 꽉 메우고 있는 수많은 신체적 정신적 부작용이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에게 정신과 약물을 투약할 때는 반드시 아이와 관련이 있는 어른들에게 투약 사실과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공유하고 함께 관찰해야 한다. 아이가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적인 낙인효과가 발생할까 염려하는 부모님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그로 인해 투약 사실을 숨기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약물을 선택할 때의 부모의 마음은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혼란함으로 매우 괴 롭다. 이런 부모의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 또 아동에게 더 안전한 약물 투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발달장애 아동의 정신과 약물 투약에 대한 공인된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 소아정 신의학과에서 연구하시는 분들이 함께 노력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전하며 글을 마친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정화 자갈자갈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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