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으면서도 다른 나에게, 기대감을 가져주세요
세상의 중심에 선 장애아동
본문
2022년 3·4월호부터 지난 호까지는 장애아동의 발달단계에 따라 태내기,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등의 성장 과정을 지나면서 장애아동과 가족이 경험하는 일들과 사회환경에 대해 함께 살펴보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장애아동의 성장 과정 전반을 돌아보며 장애아동과 함께 살아가는 부모, 형제자매, 친구, 선생님, 그리고 지역사회가 어떤 관점으로 장애아동을 대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모든 인간(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자신이 태어나서 속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면서 함께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에 대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하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자아상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회화를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필요로 하는 행동양식과 규범을 익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장애아동도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사회화 과정을 경험합니다. 장애아동이 경험하는 사회화 과정에서 장애아동을 둘러싼 ‘사회’ 즉, 부모, 형제자매, 친구, 이웃, 선생님, 의료 관련 종사자, 복지 관련 종사자 등은 장애아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임상심리학 교수인 앤드루 솔로몬은 ‘About Us’라는 책의 서문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비유하며 “우리는 자신을 타인의 인식에 맞춰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성장한다. 신체적 기형으로 인해 고립된 장애인은 다른 기회를 얻지 못해 적의를 품게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장애아동이 가진 신체적인 기능제한을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장애아동은 고립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분노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라이트(Wright, 1988)는 ‘부모나 주변사회가 장애아동을 비장애아동과 같은 방식으로 양육했다면, 장애아동의 발달과정에서 이루어야 하는 과업수행 능력은 비장애아동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은 장애아동이 속한 ‘사회’가 장애아동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라이트가 설명하는 ‘비장애아동과 같은 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비장애아동과 동일한 학습량, 동일한 결과물을 창출해 내도록 양육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가족이나 사회가 아동에 대해서 가지는 보호와 수용, 기대하거나 지지하는 태도와 환경 사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며 한 아이가 자신의 자질과 재능을 발견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잘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About Us’(한국어판 : 우리에 관하여, 2021)라는 책에서 조너선 무니는 학창 시절(초·중·고등학생)에 장애 진단을 받아 특수학급으로 편성되었을 때 를 회상하며 “그저 조금 다를 뿐인 자율권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변모했으며, 자존감은 곤두박질쳤다.”라고 말합니다. 장애아동도 자신이 속한 사회가 자기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죠. 조너선은 학창 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가진 장애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학습환경, 두뇌기능을 중요시하는 지능에 대한 좁은 정의, 자신이 가진 장점은 모두 무시한 채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환경에서 오는 한계가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다름을 수용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환경으로 인해 장애를 ‘경험했다’라고 토로합니다.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조너선의 어머니는 조너선이 망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 등을 통해) 고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조너선에게 고등학교까지만 잘 견디면 이후의 인생은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했고, 엄마의 말대로 조너선은 이후에 진학한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로 우등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조너선은 자신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건 단순히 다르다고 생각하건 모든 사람의 정신과 신체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학교, 직장, 공동체를 요구한다고 주장합니다.
앤드루 솔로몬도 장애아동이 자신의 장애로 인해 고립과 분노를 학습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라고 이야기합니다.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장애아동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는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가족, 학급, 학교, 치료실, 복지관, 병원, 학원, 지역사회 등이 해당될 수 있는 것이죠. 혹시라도 <함께걸음> 구독자분들 중에 장애영유아, 장애아동, 장애청소년의 가족 구성원이거나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평소에 장애아동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장애를 지나치게 크게 여긴 나머지 과도하게 보호적인 태도를 지녀 장애아동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대신해주고 있지는 않은지, 그로 인해 장애아동 스스로도 ‘나는 못해’라고 하는 인식을 무의식중에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한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대학생이 말하길 “저는 아무리 오랜 시간 공부를 해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어요. 공부를 정말 잘하고 싶고,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돼요. 지난번에 아이큐 검사를 했는데 60이 나왔어요.” 라고 이야기하길래 저는 그 대학생에게 너무나도 당연히 “장애 등록은 했어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 대학생은 기존에 저를 향해 보여줬던 호의적인 태도를 거둬들이고 정색하며 “저는 제가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고는 자기를 장애인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후에도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습니다. 이 대학생은 IQ 70 이하로, 현행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입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으로 인해 지적인 능력에 제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죠.
