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긴 기다림, 반갑다. 하늘아~, 마리야~
장애코드로 문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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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1TV ‘딩동댕 유치원’ [EBS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우리 중 누구도 완전히 똑같지 않아~”, “맞아~ 너는 ‘새’, 엘모는 ‘몬스터’, 나는 ‘요정’이잖아. 우린 모두 달라.” 미국의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세서미스트리트>에서 에피소드마다 인형 캐릭터들이 되뇌는 대사다. 이 대사에 담긴 메시지처럼 이 마을에서는 다르고 별난 것이 상식이며 보편적이다. 그래서 다름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세상의 시선에서는 못나고 부족해 보이는 친구라도 이 마을에서는 무시나 배제, 놀림이나 배척이 없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이렇게 누구나 함께 어울려 놀며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이 다름을 하나하나가 어우러질 때, 좀 더 재밌어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보고 느끼며 어린이들 스스로 알아가도록 돕는다.
1969년 미국 공영방송인 PBS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세서미 스트리트>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어린 이, 이 중에서도 다양한 장애가 있는 인형 캐릭터들을 제작해 주인공으로 출연시켜 왔다. 지난 54년 동안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전 세계 어린이가 만난 장애가 있는 인형 친구들은 청각장애가 있는 ‘린다’를 비롯해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제이슨’, 휠체어를 탄 ‘타라’, 시각장애가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 ‘엘모’와 ‘빅버드’, ‘애비’ 등 인형 친구들은 점자책을 펼쳐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수어로 인사도 나누며 휠체어를 탄 친구와 함께 숫자판 놀이와 춤도 추었다. 5년 전부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줄리아’까지 함께한다. ‘줄리아’의 첫 등장은 인상적이었다. ‘빅버드’가 “얘는 누구야?”라고 묻자, ‘엘모’가 “우리 친구 줄리아야.”라고 소개한다. “안녕. 줄리아~ 난 빅버드야”라고 인사를 해도 ‘줄리아’ 는 그림 그리기에만 집중하면서, 시끄럽다고 귀를 막는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줄리아’를 쳐다보며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빅버드’에게, 선생님은 “우리에게는 그리 큰 소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줄리아’에게는 엄청나게 클 수 있고 시끄러울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준다. 그러자 요정 ‘애비’가 “너는 새, 얘는 몬스터, 나는 요정인 것처럼 우리는 모두 다 조금씩 달라. ‘줄리아’는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이야”라고 친구의 장애에 대해 설명한다.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미취학 어린이들에게 장애가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 없을 경우, 일상에서 자폐스 펙트럼 장애가 있는 ‘줄리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만나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경험도, 기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 세서미 스트리트>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린다’, ‘제이 슨’, ‘타라’, ‘아리스토텔레스’, ‘줄리아’를 만나면서, 이친구들의 행동과 다른 친구들의 반응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다름을 존중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자연스럽고 재밌게 배울 수 있고, 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이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존재함을 인식하게 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로 친숙해질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어떨까? 1980년에 들어서면서 각 가정에 컬러TV가 보급되고 방송사마다 앞다투어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 편성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KBS의 <TV유치원 하나 둘 셋>, MBC의 <뽀뽀뽀>, EBS의 <딩동댕 유치원>이며, 기획 의도부터 대상, 포맷에 이르기까지 <세사미 스트 리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프로그램들이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는 연예인처럼 예쁘고 재능이 많은 어린이가 출연해,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하는 무대에 가까워 교육적인 측면보다는 오락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히 다양한 어린이, 예를 들어 장애가 있는 어린이나 피부색이 다른 어린이들이 출연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해 방송사의 경영진이나 제작진들은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 분명하다’, ‘아 이들이 시청하다가 무서워 울 것이다’, ‘아이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율동이나 노래가 가능한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찾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면서 배제했다. 장애는 물론이고 다양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 차별이 노골적이었고, 배제를 당연시했던 당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방송과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 진이 단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기조는 지금도 대부분의 어린이 방송프로그램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인권이 화두가 되고, 특히 장애 인권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EBS를 중심으로 유아교육 프로그램에(장애가 있는 유아 출연의 의미를 살리지 못해 형식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장애가 있는 유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유아 대상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가 제작되었고, 캐릭터 중 말을 못 하는 캐릭터 아기공룡 ‘크롱’을 등장시킨다. ‘크롱’은 항상 당당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다. ‘크롱’과 친구들 사이 소통의 문제로 인한 갈등은 없다. 친구들은 ‘크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놀면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배워나간다. 어린이 눈높이로 소통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전하는 캐릭터 ‘크롱’과 ‘뽀로로’, 그리고 친구들은 어린이들이 다름의 본질을 생각하게 돕는 나침반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5월 2일 EBS의 <딩동댕 유치원>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인형 캐릭터 ‘하늘이’를 등장시켰다. 40년의 기다림, 참 오랜 기다림이다. 농구공을 가지고 처음 등장하는 ‘하 늘이’, 반가웠다.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캐릭터, 그 존재감에 어른인 나도 가슴이 콩닥콩 닥 뛰었다. ‘하늘이’ 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다른 ‘마 리’, 운동(특히 태권도)을 잘하는 ‘하리’, 겁이 많고 소심한 ‘조아’ 모두 장애, 인종, 성 등 다름에 대한 편견과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깨려는 의도가 녹아 있는 캐릭터들이라 반가움의 의미를 더했다. 이런 캐릭터가 가진 힘은 우선, 프로그램 제작진이 이들의 시선 에서 현실을 보게 된다는 것, 그래서 이들이 현실에서 겪는 시선과 차별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갖게 된 관심과 감수성은 프로그램에 스며들어 시청하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함께 시청하는 어른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딩동댕 유치원>에서 ‘하늘이’와 연계된 에피소드를 보면 전동휠체어를 탄 김지우 씨가 직접 출연해 계단 때문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하늘이’와 함께 경사로가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물어보지 않고 도와주는 것은 무시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는 에티켓과 멘트 등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또, 휠체어를 탄 댄서를 스튜디오에 초대해 어린이들이 댄서의 춤사위를 감상하면서 휠체어 댄스의 예술적 가치를 어린이들과 함께 이야기 해보는 시간도 가진다.
