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거나,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게 아닌 당연한 권리입니다만…
세상의 중심에 선 장애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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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장애 영유아가 지역사회에서 비장애 영유아와 동등한 환경을 얼마나 누리며 자라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장애아동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장애아동의 부모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장애아동과 그 부모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에게 학교는 양해를 구하고 이해받아야 하는 현실
대한민국에 사는 아동의 부모라면 누구나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입학통지서를 받게 됩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죠. 대부분의 부모는 많은 걱정과 염려 속에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키게 됩니다. 비장애아동의 부모는 자녀가 40분의 수업 시간 동안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 교실 안에서의 규칙을 잘 이해하고 따를 수 있을지, 자기 물건을 잘 챙겨 올지, 친구들과는 잘 지낼지, 급식은 잘 먹을지 등등 지키고 따라야 하는 생활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염려와 더불어 아기였던 자녀가 어린이가 된다는 진한 감동이 코끝을 시큰하게 하죠.
장애아동을 그동안 유아교육·보육 기관 등에 보냈던 부모들은 입학통지서를 받기 전부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발품을 파는 시간을 보냅니다. 집 근처에 어떤 학교가 있는지, 해당 학교가 특수학교인지, 특수학급이 설치된 일반학교인지, 초·중·고·전공과를 운영하고 있는지, 어떤 장애유형을 중점으로 교육하는지, 학급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반마다 지원인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에 관한 사항을 미리부터 알아보아야 합니다. 입학하고 싶은 학교가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이나 통합학급이라면 올해 신입생을 받을 계획이 있는지, 어느 정도의 장애아동까지 입학을 허가하는지, 집과의 거리는 어떤지, 학교와 교사의 교육철학과 태도는 어떠한지 등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 하죠.
장애아동의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미리부터 서둘러 정보를 얻는 이유는 그만큼 공공의 영역에서 각 학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각 지역의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특수교육지원센터의 경우 특수학교나 특수학급 수는 알 수 있을지라도 교직원 수, 입학 가능 여부, 지원인력에 관한 내용은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초등교육과정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제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장애아동 부모는 자녀가 입학한 후에 교사를 비롯한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자녀의 장단점을 알리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일반학교로 입학하게 된 장애아동의 부모는 담임교사에게 자녀의 장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지 숱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전직 기자이자 현직 장애아이 엄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류승연 작가는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라는 책에서 새 학년을 맞이하면서 비장애자녀를 위해서는 새 실내화를 장만하지만 장애자녀를 위해서는 편지 봉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새 학기 학부모 총회에서는 같은 반 부모들에게 장애자녀의 특성을 말로 설명하고, 자녀와 함께 지내게 될 친구들에게는 편지로 장애자녀가 어떻게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지, 장애자녀의 특성이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써서 전달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아동이라면, 누구나 다 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임에도 장애아동에게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누군가의 양해’를 구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해받아야’ 하는 현실인 것이죠. 아동의 의무교육에 관한 사항은 「교육기본법」 제8조, 「초ㆍ중등교육법」 제 12조에서 초등학교 과정과 중학교 과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장애아동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3 조에서 유치원ㆍ초등학교ㆍ중학교 및 고등학교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정하고 있어 장애아동이 학교에서 교육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누군가의 양해를 구하거나 이해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 당연한 권리입니다.
장애를 하나의 특성으로 보는 동등한 관계가 이뤄지길
장애아동의 부모는 자녀의 복지관과 치료실 재활 계획에 맞춰 활동지원사와 부모의 스케줄을 조절합니다. 그나마 치료실 스케줄이 잘 짜여있고, 지속적으로 이용 할 수 있으면 안정적인 일상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재활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장애아동의 일상은 사실 굉장히 불안정합니다. 이용해왔던 재활병원에서 갑작스레 아동 재활을 종료한다는 통보를 받아서 하루아침에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하거나, 다니던 복지관에서 오랜 기간 이용했으니 다른 대기자에게 양보를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용 가능한 다른 기관을 알아봐야 하니까요. 그러면 부모는 또 다른 재활 기관을 알아보고 대기하고 이용하는 바쁜 날을 보냅니다.
지금 당장 조금 더 잘 걷게 되고, 조금 더 잘 말하게 되고, 조금 더 잘 인지하는 등의 신체기능 개선을 위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각 연령대에 적절한 발달 과업을 이루는 것도 중요합니다. 비장애아동과 같은 속도로 발달과업을 이루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아 동의 발달 속도에 맞춰 천천히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흔히들 초등학교 시기에 경험하는 친구네 집에 가서 놀기, 파자마 파티하기,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와 만나기 등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 소통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너무 장애아동의 치료에만 집중한 나머지 아동이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핵심 기술을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곤 합니다.
“안 그래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애인데 거기서 그냥 기계처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니까 그냥 노는 것도 없고 놀 수도 없고 이러니까 (중략) 중학생 고등학생 됐는데 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 저렇게 될까 봐 불안감이 있어요.”
(장애아동 부모 3)
“요즘 햇반 잘 나오잖아요. 제가 없을 때 전자레인지에 햇반 하나 데워 먹을 수 있는 정도, 저 없이 동네에 자기 스스로 슈퍼나 어디라도 이용할 수 있게 좀 가르치고 싶어요. 복지관이든 학교든 이런 것도 프로그램으로 해주었으면 해요.”
(장애아동 부모 9)
[출처 : 전지혜, 원영미(2019). 한국보육학회지 제19권 제1호 재인용]
일정 연령이 도래한 비장애아동들은 집 근처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나 함께 놀다가 귀가하곤 합니다. 그러나 장애아동은 또래와 만나서 놀고 귀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장애아동이 발달과업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서 가까운 슈퍼나 놀이터를 스스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장애아동이 가진 ‘장애’ 때문일까요? 같은 반 친구들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동네에서 만나자고 약속할 때 장애아동을 포함해서 약속을 정하고 있을까요? 장애아 등이 지역사회에서 친구와 만나서 놀고 귀가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각자의 태도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장애아동이 지역에서 또래 친구를 사귀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은 충분한지, 또래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 친구와의 우정을 키우고 있는지를 살펴봐 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장애와 유사한 장애가 있는 친구와의 우정도 쌓고, 비장애인 친구와도 우정을 쌓을 수 있도록, 그리고 우정을 쌓는 과정에서 나의 장애에 대해 이해를 구하거나 양해를 부탁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우정을 맺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아동을 만나는 어른들이, 또래 친구들이 장애아동을 그냥 장애라는 특성이 있는 한 사람으로 대해주길 바랍니다.
작성자글. 원영미/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수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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