이 대학생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이 대학생을 향해 스스로가 지적장애인임을 인정한다면 그동안 오랜 시간을 공부하더라도 학습이 되지 않아 답답하던 마음에 해방감을 가지게 될 것이니 반드시 장애인등록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장애인등록을 했든 하지 않았든 스스로가 인지능력에 제한이 있다고 인정하든 하지 않던 이 대학생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자신이 노력하여 성취하고 싶은 것을 성취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할 뿐입니다. 그리고 제 수업 시간을 통해서 만큼은 전공과 관련하여 어려운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학기에는 제 수업에 청각장애학생, 시각장애학생, 지적장애학생, 뇌병변장애학생, 경계성 지적장애학생 등 다양한 장애학생이 수강하고 있습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 수업 시간이 끝나고 편의제공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어떤 점이 필요한지 이야기해 달라고 했더니 대부분 학생은 시험시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시각장애 학생은 저시력이라서 본인이 앞자리에 앉으면 PPT는 어느 정도 볼 수 있으니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합니다. 청각장애 학생은 난청이어서 문자통역 어플을 사용하지만, 마스크 때문에 입 모양이 가려져 수업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만 이야기하고 귀가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수업부터 지적장애 학생을 위해 가급적 쉬운 말로 자세히 설명하고, 청각장애학생을 위해 립뷰마스크를 착용하고, 시각장애학생을 위해서는 PPT의 분량이 많아지더라도 글씨를 확대해서 교안을 만들었더니 학기가 끝나가는 요즘, 시각장애 학생이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기도 합니다. 자신이 가진 장애로 인해 일상에서 장애를 경험하지 않도록, 이 친구들이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고, 자신들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장애아동을 향한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며, 장애아동이 할 수 있는 활동은 스스로 수행하도록 지지적인 태도로 양육하면 장애아동도 자신이 가진 재능과 자질에 따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장애아동이 자신이 가진 장애로 인해 일상에서 장애를 경험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교사 대 아동의 비율이 아니라 해당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 학급에 재학 중인 장애아동의 장애 정도와 장애 유형에 따라서 지원인력의 배치를 달리하고, 장애 유형에 따른 교수학습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어떤 장애아동의 경우 비장애아동과 동일한 교수학습 방법을 제공하더라도 학습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떤 장애아동은 쉬운 말로 풀이해서 알려준다거나, 기존의 교수학습 방법으로는 학습하기 어려운 아동이 있으니까요. 또한, 장애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및 서비스에서 장애아동과 청소년을 세심히 고려하고 있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살펴 체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다른 복지정책보다 보편성에 조금 더 비중을 두어 수행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공되는 장애아동 및 장애청소년 복지정책은 치료에 중점을 두고 수행되어 장애아동이 가진 장점을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증진시켜 줄수 있는 정책과 서비스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장애아동이 가진 자질과 장점을 계발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개발된 정책과 서비스는 장애아동의 수요를 고려하여 장애인복지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아동에게도 잘 전달되도록 정책입안자와 서비스 개발자들이 세심히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이 성장 과정에서 우연히든 필연이든 소속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장애아동이 자신이 가진 자질과 재능에 따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기 확신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며 기대의 눈빛으로 바라봐 주세요.
기고를 마치며
제 개인적으로는 2022년도에 <함께걸음>을 통해 장애 아동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어서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아직은 장애인 분야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고, 비장애인으로서 감히 장애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도 되는 것일까? 혹시라도 나의 글이 누군가에는 반감을 사거나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풀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게 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함께걸음> 관계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시고 공유해주신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에 좋은 기회에 오프라인으로라도 뵙게 되면 반갑게 인사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2년도 건강하게 잘 마무리하세요. 고맙습니다.
작성자글. 원영미/남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