이런 ‘하늘이’의 존재가 인형극 속에서만 반짝인다는 것은 아쉽다. 스튜디오에서 율동이나 체조를 배운다거나 게임을 하는 코너에서는 ‘하늘이’로 분한 장애가 있는 실제 어린이가 보이지 않는다. 마리와 하리, 조아로 분한 실제 어린이들만 등장해 함께 노는 것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하늘이’는 체육을 좋아한다. 특히 농구를 좋아하는 친구다. ‘하늘이’ 캐릭터의 배경에는 장애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과 이로 인한 배제에 대한 문제를 비튼 의도가 읽힌다. 그렇다면 그저 농구공만 가지고 다니는 ‘하늘이’ 보다는 평소에 다닐 때도 태권도를 하는 ‘하리’처럼 농구공을 튀기며 다니는 ‘하늘이’, 휠체어 농구를 신나게 하는 ‘하늘이’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유치원 교실 안 계단은 없애야 한다. 인형 캐릭터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애니메이션이나 외부 촬영 (ENG)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면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별도의 외부 촬영분(ENG)을 중간중간 삽입하는 연출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예를 들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친구의 일상을 담은 영상,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친구가 보조기를 신는 것부터, 유치원에 가는 모습, 친구들과 즐겁게 놀며 활동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시각·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가 출연하지 않을 때도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수어로 인사를 나누고 점자책을 펼쳐놓고 노는 모습을 삽입시킨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 편집해 담은 영상에는 반드시 장애, 인종, 성,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장면들이 담기고, 최근에는 성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까지 담아내며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딩동댕 유치원>에서는 아직 ENG 영상에 다양한 사람들은 담지 않고 있다. 스튜디오에도 ‘마리’로 분한 어린 이를 제외하고 다양함을 가진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이 어울려 노래하고 율동하며 체조를 배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서미 스트리트> 속에서 에이즈에 걸린 ‘카미가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편견을 알리고, 미국 아동의 굶주림이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부각되면서 노숙 아동 ‘릴리’를 등장시켜, 250만 명에 달하는 미국의 노숙 아동 문제를 알리고, 미국의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빈곤 문제를 알리고 있다. 이외에도 동성애 가정, 이혼이나 비혼 가정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한국계 미국인 ‘지영’이라는 친구도 함께 한다. 지영이 등장한 배경에 대해 제작진은 최근 미국 내 아시아계 혐오가 노골적으로 표출되면서 이로 인한 범죄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과 관계가 깊음을 시사했다. <세서미 스트리트>가 전하는 세계관이 너무 이상적이지 않으냐는 비판도 있지만,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이들에게 현실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이상적인 가치관을 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딩동댕 유치원>에서 장애가 있는 인형 캐릭터 ‘하늘이’와 피부색이 다른 인형 캐릭터 ‘마리’의 등장이 반가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장애를 가졌거나 다름을 가진 어린이들이 시청하면서 자신과 닮은 캐릭터에 쉽게 교감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동시에 이 시기 발달 과업 중 하나인 자아와 자존감, 특히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장애에 대한 자존감 형성에 좋은 영향을 주는 매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린이 대상이거나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대중문화 콘텐츠에, 또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장애가 있는 캐릭터가 반드시 등장해야 하고 긍정적인 모델링이 되도록 구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하늘이’, ‘마리’, ‘하리’, ‘조아’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딩동댕 유치원’에서 다양함을 가진 어린이 캐릭터들의 다름이 어우러져 조금 더 재미있고 행복해지는 경험을 많이 했으면 한다. 경험만큼 좋은 선생님은 없으므로. 반갑다. ‘하늘이’, ‘마리’야!!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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